EP.322 322화. 아이린 & 엘리스
시내의 한 카페.
쪽쪽-
아이린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
엘리스의 성격을 바꾼 남자.
엘리스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는 남자.
엘리스를 위험한 곳에 끌고 간 남자.
그리고 어쩌면… 엘리스의 처음을 가져갔을지도 모르는 남자.
아이린의 입장에서는 적이지만, 그를 견제하기는 힘들었다.
엘리스를 노린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순 없었고, 이호연은 엘리스에게 필요한 존재였으니까.
하필 켄타우로스 추적에도 도움을 주고 있어서 아버지도 그를 신경쓰고 있다.
그렇기에, 아이린은 눈앞의 이호연에게 할 말을 고심했다.
'카페는 왜 온 거야.'
한편 맞은 편에 앉은 이호연도 마찬가지.
그는 미간을 좁히는 아이린을 보며 가만히 앉아있었다.
일단 카페로 끌고 오길래 따라왔는데, 막상 앉아서는 말도 안 하고 고민만 하고 있으니 답답할 수밖에.
"그래서 왜 부르신 거에요?"
"…."
"…."
이호연은 자신을 노려보는 아이린을 보며 입을 다물었다.
아니 자기가 불러놓고 뭐 어쩌라고.
예쁜 얼굴을 믿는 것도 적당히 해야지. 너무하시네 정말.
"내가 뒤에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그냥 보였어요."
"…."
"죄송해요."
이호연은 아이린의 눈을 슬쩍 피했다.
뭐 저렇게 살벌하게 노려보냐. 무섭게.
"후우."
이 남자와는 파장이 안 맞는다.
아이린은 확실하게 느꼈다.
결국 자신이 원하는 걸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 아이린은 먼저 입을 열었다.
"엘리스를 건들지 마."
"안 건드렸어요."
"거짓말. 내가 분명…."
분명히 봤다고 얘기하려던 아이린은 입을 다물었다.
사실 심증만 있을 뿐, 본 건 아니니까.
이호연이 엘리스의 숙소에서 나왔다고 해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보장은 없다.
다만 아이린의 감각이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날 분명 무언가 사건이 있었다고.
"거짓말 아닌데요…."
"내가 봤어. 엘리스의 숙소에서 나오는 거."
"……?"
이호연은 아이린의 말에 잠시 고민했다.
엘리스의 숙소?
아마 실습 전날을 말하는 것 같은데.
그때는 진짜 마사지밖에 안 한 날이잖아.
애초에 어떻게 본거지?
"그건 어떻게 보셨어요?"
"… 지나가다가 봤어."
아이린은 고개를 휙 돌렸다.
'….'
이 사람 진짜 어쩌면 좋냐. 말이 안 통하네.
버릇도 엘리스랑 똑같았다.
자존심은 강하지만 인정하기 힘들 때.
고개를 휙 돌려버리는 거.
"그날은 그냥 마사지였어요. 출격 전날에 컨디션을 완전히 올리기 위해서요."
"… 뭔가 있잖아."
"진짜 없었다니까요."
진짜 했으면 안 억울하겠는데, 진짜 안 했으니 억울하네.
나도 엄청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고.
"동생을 너무 아끼시는 거 아니에요? 엘리스도 이제 어른인데."
"아니. 엘리스는 보호해야해."
"…."
아이린도 나름대로 억울했다.
엘리스를 자신의 취향대로 잘 키워놨는데, 굴러들어온 이호연이 계획을 모두 무너뜨리고 있었으니까.
어떻게든 이호연와 엘리스를 떨어뜨리려고 이호연을 미행해봐도 건수가 없었고, 스칼렛과 데이트하는 걸 보고 카페로 끌고왔지만 할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쪼옥-
이호연은 초코라떼를 마시며 생각했다.
'중증이네.'
미친 년이지만 사람은 착한 게 이런 걸까.
아니면 그냥 이상한 사람인 걸까.
이호연은 아이린을 바라보며 고민했다.
분명 자신은 견제하려고 하는 거 같은데, 방법을 모르는 건지 엘리스 때문인지 사람을 불러다 놓고 이상한 말만 하고 있었다.
이러니 답답할 수밖에.
띠링-
그때, 무언가가 이호연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마치 히로인 상태창을 열 때의 느낌..
'… 설마?'
★ 히로인 상태창
[아이린]
- [ 호감도 : 30 ]
- [ 성욕 : 70 ]
- [ 식욕 : 30 ]
- [ 피로도 : 50 ]
현재 상태 : 줄 수 없어. 엘리스의 처음은 내거야… 절대 안 돼.
아이린의 상태창을 보고 싶다고 생각하자마자, 상태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아니, 동생의 처녀를 자기가 어떻게 가져가겠다는 거야.
진짜 미친 건가?
호감도는 단 30.
그래도 잘생긴 얼굴 덕분에 최소한의 호감도는 챙긴 모양이다.
'상태창은 호감도가 아니라 공략 가능성이 높으면 열리는 거구나.'
지금까지 호감도가 높으면 열리는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그렇다면 곧 아이린을 공략할 수 있다는 뜻.
'역시 질투?'
당장 생각나는 방법은 엘리스와의 관계를 질투시키는 것뿐.
아니면 엘리스의 처음에 대한 집착….
이건 고민이 더 필요한 것 같은데.
"… 무슨 생각 하고 있어? 또 엘리스에 대한 생각이지?"
"아니라니까요."
이 자매는 왜 서로 견제를 하는거야.
*
"안 쫒아오네."
나는 아이린의 이상한 견제를 피하다가 켄타우로스 연구에 대한 핑계를 대며 카페에서 빠져나왔다.
다행히 아이린도 그 주제를 막을 순 없었는지 곱게 보내줬다.
미행을 눈치채는 걸 보고 뒤를 따라오지도 않았으니 이제 해방된 거겠지.
"근데 저 사람을 공략할 수는 있나?"
숙소의 문을 열며 아이린에 대해 생각을 이어갔다.
엘리스를 이용해서 공략해야 하는 건 맞는데… 그게 될까.
아무래도 질투를 이용하는 방법이 좋을 것 같지만, 이건 더 생각해야할 것 같다.
원작에서 정보가 나오지 않는 사람이다 보니 판단근거가 부족했다.
"일어나자마자 연구 중이에요?"
숙소 안에는 켄타우로스의 마력을 연구하는 레베카와 릴리아나가 보였다.
분명 지금쯤 일어날 시간이라 아침용 빵을 사왔는데 벌써 연구를 시작했네.
"앗, 애기 아빠 왔구나. 그래도 거의 다 끝났어."
"나 힘드러…."
"고생이 많네. 이거 사 왔으니까 좀 먹으면서 해."
"릴리아나, 그럼 잠시 쉴까?"
"좋아!"
나는 길거리 빵집에서 사 온 빵을 내려놓으며 연구를 살짝 지켜봤다.
딱 보니 거의 다 끝난 것 같긴 한데, 위치를 역으로 해석하는 게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네.
"애기 아빠가 보기엔 어때?"
"확실히 짜임새가 좋네요. 위치 좌표를 구하면 은신처를 알아낼 수도 있겠어요."
"역시 알아보는 사람이 있어 줘야 해. 이거 만들려고 고생했거든."
"감사합니다. 레베카 씨."
"응응. 아, 나도 음료라도 가져올까."
레베카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들어갔고, 릴리아나는 어깨를 움츠린 채 빵을 파먹었다.
원래 내가 오면 달라붙어서 몸을 비벼야하는데, 그럴 힘도 없는 모양.
마치 밤을 샌 대학원생같은 표정이었다.
"그렇게 힘들어?"
"일을 안 하려다 하니까 너무 귀찮아…."
"방송은 잘하잖아."
"방송도 일주일 쉬었더니 귀찮아졌어."
"너도 인간이랑 똑같구나."
사람은 쉬면 안된다는데, 서큐버스도 똑같나보다.
릴리아나의 옆에 앉아 빵을 집어든 나는 문득 떠오른 게 있었다.
생각해보니 여기 성(性)의 전문가인 서큐버스가 있는데 아이린에 대한 것도 물어보면 되지 않을까.
"릴리아나. 그러고 보니 질문이 있는데."
"응?"
"여동생을 좋아하는 언니를 꼬시려면 어떻게 해야 해?"
"그건 서큐버스한테도 조금 벅찬 질문이야."
"그렇겠지?"
모든 취향을 섭렵한 서큐버스라면 가능할 줄 알았는데 힘든 거였나.
하지만 릴리아나는 포기하지않았다.
"뭐 특징 같은 거 없어? 동생의 어떤 점을 좋아한다든지."
"동생의 외모를 좋아해. 엄청 예쁘거든. 그리고 언니는 자존심이 엄청나게 강하고, 음. 동생의 처녀를 가지고 싶어해."
"…… 냠."
릴리아나는 도넛을 뜯으며 진지하게 고민해줬다.
역시 빵을 사 오길 잘했네.
물론 생각하는 주제가 조금… 그렇긴 하지만.
"역시 서큐버스한테도 이런 질문은 실례인가?"
지옥의 생태를 모르다 보니 내가 큰 실수를 하고 있는 건 아닌가 걱정이다.
"실례까지는 아니고, 조금 불편한 클라이언트 정도 아닐까. 지옥의 유명한 귀족 중에서는 서큐버스의 발냄새를 좋아하는…."
"그만 말해도 괜찮아. 계속 고민이나 해줘."
나는 고개를 저었다.
더이상 지옥의 치부를 듣고 싶지는 않거든.
"으음, 이런 건 어때? 동생의 처음을 가져가기 직전에 언니도 불러서 나눠 먹기."
"먹긴 뭘 먹어. 그건 먹는 게 아니잖아."
"같이 즐기자는 거지!"
그러면 엘리스가 가만히 안 있을 것 같은데.
'잠시만.'
생각해보니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엘리스를 찾아가면 아이린이 분명 쫒아올거아니야.
하지만 처녀를 가져가는 중요한 순간을 아이린과 나누고 싶진 않다.
그럼 그 상태에서…
"오, 릴리아나. 꽤 도움이 된 것 같은데?"
"그랭?! 다행이다! 그럼 다음에는 초코소라빵도 좀 사 와줘."
"그래그래. 뭐든 사다 줄게."
"애기 아빠~. 커피 가져왔어."
"고마워요. 레베카 씨. 이거도 드세요."
나는 남은 빵을 모두 릴리아나와 레베카에게 넘겨주고 고민을 이어갔다.
*
사각사각-
엘리스는 방에서 노트에 일기를 적고 있었다.
처음 실전에 나갔을 때 켄타우로스를 마주친 경험에 대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경험은 그녀에게 좋은 경험이 아니었다.
툭-
써지지않는 다음 내용때문에 펜을 내려놓은 엘리스는 눈을 감았다.
아버지와 아이린의 과보호.
처음에는 그저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아 짜증이 났지만, 실제로 켄타우로스를 마주쳤을 때 벌벌 떨리는 자신의 다리가 더욱 창피하고 짜증 났다.
만약 실제로 전투가 일어났다면 짐덩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겠지.
오히려 마이너스 요소였을 거다.
게다가 엘리스는 분명히 봤다.
켄타우로스를 마주쳤을 때 이호연의 모습.
이호연은 전혀 겁먹지 않고 켄타우로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히려 켄타우로스의 마력을 분석해 위치를 추적한다는 성과까지 내버렸다.
자신과는 너무 비교되는 행동에 기가 죽는 것 같았다.
물론 비교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엘리스는 열등감을 느꼈다.
자신이 질투를 해도 웃어넘기는 이호연의 대처는 앞서나가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여유로움이 있었다.
생각할수록 자신감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띠링-
그때, 엘리스의 스마트 워치가 울렸다.
- 이호연 : 엘리스. 지금 찾아가도 될까? 내일이면 아카데미에 돌아가니까 그전에 못 했던 마사지해줄게.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이호연의 메시지였다.
"… 내일 안 가는데."
엘리스는 와도 괜찮다는 답장을 보냈다.
내일 아카데미에 돌아가지 않는다는 건 얼굴을 보고 얘기해도 되겠지.
그도 약간은 놀라려나.
"후우…."
일정에 대한 생각을 하니까 아빠에게 부렸던 애교가 다시 뇌에 떠올랐다.
며칠의 시간을 벌기 위해 자신이 무슨 추태를 보였는지 그가 알까.
'아니, 평생 몰라야 해.'
어차피 그가 알 방법은 없으니 괜찮다.
엘리스는 안심하며 이호연을 맞이할 방을 치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