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14 314화. 대테러 지원
토요일 아침.
"으으으…."
연구실의 창문을 연 임솔은 일주일 만에 보는 햇빛에 눈을 가렸다.
바깥과 단절한 채 연구에 전념한 일주일.
마법 연구에 있어서 꽤 유의미한 결과를 얻은 임솔은 잠시 휴식을 가지기로 했다.
게다가 곧 기말고사의 준비도 해야 했으니, 어쩔 수 없이 시간을 냈다.
하지만 그 전에.
"… 배고파."
일주일간 제대로 된 식사도 하지 않은 임솔은 느껴지는 허기짐에 배를 붙잡았다.
연구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교도 출입금지령을 내려놨기에 임솔의 밥을 챙겨줄 사람은 당연히 없었다.
뭐라도 먹기 위해 서랍을 뒤지던 임솔은 순간 어지러움을 느꼈다.
털썩-
임솔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눈꺼풀은 무거웠고, 다리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밥도 안 먹었는데 잠을 제대로 잤을 리가.
"… 안 되는데."
너무 연구에 집중을 한 걸까.
임솔은 그제서야 자신의 몸상태를 깨달았다.
온 몸의 세포가 살려달라는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그냥 이대로 잠들고 싶었지만, 그랬다가 정말 영원히 눈을 못 뜰 수도 있었다.
"….'
임솔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스마트워치를 들었다.
긴급구조요청을 보내려던 그녀는, 긴급구조보다 더 효과적인 걸 떠올렸다.
그녀가 아는 지인 중에 배고픔과 치료를 동시에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람은 한 명 뿐이었고, 한창 근무타이밍인 그녀는 자신의 연락을 절대 무시하지 않는다.
임솔은 바닥에 쓰러진 채로 힘겹게 스마트워치를 두드렸다.
*
"아- 해."
"… 냠."
냠냠.
백아영은 자신이 끓인 죽을 받아먹는 임솔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갑자기 살려달라고 연락을 하길래 무슨 일인가 하고 왔더니, 바닥에 쓰러진 채 의식을 잃기 직전인 임솔을 봤을 때는 얼마나 놀랐는지.
백아영은 스푼을 든 채 임솔에게 삿대질을 했다.
"너 진짜 미쳤어? 일주일이나 연락을 안 받길래 뭘 하나 했는데 자살 시도를 하면 어떡해. 사람은 일주일 동안 안 먹고 안자면 죽어!"
"미안해."
"'미안해'가 아니라… 하아, 조심해야 해. 내가 아니었다면 너 정말 위험했어."
임솔이 연락한 게 백아영이었고, 마침 이 주변에 있었기에 망정이지.
평범한 긴급구조팀이었다면 대처가 늦어 임솔의 목숨이 위험했을지도 모른다.
"으응. 알고 있어. 고마워 아영아."
"… 그래. 일주일간 대체 뭘 한 거야?"
"마법 연구. 잠깐 볼래?"
"아니아니. 솔아, 너 지금 마력 일으키면 큰일 나. 절대 하지 마. 이거나 먹어."
"으읍."
백아영은 마력을 일으키려는 임솔의 입을 스푼으로 막으며 진정시켰다.
환자 중에 제일 피곤한 환자가 자신이 환자라는 자각이 없는 환자인데, 딱 이런 환자였다.
몸은 망가지는데 정신만 또렷한 타입.
백아영은 의료팀에 늦는다는 연락을 보내고 임솔을 바라봤다.
"일주일 동안 쌓인 업무는 어쩔거야? 곧 시험인데 시험 문제는 다 냈어?"
"그건 이제부터 생각해야지."
"…."
백아영은 태평하게 스마트워치를 확인하는 임솔을 보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이렇게 자기 색깔이 뚜렷한 친구를 가까이서 보는 건 희극이었다.
"연락이 많네."
"당연하지. 일주일간 말도 없이 잠수탔잖아. 친한 친구 몇 명 빼고는 아예 연락도 안 했다면서."
"그만큼 급박한 상황이었어. 깨달음이 사라지기 전에 연구를 시작해야 했거든."
"네네. 그러시겠죠."
백아영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로서는 마법사들의 세계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실실 웃는 임솔을 보니 괜히 장난을 치고 싶었다.
"뭘 봤길래 그렇게 웃는 거야? 나도 보여줘."
"아니야. 그냥 밀린 연락이 많아서."
임솔은 쌓여있는 메시지 중에서도 상단에 고정해놓은 남자의 메시지를 보고 웃음을 지었다.
답장이 없는데도 하루에 한 번씩 보내온 안부 메시지를 보니 괜히 가슴이 따뜻해졌다.
- 나 : 우리 제자 잘 지내? 연구가 지금 끝나서 답장이 늦었네. 미안해.
임솔은 조심스럽게 답장을 보냈다.
저번 메시지에 오타가 난 걸 이제서야 발견했기 때문이다.
"뭐야? 나도 보여주…."
백아영은 누워있는 임솔의 옆에 머리를 가져가 임솔의 스마트워치를 훔쳐봤고, 임솔의 화면에서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동시에 임솔과 백아영의 눈이 마주쳤고, 백아영은 눈을 찌푸리며 스푼을 내려놨다.
"나 갈거야."
"아영아… 나 배고파."
"… 하아."
"읍."
백아영은 조용히 죽을 떠서 임솔의 입에 넣어줬다.
냠냠.
아무 말 없이 죽을 받아먹은 임솔은, 꼭꼭 씹어서 죽을 넘긴 뒤에 입을 열었다.
"아영아."
"….""
"아영아?"
"하아. 난 몰라. 난 모른다고. 절대 양보는 없거든."
백아영은 임솔을 보며 눈을 피했다.
다른 여자들이 이호연에게 붙는 걸 아예 막지는 않더라도, 첫 번째 자리를 빼앗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건데?"
물론 그건 임솔도 마찬가지였지만.
"내가 먼저 좋아하는 거 알고 있었잖아. 솔아. 이건 반칙이야."
"그렇게 따지면 네가 제일 먼저가 아닌 것도 알지?"
"… 그건 중요하지 않거든."
중요한 건 사랑의 크기.
백아영은 누구보다 이호연에게 사랑을 많이 주고있다고 생각했다.
"잠시만. 아영아. 오히려 우리끼리 협력해야 해. 다른 어린 여자애들과 경쟁해야 하는데, 우리끼리 뭉쳐야지."
"그게 무슨…."
"가끔 불안할 때가 있잖아. 안 그래? 이럴 때일수록…."
백아영은 임솔에게 서운함을 표시하고 싶었다.
이런 사소한 곳에서 자신이 먼저임을 어필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임솔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에게는 이호연밖에 선택지가 없었다.
그렇다면 최대한 가능성을 높여야 했다.
꼭 다른 여자를 넣어야한다면 자신의 절친을 넣는 게 더 좋기도 하고.
"그, 그런가?"
"응. 내가 도와줄 테니까…."
그렇게 이호연을 노리는 어른들의 연합이 완성되었다.
*
토요일 아침.
컨디션은 최상이었다.
어제 명상의 결과도 좋았고, 요즈음 제대로 된 전투를 안 하다 보니 마력도 많았다.
점점 강해지면서 마나량에 신경 쓰는 경우가 아예 적어지긴 했지만.
"근데 넌 뭐야. 스칼렛."
나는 안내역이라고 해놓고 전투준비를 마친 이상한 사람을 쳐다봤다.
"저도 아이리스 길드에서는 당연히 에이스로 쳐주는 멤버입니다."
"그래?"
"예. 게다가 요즘 호연님에게서 기척을 숨기는 연습을 했더니 실력이 더 늘어난 것 같아요."
"… 다행이네."
난 스칼렛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날 놀리느라 더 강해지다니 일타이피도 아니고, 참 잘하는 짓이다.
그때 릴리아나가 내 팔을 잡아당겼다.
"빨리 가자! 빨리!"
"우리는 준비 끝났어. 너만 변신하면 되잖아."
"아, 그렇구낭!"
퍼엉-
난 릴리아나를 목에 걸고 스칼렛의 뒤를 따라갔다.
저번에 탔던 전세기가 넓은 마당에 여러 대 세워져 있었는데, 아마 이걸 타고 이동하는 모양이다.
"겨우 테러 지원 가는 데에 이만큼이나 돈을 써도 돼?"
"저희에게 시간은 금이니까요."
"흐음…."
- 이거 진짜 빠르던데. 와-우-
쓰담쓰담-
나는 릴리아나를 쓰다듬으며 비행기에 다가갔다.
거기엔 처음 보는 얼굴들이 꽤 많았는데, 아마 추적팀 사람들이겠지.
나는 그나마 아는 얼굴인 길드장 아이작에게 다가갔다.
"길드장님."
"응? 오, 드디어 왔구만. 곧 엘리스도 올 테니 잘 부탁한다."
"아, 옙. 잘 부탁드립니다."
탁- 탁-
아이작은 미소를 지으며 내 어깨를 툭툭 쳤다.
갑자기 너무 친근하게 대해서 살짝 당황했지만, 나도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지이잉-
그때, 옆에서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진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휙-
고개를 돌린 순간 아이린의 뒷모습이 보였다.
"…?"
뭐지.
방금 살짝 고개가 움직인 것 같은데.
그대로 아이린을 바라보며 가만히 기다리자 슬쩍 고개를 돌린 아이린이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녀의 동공이 커지고, 마치 못 볼거라도 본 듯 눈을 피했다.
'뭐야?'
혹시나 엘리스라도 왔나 해서 아이린이 보는 방향을 살펴봤지만,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원래대로 시야를 돌렸더니 어느새 아이린은 사라져있었다.
… 귀신인가?
"야야. 저기 엘리스 아가씨 아니야?"
"오? 됐네. 드디어 출발이야."
"근데 아가씨 옷이 좀 이상한데?"
아이린의 행동이 약간 꺼림칙했지만, 옆에서 들리는 엘리스라는 이름을 무시할 순 없었다.
재빨리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멀리서 걸어오는 사람 한 명이 보였다.
평소에 들고 다니지도 않던 고급 아티팩트검을 허리에 차고, 팔꿈치와 무릎에는 보호대.
머리에는 금발이 삐져나와 있는 이상한 보호구.
생전 처음 보는 옷차림의 엘리스가 쭈뼛쭈뼛 걸어오는 게 보였다.
"우리 딸! 왔구나!"
"엘리스. 너무 예쁘다."
"…."
- 뭐야 저건? 자전거 타러 가는 건가?
나는 눈을 비비고 다시 엘리스를 바라봤다.
아쉽게도 그런다고 저 괴상한 보호장비들이 사라지진 않았다.
엘리스는 아이작에게 다가가 대화를 시작했고, 나는 스칼렛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스칼렛."
"네."
"저거는 말려야 하지 않을까?"
"아쉽게도 엘리스 아가씨에게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자리에 호연 님 뿐이네요."
"… 그런 것 같네."
아이리스 길드원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눈을 피하고 있었고, 엘리스에게 말할 수 있는 길드장과 아이린은 좋다고 엘리스를 띄워주고 있었다.
그래. 결국 내가 해야겠구나.
나는 이 쪽으로 다가오는 엘리스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확실히 하나하나는 고급 아티팩트 같긴 했다.
저것들이 모이니까 외향이 별로라서 문제지.
"엘리스. 준비 열심히 했네."
"응. 아빠가 추천해줬어."
범인이 저 사람이었구나.
아니, 이러면 말리기도 힘들잖아.
길드장이 딸의 안전을 위해 추천한 걸 외향이 별로라고 빼라고 하기도 뭐하고.
"… 안전하긴 하겠다."
"그래? 네가 보기에도 그러면 다행이다."
"…."
엘리스는 내 칭찬이 기분 좋은 듯 웃었다.
이건 말을 꺼낼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네.
뭐, 좋아.
칭찬으로만 한 건 아니지만, 네가 좋다면 괜찮겠지.
불편한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굳이 불편함을 말하지 않기로 했다.
- 이상해. 가까이에서 보니까 더 이상해.
"조용히 해."
나는 보호구 사이로 빠져나오는 금발과 관절 보호대를 보며 눈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