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02 302화. 남다은
"음."
달라붙는 루미와 루시를 상대하기 위해 힘을 냈는데, 너무 낸 것 같다.
"으, 으으응…."
"헤, 헥… 헤에엑…."
루시와 루미는 다리를 벌린 채 기절한 듯이 엎드려있었다.
한 사람당 두 세 번씩 해줬더니, 마지막에는 거의 움직이지도 않았다.
찰싹-
주물주물.
침대에 헥헥거리며 쓰러져있는 쌍둥이의 엉덩이를 양손으로 주물렀다.
손에 가득 차는 부드러움.
가슴이랑 다른 매력이 있는 탱탱한 엉덩이의 감촉을 즐기다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클린.'
몸을 깨끗하게 만들고, 옷가지를 챙겼다.
쌍둥이들은 아직도 침대에서 엎드린 채 몸을 떨고 있었는데, 저대로 내버려 두면 잠들 것 같았다.
'역시 너무 과하게 했나?'
고개를 숙여 루시와 루미의 귀에 입을 가져갔다.
"루시, 루미. 오늘 너무 좋았다. 그치?"
"네, 네엣…."
"응…."
"사랑해. 일주일 뒤에 보자. 몸 관리 잘하고 있어. 연락 자주 하고."
쪽- 쪽-
지친 듯 눈이 풀려있는 둘의 이마에 키스를 해줬다.
"응, 응… 꼭 연락해줘."
"좋아해요. 호연 씨…."
"나도 좋아해. 오늘은 먼저 갈게."
루시와 루미는 피곤한 듯 눈을 감고 있었고, 나는 둘의 볼을 쓰다듬고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같이 누워서 뒹굴기라도 하면 좋겠지만 약속이 있었으니까.
"30분 늦었네."
수린 누나가 5시쯤에 일이 끝난다고 했는데, 동아리방에서 나왔을 때 시간이 5시 30분이었다.
뭐, 이 정도는 괜찮겠지.
나는 동아리 방을 빠져나와, 엘리베이터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여기로 올라가면 바로 학생회실이다.
2층에서 쌍둥이들과 관계를 가지고 바로 꼭대기에 있는 학생회장님을 만나러 가는 이 기분이 참 이상야릇했다.
일주일간 자리를 비워야 하니까 히로인들을 다 만나고 갈려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된 판단이었다.
이런건 힘들어도 너무 힘들어.
후우.
기지개를 피며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피하지 못하면 즐겨야지.
예쁜 누나와의 데이트는 즐거우니까.
- 나 : 수린 누나. 지금 찾아갈게요!
- 수린 누나 : 응! 바로 학생회장실로 들어와.
"이 누나도 참 귀여워졌단 말이야."
분위기도 그렇고 말투도 그렇고 확실히 가벼워졌다.
내가 마음의 짐을 덜어내는 데에 도움이 된 걸까.
가끔 잘 하고 있는 건지 헷갈릴 때마다 히로인들의 반응을 보며 힘을 얻는다.
수린 누나도 그렇고, 다은이도 그렇고.
루시나 루미 쌍둥이도 항상 고마웠다.
"프랑스에서 선물이라도 사 올까."
여자들이 좋아하는 선물은 뭐가 좋으려나.
향수?
맛있는 빵?
명품?
"… 고민해봐야겠네."
다 같은 걸 줄 순 없으니 사람마다 잘 맞는 거로 찾아봐야겠다.
띠링-
고민하던 그때 엘리베이터가 내려왔다.
문이 열리고, 안에서 익숙한 얼굴의 사람들이 내렸다.
"어, 선배님들?"
"뭐야. 학생회 오는 거였어?"
"오랜만이네. 후배님."
학생회 선배들.
교류가 많지 않지만 사이가 나쁘지도 않은 지인 정도다.
누나도 같이 나왔나해서 슬쩍 뒤를 살폈는데, 수린 누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회장님은요?"
"안에서 일 마무리하고 계셔. 가서 인사하고 와."
"아아, 알겠습니다."
학생회 선배들에게 인사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누나랑 놀다가 집에 가서 마무리 준비하면 되겠네."
대충 옷가지 정도만 준비하면 되겠지.
여행비는 엘리스가 내줄 거다. 비행기도 빌려준다고 했으니까.
안 내주면 마사지비 좀 가불해달라고 하지 뭐.
띠링-
잡생각을 하다보니 17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내 시야에 들어온 건 불이 꺼진 학생회실과 살짝 열린 문틈으로 빛이 새어 나오는 학생회장실.
나는 그쪽으로 걸어가 문 사이로 얼굴을 집어넣었다.
"누나. 저 왔어요."
"응? 벌써 왔구나."
손님맞이 의자를 청소하던 수린 누나는 날 보고 미소를 보냈다.
"뭐 하고 계셨어요?"
당연히 서류작업이라도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웬 청소?
"으응. 그냥 너 오기 전에 음료라도 준비하려고 했지. 거기 앉아있어."
"에이. 뭘 또 그런 걸… 어?"
수린 누나는 음료를 준비하기 위해 옆에 있던 주전자를 들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의자에 털썩 앉았고, 동시에 의자에 숨어있던 마력 밧줄이 내 팔과 다리를 의자에 묶었다.
"뭐야? 응?"
"움직이지마. 호연아. 다칠 수도 있어."
나는 내 몸을 붙잡는 마력을 확인하고 고개를 들어 수린 누나의 얼굴을 살폈다.
음료를 가지러 간다 했으면서, 수린 누나는 어느새 내 앞에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누나. 이거 뭐예요."
문수린은 몸에서 마력을 뿜어내며 의자에 앉은 내 다리 위에 걸터앉았다.
그리곤 한 손으로 내 허벅지 안쪽을 쓰다듬었다.
"마력 움직이지마? 알겠지?"
이런 마력 밧줄 따위 순식간에 풀 수 있지만, 그것도 수린 누나가 앞에 없을 때의 일이다.
다행인 건 수린 누나가 보이는 게 적의가 아니라 장난스러운 웃음이라는 점일까.
사실 저 미소만 안 보여줬어도 이런 거에 걸리진 않았을텐데. 여자 앞이라서 너무 부주의했다.
"왜 그래요. 누나. 나 잘못한 거 없어요."
"그래? 지금까지 어디 있다 왔는데?"
"그냥 이제 일주일간 못 보니까 친구들 만나고… 어."
그제서야 생각났다.
메시지로 보고를 안 했구나.
아니, 그거 이렇게 진지한 거 였냐고요.
몇 번 했으면 됐지.
"이제야 기억났구나. 보고하기."
"… 네."
"다른 여자랑 있다 온 거지."
"친구들 보고 왔어요. 일주일 못 보니까…."
"진짜 보기만 했어?"
허벅지에 걸터앉아있던 수린 누나는 아예 내 다리 위에 올라왔다.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내게 몸을 기대는, 꽤 야한 자세였다.
수린 누나의 몸에서 풍기는 향기가 확 풍겨왔다.
"…."
"나는 힘들게 일하면서 호연이만 기다렸는데…."
"…저도 누나 보고 싶으니까 왔죠."
"정말?"
수린 누나는 웃으며 내게 얼굴을 가까이했고, 입술이 맞닿았다.
"호연아…. 아, 아읍… 응, 흐응…."
혀가 섞이는 긴 키스.
내 볼에 느껴지는 수린 누나의 손길과 입안을 돌아다니는 부드러운 혀.
유혹하듯 허벅지에 하반신을 비비는 수린 누나 덕분에 내 물건도 단단해졌다.
"하, 하아… 누나."
누나에게 잡아먹히는 것 같은 키스였다.
내 혀를 입안에서 빨아주던 수린 누나는 날 놓아주고는 손을 내 사타구니에 가져갔다.
"일단 하고 나서 대화할까?"
"… 네."
수린 누나는 날 잡아먹을 기세로 내 몸을 쓰다듬었다.
어쩌면 수린 누나는 내가 아니라 자지에 위로받은 게 아닐까.
물론 아니겠지만, 순간 진지하게 고민해봤다.
*
이호연이 문수린에게 잡혀있던 시각.
'… 오늘따라 사람들이 말을 많이 거네.'
남다은은 눈앞에 있는 엘리스를 보며 생각했다.
잠깐 장을 보러 가려 했는데, 갑자기 뛰어온 엘리스가 길을 가로막았다.
"하아. 다은아, 안녕?"
또 영입 제의일까. 아니면 호연이에 관한 일일까.
호연이가 오기 전에 간식거리라도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엘리스에게 붙잡혀버렸다.
루시와 루미도 그렇고 오늘따라 왜 자신에게 말을 거는지 그 이유를 남다은은 짐작할 수가 없었다.
"… 응. 안녕."
하지만 모두 이호연과 친한 여자들이었기에 남다은은 대화를 이어나갔다.
굳이 까탈스럽게 굴 이유도 없으니까.
"이사했다더니, 바로 옆집이네?"
"응. 그러게."
"… 호연이랑 같이 사는 거도 진짜인가 봐?"
"응. 맞아."
"…."
엘리스는 단답으로 대답하는 남다은을 보며 심호흡을 했다.
원래 이런 애인 건 알고 있었는데, 오늘따라 더 답답한 느낌이었다.
"음, 혹시 아이리스 길드에 들어올 생각은 없어? 저번보다 조건도 더 좋게 해줄 수 있어!"
"미안해."
남다은은 몇 번째인지 모를 거절 의사를 표현했다.
자신을 왜 저렇게 원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호연을 보조하기도 바빴다.
"다른 길드도 들어갈 생각 없고?"
"응."
"… 만약 이호연이 아이리스 길드에 들어오면 너도 들어올 거야?"
"그렇겠지."
엘리스는 남다은의 감정없는 대답을 듣고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이 여자는 주관이라는 게 없는 걸까.
아니, 애초에 이상하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욕구가 없다니.
누가 보면 이호연의 노예라도 되는 줄 알거다.
"… 다은아. 너라면 아이리스 길드에서 주인공이 될 수 있어. 네 재능을 확실하게 꽃피워줄거야."
"괜찮아."
"세상에 네 이름이 알려질거고, 엄청난 명예와 부를 얻을 수 있어. 그런데도 이호연 옆에 있을 거라고? 그런 장바구니나 들고?"
엘리스는 남다은이 가지고 있는 낡은 장바구니를 노려봤다.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지만, 말을 하다 보니 조금 짜증도 올라왔다.
엘리스는 남다은의 실력을 잘 알고 있다.
최근 말도 안 되게 성장한 그녀는 라이벌이라고 평가받던 자신이 창피할 정도로 강해졌다.
소속 길드가 없으니 러브콜도 무지막지하게 쏟아지지만, 항상 예의 바르게 거절하곤 했다.
아이리스 길드의 러브콜을 거절하는 것도 살짝 마음에 안 들긴 했지만, 더 마음에 안 드는 건 남다은의 행동이었다.
만약 자신이 저렇게 강했더라면, 저 정도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면 훨씬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을 텐데.
그 재능을 썩히고 있는 것 같아서 자신이 짜증이 났다.
"… 하아, 미안해. 방금 말은 못 들은 거로 해줘."
하지만 곧 그 질투심은 사그라들었다.
사실 엘리스가 무언가를 부러워하는 것도 욕심이다.
이미 남들보다 많은 걸 지원받고 매우 유리한 위치에서 시작한 걸 그녀 자신도 알고 있었다.
엘리스는 급격한 감정 기복과 두통을 느꼈다.
꼭 이호연과 관련된 일이면 이런 감정이 들었다.
그때, 엘리스의 표정 변화를 조용히 바라보던 남다은이 입을 열었다.
"모든 사람이 주인공이 될 필요는 없어."
"… 뭐?"
엘리스는 남다은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네 행복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어. 돈이든 명예든 네가 원하는 게 있겠지."
"…."
"나도 똑같아. 난 호연이의 옆에서, 어떻게든 그를 행복하게 만들 거야. 내겐 그게 행복이니까."
남다은은 말을 마치고 엘리스를 바라봤다.
엘리스가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이해하든 상관없었다.
이호연의 행복에 도움이 된다면 내버려 둘 거고, 방해된다면 막을 거다.
남다은은 그 정도면 충분했다.
"나 먼저 갈게."
짧은 인사를 마친 뒤 남다은은 가던 길로 걸어갔다. 빨리 가야 마트의 세일에 맞출 수 있었다.
엘리스는 멍하니 걸어가는 남다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여전히 그녀의 말은 이해가 안 갔지만, 꼭 주인공이 될 필요가 없다는 말은 그녀의 귀에 맴돌았다.
아이리스 길드라는 좋은 배경에서 태어난 엘리스는, 풍족한 삶을 살며 많을 지원을 받았던 만큼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
엘리스는 서늘한 밤공기를 맞으며 꽤 오래 자리를 지켰다.
*
엘리스와 대화를 끝낸 남다은은 항상 가던 마트로 향했다.
팔에는 낡은 장바구니가 들려있었는데, 스칼렛이 아티팩트를 가져다줘도 이 장바구니에 정이 들어서 이걸 가지고 다녔다.
바깥에서 이호연을 만났을 때의 추억이 담긴 물건이기 때문이다.
그가 과자를 잔뜩 계산해줘서 동생의 웃는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때는 어떻게 살았을까."
100원이 부족해서 계산을 못 할 때.
동생이 길드에 잡혀있어서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었을 때.
생각해보면 하루 하루 버티기가 정말 힘들었다. 정말 죽지 못해서 산다는 말이 딱 맞는 삶이었다.
물론 지금은 죽고 싶다는 생각 따위 하지 않는다.
겨우 몇 달 만에 남다은의 삶은 확 바뀌어버렸고, 이 장바구니를 보면 힘들었던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나름 예쁘지 않나…?"
남다은은 장바구니를 이리저리 들어봤다.
엘리스가 '그런 장바구니'라고 표현한게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이제 보니 아래쪽에 작은 균열이 생겨있었다. 너무 물건을 많이 담으면 찢어질 것 같았다.
"… 오늘이 마지막이겠네."
나쁘지 않을지도.
이제 자신도 과거는 털어버리고 새로운 삶을 찾았으니, 이 장바구니도 은퇴시켜주는 게 좋겠지.
남다은은 살짝 웃으며 장바구니를 팔에 끼우고 걸어갔다.
그녀의 발걸음은 이상하게도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