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4화 (264/648)

EP.264 264화. 춤 추기로 했잖아 (2)

"엄마! 아빠! 할아버지!"

어릴 적 문수린의 기억은 항상 꽃밭이었다.

가정에 충실하고 자상한 어머니와 세심하고 정이 깊은 아버지는 성장하는 그녀의 가치관을 잡아줬다.

"아빠! 나 이거 만들었어요."

"수린아… 대단한데? 여보. 우리 딸은 천재가 아닐까?"

"여보… 오버하지 마요. 수린아, 너무 예쁘다. 우리 대회 준비해볼까?"

"… 오버하지 말라면서."

가족에게선 항상 사랑을 느꼈고, 언제까지나 이 행복한 나날이 계속될 줄 알았다.

아니, 애초에 불행이라는 감정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행복이 깨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엄마…?"

마인의 습격으로 피를 흘리며 쓰러진 어머니의 모습을 직접 봤을 때부터, 문수린의 불행은 예정되어있었다.

현장에 늦게 도착한 문성민은 아내의 시체를 붙잡고 오열했다.

그리고 그 모든 광경을 본 문수린은 억지로 성숙해져야 했다.

아버지인 문성민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내의 복수를 하겠다며 평생 하지 않던 연구를 시작하고, 마인의 뒤를 추적했다.

1년이 넘는 추적 끝에 알아낸 것은 단 하나였다.

아내가 살해된 이유는 자신이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대표를 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것.

겨우 그런 이유 때문에 살해당했고, 이미 그때 사용한 마인은 처리가 끝난 상태였다.

자신의 배우자가 살해당한 것이, 그들에게는 단순한 견제였다.

진실을 알게 된 문성민은 그날부터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세상 모든 마인을 척살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만 것이다.

그리고, 연구의 끝을 맞이한 날.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을 찾아냈다.

그 날 밤.

어린 문수린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한 지도 1년이 지났다.

어머니를 보고싶다고 아버지와 할아버지께 이야기했지만, 아직도 건강 때문에 면회가 안 된다고 했다.

어른이 되어야 볼 수 있다는 똑같은 말의 반복이었다.

그래도 오늘은 기분이 좋았다.

아버지가 그날따라 자신에게 관심을 많이 가져주고, 따뜻하게 대해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잠결에 화장실에 가던 문수린은 보고 말았다.

아버지가 절대 들어오지 말라고 당부하던 연구실의 문이 살짝 열려있었고, 그 틈으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호기심을 참지 못한 문수린은 그 사이를 살짝 엿봤다. 그리고 연구실 내부의 모든 자료들을 챙기는 아버지의 모습을 확인했다.

- 아, 아빠. 어디가?

-… 수린아.

문수린은 홀린듯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직 어린 아이였지만, 아버지를 이대로 내버려 두면 안 된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문수린은 손을 벌벌 떨면서 아버지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아빠, 나도 데려가아. 가지 마…."

떠날 것 같았다.

아빠도, 엄마처럼.

슬픈 눈으로 문수린을 바라보던 문성민은 딸을 꼭 끌어안았다.

-… 수린아. 100 밤 만 기다려.

- 100 밤…?

어린 문수린은 눈을 꿈벅거리며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봤다.

- 응. 딱 100 밤만 자면 아빠가 데리러 올게.

- 엄마도 데려올 거야?

-… 꼭. 데려올게. 할아버지랑 기다리고 있어.

문성민은 마지막으로 딸을 꽉 안아주고, 조용히 저택을 빠져나갔다.

남은 문수린은 눈물을 꾹 참으며 방으로 돌아갔다.

딱 100 밤만 자면 엄마도 아빠도 모두 돌아올테니까.

그때 울고있는 자신을 보여줄 순 없었다.

하지만 100 밤이 넘어도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1000 밤이 넘었을 때였다.

*

- 수린아… 더 강해 지거라. 꼭 강해 지거라.

습격 장소를 향해 달리던 문수린은 갑자기 떠오르는 예전의 기억에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가 떠나가며 남긴 강해지라는 말.

그녀는 그 이후로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자리를 메우기 위해 노력하고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이제는 누구도 그녀에게 고아라는 호칭을 하지 않지만, 그녀의 가슴은 여전히 비어있었다.

그러다 이호연을 만났다.

이상하게 가슴을 채우는 남자.

계속 신경 쓰이게 하는 남자.

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녀에게는 힘이 되었고, 희망이었다.

살면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짓을 많이 하게 되었다.

사진을 모은다던가 녹음을 한다던가 하는 행위를 하게될 줄은 자신도 몰랐다.

'누나, 저랑 춤춰요.'

조금 전에 들은 한 마디.

문수린은 그 한마디만을 위해 마력을 끌어올리며 달려갔다.

- 끄아아악!

- 주, 죽여. 죽여어….

"벌써 뚫린 거야?"

안 쪽에서 배신자가 있다고 했으니, 보안 병력만으로는 위험할 지도 모른다.

그때 시야의 한 쪽에서, 위험에 빠진 생도를 발견했다.

"으, 으아아아!"

최악-

문수린은 쓰러져있는 생도 위에서 입을 벌리는 마인을 염동력으로 집어던졌다.

"가, 감사합니다…"

"빠져. 나머지는 교수들이 처리할 거야."

"네, 네…. 알겠습니다."

평소와 다른 학생회장의 모습에 놀란 생도는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문수린은 정면의 상황을 확인했다.

아직 정면이 뚫린 건 아니다.

치열한 전투의 틈으로 몇몇 마인들이 파고들었을 뿐이다.

콰과과광-! 펑! 콰직!

자동으로 눈이 찌푸려지는 소리를 들으며 문수린은 현장으로 다가갔다.

- 새로 들어온 보안 요원이 스파이였어! 놈이 감지 마법진을 해제했다!

- 젠장! 확인 제대로 하라고 했잖아!

아직 거리가 꽤 있었지만 문수린에 귀에는 확실하게 저들의 대화가 꽂혔다.

동시에 문수린의 머릿속에 서류 한 장이 스쳐 지나갔다.

'이건 끝났고… 다음은 보안 업체인가.'

보안 업체의 서류를 확인하기 직전, 이호연과 놀기 위해서 서류들을 학생회에 맡기고 자신이 확인하지 않았다.

"… 내 탓이야."

빅토리아 아카데미는 자신이 지켜야 한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아버지의 자리를 위해서.

그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효도였다.

'저 정도면… 아직 막을 수 있어.'

비상연락망을 통해 상황전파는 이미 끝났다.

마인들이 많긴 하지만, 교수들이 도착하면 막는 건 시간문제다.

문수린은 머릿속을 떠돌던 이호연에 대한 생각을 잠시 미뤄놓고, 틈으로 빠져나온 마인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

꾸륵- 꾸르륵-

신동민.

아니 이제 그냥 마인이라고 불러도 되겠지.

실시간으로 등에서 촉수를 꺼내고 있으니, 그냥 촉수 마인이라고 불러도 문제없을 거다.

촉수 마인은 입꼬리를 찢으며 소름 돋는 미소를 지은 상태로 등에서 촉수를 뽑아냈다.

"주, 죽일 거다. 너, 너는… 반드시 죽이겠어…."

"별 미친놈을 다 보겠네 진짜."

사실 생각해보면 병신 짓은 다 지가 했으면서, 걸렸다고 나한테 뒤집어씌우는 격이다.

어쩌면 악역이라고 설정된 순간 이게 운명인 걸까.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네.'

지금까지 여러 악역들을 만나다 보니 느낄 수 있었다.

이 세계는 원작이 있는 세계관이다.

초반부 사이다용 악역.

즉 히로인과 관계없는 악역들은 실제로도 비중이 없다.

초반에 내게 시비를 걸었던 도진혁이나, 마력 연구부 부장 김현도 같은 놈들.

그 놈들은 이제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하지만 남다은과 관계있던 바이어 길드장 박민규.

그는 마인화까지 하며 끝까지 생을 포기하지 않았다.

신동민에게서 얻은 교훈으로 스칼렛을 남겨둬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나중에 더 귀찮은 적으로 등장했겠지.

원작에서 문수린의 스토커인 신동민.

지금도 눈 앞에 있을 정도로, 정말 지긋지긋하게 쫓아온다.

"끄르븝- 죽여…."

문수린을 뺏어갔다는 이유로 마인이 되어가면서까지 내게 복수를 하려고 한다.

여기서 얻은 교훈은 딱 하나.

'앞으로 만나는 새끼들마다 확실하게 죽여놔야겠네.'

악역들은 내 눈으로 직접 숨이 끊어지는 걸 확인해야한다.

그래야 효율적일 테니까.

나는 다시 눈앞의 마인을 바라봤다.

"다 끝났냐?"

"지금 무, 무시하는 거냐. 주, 죽여주마. 배를 찌르고 갈기갈기 찢, 찢어서…."

말을 더듬는 꼴을 보니 인간의 형태를 유지하기 힘든 모양이다.

그만큼 강하다는 이야기니 좋은 건 아니다.

'개안.'

두근-

빠르게 뛰는 심장은 상대의 경지가 꽤 높다는 걸 알려줬다.

물론 최근에 본 사람들과는 격이 다르다.

진심 모드의 임솔이나 밤의 황제인 아이작.

룬의 일족 계승자 레베카.

이들과 비교하면 같은 S급이라고 말하기에 창피할 정도였다.

하지만 큰 차이점이 있다. 저 세명은 나를 죽일 생각이 없었고… 내 눈앞의 신동민은 날 찢을 생각이라는 것이다.

'할 수 있어.'

언제부터 유리한 싸움만 해왔다고.

쿵- 쿵- 쿵-

하나하나가 내 몸보다 큰 촉수를 8개나 뽑아낸 신동민은 내 지척까지 다가왔다.

촉수마다 따닥따닥 박혀있는 가시들은, 저기에 부딪히면 따갑다 정도로 끝나지 않겠다는 확신을 가지게 했다.

느껴지는 마력도 꽤 묵직했다. 마인 특유의 짙은 마력이었다.

나는 즉시 마법을 캐스팅했다.

신속하게 만들어진 마법진이 바닥에서 발현했다.

- [라이트닝 웨이브]

바닥을 타고 흘러들어 간 전기가, 그대로 신동민의 몸을 감전시켰다.

"끄으읍…."

순식간에 만들어진 마법이기에 하나도 대비하지 못했을 텐데도 신동민은 순식간에 전기를 털어버리고 내 쪽으로 촉수를 내리찍었다.

심지어 조금 그을린 자국이 바로 사라지는 걸 보니, 재생력까지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역시 문어 다리를 가진 놈들은 능력이 다 비슷비슷하구나.

나는 순간적으로 몸을 가속시켜 촉수를 피했다.

바닥에 선명하게 남은 촉수 자국만 봐도 그 파괴력이 예상되었다.

"찢, 찢어 버리겠다. 주, 죽 여버리…."

"닥쳐 이 미친 문어 새끼야."

- [ 파이어 필드 ]

내 주변을 룬의 결계로 감싸고, 불꽃으로 신동민의 촉수를 후퇴시켰다.

뜨거운 열기가 주변으로 퍼져나가며 일대를 장악하는 동안 나는 천천히 신동민을 살폈다.

지금까지의 움직임은 평범.

마력은 강인했지만 거의 대부분을 몸의 강도와 재생력 강화에 사용하는 것 같았다.

내 파이어 필드가 끝났는데도 촉수들의 상태는 멀쩡했으니, 아마 확실하겠지.

그렇다면, 주의해야 할 것은 촉수에 맞지 않는 것뿐이라는 결과가 도출된다.

저 상태인 놈이 날 죽이기 위해 힘을 아낄 가능성은 거의 없다.

"… 엑스트라 답네."

약점이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내겐 저렇게 큰 놈 상대하기 좋은 스킬이 있다.

──『 스파이럴 』 ──

▶ 고유 스킬

▶마력을 나선 형태로 꼬아서 단단하게 만들고, 나선으로 도는 구 형태로 압축한다.

매우 고도의 마력 제어 능력이 필요하다. 던지기보단 가까이서 사용할 때 파괴력이 크다.

───────

나는 그대로 손에 마력을 회전시켰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며 바람의 속성을 집어넣으며 공기의 흐름을 가속시켰다.

"후우…."

아카데미에 테러가 일어났을 때, 건물 하나를 부숴버렸던 스킬이다.

"문어 따위가 버티겠냐고."

약점을 모르면 모두 공격하면 되고, 재생은 원본이 남아있을 때나 가능한 거다.

*

"크, 크릅… 끅…."

"하아… 더럽게 질겨요 하여튼."

진짜 다시는.

다시는 엑스트라라고 무시하지 않으리.

내 앞 길을 막는 악역들은 무조건 죽여버릴 거다. 진짜로.

나는 속으로 신동민에게 감사를 전했다.

이 귀찮은 짓을 한 번만 겪게 해 줬으니까.

치열한 전투 끝에 신동민의 몸에 있던 마지막 촉수를 방금 떨어뜨렸다.

내 마력과 체력도 거의 고갈되었지만, 아직 충분했다.

"크, 크큭… 크흡."

"… 뭐야."

모든 촉수가 뜯겨나간 신동민은, 울긴 커녕 끅끅대며 웃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왠지 소름이 돋아서 나는 마력을 일으켰다.

고문해서 정보를 빼내기위해 살려놓으려 했지만 계획 변경이다.

역시 저런 쓰레기는 빨리 죽이는 게 맞다.

픽-

그런데, 그 순간 내 손에서 방출된 마력이 사라졌다.

"… 어?"

분명 제대로 발현했을텐데?

마법이 실패한 적은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

그 때 앞에서 끅끅대던 신동민이 입을 열었다.

"다, 당황스럽겠지? 우, 우리의 기술력…. 보, 복수를 위한 집념이다…."

'… 뭐야.'

사라졌다.

내 마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곳곳에 전투 중에 설치해놓은 마법진이 남아있었는데, 순식간에 모두 봉쇄되었다.

"마, 마력 차단 결계. 사도님이 전해주신 이 기술. 이 안에 있다면 절대 마력을 사용할 수 없, 없다…."

고개를 끼긱 움직이며 웃는 신동민을 보며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마력 차단 결계라니. 그게 뭐냐고 대체.

원작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기술을 왜 너같은 엑스트라가 꺼내는건데.

원래 주인공이었다면 여기서 숨겨놨던 비밀병기를 꺼내겠지.

그것도 여유롭게 후후 웃으면서 말이다.

"…."

문제는 나한테 그딴 해결방법은 없다는 거다.

이 결계는 원작에도 나오지 않는다.

아마 사도 어쩌고 하는 걸 보니 또 지옥의 사도에서 나비효과가 발생한거겠지.

내 [마력 감응]에도 반응하지 않는 걸 보면, 마력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이루어진 결계다.

그것도 내가 모르는 물체다.

까득- 까드득-

신동민은 마력 차단 결계가 발동하기 전에 재생에 남은 마력을 쏟아부은건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마인과 인간의 피지컬 차이는 고양이와 호랑이의 차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마인이라는 존재는 괴수가 지능을 가지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사지를 하, 하나하나… 삼켜주마."

"… 이런 씨발."

나는 내게 다가오는 신동민을 바라보며, 도망칠 방법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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