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8화 (228/648)

*

"이, 이게... 맞아? 루미?"

"응. 빨리 빨리."

루미는 루시의 등을 밀며 동아리방으로 들어갔다.

동아리 방에는 어제 설치해놓은... 침대가 놓여있었다.

휴식용이라고 학교에 허락을 받는 게 굉장히 힘들었지만, 결국엔 해냈다.

루미가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루시는 루미가 이렇게 열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게 너무 어색했다.

이호연과 관련된 일에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니까.

"루시. 이 정도면 될 것 같아. 그치?"

"응. 크고 좋긴 한데...."

침대는 넓었다.

셋이 누워서 뒹굴거려도 충분할 정도로.

루시는 침대를 보기만해도 긴장되었다.

여기 이 침대가 놓인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분명하니까.

그런 긴장한 모습을 보며 루미는 루시의 손을 잡았다.

"루시. 혹시 호연 씨랑 같이하는 게 싫어?"

"... 싫은 건 아니야. 좋아."

당연히 루시도 이호연과 루미랑 같이 있는 건 좋았다.

그게 평범하게 노는 것이라면 그냥 좋은 정도가 아니라 날아갈 것 같았다.

하지만 루미와 함께 몸을 섞는 건... 루시에게는 조금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루시. 우리 있잖아.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해."

"마음?"

"... 루시도 알지? 호연 씨한테는 남다은 양이나... 엘리스 씨같이 예쁜 사람들이 많잖아."

"백아영 선생님도 친하다고 했어."

"임솔 교수님도."

"생각해보니 나쁜 새끼네. 진짜."

"괜찮아. 우리는 둘이니까."

루미는 살짝 웃으며 루시의 손을 잡았다.

"루시도 그렇게 생각하지?"

"하아, 응. 알겠어. 이호연을 쓰러뜨려 버리자."

루시는 루미의 말을 거절할 수 없었다.

아니, 사실은 저렇게 열정적으로 나와줘서 고마웠다.

자신은 아직 한 번밖에 경험하지 못해서, 솔직히 그런 쪽으로는 긴장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호연을 원해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랐다.

하지만 루미 덕분에 이렇게 진도를 나갈 수 있었다.

"나도 힘낼게. 루미."

"응.... 사랑해 루시."

"내가 더."

쌍둥이들은 서로 끌어안은 채 침대에 누웠다.

"같이 누우니까 좋다."

"응. 옛날 생각나는 것 같아. 힘들때마다 루시가 항상 이렇게 안아줬었는데."

어릴 적부터 루시는 남들에 비해 여린 루미를 챙겨줬다.

언니로서 당연한 일이었으니 보답같은 건 바라지도 않았지만... 이번에는 슬쩍 말해보기로 했다.

"루미. 이번엔 네가 도와줘."

"걱정하지 마. 꼭 이호연도 우리 사이에 눕히자."

"큭, 좋아. 너무 좋아 그거."

쌍둥이들은 킥킥 대고 웃으며 동아리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

"이거 먹어봐. 닭다리."

"그래, 참 고맙다. 릴리아나."

남다은과 남다희, 릴리아나 그리고 나.

이렇게 네 명은 치킨 세 마리를 시켰다.

치킨이 세 마리니까 닭다리는 총 6개.

그 중 닭다리 3개를 먹고 하나 더 손대려는 릴리아나를 째려보자, 릴리아나가 내 눈치를 보며 닭다리를 내밀었다.

"닭다리가 맛있는뎅...."

"너는 애 앞에서 그게 뭐냐. 진짜."

"릴리아나 언니 너무 웃겨. 풉."

"다희야. 흘리지 말고 먹어."

스윽-

남다희는 신경 쓰지 않는 듯 릴리아나를 보며 웃고 있었고, 남다은도 역시 남다희의 입을 닦아주며 신경 쓰지 않았다.

쯧.

애들이 착해도 너무 착해.

나 없을 때는 얼마나 뺏어 먹었을지 눈에 선하네.

"너 나 없을 때 애들 닭다리 다 뺏어 먹는 거 아니지? 어차피 매일 치킨만 시켜 먹잖아."

"... 아닌데."

내 눈을 피하며 뻑뻑살을 집어가는 릴리아나를 보며 나는 헛웃음을 뱉었다.

지옥에 사는 애들은 다 저렇게 어린 걸까.

아니지.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젊게 사는 건가?

"얘들아, 그러고 보니 너희 몸은 괜찮은 거 맞지?"

염치없는 말이지만... 솔직히 이제야 생각났다.

너무 괜찮아 보여서 신경도 안 썼거든.

"응. 괜찮아."

"당연하지. 얍얍."

힘이 넘치는 걸 보니 다치진 않았나 보네.

"그래도 S급 마인인데... 엄청 쉽게 잡았네? 다은이가 그렇게 강해졌어?"

"음, 릴리아나 씨가 많이 도와줬어."

"릴리아나?"

나는 치킨을 옴뇸뇸 먹고 있는 릴리아나를 바라봤다.

쟤가 도움이 되는 애야?

"왜 그런 눈으로 봐? 나도 엄청나게 강해졌거든? 아마 지옥에서 보고 있는 신님이 내게 축복을 내려준 거야. 흐흐."

"...."

저게 무슨 개소리야.

그래도 남다은이 말하는 걸 보니 강해지긴 한 모양인데....

아.

내가 레베카한테 룬의 결계를 배우면서 강해지는 바람에 쟤도 강해진 건가?

생각해보면 릴리아나를 소환한 이후로 나는 급격하게 강해졌다.

아마 그만큼 릴리아나가 사용할 수 있는 마나도 늘어났겠지.

제대로 된 싸움이 오랜만이니까 릴리아나도 그렇게 느낄만 하다.

"그래. 네가 최고다. 항상 믿고 있었어."

"후후. 그럼 닭다리를 바쳐라."

"호연 오빠, 근데 스칼렛 언니는 언제 와?"

릴리아나와 헛소리를 하며 놀고 있는데 남다희가 그 사이에 끼어들어 질문했다.

"어... 스칼렛은 일 때문에 바쁘대. 그래도 금방 올 거야."

"나도 스카웃 보고 싶다. 꼬리를 안 썼더니 근질근질한 느낌이야."

"릴리아나씨, 스칼렛 씨랑 꼬리랑 무슨 상관인가요?"

스칼렛이라.

나는 엘리스의 곁에 있을 스칼렛을 떠올렸다.

사실 이 정도로 일이 없으면 괜찮으려나?

뭔가 그때는 갑자기 불안감이 샘솟았는데, 나도 그렇고 우리 애들도 그렇고 많이 강해졌으니까.

물론 망겜답게 나중에 파워 인플레가 심해져서 이 정도로는 아직 택도 없지만... 내가 더 노력해야지 뭐.

"내가 한 번 물어볼게. 얼굴 정도는 보여줄 수 있겠지."

"야호! 고맙습니다. 오빠!"

다희는 눈에 띄게 기뻐했다.

스칼렛이랑도 많이 친해졌구나.

내 여자들끼리 친해지는 모습은 언제봐도 기분 좋다.

'아, 스칼렛은 히로인이 아니구나.'

너무 자주 보다 보니 헷갈렸네.

"호연아. 나도 묻고 싶은 게 있어. 그 레베카라는 분은 어떻게 만난 거야?"

"맞아. 그 마녀 너무 무서워. 일족이니 뭐니 하는데 잘 모르겠고."

"레베카 씨... 뭐. 길긴한데 자세히 얘기해줄게."

우리는 계속 잡담을 이어갔다.

역시 히로인들과 이렇게 일상을 나누는 건 기분 좋고 힐링 되는 일이다.

물론 섹스 다음으로.

*

이호연이 해골 가면에게 습격당한 다음 날. 일요일.

스칼렛은 엘리스에게 보고를 했다.

"습격…?"

"예. 아카데미에서 처리 중인 자료를 입수했습니다."

스칼렛이 내민 서류에는 이호연이 받은 습격에 대한 정보가 쓰여 있었다.

아카데미의 정보를 빼돌린 데다가 개인적으로 물어서 얻은 정보까지 있으니 상세한 정리본이었다.

"흠… 알았어. 한 번 연락해봐야겠네. 이만 쉬어."

"예. 가보겠습니다."

엘리스에게 인사를 한 후, 저택을 빠져나온 스칼렛은 집으로 향했다.

스칼렛은 세바스 찬과 달리 엘리스와 매일 붙어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집에 가면 뭘 해야 하나.'

참 이상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기분을 느낀 적은 없는데.

- 스카웃~. 이거 봐봐. 맛있어 보이지?

- 야, 스카웃이 아니라 스칼렛이라니까. 넌 언제까지 그럴 거야

- 스칼렛 씨. 감사합니다.

- 언니~ 이거 해주세요.

"하."

나름대로 정보수집과 암살로 유명한 자신인데.

설마 이렇게 정이 들어버릴 줄이야.

무서운 사람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스칼렛의 입에는 미소가 걸려있었다.

'슬슬 한 번 찾아가야겠어.'

스칼렛은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집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으로 들어와 문을 닫음과 동시에, 온몸에서 보내오는 생존 경고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당장 나가.

몸을 뒤로 돌리고 도망쳐.

스칼렛은 반사적으로 방금 닫은 문을 다시 열었다.

하지만.

"스칼렛."

곧 들려오는 중후한 목소리에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몸을 다시 뒤로 돌렸다.

초식동물이 맹수를 보면 오금이 저리듯 당연한 현상이었다.

거실에는 마치 자신의 집처럼 소파에 몸을 눕히고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남자는 마치 자신의 집에 온 듯 편해보였다.

"길드장... 님."

"오랜만이야. 이곳은 살만한가 보네?"

아이리스 길드장.

아이작.

그가 자신의 집에 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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