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7화 (227/648)

저런 마법을 공짜로 알려주는 것도 너무 좋고.

"근데 지금 오는 것도 애기 아빠 여자친구야? 너무 여자가 많으면 아이 정서상 안 좋은데."

"네?"

다다닷.

어?

나도 곧 익숙한 마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는… 문수린의 마력이었다.

"잠시만. 잠시만요."

나는 레베카가 깔아놓은 룬의 결계 밖으로 빠져나왔다.

"일단 숨어있으세요. 애들 데리고."

"저기 여자친구한테는 비밀인가 보네~. 알았어."

"와, 와… 미친 마법사…."

"…."

릴리아나와 남다은은 아직도 시간을 돌리는 마법에 놀란 상태였다.

나는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문수린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크흠.

목을 가다듬고 문수린을 기다렸다.

종이 울리면 바로 맞이하기 위해서.

"호, 호연아!"

쾅-

"…."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달리 문수린은 조금 과격하게 들어왔다.

기숙사 문이 터졌다.

말 그대로.

부서진 것도 아니고 팝콘처럼 터져나갔다.

"응…?"

"안녕하세요. 수린 누나."

"어, 어? 그 암살자는…."

문수린은 그제야 사지가 잘린 채 바닥에 누워있는 마인을 발견했다.

"너… 네가 직접 처리한 거야?"

"… 네."

사실 어떻게 싸우는지도 못 봤지만… 그렇다고 하자.

"대, 대단하네. 이렇게 깔끔하게 처리하다니… 괜히 걱정했구나. 그, 그래도 다행이야. 아, 앗… 문은 미안해…. 내가 고쳐줄게."

문수린은 머쓱한 듯 시선을 피했다.

"고마워요. 누나. 저 걱정해서 찾아오신 거죠?"

나는 그제야 문수린의 옷을 볼 수 있었다.

나랑 만났을 때의 옷 그대로였지만 크롭티와 청바지에는 이리저리 찢겨서 살결이 보였고, 피가 배어 있었다.

아마 집에 돌아가자마자 옷을 갈아입을 틈도 없이 습격당하고, 바로 나에게 뛰어온 거겠지.

해골 가면은 신동민과 관련이 있으니까 문수린도 습격한 모양이다.

솔직히 스토킹도 아니고 죽일 기세로 습격할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 안 다쳐서 다행이네.

★ 히로인 상태창

[문수린]

- [ 호감도 : 89 ]

- [ 성욕 : 55 ]

- [ 식욕 : 35 ]

- [ 피로도 : 63 ]

현재 상태 :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그래도 이렇게 와준 문수린의 마음 자체가 고마웠다.

"으응, 아니야. 올 필요도 없었는데."

"아니에요. 하아, 이거 어떡하면 좋아."

나는 문수린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줬다.

"다행히 얼굴에 흉터가 생기진 않았네요."

"으, 왜, 왜 그래…?"

문수린은 갑작스러운 스킨십에 당황한 것 같았다.

하지만 챙겨주고 싶은 걸 어떡해.

"제 집에 있는 옷이라도 챙겨입으세요."

"네, 네 옷을?"

"찢어진 걸 입고 있을 순 없잖아요."

나는 문수린을 위해 옷장에서 옷을 꺼냈다.

넓은 오버사이즈 티셔츠니까 가슴이 큰 문수린도 입을 수 있겠지.

동시에 룬의 결계에 숨어있던 남다은에게 눈짓을 했다.

방에 있는 남다희도 챙기라는 뜻이다.

남다은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걸 확인한 나는 문수린에게 옷을 건네줬다.

"… 고마워. 잘 간직할게."

"어, 네."

이럴 때 보통은 잘 빨아서 준다고 하지 않나?

내 티셔츠를 받은 문수린은 소중한 걸 받은 듯 품에 꼬옥 안았다.

... 누나, 그러면 피가 다 묻잖아요.

*

잠시 후.

문수린이 부른 아카데미 보안팀이 도착했다.

"S급 마인이야. 긴장하지 말고 확실하게 묶어."

"네! 알겠습니다!" 

마인의 사지를 챙기고, 몸뚱아리까지 확실하게 묶어서 어딘가로 가져갔다.

"회장님. 현장을 조금 분석하고 싶습니다만…."

"아, 응. 호연아. 잠시 밥이라도 먹고 올래? 나는 여기를 좀 도와야 해서." 

"네. 감사합니다. 누나."

문수린은 내 티셔츠를 입은 채 현장을 지휘했다.

다 해준다니까 고맙네.

나는 문수린에게 인사를 한 후에 거실을 이리저리 살피는 보안팀을 뒤로하고 기숙사 밖으로 나왔다.

"밥이나 먹으러 갈까?"

"나쁘지 않아. 애기 아빠가 좋아하는 음식은 뭐야?"

내 뒤에는 레베카와 릴리아나, 남다은이 따라왔다.

남다희는 아직도 자고 있어서 남다은의 등에 업힌 채였다.

"… 근데 레베카 씨. 판데믹한테 저랑 친하게 지내는 거 들키면 안되는 거 아니에요?"

"아… 그렇네."

대체 이 사람은 어떻게 판데믹의 간부까지 올라간 거지?

아니, 오히려 그만큼 능력이 좋다고 봐야 하나?

"일단 레베카 씨는 돌아가요. 판데믹에게 당했던 세뇌의 흔적이 있나 확인해봐야 하잖아요."

"…맞아. 일단은 그게 먼저야."

레베카는 미간을 찌푸렸다.

세뇌에 당했다는 게 자존심이 상하겠지.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절대 세뇌가 풀린 거 티 내지 마시고요."

"당연하지. 자기도 여자친구랑 노는 것도 좋지만 아이 만들 건 남겨놔야 해. 알겠지?"

"… 예예."

살짝 미소를 보인 레베카는 스르르 사라졌다.

아니 룬의 결계로 순간이동도 하는 거야?

"나 치킨 먹을래. 치킨 사줘. 그리고 저 사람 좀 무섭다. 너무 쎄."

레베카가 사라지자 릴리아나는 내게 달라붙어왔다.

"나도 처음 봤을 때 쫄았어. 그래도 착한 사람이야."

"맞아. 우리 창문 되돌려줬잖아. 그러니까 치킨 먹자."

"다은아, 뭐 먹고 싶어?"

내 팔을 물려고 하는 릴리아나를 무시한 채 다희를 업고있는 남다은에게 말을 걸었다.

"호연이가 좋은 거로."

"치킨 먹자고!"

"에효. 그래, 가자."

나는 주변에 인식 저해 결계를 살짝 걸고, 상가 쪽으로 걸어갔다.

"이쪽은 깨끗한데... 거기는?"

"깔끔합니다. 아무 흔적도 없어요."

"흐음...."

"어떻게 흔적 하나 없이 전투를...."

"심지어 마인의 마력 잔재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카데미 보안팀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조사해도 전투의 흔적이 나오고 있질 않았으니까.

딱 마인의 시체.

그것 빼고는 수상한 점이 나오질 않았다.

마치 다른 곳에서 마인을 처리하고 이 곳에 시체만 던져놓은 느낌이었다.

"틈도 주지 않은 거야."

"네?"

다들 눈을 찌푸리며 거실을 바라보고 있을 때.

아카데미 보안팀 중 가장 나이 많은 최고참.

외국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온 보안팀의 에이스 김펠레가 입을 열었다.

김펠레는 손으로 턱을 잡고 현장을 내려다봤다.

"S급 마인이 마력도 내지 못했다... 그게 무슨 뜻일것 같아? 마인의 가장 큰 욕구는 생존본능이야. 그런데 죽을 위기에서 마력을 쓰지 않았을 리가 없잖아."

"그렇다면...."

"그래. 이호연은, S급 마인이 반응도 못 하고 당할 만큼 엄청난 실력자다."

"...!"

"이건 따로 보고해야겠어. 자네들도 혹시 모르니 입 단속하게."

"예, 예. 알겠습니다!"

김펠레는 후우.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긴 경력에도 저런 강자는 처음이었으니까.

보안팀의 막내는 어쩌다 들어버린 기밀사항에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다들 뭐 하세요?"

문수린은 다들 모여서 고개를 젓고있는 보안팀에게 다가갔다.

"회, 회장님!"

"조사는 잘 되어가고 있나요?"

"네, 넵." 

보안팀은 문수린에게 경과를 보고했다.

현장에서 학생회장은 꽤 지위가 높았다. 

통솔할 사람이 없는 것도 그렇지만, 문수린은 어린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일을 잘했기 때문이다.

문수린을 무시하는 현장에 있는 자존심 강한 인원들도 몇 번 일해보면 어쩔 수 없이 인정하는 인재가 바로 문수린이었다.

"아무 흔적도 없다.... 확실히 너무 깔끔하긴 했어요."

현장은 누가 봐도 어색했다.

전문가들이 보기에는 더 이상하겠지.

"아니면 방 안쪽도 살펴봅니까?"

"... 아니요. 거긴 제가 둘러만 볼게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마무리 짓겠습니다. 어이! 마무리해!"

여러모로 꺼림칙한 부분이 많지만... 호연이의 사생활은 지켜줘야 한다.

보안팀이 현장 조사를 마무리하는 동안, 문수린은 이호연의 방이나 욕실을 대충 살폈다.

딱히 사건과 관련있거나 눈에 띄는 이상한 점은 없었다.

그런데....

"칫솔이 엄청 많네."

조금씩 문수린의 눈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방과 거실에 하나씩 있는 침대도 그렇고, 사용하고 있는 듯한 여러 개의 칫솔.

방송이라도 하는 건지 완벽한 세팅이 되어있는 컴퓨터.

생활감이라고 할까. 

사람의 흔적이 보였다. 

물론 이호연의 집이니까 사람의 흔적이 보이는 게 문제는 아니지만....

"... 호연이가 방송을 한다고는 못 들었는데."

무언가, 무언가 마음에 걸렸다.

대체 뭐지?

하지만 옷장이나 서랍을 다 뒤져보고 싶진 않았다.

그건 정말 이호연의 사생활이었으니까.

문수린의 양심이 그 선을 넘지 말라고 하고 있었다.

이상하게 고개를 갸웃거리던 문수린은 우연히 침대 밑에 숨겨놓은 듯 널부러져있는 옷을 찾아냈다.

검은색 천 조각이었는데, 양손에 들고 펴보니 확실히 무슨 용도인지 알 것 같았다.

여성의 가슴과 배, 골반, 허벅지를 강조하는 옷.

남성을 자극하기 위해 만들어진 야한 의상이었다.

"...."

이게 왜 호연이의 집에 있는걸까.

"회장님! 마무리 끝났습니다!"

문수린이 생각에 빠져있을 때 밖에서 보안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네!"

일단은 돌아가야 한다.

문수린은 옷을 다시 침대 밑에 넣어놨다.

"...."

대체 뭐야. 

호연이는 자신에게 무언가 숨기고 있다.

어쩌면 별것도 아닐 수도 있다.

저 천 조각도 그냥 친구에게 받은 쓸데없는 선물 같은 걸 수도 있고... 컴퓨터도 말하지 않은 취미일 수도 있다. 

그 정도는 존중해 줄 수 있으니까.

하지만 괜히 여러 생각이 문수린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이호연은 친한 여자들이 많았으니까.

"하아...."

문수린은 지금 이 감정이 미웠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차라리 아무것도 찾아보지 말걸.

그랬다면 마음이 편했을 텐데.

문수린은 복잡한 머리 그대로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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