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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흠. 후우…."
엘리스는 몇 번이나 몸에 향수를 뿌리면서 이호연을 기다렸다.
자신의 집에 들이는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오랜만이었기에 긴장은 더더욱 심해졌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긴장을….'
엘리스는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심호흡을 했다.
후우. 하아. 후우.
무엇이 이렇게 자신을 흥분하게 만드는 걸까.
선천적 마력 장애가 치료된다는 기대감일까.
오랜만에 이호연과 단 둘이 만나는 것일까.
기다렸던 이호연의 마사지를 받는 것일까.
엘리스는 알 수 없었다.
띵동- 띵동-
그때 정문에서 알람이 들렸고, 엘리스는 CCTV 화면을 바라봤다.
대문 앞에는 이호연이 서 있었다.
"… 왔어."
저택 대문을 개방하는 장치를 작동시킨 엘리스는 이호연이 들어오는 걸 보고 재빨리 밑으로 내려갔다.
쿵쿵대는 심장은 덤이었다.
엘리스는 이호연이 마당을 지나 집에 도착하는 타이밍에 맞게 문을 열었다.
"안녕. 늦어서 미안해. 많이 기다렸지?"
"… 아니. 나도 방금 막 업무 끝냈어. 들어와."
확실히, 강의실에서 보는 이호연보다 집에서 보는 이호연이 느낌이 이상했다.
잘생긴 건 둘째치고, 얼굴만 봐도 아랫배가 울리는 것 같았다.
엘리스는 왠지 두근대는 가슴을 붙잡고 이호연을 방으로 안내했다.
이호연은 그 뒤를 따라가며 집을 구경했다.
'진짜 크긴 하네.'
이런 곳에 살면 기분이 어떠려나.
"인식 저하 결계는 방에서 풀면 되지?"
"아니. 괜찮아. 이미 비서한테 네가 온다는 얘기 했거든."
"… 그래도 돼?"
그러면 안 되잖아.
너희 아버님 딸 바보인 거 다 아는데.
"응. 이미 얘기한 지 꽤 됐어. 언제까지 숨길 순 없잖아."
"그렇긴 한데…."
아이씨. 역시 끝까지 숨기긴 힘들었나 보네.
의외로 평온한 걸 보니 괜찮은건가?
'아닌데. 절대 그냥 끝낼 사람이 아닌데.'
귀찮은 일만 안 생겼으면 좋겠네.
엘리스의 방에 도착한 이호연은 익숙하게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저번에 왔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는 이런 거 없었는데… 완전 제대로 준비했구나.'
핑크핑크한 방의 가운데에 마사지 침대가 놓여있었다.
딱 봐도 안정적이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게, 비싼 것 같았다.
"… 몸은 괜찮아?"
엘리스는 이호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랫배가 꿍꿍거리는 게 마음 같아선 바로 마사지를 시작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너무 노골적인 것 같았다.
답장까지 천천히 한 보람이 없었다.
사실, 마사지가 치료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전혀 거리낌 없어야 한다.
저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떳떳하지 못하다는 거지만, 엘리스는 그걸 자각하지 못했다.
이호연은 마사지 침대에 걸터앉은 엘리스를 보며 대답했다.
"응. 보시다시피. 튼튼해."
'바로 마사지를 시작할 줄 알았는데, 잡담으로 긴장을 풀 생각인가 보네.'
마침 잘 됐다.
물어볼 게 많았는데.
"다행이네. 음…."
"그러고 보니 아까 학생회에 다녀왔는데, 선배들이 네 얘기도 하더라."
"학생회? 우리가 홍보부 활동을 오래 안 하긴 했지."
"사실 우리 초상권을 가져가는 대신 학생회에 끼워주는 거니까… 별 상관없긴 해."
"나도 마찬가지야. 일이 없는 게 좋아."
학생회 얘기로 분위기를 좀 이완시킨 후에 할 얘기를 하려 했는데, 엘리스 표정이 좋지 않았다.
뭔가 답답한 느낌이었다.
이호연은 바로 본론을 꺼내기로 했다.
"어… 그러고 보니 요즘 프랑스가 많이 시끄럽던데, 너희는 괜찮아?"
"… 아니. 아이리스 길드에서도 피해가 크지."
"내가 도와줄 일은 없을까?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은데."
엘리스를 통해서 프랑스로 넘어갈 순 없을까. 그러면 일이 편해질텐데.
"괜찮아. 그 정도는 우리가 처리할 수 있어."
"어, 그래도…."
"아이리스 길드의 일은 아이리스 길드가 처리하는 게 룰이거든. 미안해."
"알았어. 미안."
엘리스는 확실하게 거절 의사를 내보였다.
아무래도 정보길드니까… 그런 쪽에서는 룰이 강한 모양이다.
솔직히 내가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니까. 뭐.
기분 나쁘진 않았다.
'그래도 끼었으면 좋았을텐데, 아쉽네.'
켄타우로스와 지옥, 그리고 릴리아나의 연관성을 찾고 싶었는데.
정부까지 엮여있는 이상 인맥이 필요한데 말이야.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이호연이 잠시 다음 말을 고민하던 때에, 엘리스는 이호연에게 안보이는 쪽의 주먹을 꽉 쥐었다.
'… 그냥 바로 마사지 시작하면 안 되나?'
이렇게 얘기가 길어질 줄 알았으면 바로 시작하자고 할걸…!
왜 괜히 안부같은 걸 물었을까.
이제와서 됐으니 마사지나 하자. 라고 말하기도 뭐했다.
엘리스는 조바심에 입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임솔 교수님이랑 하는 연구가 좀 늦어졌거든."
"그랬구나."
"… 응."
엘리스는 누가 봐도 지루한 표정이었다.
자기가 먼저 말을 시작해놓고 말이야.
아무튼, 얘기해본 결과 엘리스를 이용해 프랑스에 가는 방법은 힘들 것 같다.
아이리스 길드만의 룰이 있는데 그걸 나 때문에 깰 수는 없으니까.
★ 히로인 상태창
[엘리스]
- [ 호감도 : 69 ]
- [ 성욕 : 70 ]
- [ 식욕 : 40 ]
- [ 피로도 : 55 ]
현재 상태 : 이런 대화를 언제까지 하려는 거지…?
엘리스도 이제 한계인 것 같으니, 슬슬 진도를 나가기로 했다.
"음… 이제 슬슬 마사지할까? 준비 다 했지?"
"어, 응. 다 했어. 샤워도 끝냈어."
"… 잘했네."
샤워까지 하셨구나.
마사지 받는 데 아주 진심이다.
"그럼… 밖에 나갔다 올 테니까 준비할래?"
"응. 준비 다 되면 부를게."
나는 챙겨온 가방을 들고 방 밖으로 나왔다.
문을 닫은 후, 안쪽에서 들리는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들으며 가방을 열었다.
"… 괜히 챙겨왔나."
가방 안에는 마사지 용품들이 가득 담겨있었다.
열심히 일 하는 척 하려고 마석 가루나 오일 같은 걸 챙겨왔는데… 분위기가 잘 살려나 모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