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2화 (202/648)

*

"아, 아아…."

'달달하네.'

결국 박민규는 남은 돈이 있는 곳까지 다 불었다.

끝까지 없다고 우기길래 아는 기자한테 전화를 걸었더니, 그제야 사실대로 얘기하더라.

"이, 이제 됐잖아. 300억이라고. 무려 300억."

300억.

확실히 많은 돈이다.

부가수입치고는 나쁘지 않지.

"오케이. 제 요구는 여기서 끝입니다."

"그, 그럼 이제 증거를 건네줘. 오늘은 서로 만나지 않았던 거로 하고…."

"그럼 이제 진짜 의뢰인하고 대화를 해보세요."

"… 뭐라고?"

나는 슬쩍 남다은의 뒤로 빠졌다.

'내 요구'는 끝났으니까.

뒤에서 기다리던 남다은이 앞으로 나서고, 박민규와 마주 섰다.

"… 민규 아저씨."

"다, 다은아."

남다은은 의외로 차분했다.

복수 대상이 눈 앞에 있고, 복수를 실행할 힘이 있는데도 말한 것 처럼 대화를 시도했다.

"다희를 구한 이후로 계속 생각했어요. 나랑 다희한테 왜 그랬을까. 내가 알던 민규 아저씨는 그렇지 않았는데."

스긍-

남다은은 가지고 온 검을 꺼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어요. 저희가 잘못한 게 없으니까."

날카로운 검에 남다은의 얼굴이 비쳤다.

남다은은 검면을 바라보며 침착하고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민규 아저씨… 이제 말해주세요. 왜 그랬어요?"

"다은아. 자, 잠시만. 진정해라. 다 설명할 수 있어."

"저랑 다희랑… 아저씨만 믿고 살았어요. 그런데 갑자기 왜 그런 거에요…? 정말 처음부터 제 몸을 노리고 다가온거에요?"

이제야 알 것 같다.

남다은은 분노한 게 아니다.

정말 의문을 느끼고 있는 거다.

하루아침에 변해버린 박민규라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는 거다.

따뜻하게 대해주던 박민규의 기억이 깊게 박힌 모양이다.

'원래 그런 놈이었을 텐데.'

원래 저런 쓰레기들은 본성부터 더러운 놈들이다.

그리고 쓰레기일수록 연기를 잘한다.

상대가 남다은같이 순수한 사람이라면 속이기도 쉬웠겠지.

털썩-

박민규는 그 상태로 무릎을 꿇었다.

고개를 푹 숙이며 바닥에 뚝 뚝 눈물이 떨어졌다.

"다은아…."

"아저씨?"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눈물을 흘리며 사죄하는 박민규를 보며 나는 조용히 하품했다.

'뻔하다 뻔해.'

내 눈에는 다 보였다.

무릎을 꿇고 상체를 숙이며 몸을 가린 박민규는, 품을 뒤지고 있었다.

보나마나 안 쪽에 검이라도 숨겨왔겠지.

나는 남다은이 어떻게 반응할까 지켜봤다.

"아저씨. 진심으로 저희에게 사과할 마음이 있는 건가요?"

"정말 미안하다. 예전에 했던 과오들을 모두 후회하고 있어. 그래서 신영 길드를 내부고발 한 거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기 위해서…. 이제 더러운 일을 하고 싶지 않아…."

나는 지루한 표정으로 박민규를 바라봤다.

저 따뜻한 인상과 애처로운 눈물까지 합쳐지니 확실히 효과가 있긴 하지만, 나는 본성을 알고 있다.

진짜 착한 사람이었다면 생도를 영입한다고 룸에 데려가진 않았을테니까.

"그럼 모두 포기하세요."

"… 뭐?"

"아저씨가 더러운 일을 하며 얻었던 것들, 모두 포기해요. 모든 죗값을 치른 뒤에 처음부터 시작하세요."

"다, 다은아…."

"그거면 저도 용서할 수 있어요. 정말 저희에게 사과하고 싶다면, 당신의 명예부터 모두 놓으세요."

남다은은 스마트 워치를 두드렸다.

내가 미리 세팅해준 설정대로 전송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됐으니, 어려운 건 없었다.

"민규 아저씨…. 이거 보이세요?"

"이, 이게 무슨… 어?"

남다은이 보여주는 화면은 간단했다.

뉴스 속보였다.

- 안녕하십니까. 하영 기자입니다. 현재 마약 유통으로 물의를 빚은 바이어 길드의 길드장 박민규가 주기적으로 불법 성매매 업소에 드나들었다는 소식인데요….

기다리고 있다는 듯, 내가 섭외해놓은 기자가 뉴스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아, 안 돼. 안 돼…!"

방금까지 사죄하던 박민규는 고개를 벌떡 들어 올렸다.

그리고 재빨리 머리를 돌렸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룸에 가는 것, 접대라고 우기면 봐줄 수도 있다.

어이없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고위 헌터들은 수입이 많은 만큼 그런 쪽은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물론 쌓아왔던 이미지는 나락으로 떨어지겠지만, 활동을 할 수 없는 수준은 아니다.

손가락질받으면서도 활동을 이어가면 다시 복구할 수 있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안 된다.

"다, 다은아.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 내 밑에는 나 말고도 다른 길드원들이 있어. 그들은 각자 가정이 있고 부양하는 사람이 있다. 이 이상은 안 돼…."

"…."

남다은은 박민규의 말을 듣고 순간 고민하는 듯했다.

이번 일은 남다은에게 전부 맡기기로 마음먹었기에 정보를 터트리는 권한 자체를 남다은에게 맡겼다.

'저런 거에 넘어가면 안 되는데.'

복수를 한다면서, 아직 순수한 티를 못 벗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끼어들어야겠네.

"남다은."

"… 응."

대답하는 목소리에 확신이 사라졌다.

고민하는 거겠지.

자신이 저 사람들을 실직자들로 만드는 건 아닐까. 하는 고민.

뭐, 사실 그런 고민을 할 거면 이미 늦었지만… 어쨌든 고민하는 것 같으니 해결은 해줘야겠지.

"이기적으로 행동해."

"… 이기적?"

"남 생각은 하지 마. 오로지 네 감정만 생각해. 이제는 그럴 때가 됐잖아."

사실 설득할 방법은 많다.

범죄 행위에 가담한 사람이 아니라면, 조사를 받은 뒤 무죄로 풀려날 거다.

그 후에 구직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지만… 큰 문제는 아닐거고.

길드를 못 알아본 자기 안목 탓도 있으니 어쩔 수 없는 거기도 하다.

그리고 사실 저런 논리리면 세상에 처벌해야 할 사람은 없다.

모든 사람에겐 사정이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나는 그렇게 설득하지 않았다.

남다은이 이제는 자기감정대로 움직였으면 했다.

앞길이 창창한 나이인데도 저딴 쓰레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모르고 있다.

이제는 남다은이 이기적으로 행동했으면 했다.

"…."

"다, 다은아. 제발…."

"저도 모르겠어요."

남다은은 혼란스러워 했지만, 곧 눈앞의 박민규를 보며 주먹을 쥐었다.

"제발, 이제 그만…."

"이 답답함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이해가 안 돼요. 하지만… 호연이는 믿어요. 이번만큼은 하고싶은 대로 할래요."

남다은은 스마트워치를 계속 조작했다.

바이어 길드의 이중장부, 세금 탈세, 불법 사채업, 위조 아티팩트 등등 모든 범법행위가 속보로 올라오고, 실시간 검색어를 도배하듯이 매웠다.

그걸 보는 박민규의 얼굴은 점점 일그러졌다

"민규 아저씨. 아직도 저에게 사과할 마음이 남아있으세요?"

"…."

"정말 진심으로 사과하고, 죗값을 다 치른다면… 도와드릴게요. 처음부터 다시 올라올 수 있게."

"…."

남다은의 눈은 정말 진심 같았다.

아마 힘들었던 자신과 동생을 키워준 그때의 감정을 놓지 못하는 거겠지.

"쯧."

착해도 너무 착해.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진 않을 거다.

남다은은 자신이 한 일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안 오는 듯했지만, 이미 바이어 길드와 박민규는 회생 불가다.

박민규가 여기서 몸 성히 돌아간다 해도 평생 감옥에서 썩어야 할 운명이다.

다행히 남다은의 호의를 박민규가 받는 날은 없을 거란 말이다.

"이, 이…."

"민규 아저씨…?"

"이 창년이… 내게 지금까지 받아 처먹기만 하다가! 젊은 남자한테 매달리는 창녀 주제에 감히…!"

"… 창녀?"

남다은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왜 나를 바라본지는 모르겠지만, 눈동자 안에는 수많은 복잡한 감정이 담겨있었다.

"보육원에서 너를 데려왔을 때부터 난 네 아버지였어. 그런데 젊은 남자한테 몸을 팔면서 나를 배신해? 네가 감히?!"

박민규의 폭언에 남다은은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드디어 박민규의 본성을 깨달았겠지.

잠시 후, 눈을 뜬 남다은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검을 들었다.

"… 네. 차라리 그만의 창녀가 되겠어요. 민규 아저씨의 얼굴은 지긋지긋해요."

"이, 이 개 같은 년이 아버지에게 검을 들이대?!"

박민규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확실히 느껴지는 기세가 약하진 않았다. 

더러운 일을 하면서 돈을 끌어모으려면 자신의 무력도 받쳐줘야 하니까.

하지만 남다은은 규격외다.

애초에 게임의 주역인 남다은과 엑스트라인 박민규가 비교과 될 순 없었다.

남다은은 검을 든 채, 살짝 팔을 움직였다.

서걱-

그와 동시에 박민규의 양팔이 날아갔다.

"으, 으아아! 흐아악! 이, 이게 무슨!"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당황한 박민규는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고마워요. 민규 아저씨."

"다은아. 잠시만. 다은아…! 한 번만 기회를 다오. 딱 한 번…!"

"한결같이 악역으로 남아줘서. 내 감정을 끊어낼 수 있게 해줘서."

푸슉-

단 한 번의 횡 베기.

단순하지만 심오하고 깔끔하지만, 묘리가 담겨있는 그 검격 한 번에.

추하게 목숨을 구걸하던 박민규의 머리가 목에서부터 떨어졌다.

남다은의 옷에 검붉은 피가 튀었고, 근처에 있던 내 발밑까지 떨어졌다.

나는, 그 광경에서 끝까지 눈을 떼지 않았다.

남다은의 복수를 마무리까지 지켜봤다.

"… 죽었어."

바닥에 떨어진 박민규의 머리를 보며 남다은이 중얼거렸다.

"응. 끝이야. 다은아."

"… 이렇게 쉬운 일이었는데."

"…."

"왜 지금까지 하지 못했을까. 왜."

"하아…."

나는 천천히 남다은에게 다가갔다.

복수를 끝낸 남다은은 떨고 있었다.

기쁜 것도 아니고 슬픈 것도 아닌 감정.

처음 느끼는 감정이겠지.

복수라는 걸 해본 적이 없는 나는 저 감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남다은을 끌어안아줄 뿐이었다.

비에 맞고 떠는 어린 새처럼, 남다은은 내 품에서 몸을 떨었다.

나는 그 상태 그대로 남다은이 진정할 때까지 기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내 품에 있는 남다은의 몸의 떨림이 멎을 때 즈음 나는 고개를 내렸다.

"괜찮아?"

"… 미안."

남다은은 그제서야 살짝 나를 밀어냈다.

내 가슴팍에는 눈물에 젖은 듯 자국이 나 있었다.

"이제 속이 좀 후련해?"

"… 응."

아직도 눈이 빨갛네. 쯧.

★ 히로인 상태창

[남다은]

- [ 호감도 : 99 ] ( + 0.1)

- [ 성욕 : 80 ]

- [ 식욕 : 45 ]

- [ 피로도 : 50 ]

현재 상태 : 오늘은 계속 이기적이고 싶어.

호감도 99.

또 여기서 멈췄네.

역시 완전 공략에는 무언가 더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이기적이고 싶어…?'

그게 무슨 뜻이지?

나는 히로인 상태창을 확인한 후에 남다은의 얼굴을 확인했다.

눈물을 글썽이던 남다은은 조심스럽게 날 보고 있었다.

"나, 오늘만큼은 이기적이어도 될까?"

"아니. 앞으로도 계속 이기적으로 살아. 힘들면 내가 도와줄게."

남다은은 참았던 만큼 보답받아야 한다.

내가 뒷받침해줄 거니까.

공략을 했으면 적어도 그 정도는 책임져야지.

"그럼...."

"응."

"… 카페."

남다은은 내 눈을 바라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 응?"

"같이 가준다고 했잖아. 카페랑…. 밥먹기랑, 영화 보기랑…."

살짝 붉어진 남다은의 얼굴을 바라보며, 저게 무슨 말인가 고민했다.

"아."

그리고 곧 떠올랐다.

복수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남다은이 아직 바이어 길드에게 묶여있던 때.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동생에게 할 이야기가 없다 보니 아카데미에서 유일하게 대화를 해본 내 이름을 팔아먹었다는 설정.

'아니, 설정은 아니지. 원작에서는 없던 스토리니까.'

나를 만남으로서 생긴 남다은의 일화.

어쨌든 그때 내가 '지금부터 같이 돌아다니면 거짓말이 아니다.' 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남다은은 지금 그 얘기를 하고 있는 거다.

"그렇지. 카페. 레스토랑. 영화. 뭐든 다 하러 가자."

"응. 고마워."

남다은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내 옷을 꼭 붙잡았다.

"… 끝나면 또 보답하게 해줘."

"… 마음대로 해."

그 보답이 뭘 말하는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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