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7화 (197/648)

남다은은 스칼렛의 마력에 둘러싸인 채 병원에 도착했다.

"호연이를 만나러 온 건가요?"

"네. 다은 씨가 저번에 얘기했었죠? 바이어 길드에게 복수가 하고 싶다고."

"… 스칼렛 씨가 호연이한테 말한 건가요?"

남다은은 살짝 눈을 찌푸렸다.

자신은 이호연에게 보답을 해야 했다.

더 이상 무언가를 받아서는 안 된다.

아직은 자신과 이호연이 갑을 관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니요. 제가 말하기도 전에 호연 님이 직접 계획하신 거에요. 바이어 길드에 대한 정보수집도 직접 하셨고 전부터 다은 양의 복수를 도와주고 싶어 했거든요."

"… 어째서요?"

생각해보니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는 말은 이호연에게 직접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호연이는 어떻게 자신의 마음을 알았을까.

복수를 원하는 건 스칼렛 씨를 제외하면 아무에게도 말 한 적 없다.

스칼렛씨가 얘기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텐데.

"글쎄요. 정확한 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호연 님은 항상 자신만의 계획이 있거든요."

"왜 계속 저를 도와주려는 걸까요. 저는 호연이한테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요…."

스칼렛은 시무룩해 하는 남다은을 씁쓸하게 바라봤다.

세상엔 이렇게 호의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원래 남에게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삶만을 생각하며 살던 스칼렛이지만 이호연을 알게 되며 자신이 바뀌고 있는 걸 느꼈다.

스칼렛은 남다은이 좀 더 잘 되었으면 했다.

같이 지내다 보며 정이 들기도 했고, 동생인 다희가 자신을 잘 따랐으니까.

그래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굳이 보답하려고 해야 할까요?"

"네?"

"호연 님은 그런 걸 원하지 않을 거예요. 그분은 그냥… 음, 그냥 사람을 돕는 걸 좋아하는 분이고. 그러니까 한 번쯤은 그냥 고맙다고 넘기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남다은이 호의를 받을 수 있는 몸이 되길 바라며.

그리고, 이호연에게도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한 마디 덧붙였다.

첫 만남은 안 좋았지만, 지금은 꽤 재밌는 사람인 걸 알았다.

게다가 막말로 이호연은 당첨이 확정인 복권인데, 줄을 안 설 이유도 없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대형길드의 삶은 보기보다 힘들다. 

언제라도 갈아탈 수 있게 준비 해놔야지.

"…."

남다은은 스칼렛의 말을 듣고 입을 다물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다음은 남다은이 어떻게 하냐에 달려있다.

더이상 스칼렛이 무슨 말을 해도 와닿지는 않을 거다.

"다 왔네요. 들어가면 호연 님이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네. 감사합니다. 스칼렛 씨."

스칼렛은 병실로 들어가는 남다은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다희가 없을 때 볼 수 있는 남다은 특유의 비 맞은 초식동물처럼 힘 빠진 모습.

그때보다 조금은 힘이 돌아와 있었다.

*

덜컹-

침대에서 명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병실의 문이 활짝 열렸다.

'백아영인가?'

슬쩍 눈을 뜨고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남다은이 서 있었다.

"남다은?"

스칼렛이 벌써 데려왔구나.

난 당연히 창문으로 들어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정상적으로 들어왔네.

'클린.'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명상으로 흘린 땀을 제거했다.

이제 가벼운 마법 정도는 사용해도 몸에 부담이 없었다.

"나를 찾는다고 해서 왔어."

"맞아. 할 말이 있어서 그래. 거기 앉아있을래?"

남다은이 자리에 앉은 걸 확인하고 나도 자세를 잡았다.

그런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어색하지?

분명 평소와 똑같이 무표정하게 앉아있는 남다은인데, 분위기라고 해야 하나.

조금 진지한 느낌이 들었다.

일단은 준비해놓은 얘기를 꺼냈다.

"저번에 내가 바이어 길드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는 얘기 했었지?"

"응."

"정보 수집이 끝났어. 이제 곧 터트릴 건데, 그 전에 네 의견을 듣고 싶어서 불렀어."

사실 정보 수집은 진작 끝났지만, 준비가 이제 됐으니 그게 그거지.

나는 남다은의 표정을 살폈다.

눈을 깜박깜박 거리는 남다은의 표정은 여전히 읽기 힘들었다.

하지만 조금 고민하는 건 알겠네.

"이 정보를 푸는 순간 박민규는 끝이야. 그러면 너희들도 이제 마음 놓고 돌아다닐 수 있겠지."

"… 응."

"하지만 난 이렇게 간단하게 끝내고 싶지 않아. 너와 다희를 고통스럽게 만든 박민규를 그냥 몰락시키는 것만으로 끝내기 싫어."

"…."

아니, 얘는 왜 반응이 없지?

리액션이 아예 없길래 박민규의 이름을 직접 꺼냈는데도 반응이 없었다.

날 바라보던 남다은은 눈을 살짝 감았다가 입을 열었다.

"왜?"

"응?"

"왜 네가 박민규를 용서할 수 없어? 날 왜 그렇게 도와주는 거야?"

"어…."

남다은의 눈은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확실히 저렇게 생각할만하네.

처음 남다희와 남다은을 구했을 때 댔던 핑계는 '우연'이었다.

'신영 길드를 조사하다가 바이어 길드도 조사하게 되었고, 우연히 너희를 구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신영 길드가 무너진 이상 바이어 길드를 조사할 필요가 없는데도 남다은을 위해 조사를 이어갔다.

변명할 거리 없이 남다은을 위해서 움직인 것이다.

물론 쥐어 짜낸다면 변명을 할 순 있다.

'예전에 조사할 때 같이 조사했다.'

'너를 만나기도 전에 조사를 시작했고, 그냥 운 좋게 지금 끝난 거다.'

이런 식이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변명할 수 있다.

하지만 남다은은 나를 마주 보고 있었다.

자신의 감정을 모두 내보이며 내 눈을 바라봤다.

"…."

★ 히로인 상태창

[남다은]

- [ 호감도 : 94 ] ( + 0.1)

- [ 성욕 : 75 ]

- [ 식욕 : 35 ]

- [ 피로도 : 40 ]

현재 상태 : 어째서. 어째서일까. 호연이가 날 도와주는 이유.

남다은은 순수하다.

동생이 감금당하고 박민규에게 착취당하는 힘든 상황에서도 몇백 원에 울고 웃고, 동생을 보러 갈 때는 아이처럼 순수해졌다.

고마움을 표현하겠다고 섹스를 배워서 몸으로 보답을 하고, 남자 기숙사에 서큐버스가 있든 수상한 금발의 미녀가 있든 의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다들 자신을 도와준 나의 동료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순수한 남다은이지만, 그게 곧 멍청하다는 뜻은 아니다.

생각을 그만두고 남다은의 눈을 바라봤다.

무표정하지만 호감이 묻은 눈빛.

날 의심하는 눈은 아니었다.

단순한 호기심.

내가 여기서 대충 변명하면서 넘어간다고 해도 큰 지장은 없을 정도의 호기심에 불과하다.

이미 높아진 호감도를 떨어뜨리진 않을거다.

하지만 완벽한 공략을 위해선 지금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

지금까지 히로인들을 공략하던 내 감각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생각하던 거짓말들을 철회했다.

천천히 심호흡한 후에, 남다은의 얼굴을 마주 봤다.

"호의."

"호의?"

"호의라고 하면 될까? 그냥 잘해주고 싶어서 그래. 너…. 남다은이라는 사람이 마음에 드니까."

"…."

"그게 내 솔직한 감정이야. 그러니까 너도, 솔직하게 말해줘. 박민규를 어떻게 해야 네 마음이 편할지 말이야."

내 생각과는 조금 다르지만, 이 정도면 잘 풀렸다.

남다은은 입을 우물거렸다.

입안에서 빚어내는 말을 어떻게 내뱉어야 할지 고민하는 것 처럼 보였다.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천천히 기다렸다.

할 말은 다 했고, 이제 남다은이 정하기만 하면 되니까.

"… 복수하고 싶어."

"…."

"민규 아저씨. 아니, 박민규가 파멸하는 걸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 단순히 사회에서 매장당하는 정도로… 편하게 끝내도록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아."

입술을 피가 나도록 강하게 깨문 남다은은 담아뒀던 말을 쏟아냈다.

부들부들 떨리는 몸과 붉어진 눈시울.

한마디 한마디에서 느껴지는 증오.

남다은은 처음으로 자신이 당한 일에 대한 감정을 쏟아냈다.

그 일련의 행위에 얼마나 큰 결심이 필요했는지 나는 상상도 가질 않는다.

"응. 걱정하지 마. 이미 준비는 끝났으니까."

나는 그저 아주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남다은의 손을 살짝 잡았다.

떨리던 차가운 손은 순간 멈칫했지만, 내 손을 떨쳐내진 않았다.

*

"스칼렛."

"네. 호연님."

감정을 가라앉힌 남다은을 잠시 돌려보낸 후, 숨어있던 스칼렛을 불러냈다.

천장에 붙어 있던 스칼렛의 표정은 평소보다 힘이 없어 보였다.

"혹시 울었냐?"

"… 울진 않았습니다."

장난으로 물었는데 반응이 강해서 놀랐다.

"뭐, 그렇다 치고… 말은 다 들었지?"

나는 미리 써놨던 편지를 스칼렛에게 넘겼다.

"네. 저번에 말해주셨던 대로 진행할까요?"

"음, 잠시만. 스칼렛."

정보통들에게 남다은과 남다희를 내가 데리고 있다는 소문을 흘리고, 바이어 길드장에게는 개인적인 연락으로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협박을 진행한다.

이게 원래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바이어 길드장이 양지로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신영 길드의 내부고발자라면서 TV에 자주 등장하고 있었다.

나는 새로운 계획을 떠올렸다.

"높이 올라간 사람은 떨어질 때 더욱 가속도가 붙는 법이야."

자신의 인생에서 제일 전성기에 있을 때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그게 진짜 복수거든.

"일단 먼저 가벼운 거 먼저 터트리는 게 좋겠는데."

일단 작은 걸 터트리고, 그다음에 큰 걸 하나씩 터트리는 거다.

"아예 이런 건 어떨까요?"

그때 스칼렛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날 바라봤다.

"어떤 거?"

"호연 님의 이미지를 이용하는 거예요. 바이어 길드장을 아예 하늘 끝까지 올려놓고, 이번엔 호연 님이 내부고발을 하는 거죠."

와, 음슴하다.

계획이 너무 음슴해.

하지만 그만큼 좋았다.

"… 천재야?"

"저는 이런 일에 익숙하니까요. 대중들은 여자를 밝히는 호연 님의 뒷모습을 모르니 천재 마법사라는 이미지를 잘 사용할 수 있죠."

"그 뒤에 말만 안 했어도 계약을 풀어줄까 진지하게 고민했을 텐데."

어쨌든 음지의 일은 스칼렛이 전문이네.

나중에 또 물어봐야겠다.

"그럼 일단 아는 기자부터 불러볼까."

협회 친목 파티에서 열심히 발품을 판 건 오늘을 위해서였구나.

나는 스마트 워치를 둘러보며 연락할 사람들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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