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7화 (177/648)

*

그날 밤 이호연의 기숙사.

"언니언니이이이! 이거 봐! 치킨! 치킨!"

"내 치킨 들고 도망가지 마!"

우당탕!

남다희와 릴리아나가 치킨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소파에 앉은 남다은과 스칼렛은 그걸 지켜보고 있었다.

마치 키즈 카페에 아이들을 맡겨놓고 지켜보는 부모님 같았다.

"릴리아나 씨는 뭐 하시는 분이에요?"

남다은은 순수한 눈으로 스칼렛에게 질문했다.

"… 제 동료입니다."

"호연이처럼 상사인가 봐요?"

스칼렛이 평소에 릴리아나 님이라고 불렀으니 그렇게 생각할만하다.

"… 예. 그렇습니다."

스칼렛의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이호연과 릴리아나, 그리고 스칼렛.

이렇게 세 명이 지낼 때는 느끼지 못했던 창피함이 스칼렛에게 몰려왔다.

그때는 성적인 쾌락으로 창피함을 잊을 수 있었지만, 남다희가 오면서 릴리아나가 스칼렛과 놀아주는 시간이 사실상 사라졌다.

자연스럽게 정신을 차리게 된 스칼렛은 남다은의 질문에 수치심을 느끼게 된 것이다.

계약서 때문에 어차피 배신을 못 하기도 하고, 전 직장보다 이곳이 재밌기에 불만은 없었다.

부끄러움만 있을 뿐.

"그래도 사이좋은 직장인 것 같네요."

무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남다은을 보며 스칼렛은 입맛을 다셨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남다은 양은 수업 안가도 괜찮나요?"

"수업이 굳이 의미가 없어서요."

"아…,"

남다은의 사정을 알고 있는 스칼렛은 말실수를 했다고 생각했다.

실기 1등을 하지 못하면 동생의 위험하다는 협박을 받던 남다은에게 아카데미는 지긋지긋할 테니까.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스칼렛이 당황한 걸 느낀 남다은은 먼저 말을 괜찮다는 말을 꺼냈다..

"미안해요. 다은 양. 그럼 아카데미는 그만둘 건가요?"

남다은은 아련한 눈으로 남다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일단은 다희랑 시간을 보낼 거에요.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바이어 길드에 찾아가고 싶어요."

"바이어 길드요?"

"호연이 덕에 천천히 생각할 시간이 생겼어요. 그리고 생각이 들었거든요. 왜 그렇게 멍청하게 당하고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요."

"…."

"이걸 복수…. 라고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네요. 어쨌든 찾아가서… 제가 당했던 걸 돌려주는 게 목표에요."

순수하던 여자아이가 까맣게 물들었다.

하지만 남다은이 오랜 기간동안 당해온 수모를 자신이 알 수 없었기에, 스칼렛은 입을 다물었다.

"묻고 싶은 게 있어요. 호연이가 좋아하는 거 아세요?"

"네? 호연 님이요?"

"선물이라도 할까 해서요."

남다은은 이호연에게 보답을 하고 싶었다.

자신과 남다희를 구해준 이호연에게 감사를 나타내고 싶었지만, 당장 무언가 큰 보답은 할 수 없었다.

아쉬운대로 작은 보답이라도 하려면 이호연의 취향을 알아야 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건 너무 양심에 찔리니까.

"어… 호연 님이 좋아하는 거라…."

솔직히 스칼렛도 이호연의 취향을 아는 건 아니었다.

애초에 그 사람한테 취미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

고민하던 스칼렛의 머리 속에 하나의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

'여자 꼬시기.'

생각나는 거라곤 이것뿐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남다은에게 이걸 말해주고 싶진 않았다.

"이호연이 좋아하는 거? 당연히 섹… 으붑!"

언제 이야기를 훔쳐 들은 건지, 이야기에 끼어드는 릴리아나의 입을 급하게 틀어막았다.

"무슨 색이요?"

남다은은 릴리아나의 말을 듣고도 섹스를 떠올리지 못했다. 

그녀의 사전에 섹스란 단어는 적혀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릴리아나의 돌발행동에 이미 적응을 끝낸 스칼렛은 재빨리 다른 핑계를 생각해냈다.

"아, 색. 색… 색이 예쁜 꽃을 좋아해요."

"색이 예쁜 꽃…."

남다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병문안에는 색이 예쁜 꽃을 사가기로 마음먹었다.

입원 3일 차 수요일.

하루 한 번 내 상태를 체크하러 오는 백아영에게 외출하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외출? 무슨 일 있어?"

백아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바라봤고, 나는 준비했던 이유를 얘기했다.

"들어보니 친목 파티 테러 수습을 아직까지 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관련인들 조사도 안 끝났다고 하고.... 어떻게 보면 저도 당사자인데 조사를 좀 도와줘야 하지 않나 해서요."

"아...."

문수린을 만나야 할 때기도 하고... 기숙사에도 들려야 하고, 만날 사람도 많다.

백아영은 내 몸을 훑어보면서 고민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 지금 상태에서 돌아다녀도 몸에 부담이 있진 않을 거야. 그런 단계는 지났으니까. 문제는 너 자신을 보호할 수단이 없다는 점인데... 괜찮겠지?"

"수린 누나도 있을거고, 민예지씨도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요?"

"음. 그럼 믿을 만 하긴 한 데... 여보, 근데 왜 다 여자예요?"

"...."

백아영의 시선에 나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야겜 세계관이라 다 여자인 걸 어떡해.

능력 있는 사람이 다 여자인 세상이 문제인거지. 절대 내가 문제가 아니다.

"하아. 그래도 외박은 안 돼. 위험 상황에 바로 대처할 수가 없으니까."

"걱정 마세요. 몸 간수 잘할게요."

나는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외박이 안된다고 하는 모습이 너무 뻔해서 귀여웠기 때문이다.

"그런 눈으로 보지마. 진짜 위험해서 그런 거거든?"

백아영은 살짝 붉어진 얼굴로 날 노려봤다.

 ★ 히로인 상태창

[백아영]

- [ 호감도 : 100 ] (+ 1.0)

- [ 성욕 : 85 ]

- [ 식욕 : 42 ]

- [ 피로도 : 29 ]

현재 상태 : 밤에 병원에서 재우기만 하면... 괜찮을거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얼굴만 봐도 보이는데.

"큭... 알겠어요."

"이, 이 나쁜 사람...."

팍! 팍!

실수로 웃음을 못 참았더니, 백아영은 입술을 앙 물고 날 때리기 시작했다. 

"아, 잠시만요. 아영 씨. 여보. 아파. 나 환자인데."

나는 백아영의 주먹을 가슴에 맞으면서 양손으로 백아영을 안았다.

"고마워요. 여보."

"으으... 여보...."

다행히 내 품 안에서도 주먹을 휘두르진 않았다.

*

이호연이 입원한 지 3일째.

수요일.

거대한 저택의 화사한 방 안.

"으음...."

엘리스는 침대에 누워 고민하고 있었다.

이호연의 병문안을 하러 갈 생각이었지만, 막상 가려고 하니 사유가 없었다.

물론 그냥 '친구니까 병문안을 왔다' 라고 말할 수 있다. 

보통 친구는 그게 정상이니까.

하지만 엘리스는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이호연과는 비즈니스 관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굳이 갈 필요가 없는 것 같기도.... 그래도 몸 상태는 확인하고 싶고...."

엘리스는 쓸데없는 고민을 이어갔다.

똑 똑-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 일정한 리듬은 세바스 찬이 분명했다.

"아가씨.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응, 들어와."

엘리스는 침대에서 일어나 의자에 앉았다.

세바스 찬은 엘리스에게 다가와 살짝 고개를 숙인 뒤, 입을 열었다.

"길드장님께서 휴가를 주셨습니다. 아가씨가 그렇게 부탁을 하셨다고...."

엘리스는 세바스 찬의 말을 듣고 속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틈날 때마다 아빠한테 전화해 애교를 부린 게 드디어 효과가 나왔다.

'잠시만, 그런데 이호연이 마사지가 가능한가?'

듣기로는 엄청난 중상이라고 하던데.

물론 스칼렛에게 물으니 그 정도는 아니라고 했지만, 마사지를 할 수 있는 몸 상태는 아닐 거다.

"음, 얼마나 갈 생각인데?" 

"일주일 받았습니다. 아가씨가 줄이라고 하신다면 더 줄여도 상관없습니다."

"괜찮아. 응. 한 달도 괜찮아."

일주일.

오히려 너무 짧아서 문제다.

이호연이 회복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 제가 불편하십니까?"

"그냥 고생했으니까 하는 말이지. 빨리 휴가 출발해. 스칼렛한테 인수인계는 끝냈지?"

세바스 찬은 약간 상처를 받은 것 같았지만, 엘리스에겐 그런 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빨리 휴가나 가길 원했다.

"예. 스칼렛은 개인 임무도 있어서 지금처럼 아가씨 옆에 딱 붙진 못할 텐데... 그래도 제가 최대한 얘기를 해놨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응. 고마워."

벌써 20살인 자신을 이렇게 과보호하는 집안이 참 답답했다.

호위 따위 없어도 될 텐데.

"그럼 가보겠습니다."

세바스 찬은 방에 들어올 때처럼 고개를 살짝 숙이고 돌아갔다.

이제 일주일간은 스칼렛이 자신의 비서 역할을 해줄 거다.

띠링-

세바스 찬이 떠나자마자 바로 스칼렛에게 메시지가 도착했다.

- 스칼렛 : 엘리스 아가씨. 전달받은 대로 움직이겠습니다.

- 나 : 응. 계속 고생해줘 스칼렛.

스칼렛에게는 미리 말을 해놨다.

나한테 오지 말고 하던 일을 계속하라는 명령이었다.

"진짜 자유네"

엘리스는 입술을 한 번 핥은 뒤에 스마트 워치를 실행시켰다.

스칼렛에게 보고받은 동영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려 2시간짜리 새로운 동영상. 

출연자는 저번 동영상에 나온 그 미녀였다.

역시 병실에 카메라를 설치하는 자신의 판단은 옳았다.

이걸로 얼마나 오래 즐길 수 있을까.

꿀꺽.

엘리스는 천천히 음부에 손을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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