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2화 (152/648)

[와, 그 이호연 진실 어쩌고 하던 놈들이 진짜였어?]

[아니 너무 갑작스러운데? 지금까지 빅토리아 아카데미에서 징계 회부하기 전에 공지했던 적이 없잖아.]

[ㄴ 이번부터 그렇게 하려나 보1지.]

[언젠가 이렇게 터질 줄 알았다. ㅋㅋ 이제 다 들통나겠지. 모든 주작질이….]

[아직 중립기어 박아라 얘들아. 가능성 논의 중이라잖아.]

[ㄴ 애초에 징계 회부 가능성이 있다는 거부터 문제가 있는 것임 ㅋㅋ]

[ㄴ ㄹㅇ ㅋㅋ]

"이건 뭔 개소리야 진짜."

내가 징계를 왜 받아. 포상을 받아도 모자랄 판에.

나는 스마트 워치로 문수린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 나 : 누나. 지금 이상한 글이 돌아다니던데 보셨어요? 이건 빨리 대처해야 할 것 같은데. [링크]

- 수린 누나 : 잠시만, 확인해볼게.

"… 으음."

바로 답장이 오긴 했지만, 영 기분이 별로였다.

지금까지의 단순 의혹과 달리 이건 아카데미의 교수 중 한 명이 악의적으로 헛소문을 퍼트린 것이다.

이 망할 놈들은 다 해줘도 이렇게 등에 칼을 꽂네.

"교수님한테도 연락해볼까."

임솔 교수도 분명 힘들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했으니,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내가 이렇게라도 안 하면 귀찮아서 관심 없을 것 같기도 하고.

나 : 교수님. [링크] 이거 보세요…. 이상한 유언비어가 떠도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됐다.

이러면 좀 안심이다.

아카데미에서 꽤 권력이 있는 두 명이 도와주면 금방 조용해지겠지.

나는 일이 더 귀찮아지기 전에 마무리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기숙사로 돌아갔다.

*

쿵쿵쿵!

"문 열어요! 당장!"

"수린아? 무슨 일이냐"

문수린은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이사장실에 들어왔다.

아름다운 백금 발의 생머리가 화가 난 듯 흔들리고 있었다.

"이사장님. 아니, 할아버지.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뭐 때문에 그렇게 화가 났는지 설명을 먼저 하거라."

"이거 보세요."

문수린이 내민 화면에서는 이호연 징계 회부 가능성 논의 중 이라는 기사가 나와 있었다.

"이게 무슨…."

"출처가 아카데미의 교수잖아요. 이런 건 확실하게 조치해야죠."

이사장은 굳은 표정으로 화면을 지켜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 알겠다. 내가 조사해서 조치할 테니 걱정하지 말거라."

"네. 꼭 이에요. 이사장님. 그럼 실례했습니다."

문수린은 그제서야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 이사장실을 나섰다.

그리고 문수린이 나간 후, 이사장은 의자에 몸을 눕히고 한숨을 내뱉었다.

"신영 길드에서 갑자기 왜 이러는 거지?"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이사장 문재철.

당연히 아카데미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파악하고 있다. 그냥 손녀딸과 싸움을 하기 싫어서 모르는 척했을 뿐이다.

저런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이 누군지도 이미 알고 있었다.

모두 신영길드의 끄나풀들이었다.

"하아… 이호연이라."

도대체 저 남자가 뭐라고 우리 손녀가 저렇게 매달리는 건지 모르겠다.

이사장 문재철은 머리가 아파왔다.

신영길드냐, 뒤에 누가 있을지 모르는 이호연이냐.

이사장은 일전에 이호연 뒤에 꽤 큰 조직이 있다는 사실을 보고받은 바 있다.

믿을만한 비서의 보고였으니 확실한 사항이다.

어떻게 해야할까.

이사장은 주름진 손으로 얼굴을 한 번 훑은 후에, 결정을 내렸다.

이 사건에 대해선, 아무리 생각해도 이호연의 편을 들어주는 게 맞다.

테러를 막은 영웅을 이런 식으로 폄하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애초에 문수린이 찾아오지 않았어도 내버려둘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바로 해결해 줄 필요는 없다.

조금이라도 정치적으로 이득 볼 기회를 이사장은 절대 놓치지 않았다.

'정말 그놈의 뒤에 무언가 있다면, 내가 손을 쓰기도 전에 처리하겠지.'

어차피 며칠 시간을 끌어도 아카데미의 이미지에는 큰 타격이 없다. 

확실한 조사를 위해 말을 아꼈다고 하면 되니까.

하지만 개인인 이호연의 입장은 다르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이미지가 깎여나간다.

대중에게 한 번 각인된 이미지는 아무리 해명을 잘해도 처음으로 다시 돌아오는 게 쉽지않다.

실제로도 한 번 크게 논란이 생긴 연예인은 다시 활동하기 어렵다. 

논란이 생긴 것 자체만으로 이미지를 완전히 회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건 헌터도 마찬가지다.

만약 이호연에게 투자하는 세력이 있다면, 이런 사건을 절대 내버려두지 않을 거다.

이호연이 실체가 없는 빈 깡통인지, 신영 길드에 버금가는 뒷배가 있는지 알 수 있는 기회였다.

"과연 어떻게 나올까."

능력이 안 돼서 대신 처리해주든, 그 녀석 뒤에 숨어있는 뒷배경을 알아내든, 둘 다 이사장 문재철의 입장에선 나쁘지 않았다.

일요일 점심.

나른한 점심시간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미녀들이 있었다.

빅토리아 아카데미 내부 카페에는 백아영과 민예지, 임솔이 같이 앉아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그녀들이 같이있는 이유가 궁금해 힐끗힐끗 쳐다보고 갈 정도였다.

셋 중 제일 활발한 민예지가 백아영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 아영이 표정이 왜 그래. 응?"

"그냥... 영 컨디션이 별로네."

백아영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쪽쪽 빨면서 옅게 미소지었다.

주말에 같이 얼굴을 보자는 민예지의 말에 나오긴 했지만, 백아영의 컨디션은 아직도 회복되지않았다.

"혹시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생겼어?"

"그, 그런 거 아니야!"

"뭐야, 진짜 같은데? 아영이도 봄날이 오는 거야? 솔이랑 아영이한테 봄날이 같이 오겠네~?"

"시끄러워. 아영이가 아니라잖아. 그리고 내가 이런 곳에서 조용히 하자고 했지."

임솔은 마시던 라떼를 내려놓고 민예지를 째려봤다.

말하지 못할 뿐, 카페의 사람들이 이쪽 테이블을 몰래 보고있었기 때문이다.

"미안미안. 아영이가 기운이 없길래 힘 나게 해주려고 했지. 아영아. 무슨 고민때문에 그래? 우리가 들어줄게."

"으으...."

백아영은 이걸 얘기해도 될까 고민하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사실은... 모르겠어.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것 같긴 한데...."

"어머, 미쳤어. 솔아. 우리 성녀님이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대!"

"진짜?"

임솔도 꽤 재밌어 보이는 얘기 주제에 귀를 쫑긋 기울였다.

"아영아,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막 같이 있으면 두근거려?"

"... 응. 같이 있으면 두근거리고, 손을 잡고 싶기도 하고, 끌어 안아주고 싶기도 하고, 내 모든 걸 다 내주고 싶고, 그 사람이 날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가슴이 아리고, 같은 침대에 누워서 같이 자고 싶고...."

"잠시만, 잠시만. 아영아. 진정해봐."

"중증이네."

쪼옥.

임솔은 고개를 저으며 커피를 빨아들였다.

"아니, 솔아. 중증이란 말로 끝낼 게 아니야. 어떤 놈이 우리 아영이를 이렇게 꼬신 거야!"

항상 순수했던 백아영이 이렇게까지 말하는 모습에 민예지도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아영아. 같이 있으면 두근거리고, 안아주고 싶으면 확실히 그 남자를 좋아하는 거야. 그 정도로 좋아하면 그냥 고백하면 되지 않을까?"

임솔은 현실적인 대응법을 제시했다.

성녀가 고백했는데 싫어하는 남자는 없을 거다. 그 정도로 이미지를 쌓아왔으니까.

"맞아. 세상에 성녀님 고백을 안 받아줄 남자가 어딨어! 고민하지 말고 직진해!"

"... 둘이 나이 차이도 좀 나고, 서로 여러 가지 얽힌 사정이 있어. 하아...."

역시 해결이 될 리가 없지.

백아영은 입맛을 다시며 음료를 마셨다.

그래도 남한테 얘기하니까 조금 마음이 편해진 것 같기도 하다.

혼자 끙끙 앓는 것보단 답답함이 가셨다.

"나이 차이... 너 설마... 급하게 아카데미로 취직한 이유가...."

"...!"

백아영은 민예지의 말에 순간 흠칫했다.

'혹시 눈치챈걸까?'

너무 얘기를 막 꺼냈다고 후회한 순간 민예지가 입을 열었다.

"아카데미 이사장 문재철?"

"미쳤어! 그딴 노인네를 어떻게 만나!"

백아영은 혹시나 눈치챘을까 걱정한 자신이 창피해졌다.

팍! 팍!

"미안해. 아영아. 장난이야 그만 때려. 잠시만!"

민예지는 날아오는 백아영의 주먹을 요리조리 피하며 열심히 사과했다.

애들 장난 같은 광경을 보던 임솔은 피식 웃으면서 스마트워치를 확인했다.

- 이호연 : 교수님. [링크] 이거 보세요…. 이상한 유언비어가 떠도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호연이 보낸 메시지였다.

링크는 이호연을 악의적으로 선동하는 기사였다.

교묘하게 조작된 증거들을 편집해 놓은 것이 일반인이 만든 내용은 아니었다.

"흐음... 민예지. 이거 잠깐 볼래?"

"응? 뭔데?"

잠시 후 민예지의 눈도 살짝 찌푸려졌다.

"엄청나게... 수준 낮은 짓거리네. 대놓고 여론 조작을 하고 있어. 어디서 작업하는 거지? 작업장중에 이렇게 티 나게 하는 곳은 없을 텐데...."

"무슨 말이야?"

뒤늦게 백아영도 임솔이 준 기사를 읽었다.

"호연이가 도와달라는 말을 해서... 얘들아. 나 좀 도와줄 수 있어?"

"당연하지. 이호연 생도한테 잘 보일 수 있는 기회잖아."

"으으...."

"아영아, 너는?"

백아영은 임솔의 말을 무시하고 갑자기 스마트워치를 두드렸다.

"나, 나도 아카데미에서 일하는데... 나도 도와줄 수 있는데... 왜 나한테는 연락 안 해...!"

몸을 파들파들 떨며 조용히 뇌까리는 백아영을 보며, 임솔과 민예지는 슬쩍 눈을 마주쳤다.

"솔아... 아영이가 마음에 둔 것도 너랑 같은 이호연 생도 인가?"

민예지는 임솔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 글쎄. 그리고 나는 마음에 둔 적 없거든?"

"그래? 우리가 이호연 생도랑 나이 차이가 몇살이지? 8살?"

"... 몰라."

"8살이면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편은 아닌데. 흐음."

임솔은 괜히 빨대를 질겅질겅 씹었다.

그녀는 오늘따라 더욱 달달한 걸 먹고 싶었다.

*

띠링-

"나 왔어."

기숙사로 돌아왔더니 거실의 침대에서 스칼렛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윽. 하으읏... 릴리아나 님. 호연 님이 오셔서... 이제 그만...."

릴리아나는 옆에서 스칼렛의 가슴을 만지며 희롱하는 중이었다.

"왔넹? 스카웃이 너한테 할 얘기가 있어서 기다린다길래 놀아주고 있었어."

"... 그래. 잘했네."

나는 겉옷을 벗어 옷걸이에 걸어놓은 뒤에 스칼렛에게 다가갔다.

"스칼렛. 여기 앉아봐."

"넵...."

옷매무새를 정돈한 스칼렛은 공손하게 앉았다.

"말 안 해도 뭔지 알지? 처음부터 다 설명해봐."

"어... 사실 저도 잘 모르는데요. 호연님이 오면 그 영상을 찍으라고 아가씨한테 개인적으로 명령받아서요. 저도 정확한 건 모르는데요."

"흐으음... 개인적이면 엘리스의 비서는 모르는 일이야?"

"아마 그럴 거예요. 아가씨도 세바스 찬한테 남자를 집에 들인 걸 들키고 싶진 않을걸요? 길드장님한테 들키면 오늘밤 길드장님이 호연님 집에 쳐들어올지도 몰라요."

"... 그건 좀 무섭네."

밤의 황제한테 괜히 까불다가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른다.

"일단 이 말을 전해드리려고 왔어요. 저도 바로 아가씨한테 보고하러 가봐야 하거든요."

"마침 잘 됐네. 내가 슬쩍 엘리스 책상 밑 의자에 스마트 워치를 놓고 왔어. 네가 이따 보고하는 척하면서 발견해"

"스마트워치요?"

"응. 그 안에 릴리아나와 영상이 있어. 네가 엘리스의 반응을 살펴줘."

"아... 알겠습니다."

엘리스에게 어떻게 영상을 전달할까 고민하다가 내가 고안한 방법이다.

마사지가 끝난 지금 생각해보면 스칼렛한테 전달해도 괜찮았을 것 같다.

엘리스가 다른 의도는 없어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는 내가 직접 엘리스의 상태창을 읽고 행동하고 싶었다.

준비해놓은 가짜 스마트 워치를 마사지할 때 벗어놓은 내 스마트 워치인 척하고 놓고 왔으니, 다음은 스칼렛의 행동에 달렸다.

"야. 내 영상을 왜 마음대로 써."

그때 우리 이야기를 듣던 릴리아나가 끼어들었다.

"좀 쓰자. 응? 어차피 너 법적으로 보호도 못 받아."

어디서 서큐버스가 인간 법의 보호를 받으려고 해.

"내가 얼마나 비싼 몸인뎅."

"점심이나 먹자. 나 밥 먹고 바로 나가야 해."

"그럼 빨리 오는 치킨집에 시킬게."

"너 오늘 저녁도 치킨 먹을 거잖아. 점심은 좀 가벼운 거 어때?"

내가 이렇게 치킨을 거부하면 항상 나오는 릴리아나의 레퍼토리가 있다.

"내 돈으로 내가 먹겠다는데 왜! 이 가정에 도움도 안 되는 게!"

"네가 그렇게 얘기할 줄 알고 준비했다."

릴리아나에게 엘리스와 계약한 계약서를 내밀었다.

"응? 이건 뭐... 헉."

"헤에엑... 저보다 돈을 많이 받는데요...? 이게 맞는 건가?"

"업계 탑 보다 많이 주니까. 당연하지."

이걸로 수입 역전이다.

내가 이제 우리 집의 가장이라고!

"어쨌든, 릴리아나. 오늘 점심은 내 돈으로 샌드위치 시켜 먹을 거야. 설마 너 혼자 따로 치킨을 먹진 않을 거지?"

"... 마음대로 해."

드디어 치킨 강점기 탈출이다.

릴리아나는 내내 툴툴대며 이거 두 번 먹을 돈으로 낭낭하게 치킨 한 번 먹고 말겠다며 시위를 했지만 소용없었다.

나는 점심식사를 마치고 쉬다가 남다은과 연락을 했다.

- 나 : 우리 훈련소에서 언제 만날래?

오늘 대련을 하기로 했지만 정확한 시간은 정하지 않았다.

띠링-

- 남다은 : 2시간 뒤 괜찮을까?

- 나 : 응. 그때 보자.

지금은 오후 2시.

4시까지는 2시간 남았다.

"2시간이면 충분하겠네."

엘리스를 마사지하면서 의외로 마나를 많이 썼다.

이대로 남다은과 대련을 하기엔 마나가 부족해서 명상을  해야 한다.

난 그대로 거실에 앉아 눈을 감고 공기의 마나를 흡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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