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화 〉132화. 축제 (3)
"어, 어… 마법?"
"응. 어제 갑자기 엄청나게 강해졌었잖아."
이제 와서 왜 그랬느니 구박할 생각은 없다. 우리 사이에 뭐.
그저 계약서를 벗어날 정도의 위력을 낸 마법이 궁금할 뿐이다.
"솔직히 말하면, 음…."
릴리아나는 이쑤시개로 집었던 타코야키를 다시 그릇에 놓아두고 볼을 긁었다.
"나도 잘 모르겠는데."
"모른다고?"
"그냥 어느 순간… 성욕을 주체하지 못 하겠는 거야. 그래서 계속 괴로워하고 있는데 네가 들어와서 본능적으로 그만 저질러버렸어…."
"흐음… 그때 자라난 뿔이나 날개도 잘 기억 안 나?"
"나한테 뿔이랑 날개가 자랐다고?"
"응. 엄청나게 멋있던데."
"헉. 사진이라도 찍어 놓을걸."
릴리아나도 모르겠다고 하니… 뭐 어떡해야 하지? 임솔 교수한테 데려가서 조사를 시킬 수도 없잖아.
물론 그냥 넘어가도 될 일이긴 하지만, 혹시 내가 커버해줄 수 없는 상황에서 사고를 칠까 두려운 게 문제다.
"그러고 보니 엄마가 항상 남자를 주의하라고 하긴 했어."
"그거 자세히 말해봐."
릴리아나가 딱 봐도 중요해 보이는 떡밥을 뿌렸다.
앞으로 출생의 비밀에 대한 썰이 흘러나오겠지.
나는 귀를 기울이고 경청할 준비를 했다.
"어… 사실 뭐라고 뭐라고 열심히 말했는데, 게임을 하느라 잘 안 들어서 저거 밖에 기억 안 나."
"와우."
이런 망나니 년이 있나.
생각해보면 히로인 시스템에서 릴리아나에게 꽤 높은 점수가 부여됐었다.
분명 뭐가 있긴 하다. 기회가 되면 조사해봐야겠네.
물론 방법은 모른다. 기회가 오면 한다는 말이다.
"됐어. 타코야키나 먹자."
"아라썽."
냠.
정작 릴리아나는 자신이 한 행동이 기억에 없는지 별 생각 없이 타코야키를 먹고 있었다.
나는 내 옆자리에서 타코야키를 먹는 릴리아나를 내버려 두고 천상제를 즐기는 다른 생도들을 살폈다.
이제 슬슬 밤이 되어간다.
서바이벌 시험의 피로를 다 푼 1학년 생도들도 점점 축제를 즐기기 위해 나오고 있었다.
일찍 탈락했더라도 좁은 숙소에 며칠간 처박혀 있는 게 꽤 힘들었을 거다.
'평화롭네.'
요즘 마인 집단인 판데믹이 조용하다.
슬슬 다음 테러를 진행할 것 같은데, 영 기미가 안 보인다.
물론 테러라는 게 예고 없이 갑자기 발생하는 거긴 하지.
원작에서는 루트에 따라 다르지만, 축제 3일 차나 4일 차 즈음에 테러가 많이 발생한다.
그러니 나도 3일 차부터는 축제를 주시해야 한다.
"릴리아나. 다른 거 먹고 싶은 거 있어? 내일부터는 나도 바빠서, 놀아주려면 조금 기다려야 해. 오늘 하고 싶은 거 다 하자."
"음, 그럼… 기숙사에 돌아갈까?"
"왜? 벌써?"
물론 점점 1학년 생도들이 늘어나고 있으니 일찍 들어가면 나야 좋다.
"… 그냥?"
릴리아나가 타코야키를 콕콕 찍으며 고개를 숙였다.
"… 그래 가자."
이제 얼굴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아, 그래 오늘 밤도 누가 이기나 해보자.
*
"아악…."
아침부터 고통스럽다.
진짜 허리가 존나 아프다.
안 그래도 어제 정기가 빨린 상태로 너무 무리했다.
서바이벌 시험이 끝나자마자 릴리아나에게 잡혀서 밤새 섹스를 했다. 물론 나중에는 내가 주도하긴 했지만 힘든 건 힘든 거다
그 후에 부회장과 대련을 마치고 기숙사에 돌아와 쓰러지듯 잠들었고, 일어나자마자 릴리아나랑 놀아주다가 한 번 더 자지 맛을 보여줬다.
릴리아나는 어제 밤이 참 좋았는지 내 옆에서 웃는 얼굴로 자고 있었다.
옆으로 눌린 가슴을 꾹꾹 누르면서 놀다가 기지개를 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남자한테 하는 주의가 분명해."
릴리아나의 어머니는 저 성욕을 미리 알아챈 게 분명하다.
남자를 주의하라 한 게 아니라 릴리아나를 만나는 남자한테 주의하라고 전하라는 말이 아니었을까?
그게 아니면 설명이 안 되잖아.
"쯧. 세수나 하자."
벌써 점심이었다.
곧 루시와 루미 쌍둥이랑 만날 시간이다.
찌뿌둥한 몸을 각성시키며 세수를 했다.
엘프의 정수를 먹어서 다행이다. 그게 아니었으면 오늘 일어나지도 못했을 것 같다.
잠든 릴리아나를 내버려 두고 밖으로 나왔다.
중앙 분수에서 만나기로 했으니 천천히 걸어가야지.
바깥은 아직도 시끌시끌했다.
시험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축제니까, 이번 주 내내 이런 분위기일 거다.
"내일은 임솔 교수님 보러 가고… 아영 씨도 한 번 봐야 하는데. 수린 누나도 봐야 하고, 엘리스도 혹시 연락이 올지도 모르고… 아악. 머리 아파."
뭐 이리 할 일이 많은지 모르겠네.
일단 오늘 할 일에 집중하기 위해 빨리 중앙 분수로 향했다.
동아리들에서 부스를 만들어서 장사를 하기도 했는데, 별로 맛있어 보이는 건 없었다.
"하이하이."
중앙 분수에 도착하자 루시와 루미 쌍둥이가 이미 도착해있었다.
"안녕하세요 호연 씨."
"… 안녕."
기운도 낼 겸 힘차게 루시 루미 쌍둥이에게 인사를 건넸는데 루시의 반응이 영 좋지가 않다.
왜 저러지?
★ 히로인 상태창
[루시]
- [ 호감도 : 88 ]
- [ 성욕 : 40 ]
- [ 식욕 : 60 ]
- [ 피로도 : 55 ]
현재 상태 : 혹시 우리가 호연이한테 방해는 아닐까….
'…?'
얘는 또 왜 이이래.
상태창이 생각 전체를 다 보여주면 좋을 텐데, 지금 당장 하는 생각만 볼 수 있으니 영 불편하다.
"오늘은 뭐 하고 놀까?"
센스 있게 놀 거리를 찾아왔으면 좋았겠지만, 릴리아나와 섹스를 즐기느라 준비를 못 해왔다.
"저, 저는 오락실에 가보고 싶어요."
"오락실 좋지."
아까 보니까 게임 동아리인가 뭔가에서 준비를 많이 해놨던데, 거기 가면 되겠네.
"…."
루시는 아직도 표정이 안 좋았다.
약간 꽁 해있는 것 같다.
"루시, 무슨 일 있어? 힘이 없네."
나는 루시에게 걱정이 담긴 말을 건넸다.
"… 우리랑 놀아도 돼? 여자친구가 알면 어떡해."
"…?"
"히끅!"
루시의 폭탄 발언에 루미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눈을 커다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는 게 엄청나게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그리고 나는 그 이상으로 놀랐다. 도대체 무슨 개소리야.
"아니, 무슨 소리야. 나 여자친구 없는데?"
뭘 보고 저런 소리를 하는 걸까 싶어서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잘 생각해보니 하나밖에 없었다.
서바이벌 시험 때는 저런 태도가 아니었다. 즉 어젯밤에 릴리아나와 노는 걸 들킨 게 분명하다.
아니 피곤하지도 않나? 하루 정도 쉬지 그랬어.
그래도 아닌 건 아니니까 당당하게 나가자.
"그, 그치만 어제…."
"어제 돌아다닌 사람은 학생회랑 관련 있는 선배야. 어제 나 때문에 고생을 너무 많이 하셔서 내가 음식 좀 사드렸어."
즉석에서 만들어낸 변명이지만, 괜찮다.
혹시나 해서 관련 있는 선배라고 했으니 학생회에 찾아와도 변명할 거리는 있다.
"아, 아하… 내가 오해했네… 미안."
루시는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푹 숙였다.
살짝 웃고 있는 게, 여자친구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히끅… 저, 저는 처음부터 안 믿었어요. 끅."
루미는 얼마나 놀랐는지 딸꾹질을 멈추질 못했다.
"나도 깜짝 놀랐다. 야. 먼저 물어보지 그랬어."
"미안…."
자기 혼자 오해해버린 상황에 루시는 내게 사과를 보냈다.
"아니야. 괜찮아."
'얘를 어떡하지….'
갑작스럽게 저런 말을 해버리니 내가 더 당황스럽다.
루시는 참 애매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차라리 릴리아나처럼 완전히 내 걸로 만들어버리면 괜찮을 텐데, 아직 공략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여자들과 관계를 늘리다 보니 관리하기가 힘들다.
루시 성격상 자주 돌아다니고 친구들과 말도 많이 하다 보니 또 이런 오해가 생길 것 같다.
물론 오해가 아니지만.
'계속 기회를 봐야해.'
루시도 분명 공략을 끝낼 기회가 생길 거다.
이왕이면 루미랑 같이 하면 베스트지만, 너무 욕심을 부리진 말자.
"그럼, 게임 동아리 쪽으로 갈까? 재밌어 보이더라."
"가자가자!"
"좋아요."
오늘은 루시, 루미 쌍둥이와 축제를 즐겨야지.
*
"큭, 크흡. 크크큭."
거대한 저택 속의 넓은 방.
고급진 책상에 앉은 남자 한 명이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3학년의 망신이라고? 그래. 누가 망신일까 찾아볼까."
스마트워치를 바라보며 자신에 대한 악플을 읽고 있는 신동민은 산발이 된 머리로 책상 위에 있던 책들을 모두 바닥으로 쏟아버렸다.
"다 죽여버릴 거야. 모두…."
"쓰레기 같은 자식."
하지만 어느새 고개를 숙인 신동민의 뒤에 중년 남자가 서 있었다.
"아, 아버지…."
"1학년에게 져서 신영길드의 이름값을 내린 걸로도 모자라, 겨우 이런 거로 무너지는 거냐?"
신동민의 아버지이자 신영 길드의 최강자가 직접 찾아온 것이다.
신영 길드장은 싸늘한 눈으로 아들을 내려다보았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저벅저벅
신동민에게 다가온 중년의 남성은 신동민의 얼굴을 손으로 붙잡고 억지로 들어 올렸다.
퀭한 눈동자는 더럽고 추하지만 뜨거운 불길이 남아있었다.
'욕망'이라는 불길이다.
"실패는 누구나 하는 일이다. 살면서 겪은 첫 실패라면 물론 힘들겠지. 하지만 일어나라. 네 뒤에는 신영이 있다."
탁. 탁. 탁. 탁.
"아버지, 이건…?"
신동민은 아버지에게 받은 서류들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모두 네 힘이 되어줄 자들이다. 네가 떨어뜨린 길드의 위상은 네가 직접 끌어올려라."
"아버지…!"
"절대 무너지지 마라… 너는 내 아들이다. 무조건 성공할 수 있어."
"네, 어떻게든. 어떻게 해서든… 복수하겠습니다…!"
신동민은 중년 남자를 바라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중년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대로 방을 나섰다.
복도를 지나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신영 길드의 길드장은 책상에 앉아 고개를 푹 숙였다.
"하아… 어째서 저런 아이가 되어버린 걸까."
어릴 때에 보였던 총명한 모습은 어디로 가버리고 저런 추한 괴물이 되어버렸을까.
하지만 아버지의 입장에서 자식을 포기할 수 없었다. 잘못된 길로 가는 걸 알지만, 보듬어줄 수밖에 없었다.
"동민아… 제발 다시 일어나라."
신영 길드장은 두 손을 맞잡고 어딘가에 있을 신에게 기도했다.
한 편, 신동민은 아버지에게 받은 서류를 살피며 입꼬리를 올렸다.
"절대 이대로 무너지지 않는다…."
약간 분노를 가라앉힌 신동민은 천천히 이 사태를 되돌아봤다.
그리고 이호연이 마지막에 한 말을 떠올렸다.
[내가 이기면 뭐든 다 해준다고 했지? 다신 회장님한테 접근하지 마. 다음에 걸리면 진짜 죽여버릴 테니까.]
"큭. 그래. 그랬던 거야. 처음부터… 처음부터 계획된 일이었어! 내 마음은 무시하면서 그딴 새끼한테 몸을 내줬다 이거지? 걸레 같은 년이…!"
쾅!
마력이 담긴 주먹이 책상을 내리찍으며 책상이 두 동강 났다.
신동민은 숨을 씩씩 몰아쉬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다 그년 때문이야… 문수린."
애초에 이런 일이 일어난 건 문수린 때문이다. 그 여자가 내 마음을 받아주기만 했어도 이런 일이 없었을 거다.
이호연과 싸우는 일도 없었을거다. 아니 그전에 이호연이 학생회에 들어올 일도 없었겠지. 다 그 년의 추천으로 들인거니까.
'내가 겪은 고통을 너희도 느끼게 해주겠어.'
추한 질투심에 눈이 먼 신동민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아버지의 힘으로 복수를 계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