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화 〉98화. 1대1 결투 (4)
내 경기가 끝나고, 다음 경기는 루시의 차례였다.
엘리스와의 경기를 걱정하고 있었으니 한 번 상태를 봐주러 가야지.
루시가 대기하고 있는 선수 대기석으로 찾아갔다.
"어? 이호연! 경기 잘 봤어!"
"땡큐. 너 힘내라고 보러왔다."
물론 말은 이렇게 해도 루시가 이기긴 힘들 거다.
엘리스는 마력 장애를 고치기만 하면 남다은과 맞먹을 정도의 사기 캐릭터다.
특히 마검사라는 엘리스의 재능은 다재다능한 전투방식으로 1대1 에 유리하다.
그래도 루시 앞에서는 티를 내지 말고 응원을 해줘야지.
"고마워. 나도 힘낼게!"
"응. 이제 곧 시작하겠네. 나는 대기실 가 있을게. 이따 점심이나 같이 먹자."
"알았어~!"
★ 히로인 상태창
[루시]
- [ 호감도 : 88 ]
- [ 성욕 : 40 ]
- [ 식욕 : 30 ]
- [ 피로도 : 35 ]
현재 상태 : 이번에 지더라도 다음에는 더 잘해야지…!
다행히 지더라도 멘탈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겠네.
씁쓸하지만 루시도 차이를 아는 모양이다.
나는 끝까지 웃는 얼굴로 루시를 배웅했다.
*
"예상은 했지만 아쉽네…."
경기는 아쉽게도 루시의 패배였다.
그래도 경기 내용 자체는 좋았다.
루시의 압도적인 화력을 제대로 보여줬다.
엘리스가 대처를 너무 잘해서 그렇지, 루시도 엄청나게 잘했으니 성적도 잘 나올 거다.
그다음 남다은의 경기는 당연히 남다은이 압도했다.
시작하자마자 3초 만에 베어버렸으니 상대방은 왜 진 줄도 모를 거다.
[경기 끝! 승자는 A 클래스 남다은 생도입니다! 선수들의 휴식여견 보장과 점심 식사를 위해 1시 30분까지 쉬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관람객분들도 점심 식사하시고 1시 30분에 다시 자리에 앉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남다은의 경기까지 끝나면서 이호연 vs 김영한. 엘리스 vs 남다은이라는 준결승 매치업이 성사되었다.
일단 루시와 점심을 같이 먹기로 했으니 메시지를 보내고 루시의 대기실로 찾아갔다.
"루시. 나 왔어."
"응응.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루미도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오, 루미도 있네?"
내가 점심을 먹자고 해서 같이 기다리고 있던 모양이다.
"호연 씨. 너무 멋있었어요."
"고마워."
"루미. 나한테는 멋있다고 안 해줬잖아. 졌다고 무시하는 거야?"
루시가 루미에게 달라붙으면서 앙탈을 부렸다.
"호연 씨는 대련장에서 나한테 인사해줬는데… 넌 나한테 인사 안 해줬잖아."
"앗… 미안. 까먹었어."
역시 사소한 디테일이 참 중요하다니까.
별거 아닌 거로 이렇게 이미지를 챙겼다.
"우리 점심 먹으러 가자. 어디로 갈래?"
"학생 식당은 너무 사람이 많아! 밖에 나가서 먹자!"
"저는 상관없어요."
점심시간 겸 본선 진출자들의 휴식 시간도 보장해줘서 시간이 꽤 많았다.
"그래. 그럼 나가서 먹고 오자."
오랜만에 밖에서 먹는 것도 좋겠지.
*
루시루미 쌍둥이와 밖에서 점심을 먹고 들어왔다.
루시가 티를 안 내도 패배를 조금 신경 쓰고 있는 것 같아서 루미와 같이 열심히 위로해줬다.
쌍둥이들과는 내 경기가 시작할 때까지 대기실에서 같이 대기하기로 했다.
"꼭 결승 가서 내 원수를 갚아야 해. 알았지?"
"걱정하지 마."
"호연 씨라면 우승할 수 있을 거예요…!"
쌍둥이들과 잡담을 나누면서 긴장을 풀었다.
물론 결승에서 엘리스를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어서 원수는 못 갚아주겠지만, 어쨌든.
[잠시 후 준결승전이 시작됩니다. 관람객분들은 자리에 앉아주시길 바랍니다.]
"이제 시작하나 봐. 나도 슬슬 선수 대기석으로 가 있을게."
"응. 화이팅! 꼭 이겨! 열심히 보고 있을게!"
"호연 씨, 힘내세요…!"
"고마워."
루시와 루미의 응원을 받으며 선수대기석으로 향했다.
김영한과 싸운다고 하니,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이호연 생도님. 대련장 올라갈 준비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준결승전부터는 한 경기 한 경기가 중요하다 보니 선수의 컨디션에 영향이 가지 않도록 최대한 날 배려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공손한 스태프의 안내를 받으며 대련장에 올라갔다.
[A클래스 이호연 생도와 A클래스 김영한 생도의 대결이 곧 시작됩니다!]
"미남. 하이하이."
대련장에 올라오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김영한이 말을 걸었다.
"요즘 왜 계속 미남이라고 부르는 거냐."
"내 친구 이호연은 너무 멀리 가버렸으니까, 아쉬워서 그렇지."
"뭐래. 안 봐줄 테니까 각오해라."
곧 있으면 결승인데, 방심하다가 져버리는 멍청한 실수는 해선 안된다.
최선을 다해서 상대해야지.
"무섭네…."
김영한이 검을 들며 쓰게 웃었고, 나는 마력을 끌어 올렸다.
[5, 4, 3, 2, 1, 시작!]
시작 신호와 함께 내 전투 감각이 요동쳤다.
두근. 두근. 두근.
'뭐야….'
생각 외로 강한데?
전투 감각은, 김영한이 도진혁보다 훨씬 위험한 상대라고 경고를 보내왔다.
김영한은 검붉은 가시가 솟아있는 특유의 가시검을 휘두르며 내게 접근했다.
'개안'
탕!
코튼 가드로 검을 막아내며 거리를 벌렸다.
가속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김영한이 속도는 나보다 빨랐다.
하지만 '개안'으로 미리 칼의 궤도를 읽으면서 상대하면 대처할 수 있었다.
김영한은 계속 나와 거리를 좁히기 위해 달려들었다.
검격이 막히고 역습을 당해 생도복이 불타올라도 자신의 몸을 신경 쓰지 않은 공격 일변도를 이어갔다.
타앙!
화염구와 코튼 가드로 시간을 벌고 김영한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왜 그렇게 살벌하게 오는 거야?"
"네 본 실력을 보고 싶으니까 그렇지. 아직 도진혁한테 썼던 스킬들은 쓰지도 않았잖아."
"상황이 안 나오니까 안 쓰는 거야."
가속과 스파이럴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스킬이 아니다.
내 부족한 마나량 덕에 한두 번 정도밖에 못 쓰기 때문에, 적재적소의 상황에 사용해야 한다.
"그래…?"
김영한은 다시 검을 들었다.
이미 잔 상처들이 많았는데도 포기하려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 슬슬 끝내야지.'
김영한이 다시 내게 달려들고, 서로 공수를 주고받았다.
공격을 피해없이 넘긴 나는, 뒤로 빠지는 김영한에게 화염구를 시전했다.
거리가 멀어지면 일방적으로 내가 공격할 수 있으니 이런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
하지만 화염구를 날리기 직전에, 갑자기 내 전투 감각이 위험신호를 보냈다.
오우거 두 마리를 동시에 마주쳤을 때 보다 더욱 떨리는 심장에 심한 이질감을 느꼈고,
나는 그 즉시 몸을 오른쪽으로 던졌다.
이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을 무시할 수 없었으니 직감에 맡긴 것이다.
콰가가가각!
동시에 흉악한 소리가 귀를 때리면서 무언가가 내 뺨을 스쳤다.
"와… 이걸 처음부터 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너 진짜 괴물이구나."
김영한은 바닥에 손을 댄 채로 나를 보고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리고 방금까지 내가 서 있던 자리엔, 3M가 넘는 검붉은 가시가 솟아올라 있었다.
"… 이게 뭐야."
내 뺨이 뜨거웠다.
손등으로 뺨을 훔치자, 붉은 액체가 묻어나왔다.
"…피?"
물론 마나 필드 안에 있으니 실제 상처가 난 건 아니다.
그저 실전 감각을 키우기 위해 고통을 느끼게 하는 장치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내게 상처를 입힐 정도로 날카로운 공격이라는 건 확실했다.
아찔하네.
내가 조금이라도 늦게 반응했다면, 아마 높은 확률로 패배했을 거다.
저 가시에 몸이 뚫리면서 세이프티 설정이 발동됐을 테니까.
"내 필살기였는데… 설마 실패하다니."
김영한은 정말 아쉬운 듯 중얼거렸다.
"… 야. 이런 건 결승에서 보여줘야 할 거 아니야. 깜짝 놀랐잖아."
"나도 그럴 생각이었지. 근데 네가 너무 강한 걸 어떡해. 일단 준결승을 이겨야 결승전도 올라가지."
어이가 없네.
내 뒤에 솟아있는 가시는 누가 봐도 생도의 수준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이런 크기의 물리력을 행사하는 능력은 듣도보지도 못했다.
심지어 내 '개안'과 [마나 감응]을 무시하고 튀어나왔으니 마나를 사용하는 스킬이 아니라 고유 권능일 텐데, 이런 비장의 무기를 숨기고 있을 줄이야.
"하아,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루키 김영한의 우승으로 1대1 결투를 끝내고 싶었는데. 네가 망쳤어."
"… 심심한 위로를 해주자면, 이걸 안 쓰고 결승에 올라갔어도 어차피 남다은은 못 이겼을 거야."
원작에서도 남다은이 우승이었으니, 김영한의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을 거다.
남다은의 권능인 [공간 지배].
이미 주변의 공간은 남다은의 영역이다. 저런 거대한 가시를 소환하는 걸 모를 리가 없지.
"그렇게 말하면 자존심이 상하잖아. 뭐, 어쨌든. 이게 막혔으니 난 기권하련다. 심판! 기권할게요!"
김영한은 쿨하게 패배를 인정했다.
설마 저 거대한 가시를 소환하는 게 끝은 아닐 테고 아직 여력도 남은 것 같았지만, 능력을 공개하기 싫은 걸지도 모른다.
[아아! 회심의 기습을 실패한 김영한 생도가 기권합니다. 승자는 A클래스의 이호연 생도! 박수 부탁드립니다!]
마나 방벽이 해체되고 씁쓸하게 웃고 있는 김영한에게 다가갔다.
"야. 남자 새끼가 이거 졌다고 삐지는 거 아니지?"
"당연하지. 미남하고 친하게 지내야 떨어지는 콩고물이라도 주워 먹지."
다행히 김영한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방금 경기로 너도 귀찮아 질 거다. 큭."
김영한도 나만큼은 아니더라도 잘생긴 편이고, 숨겨둔 능력까지 공개했으니 날파리들이 엄청나게 달려들겠지.
"뭐, 나중에 취업할 곳 고르고 좋잖아."
거짓말.
아직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지만 김영한은 대형 길드의 후계자다.
길드의 이름 없이 혼자 증명해보겠다며 아카데미에 들어온 도라이라서 문제지.
"그래. 고생했다."
"너도. 네가 나 이기고 올라갔으니까 꼭 우승해라."
"음, 노력해볼게."
김영한은 바로 몸을 돌려서 대련장 밑으로 내려갔고, 나는 관람객들에게 열심히 인사를 하며 대련장을 내려왔다.
*
"아쉽네. 근데 마지막 기습은 진짜 좋았어."
이호연의 경기를 지켜보던 임솔은 이호연의 승리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 어떻게 저걸 피하지? 우리 도련님 어쩌면 좋아."
"뭐라고?"
"아니아니, 저걸 피하다니 이호연 생도 대단하다고. 나는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올게."
민예지는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 관람석에서 빠져나왔다.
스마트 워치를 확인하며 도착한 장소에는 김영한이 기다리고 있었다.
"도련님. 고생했어요. 진짜 아쉽네. 설마 그 기습이 막힐 줄이야."
"그러게요…. 예지 씨도 봤죠? 호연이 걔 괴물이에요. 저번에 영입 관련으로 연락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결과는 어떻게 되고 있어요?"
김영한은 평소와 다른 진중한 분위기로 민예지를 맞이했다.
"어… 음, 잘 되고 있죠. 근데 아무래도 이호연 생도는 길드와 엮일 생각이 없는 것 같더라고요. 이것도 그나마 다른 길드하고는 아예 연락도 안 되는데 저라서 따낸 거에요. 알죠?"
"예지 씨 능력이야 당연히 알죠. 그래서 연봉을 그렇게 많이 가져가시잖아요. 어쨌든, 더 노력해보세요. 호연이를 데려오기만 하면 철혈 길드가 한국 1위 하는 것도 꿈이 아니에요."
김영한은 외부에 티를 내지 않을 뿐 이미 내부에서는 철혈 길드의 후계자로 지목되어있었다.
이번에 1대1 결투를 우승하면 자랑스럽게 밝히려고 했는데, 아쉽게도 이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네네. 당연하죠. 그러고 보니 도련님도 이호연 생도하고 꽤 친하던데, 나중에 영입하시려고 미리 친해진 거에요? 대단하시네요~."
이호연이 철혈 길드로 온다면 당연히 환영이지만, 굳이 그래서 친구가 된 건 아니다.
"그건 아니에요. 호연이는 그냥 친구 관계. 옆에서 보고있으면 재밌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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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를 끝낸 나는 엘리스와 남다은의 경기를 보기 위해 대기실로 돌아왔다.
물론 경기가 끝나고 의료팀이 와서 내 체력과 마력을 모두 회복시켜줬다.
다음 경기에 들어가기 전에 최선의 컨디션을 유지시켜줘야 하니까.
대기실에 준비되있는 음료수 캔을 하나 깐 순간, 내 눈 앞에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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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 퀘스트가 전송되었습니다.』
[실기 시험 1등의 사나이!]
이론 시험 1등은 이미 떼놓은 당상!
거기에 실기 시험까지 1등으로 문무겸비의 남자가 되어봅시다!
- 보상 : 모든 히로인들의 호감도 1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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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절대 놓쳐선 안 될 서브 퀘스트가 나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