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9화 〉79화. 양호 선생님 등장 (79/648)



〈 79화 〉79화. 양호 선생님 등장

루미와 훈련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띠리링-


"아, 시발 죽이라고!"


내 집 같은 기숙사에선 익숙한 욕이 들렸다.

돈복사기 릴리아나가 열심히 일하는 소리였다.


나는 조용히 생도복을 벗고 샤워실에 들어갔다.

내가 쓸 돈을 벌어주고 있으니 괜히 방해하지 말아야지.


샤워를 마치고 나와서는, 경매에 올려놓은 책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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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의 탑 1권 초판본. 친필사인 포함]

최저가 : 500만 원.

입찰가 : 2억 3040만 원



[이거 진짜 맞는 듯. 소유자가 갑자기 돈 필요해서 푸는  같은데.]


[신뢰 1등급인데 가짜를 올리겠냐. 지금 돈이 없는 게 한이다.]


[나였으면 여기  올리고 오프라인 경매에 가져갈  ㅋㅋ 그럼 얼마까지 갈 줄 모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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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2억이 넘어?"


역시 장양산 작가의 희대의 명작 '매의 탑'이다.


 정도면 제대로 된 오프라인 경매장에선 더 올라갈 것 같은데.

"아니다. 그냥 내버려 두자.'

당장 돈이 급한 건 아니니까.  간을 봐도 괜찮을 것 같다.


난 매의 탑 초판본의 경매기간을 한 달로 늘려놓고 경매 시스템을 종료했다.

"왔어?"


어느새 릴리아나가 방에서 얼굴만 내민 채 나를 반겼다.


"엉. 너 방송하길래 방해 안 하려고 조용히 들어왔어."


"씻는 소리 들리길래 방송 껐어."

"아하."

릴리아나는 방에서 나와 내 옆에  붙었다.


킁킁.

그리고 내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클린으로 지우고 씻고 와도 여자 냄새가 남는 건가?


아니면 서큐버스의 특징일지도 모른다. 야한 냄새를 잘 맡는다던가.

"크흠. 너 때문에 저녁 안 먹고 기다렸어. 피자 시켜줘."

릴리아나는 별 감정 없는 얼굴로 말했다.


어젯밤 자지 교육의 성과가 있었다.


내게 여자 냄새가 나도 참고 가만히 있는 모습이 아주 보기 좋았다.


★ 히로인 상태창


[릴리아나]

- [ 호감도 : 84 ] ( +0.1)
- [ 성욕 : 74 ]
- [ 식욕 : 45 ]
- [ 피로도 : 3 ]

현재 상태 : 주인님에게 여자가 많은 건 '상식'이잖아…?

"알았어. 피자나 시켜 먹자."

"포테이토로 시켜."

릴리아나는 내게 관심 없는 척 스마트 워치로 피자 메뉴를 골랐다.

일부러 눈도  마주치며 피자를 고르고 다시 고개를 돌리는 게, 티를 안 내려고 해도 티가 나서 귀여웠다.


"이리 와."

"응, 뭐, 뭐해!"

릴리아나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쪽으로 잡아당겼다.


부드럽고 따뜻한 여체가 내 몸에 닿았다.

"피자  때 까지 같이 누워있자."

"왜, 왜 이래앳…."

약간 명령을 섞으며 릴리아나를 침대로 끌고 갔다.


릴리아나는 말과 다르게 저항없이 안겨 왔다.


*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카데미 이사장실은 행정 부서들이 모여있는 행정관의 1층에 위치해 있었다.


이사장 자신이 1층을 원했기 때문이다.


행정관 주변의 자연미는 아카데미에서 손꼽힐 정도였고, 이사장실에서 보이는 정경은 이사장의 자랑이었다.

월요일 아침을 상쾌하게 시작하며 출근한 이사장 문재철은 창문을 열고 시원한 바람을 느끼고 있었다.

띠리링-


"응? 협회장 이 노인네는 왜 전화질이야."


아카데미와 협회. 둘 다 겉으로는 공익을 위한 기관이지만 실제로는 물밑의 견제가 엄청났다.

유망한 헌터들을 얼마나 끌어들이냐에 따라 자신이 낼 수 있는 목소리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당연히 영입 전쟁과 이권 다툼은 항상 일어나왔다.

그렇기에 각 기관의 대표끼리 사이가 좋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오늘처럼 언질도 없이 전화부터 대뜸 걸려오는 건 처음이었다.

이사장은 대체 얼마나 급한 사정이 있길래 전화를 걸었나 싶어 빠르게 전화를 받았다.

"예. 협회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 이사장님, 진짜 너무한  아닙니까?!


"예?"

협회장은 이사장의 갑작스러운 고함에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 우리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인정합니다. 그렇다고 이런 식으로 대놓고 인재를 빼가면 안되죠. 상도덕도 없습니까!


"도대체 무슨 소리를…."


이사장은, 최근에 협회와 다툼이 있었는지 머릿속을 뒤져봤다.


똑똑-


그때 이사장실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협회장님, 잠시만요. 정 비서! 지금 통화 중이니 조금 이따 보고해!"

"이사장님. 1급 사안입니다. 바로 확인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밖에선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정 비서가 저렇게 다급할 정도면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었다.


"…하아. 일단 들어와서 서면 보고해. 예. 협회장님. 근데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 그렇게 모르는 척. 꼬리자르기를 하시겠다는 겁니까? 그러면 저도 참지 않겠습니다!


"아니… 일단 어떤 상황인지를 알아야 저도… 어?"

이사장은 비서가 가져온 서류에 말문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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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양호 선생님 지원 서류]

이름 : 백아영

나이 : 28


.
.
.


비고 : 부끄럽지만, 성녀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아카데미 양호 선생님이 되는 게 예전부터 꿈이었습니다. 무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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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서. 이게 뭐야?"


"저도  모르겠습니다. 방금 전에 무작정 인사과로 찾아와 아카데미에 취업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답니다."


"그걸 나한테 믿으라고 하는 소리야? 성녀가 협회를 그만두고 아카데미 양호 선생님으로 오는 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애초에 우리 양호 선생님 같은 직함도 없잖아!"

이사장은 도저히 지금 상황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 이사장님! 이제 협회에서도 참지 않습니다. 진흙탕 싸움을 원하신다면 저도 그렇게 하겠다 이 말입니다!


"아니, 협회장님 잠시만요. 저도 이제야 보고 받았다고요."

뚜우-

"이런 미친 늙은이가…."

이사장은 전화를 끊어버린 협회장에게 화가 나긴 했지만, 사태 파악이 먼저였다.

"정비서. 백아영  당장 여기로 모셔."


그는 굴러들어온 금덩어리를 놓치는 멍청이는 아니었다.





*


화요일 아침. 오늘은 선배들과 합동 수업이 진행된다.

난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학생회에서 꼽을 날렸던 땅딸보 선배 놈.


오늘이야말로 복수의 날이었다.


"선배들이랑 합동 수업은 뭐 하는 걸까?"

"내가 알기론 정신 교육 같은 거 하고 나서 대련으로 알고 있는데."

"정신 교육이 별로긴한데, 대련은 재밌겠다. 선배들 실력이 궁금해."


등굣길에 만난 김영한은 합동 수업을  기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얘도 그렇게 약하진 않았던  같은데, 비중이 없어서 그렇지.

"야, 그러고 보니 이번에 양호 선생님이 생긴다던데?"

김영한은 수업에 대해서 재잘거리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 얘기를 꺼냈다.

"…? 양호 선생님?"


 개소리야 이게.

빅토리아 아카데미에 의료팀은 있어도 양호실은 없다.

물론 게임에서 언급이 안 됐을 뿐, 양호실이 있을 수도 있지만 정작 아카데미를 실제로 다니는 나도 들어본 적이 없다.


게다가 아카데미는 대학교랑 비슷한 느낌인데 양호 선생님은 너무 뜬금없잖아.

"나도 주워들은 거라 잘은 모르는데 어제부터 공사하기 시작했대."


"어… 신기하네."


어차피 양호 선생님이 생기든 말든 나랑 관련 없는 일이다.



*





는 개뿔. 관련이 존나게 많았다.

"오늘부터… 성녀 백아영 헌터님이 아카데미 양호 선생님으로 부임하게 되셨다."

뭐라고요. 시발?

나를 포함한 다른 생도들 모두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떴다.

루시와 루미는 내 옆에서 입을 벌리고 있고, 엘리스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 그렇게 당황하지 않은 얼굴이었다.


그 무표정하던 남다은마저 '저게 무슨 개소리지'라는 표정을 짓고 있다.


"당황하는 생도들이 많겠지. 나도 이해한다. 하지만 나도 방금 전달받은 사항이라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한다. 양해를 구하마."

김진혁은 고개를 잠깐 숙였다가 피고 말을 이었다.

"어… 양호 선생님으로서 학생들과 소통을 많이 하고 싶다고 하시니까 아픈 데가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가도록 해라. 그렇다고 꾀병을 부려서 백아영 헌터. 아니지. 백아영 선생님을 찾아가면 진짜 큰일 날 지도 모른다. 이사장님 공문이야."


어떻게든 백아영을 실제로 보러 가려던 남생도들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 설마.'


불안한 감정이 몸을 채우기 시작했다.


진짜. 설마 아니겠지.  때문에 온  아니겠지?


"그리고… 이호연 생도."


"네?"

김진혁의 입에서 내 이름이 튀어나오고, 주변 생도들의 이목이 내게 쏠렸다.

갑자기 내 이름은  왜 나와.

"담임 교수와 면담이다. 아침 조례가 끝나고 담임 교수실로 따라오도록 해. 그럼 해산."


"면담이요?"


김진혁은 자기 할 말을 끝내고 강의실 밖으로 향했다.


아니 대답은 해주고 가지.


"얘들아.  면담  하고 올게. 너희 먼저 수업 가 있어!"


"어, 응응!"


"기다릴게요!"


나는 약간의 불안감을 가지고 김진혁 교수의 뒤를 따라갔다.





*


김진혁 교수를 따라 도착한 담임 교수실.


평소에도 조용조용한 사람이고 별 취미도 없어 보이는 사람이지만 진짜 그랬다.

사람 사는 흔적도 안 느껴지는 교수실은 오로지 일과 관련된 물품들만 놓여있었다.

"자, 커피라도 한잔해."


"감사합니다."

후릅.


나는 커피를 마시면서 김진혁의 말을 기다렸다.


"어, 으음. 아카데미 생활은 괜찮니?"


"예. 재밌고 충실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그렇구나…."

홀짝.


우리는 어색하게 서로를 바라봤다.


"시험 준비는 잘해가고?"


"네. 이번에 확실하게  자신을 증명해야 하니까요."

"좋은 태도다. 자신감이 있어야 일도 잘되는 법이야."


"감사합니다."


홀짝.

김진혁은 일상적인 내용을 조금 묻다가,  하고 혀를 차더니 머리를 벅벅 긁기 시작했다.


"미안하다. 내 성격에 이런   못 해서, 그냥 본론으로 들어가자."


"네."


나도 그게 편했다. 남정네랑 일상 대화 같은 건 김영한으로 충분하다.


"이사장님이 너와 대화를 하고 싶으시대서 불렀다. 오늘 오전 수업은 조금 늦게 들어가도 좋다고 허락받았으니 걱정하지 말고."


"… 이사장님이요?"

"그래… 나도 전체적인 내용은 전달받은 건 아니고, 일부만 전달받은 거긴 한데…."


김진혁은 머리가 복잡한 듯 커피를 꿀꺽꿀꺽 원샷했다.

탁.

커피잔을 내려놓은 김진혁이  눈을 보며 말했다.


"너… 밖에서 이상한 짓 하고 다니는 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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