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37화. 준비 (2)
루시를 구원할 준비를 끝내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릴리아나는 잘하고 있겠지? 혹시 굶고 있지는 않을까? 약간 걱정도 된다.
띠리링-
스마트 워치를 방문에 찍고 들어갈 동안 안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자는 건가?"
밖에서 험한 꼴을 당했으니 도망갈 것 같지는 않은데...
"아~ 씨발. 정글 이 개새끼 왜 안 오는데! 상대 도구 새끼랑 백정 새끼는 계속 탑만 오잖아아아!"
내 걱정을 잠재우듯이 방 안에서 귀여운 목소리의 욕설이 들렸다.
열린 방문 틈 사이로 슬쩍 방안을 훔쳐봤다.
릴리아나가 게임방송을 하고 있었다.
얼마나 집중했는지 내가 온 줄도 모르고 있다.
"아, 이걸 지네. 이 개 같은 새끼들 진짜. 게임 접어 이 젖 같은 새끼들아!"
"..."
"앗, 마력연구부 에이스님. 오만 원 후원~. 고맙."
"리액션이 창렬이라고요? 보기 싫으면 나가던가 씹새야."
릴리아나는 서큐버스 코스프레 옷을 입고 꼬리를 살랑거리면서 방송하고 있었다.
나는 서큐버스가 적응의 동물이란 걸 깨달았다.
릴리아나의 방송이 뭔지 나도 궁금해졌다.
혹시 에브리데이에 올라왔는지 확인하기 위해 접속했다.
들어가자마자 상단에 글이 있었다.
[이거 아무리 봐도 우리 기숙사 아님?]
글은 릴리아나의 방송 캡처가 올라와 있었고,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방의 구조가 빅토리아 아카데미 기숙사와 똑같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그 글에 방송 이름도 나와 있었으니 방송을 찾아서 들어가 봤다.
방송 이름은 '섹시서큐버스' 였다.
서큐버스 같지도 않은 게 섹시서큐버스 이러고 있네.
- 누나 더 욕해주세요.
- 저 빅토리아 아카데미 재학생인데 여기 무조건 기숙사임. 레전드다 이거.
- 와 빅토리아 아카데미 생도가 여캠을 하고 있네.
- 얼마 후원부터 이름 부르면서 욕해주나요?
"음... 확실히 정신이 나갔어."
세상에 정신이 나간 친구들이 참 많다.
그래도 첫날부터 착실하게 일하는 모습을 보니 내가 다 기분이 좋았다.
의도했던 대로 좋은 오해도 하고 있고. 음, 좋아 좋아.
훈련동에 갔다 오면 방송이 끝나있을 테니 그때 얘기를 좀 해봐야지.
나는 생도복을 갈아입고 훈련동으로 향했다.
공용 훈련실에는 월요일이라 사람이 적당히 있었다.
공용 훈련실은 프라이빗 룸과 달리 둘 셋씩 모여서 훈련을 하는 곳이다.
쉽게 말해 인싸의 공간이다.
나를 바라보는 눈길을 무시하고 구석의 홀로그램 모니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빅토리아 아카데미 수업 관리시스템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오늘 1학년 A클래스에서 임솔 교수님이 수업하신 자료랑 배리어 자료들 보여줘."
촤아악-
내 주문을 들은 AI가 오늘 수업 때 임솔 교수가 나눠준 프린트를 홀로그램 모니터에 비췄다.
그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빅토리아 아카데미에서 생도를 위해 공개한 모든 배리어 마법진을 나열했다.
"어우, 너무 많잖아. 고급 이상만 보여줘."
내 눈앞에 8개의 마법진이 나타났다.
그 중 이중 나선을 활용해 상대의 공격을 대비하는 배리어 마법진이 5개.
3개는 급박한 상황에서 사용하도록 경량화된 마법진이었다.
이 중에서 내가 원하는 건 당연히 전자.
"경량화 마법진 빼고."
스르륵.
이제 이것들을 분석할 차례다.
일단, 이 마법진들의 공통점은 이중나선으로 마력을 묶어서 강도를 높였다는 것이다.
그 외에 다른 차이점이라고 해봤자 어떤 마법류를 막을 때 더 효과적이냐, 또는 물리 공격을 막을 때 효과적인지, 마법 공격을 막을 때 효과적인지 정도의 차이다.
쉽게 말해 큰 틀은 차이가 없다.
하지만 디테일에서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오, 중심에서 마나를 퍼트리는 형식으로 배치하면 화염 마법을 막는데 효과가 좋아지는구나.'
'이 쪽 마법진은 마무리 획이 아쉬워. 마지막에 마나를 조금만 더 배분했으면 효율이 더 좋았을 거야.'
나름대로 배리어를 분석하면서 개선점을 찾아냈다.
사실 일개 생도가 배리어 마법진의 개선점을 찾아낸다는 게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마력 감응]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호연 씨, 뭐 하세요?"
아 씨, 깜짝이야.
어느새 내 옆에 루미가 다가와 있었다.
"야, 너는 말을 하고 와야지. 그렇게 몰래 다가오면 어쩌냐."
"헤헤... 죄송해요."
처음이었으면 히이익 죄송합니다. 하고 도망갔을 거 같은데, 많이 성장했구나.
근데 나랑 얘기해도 되나? 루시한테 걸리면 혼날 텐데.
"여기 있어도 괜찮아? 그, 루시가 보면 화낼 텐데."
"괜찮아요. 루시는 한 번 잠들면 누가 잡아가도 모르거든요. 아까 힘들어서 먼저 잔다고 했어요. 그, 근데, 혹시 배리어 연습 중이셨어요?"
"응, 이번에 들은 수업이 꽤 재밌길래 혼자 연습 중이었어."
"그럼! 저랑 같이 훈련하실래요?!"
루미의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
『서브 퀘스트가 전송되었습니다.』
[인싸의 공간에서 훈련하기!]
루미는 친구와 함께하는 훈련을 동경합니다!
루미와 즐거운 배리어 훈련을 해보세요!
- 보상 : 마력 능력치 1
----------------------
오랜만에 나오는 퀘스트. 거절할 이유는 없다.
"음, 나야 좋긴 한데. 나랑 같이해도 너는 이득이 없을 텐데."
"그렇지 않아요. 서로 부족한 부분을 알려주는 게 그, 친구... 잖아요!"
피식. 친구를 말할 때 망설이면서 이쪽을 바라보는 게 꽤 귀엽다.
"그치, 우린 친구니까."
"네, 네넷!"
귀엽네. 친구가 뭐라고 저렇게 기뻐하는지.
루미는 방어 마법에 재능이 있는 캐릭터다. 그런데 나를 위해 같이 훈련해주다니, 내가 미안할 지경이다.
"배리어 마법 연습 중이셨죠? 제가 시범 한번 보여드릴게요."
"좋아."
저번 수업 때 봤던 루미의 마법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지만,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루미는 잘 보란 듯이 나를 힐끔 쳐다보고는, 천천히 배리어를 만들어나갔다.
이중나선 형태의 마력이 교차하며 겹쳐지고 단단한 방어막으로 변한다.
'와, 진짜 잘한다.'
생도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라고 말해도 모자람이 없는 수준.
특히 마력에 담겨있는 방어의 속성이 돋보인다. 루미의 따뜻한 의지가 담겨있었다.
"호연 씨가 보고 있어서 그런가? 잘 됐어요. 호연 씨도 한번 해보실래요?"
"알았어. 좀 긴장된다 근데. 흐."
"괜찮아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어요. 제가 부족한 곳은 잡아드릴게요."
앞에서 저렇게 잘하니까 괜히 부담되네.
내 머릿속에서 지금까지 본 마법진들이 파노라마처럼 재생된다.
방금 루미가 시전했던 배리어의 마력 속성을 확실하게 머리에 박아넣는다.
내 재능은 마법진들의 장점을 모으고, 루미에게 배운 마력의 속성을 담을 수 있게 만들었다.
차자자작-
마력이 이중나선으로 꼬이면서 교차로 겹쳐진다.
더 단단하게. 더 단단하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후우. 숨을 한번 고른 뒤에 다시 시작한다.
'개안'
지잉-
내가 만든 배리어의 틈을 관측한다.
조금 더 단단하게. 미세한 틈까지 채워 넣기 위해선 마력의 형태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야 했다. 이중 나선 형태로는 미세한 틈을 채울 수 없다.
번뜩. 하고 생각이 떠올랐다.
'이중나선이 문제라면 더 빼곡히 만들면 되잖아.'
이중으로 회전하던 나선에 한 획이 추가된다.
삼중나선으로 회전하는 마력은 미세한 틈을 없애고, 아름답게 교차한다.
루미에게 배운 마력의 속성을 담는다.
모든 걸 방어하려는 의지가 마법진에 깃든다.
루미만큼 강한 의지가 깃들진 않았지만, 부족함은 [마나 감응]이 보조했다.
이윽고 내 몸 앞에 벽이 만들어졌다.
루미나 임솔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배리어.
하지만, 루미도 나도 느낄 수 있었다.
아름다움을 넘어서 예술적인, 배리어로 쓰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작품.
만약 이 곳에 임솔 교수가 있었으면 소리를 지르면서 연구하자고 내 바지를 벗길만한 마법이었다.
내 눈앞에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우아하면서도 완벽한 배리어가 있었다.
"...."
"...."
먼저 시범을 보여준 루미가 창피할 정도로 아름다운 자태에 루미는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 코튼 가드 」───――
▶ 고유 스킬
▶ 배리어에 대한 완전한 이해와 굳건한 의지가 담긴 마법.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경량화해서 사용 가능.
───――───――───――───――
코튼 가드.
심지어 고유 스킬로 등록되었다.
그 아름다운 형태를 보고 있던 루미의 얼굴이 서서히 달아오른다.
"아, 아…. 그, 네에… 대단하시네요. 그, 혹시 저한테도 좀 알려주시면…."
"어, 어. 응. 당연하지. 서로 부족한 부분을 알려주는 게 친구잖아."
"……네에. 그렇죠오."
아무래도 부족한 부분은 자기가 집어주겠다고 한 게 부끄러운 모양이다.
그렇게까지 부끄러워할 필요 없는데.
*
루미와 훈련을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앞으로 주기적으로 만나서 훈련을 도와주기로 했다.
처음엔 내가 도움을 받는 거였지만, 히로인과 가까워 지는 건 언제든지 환영이니까 괜찮다.
그런 문제가 아니더라도 예쁜 여자와 같이 훈련을 하는 것만으로도 훈련 효율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어딘간 있을 것이다.
기숙사로 들어가자 방송이 끝났는지 밥상에서 치킨을 뜯고있는 릴리아나가 보였다.
"어이, 끝났냐."
"응? 아, 계약자네. 방송 말하는 거면 끝났어. 오늘 돈을 많이 벌어서 치킨 시켰는데 괜찮지?"
"그건 괜찮은데…. 너 혹시 내 이름 모르냐?"
생각해보니 나는 릴리아나의 이름을 아는데 내가 얘한테 이름을 알려준 적은 없는 것 같다.
혹시 나처럼 시스템 창이 나왔다면 계약자라고 부를 리는 없을 텐데.
"으응!? 어, 음. 네가 안 알려줬으니 모르겠지?"
이걸 내 탓으로 돌린다고?
"야, 적어도 네가 먼저 물어봤어야지. 난 당연히 아는 줄 알았잖아."
"아, 뭐 어때. 남자가 쩨쩨하게 그럴 거야? 그래서 이름이 뭔데?"
"이호연이라고 불러."
"이름도 젖 같은 게 뭐가 자랑이라고 알려준다는 거야?"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에용. 그나저나 오늘 번 돈이 얼만지 궁금하지 않아?"
참나. 어이가 없어서. 하루만에 저렇게 뺀질거리게 되었다. 어제 양아치한테 처맞고 울먹거리던 릴리아나가 그립다.
"그래서, 얼마 벌었는데?"
"짜잔~ 80만 원 입니다."
"뭐라고?"
"귀에 좆 박았어? 80만 원이라니까? 이 정도면 많이 번 거 아니야? 치킨 한 마리가 만 오천 원 이던데."
똑똑히 들었는 데 혹시 잘못 들었나 하고 되물어봐도 80만원이었다.
이건 많이 번 게 아니라 존나 많이 번 거다.
씨발! 나도 여자로 빙의시켜줬면 여캠해서 돈이나 복사하는 건데.
좆 같은 신 새끼들!
"그건 그거고, 사실 중대한 문제가 있어."
그 때, 릴리아나가 장난스럽던 표정을 굳히고 내게 속삭였다.
"문제가 있다니, 뭔데?"
사실 너무 찔리는 게 많아서 문제다.
설마 남들한테 릴리아나의 존재를 들킨 건 아니겠지?
내가 배달은 '문밖에 놓고 가주세요' 설정을 하라고 그렇게 얘기 했는데!
"심심해."
"뭐?"
"심심하다고!"
"네가 심심할 틈이 어딨어! 방송해서 돈 벌어야 할 거 아니야!"
이 년이 어디서 노동 거부를 하는거야?!
"어차피 아카데미 수업 시간에는 방송 못 하잖아! 그래야 네가 말한 낮에는 생도인데 밤에는 변태 서큐버스 코스프레를 하지!"
…얘 의외로 똑똑한데?
"그러면 다른 방송이라도 보고 방송 감을 늘리던지, 게임 연습을 하든지 하는 건?"
"게임은 지금도 잘해서 하기 싫고, 다른 방송은 내가 채팅치면 누군지 보여서 채팅을 못 치잖아. 채팅 없는 방송은 볼 이유가 없다고!"
이 새끼 악질이었네. 그냥 조용히 볼 것이지 바라는 게 뭐 이리 많아.
말 하는 걸 들어보니 뭔가 요구하는 것 같은데, 징징 돌려 말하는 건 질색이다.
"그래서 뭐 하고 싶은데. 그걸 얘기해봐."
"나도 같이 다닐래."
응?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나도 돌아다니면서 세상 구경 하고 싶어."
"어떻게 다닐 건데. 방법은 있어?"
릴리아나는 누가봐도 외형이 서큐버스다. 하트가 달린 꼬리도 살랑대고 있고.
물론 옷만 제대로 입고 머리 위에 뿔만 가리면 인간이랑 비슷하게 생기긴 했는데, 혹시 지나가던 목사가 지옥의 기운을 느끼고 십자가로 대가리를 내려 찍을지도 모른다.
는 농담이고.
나 없는 곳에서 혼자 돌아다니다가 무슨 일을 당할 줄 알고. 책임은 내가 져야 하는데.
절대 내 눈 밖으로는 안 보낼거다.
"응. 방법이 있긴해."
펑!
장난스러운 소리와 함께 릴리아나의 주변에 연기가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