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13화. 임솔
"안녕하십니까. A클래스 여러분들의 마나연구학 수업을 맡은 한재영이라고 합니다."
누가봐도 골방에서 연구만 한 것처럼 생긴, 백생 정장을 입은 노교수가 교단에 서있다.
저 정도면 거의 스켈레톤인데, 혹시 네크로맨서 출신인가?
"마나에 대해 모르는 생도는 없겠죠? 여러분은 자랑스러운 빅토리아 아카데미 신입생입니다. 기본적인 배경지식이 있다는 판단하에 수업을 진행하겠습니다."
배경 지식 없이 입학한 나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말이다. 선생이라면 학생 모두를 공평한 눈으로 바라봐줘야 하는데, 참선생은 아닌 모양이다.
"마나에 대한 개념은 넘기도록 하고... 마나운용에 대해서 얘기 해볼까요?"
그 말과 동시에 스켈레톤 교수의 왼 팔에 마나가 모이기 시작했다.
"마나운용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번째로 강화."
웅웅-
일정치 이상 모인 마나가 다른 사람에게 보일 정도로 유형화되며 스켈레톤 선생의 왼손을 감쌌다.
"자, 이걸 마나의 유형화 라고 합니다. 형태가 없는 마나를 강화하고 응축시켜 형태를 만들어 주는 겁니다."
콰앙!
스켈레톤 교수는 그대로 왼손을 교단의 옆에 준비되있던 강철을 향해 주먹을 뻗었고, 강철은 가볍게 찌그러졌다.
'와, 존나 쎄네."
한국 최대의 각성자 교육기관 교수다운 실력이다.
언제든지 현역에 나서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 그게 빅토리아 아카데미 교수다.
"두번째는 방출입니다. 마법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지만 약간 더 포괄적이죠."
말을 마친 교수의 왼손 위에 마나로 이루어진 구가 만들어졌다.
"지금은 단순히 마나를 손 위에 압축시킨 모양이지만, 이 상태에서 여러 공정을 추가하면 마법이 되는겁니다."
손에 모여있던 마나의 구 위에 작은 마법진이 그려지고, 당장이라도 튀어나올듯한 전기로 변한다.
파지직-
"이게 마법진을 이용한 마법 구현입니다. 단순한 마법은 보통 마법진을 생략하지만, 대규모 마법이나 고급마법은 마법진이 필요한 마법이 많아요."
마법진에 대한 개념도 어쩌구저쩌구 설명을 들었는데, 어려워서 대충 넘겼다. 어차피 나랑 관계가 먼 이야기라서.
"뭐, 기본과정은 이걸로 넘겼다고 치고, 바로 심화과정으로 들어가볼까요?"
이번에도 교수의 손위에 마나 구가 생성된다. 하지만 방금 만들었던 구보다 훨씬 압축된 마나가 담겨있었다.
"가끔 이런 말을 하는 생도들이 있어요. '교수님, 저는 마법사도 아닌데 왜 이 수업을 들어야 하나요?'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마나를 칼에 두르면 검기라고 하는거고 주먹에 두르면 권기라고 하는거 거든요"
교수는 말을 이어가며 압축된 마나구를 주먹에 둘러싸게 해 권기를 만들었다.
"마나를 어떻게 가공하냐에 따라 마법이 될지, 단순 강화가 될지 정해지는 거에요. 결국 기본은 같다는 겁니다. 여기서 배울 마력운용은 분명 써먹을 데가 있을겁니다."
교수의 손에서 마나가 사라지고, 교수를 중심으로 바닥에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 처럼 마나파동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건 딱히 마법이라고 할 건 아니고, 보통 현장에선 '감지'라고 해요. 단순히 마나를 바닥에 밀착시켜서 주변으로 퍼트리는 기술인데, 단순한 기술치고 굉장히 쓸모가 많은 기술이에요. 수준높은 감지라면 은신이나 벽 뒤에 숨은 적도 찾아낼 수 있습니다. 보기에 간단해 보이는 이 기술도 실제로는..."
교수의 복잡한 설명을 들어보려고 노력했지만,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도대체 마나를 퍼트리는데에 마나식이랑 연산이 왜 필요한건지 모르겠다.
"자, 한번 시도해보고 나면 자신이 어느 부분이 취약한지 알 수 있을 거에요. 그 다음에 개인적으로도 도와드리겠습니다. 일단 한번 해보세요."
교수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뒤에서 대기하던 조교들이 이상하게 생긴 팔찌를 생도들의 앞에 나눠주기 시작했다.
"이게 그 유명한 빅토리아의 마력보조기인가본데?"
"마력보조기?"
"응, 이걸 끼고 있으면 마력운용이 훨씬 쉬워진대. 대신 파괴력이 너무 약해져서 실전에는 못쓰지만."
옆에 앉아있는 김영한의 설명덕분에 팔찌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도대체 내가 모르는 게임 속 설정이 얼마나 있는걸까. 이렇게 섬세한 게임이었나?
"처음에는 마나 보조기를 착용하지 말고 감지를 사용해 보세요. 그 후에 마나보조기를 착용하고 마나를 끌어올려보면, 어디가 부족한 부분인지 감이 올겁니다."
분명 교수가 몸 속의 마나를 끌어올려 사방으로 퍼트리는 감각이라고 했다.
우웅-
마나가 주변으로 퍼지며 가까이 있는 생도들의 윤곽이 느껴진다.
'음, 이정도면 역시 할만하네.'
마법 사용도 할만 했으니, 감지 정도야 충분히 써야 정상이겠지.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학생들은 아직 갈피를 못 잡은듯 했다.
웅웅-
슥. 어떤 여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엘리스. 프랑스계 수석 여학생이다.
학생들 중에 한 번에 감지를 사용한 학생이 엘리스와 나 뿐이었다.
실기 수석인 남다은은 수업에 흥미가 없는지 한쪽 머리카락 끝을 잡고 빙빙 돌리고 있다.
그러다보니 나와 엘리스의 감지가 서로의 마나파동을 감지한 것이다.
"..."
"..."
무언가 나한테 불만이 있는건지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는 시선에 딱히 할 말이 없으니 바라보다가, 그냥 내가 눈을 피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저러는거지? 잘생긴게 죄라면 무기징역이다 뭐 그런건가?
"일부 학생들은 성취가 있지만,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네요. 자리 앞에 놓인 마나보조기를 착용하고 다시 한번 실습해봅시다."
"오오, 진짜 뭔가 마력이 가벼워졌는데?"
"그래?"
옆 자리에서 팔찌를 착용한 김영한이 신기해하며 마나를 운용하고있다.
굳이 필요 없을거 같긴 한데, 그래도 준거니까 한번 껴보자. 뭔가 차이가 있겠지.
팔찌를 팔에 갖다 대자, 알아서 손목에 감기면서 몸 안에 무언가 가득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오, 느낌이 신기하네."
이번엔 손 끝에서부터 마력을 끌어올렸다.
확실히 편해졌... 아닌데. 오히려 무거워진거 같은데. 불량품아니야?
마력을 더 끌어올렸다. 이상하게도 보조기를 꼈는데 더 힘들어졌다.
"아니 이거 불량같... 끄악!"
갑자기 몸 내부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통증에 신음이 튀어나왔다.
쿠당탕!
고통을 참지 못하고 의자에서 떨어졌다.
그래도 줄지않는 통증에 가슴 부근을 손으로 부여잡고 바닥을 뒹굴었다.
입안에서 기분나쁜 쇠 맛이 느껴졌고, 코피가 흘러서 바닥을 적셨다.
콜록 콜록!
입을 막고 기침을 했는데 손에 피가 묻어있다.
씨발. 뭐야 이거.
"야! 괜찮아? 교수님! 여기 사고발생했습…."
옆에 김영한이 뭐라고 외치고있는데, 시야가 흔들리면서 제대로 들리질 않는다.
'이게 뭔 개같은...'
전조도 없이 오는 통증에 정신을 차릴 수 없지만, 원인은 알 수 있었다.
몸 속의 마나가 진탕이 나있었다. 마나 회로가 꼬일대로 꼬여서 제대로 마나를 일으키기 힘든 상태였다.
게다가 마나를 끌어올리려고 할 때마다 고통이 점점 커졌다.
고통의 원인은 모르겠지만, 마나회로만 어떻게 되돌리면 고통도 사라질거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큰 고통이 뒤 따르겠지만, 점점 정신이 희미해져간다. 이대로 가다간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
"크읍...!"
억지로 움직이지 않는 마나를 움직였다. 분명 내 의지대로 움직이던 마나가 어떻게든 내 의지를 벗어나려한다.
마치 마나라는 공이 몸 속에서 마음대로 튀기면서 온 몸을 내부에서 때리는 것 같았다.
"우욱!"
그 어지러운 느낌과 고통을 버티지 못하고 위액과 피를 토해냈다.
목울대를 타고 올라온 덩어리들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그렇게 나오는게 없을 때 까지 몇번 헛구역질을 하니 확실히 조금 편해졌다.
[뚜렷한 정신력]은 항상 도움이 된다. 마취없이 수술을 하는듯한 고통이 밀려와도 정신을 유지하게 만들어준다.
약간은 익숙해진 고통을 참고 마나를 조율하며 제어를 시도했다.
계속 어딘가로 튀어나가려는 마나를 잡아채고 몸 속의 마나회로와 통로들을 조심스럽게 원래 자리로 바로잡는다. 몸 전체의 미세한 회로들을 전부 컨트롤 해야되는만큼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했다.
그 일련의 과정속에서 마나에 대한 이해가 점점 깊어짐을 느꼈고, 그로 인해 복구과정도 점점 빨라졌다.
"후욱후욱. 쓰읍. 후."
결국 모든 마나를 제어하는데 성공 했다. 언제든지 죽을 것 같던 몸에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쓰읍. 아직 몸 내부는 진탕이지만, 더이상 나빠지지는 않았다.
조금만 늦었더라도 생명에 지장이 갔을지도 몰랐다. 다행히 목숨은 건진 것 같다.
이제야 좀 주변을 둘러볼 겨를이 생겼다.
모든 학생과 교수가 일어나서 날 보고있고, 내 바로 앞에는 김영한과 임솔 교수가 서있었다.
"너... 어떻게..."
로브로 몸을 감싸고 있는 임솔 교수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나를 바라보고있다.
얼마나 놀랐는지 후드 밑으로 드러나는 동공은 커져있고 동그랗게 열린 입은 할 말을 찾지못해 뻐끔뻐끔 거리고 있다.
왜 임솔교수가 여기 있지?
임솔교수는 수업이 없을때는 연구실에 박혀있는 설정인데.
어쨌든, 아직 머리가 아프다.
빨리 치료나 해줬으면 좋겠다.
"어... 어..."
"어?"
"어... 어떻게 한거야아ㅡ!!!"
임솔교수가 혼자 웅얼웅얼 거리길래, 한번 맞춰줬더니 갑자기 빼액 소리를 질렀다.
"케흑!"
그러고선 내 멱살을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어떻게! 어떻게 했어ㅡ!"
"커흑, 잠시만요. 제발, 잠시만..."
"임솔 교수님! 놓으세요! 학생 입에서 피가 나오고 있잖아요! 야! 놓으라고!"
다행히 옆에 있던 노교수가 정신을 차리고 내 목을 흔들고 있는 임솔 교수를 말렸다.
쿨럭. 입에 고여있던 피가 쏟아진다. 또 머리가 어질어질 해진다.
"네? 헉! 뭐야! 피?! 빨리 응급실로 보내요! 당신 교수잖아! 뭐하는거야!"
"아니 의료진은 이미 도착했으니 애를 놓으라구요!"
"앗, 알겠어요."
그제서야 임솔 교수는 내 멱살을 놓았다.
'갑자기 왜 지랄이야, 대체...'
임솔.
마법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마법사.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권위를 인정받는 사람이다.
주인공과 큰 접점은 없지만 나사빠진 성격과 행동이 퇴폐미를 발산하는 고양이상의 얼굴과 합쳐져 꽤나 매력있는 캐릭터였다.
'이제 보니 그냥 미친 년이었네.'
약간 맛이 간 캐릭터긴 했지만, 게임에선 그게 매력포인트였는데 현실에서 보니 그냥 미친 년이 따로없다.
지이잉-
역시 게임세계답게 의료진이라고 온 사람들이 손에 빛을 내뿜으며 나한테 갖다대고 있다. 겨우 빛을 맞는걸로 통증이 줄어들다니, 믿기지가 않지만 그게 현실이다.
지금도 고통이 실시간으로 줄고있다.
"와, 진짜 신기하네. 쿨럭쿨럭."
"호연아 괜찮아? 살아있는거 맞지?"
"응, 걱정해줘서 고맙다 야."
김영한이 걱정스럽게 쳐다보며 말을 걸어준다. 그래도 친구가 생기니까 이런게 좋긴 하네.
"이틀 전에 사귄 친구가 죽어버리면 꿈자리가 사나울거같아."
"...."
수준높은 아카데미의 의료진답게 금방 치료가 끝나고 척척 짐을 챙겨서 철수하기 시작했다.
"마력 회로 손상이 심했는데, 모두 치료는 끝났구요. 딱히 일상생활에 지장도 없으실 거에요."
"감사합니다."
아직 누워서 숨을 고르고 있는 나 대신 노교수가 감사를 전한다.
"원인은 아마도 저 마나보조기 같은데... 뭔가 불량품일지도 몰라요. 한번 조사를 해보는게 좋을 것 같아요."
"크흠. 큼..."
의료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색한 헛기침소리가 났고, 그 쪽을 바라보자 임솔 교수가 빨개진 얼굴로 헛기침을 하고 있었다.
"그게, 사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