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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나에게 최면어플을 사용한다-256화 (256/298)

〈 256화 〉 조우

* * *

조우

티켓을 사용하면 사용자가 설정한 장소로 돌아온다.

탑에서 설정한 위치로 돌아온 나는 밤하늘을 보았다. 새벽. 주위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은 하나였다.

도시 외곽.

숲으로 둘러싸인 장소 중앙에는 교회가 하나 있었다.

나는 휴대전화를 켰다. 여러 곳에서 톡이나 문자 따위가 왔다. 나는 급한 것들부터 처리했다.

문자를 보내고 난 뒤에 무언가가 나를 주시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교회 위.

인기척이 느껴졌다. ‘눈’에 보이는 불길한 마력이 있었다.

건물 꼭대기에는 곤충이 보였다. 평소에 보는 곤충이 아니라, 기하학적으로 큰 곤충이.

키는 3m 정도 되는, 갈색의 곤충 껍질을 온몸에 두른 이족보행 형태의 존재.

충익.

‘칠익(七?) 중 하나인 그레고리인가.’

탐욕의 벌레, 요정왕의 직속 수하.

요정왕은 다른 거악들과 다르다.

거악들이 전부 자신의 힘에 대부분을 투자했지만, 오베론은 자기보다는 수하들에게 큰 힘을 하사했다.

그 결과 다른 사도들은 중격이나 상격에 머무는 것에 반해 그들 모두가 최상격에 이른 존재.

나는 혐오를 담은 눈으로 그레고리를 봤다.

그레고리의 모티브가 된 곤충이 바퀴벌레 같은 존재란 것도 있기 때문이다.

본능적인 혐오감.

그레고리가 날개를 펴고, 건물 위에서 내려왔다.

­네가 이시우라는 놈인가?

“그런데.”

말을 하면서 적을 가늠한다.

마수왕 토벌전에서 느꼈던, 이들과 비슷한 존재감이었다.

‘게임과는 달라지지 않았군.’

무예를 익히지 않는듯한 몸짓.

그레고리는 아직은 육체 능력만 뛰어난 존재일 뿐이다.

­왕의 전언이다. 이번 일에 끼어들지 마라.

“이번 일?”

벌써 그걸 하려는 건가. 전대 요정여왕의 복수를.

의아하는 척하면서 나는 곧장 공격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그렇다. 왕께서 정하신 존재를 죽이는 일. 비록 인간의 피는 이었지만, 요정을 아끼는 ‘왕’의 의지로 너를 해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근데 내가 무슨 일인 줄 알고, 끼어든다는 거지?”

­왕께서는 너를 오래전부터 주목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가지 네놈이 갖춘 능력을 알 수 있었지.

“…….”

­왕께서는 네놈이 예지 능력을 갖추고 계신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레고리가 나를 주시했다. 내 표정이나 몸짓에서 사실인지 확인하려는 듯이.

‘……거짓말은 아니군.’

천의 가면으로 감정을 확인한다. 보이는 감정은 호승심과 충성심.

“예지라고? 회귀자일수도 있지 않나?”

­회귀라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군. 회귀자는 존재할 수 없다. 세계의 비밀을 알고 있는 왕께서 하는 말이다.

“하지만 회귀자는 존재하지.”

­……그 놈은 이레귤러다. 원래대로라면 있을 수 없는 가능성에서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이지. 허나 그조차도 마왕은 막지 못했다. 회귀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지.

확실히 회귀자의 능력은 이상했다. 컬렉터의 마나를 한참이나 들이부어도 아직도 그 진척도는 80%를 넘지 않고 있다. 다른 능력은 작성하고 싶다 생각하면 가능했는데.

­그래서 끼어들 것인가?

“끼어든다고 한다면?”

­여기서 죽어야지.

그레고리의 등 뒤에서 여덟 개의, 곤충의 팔이 쫙­하고 펼쳐졌다.

나는 그레고리를 바라봤다. 아직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어리숙해, 정보를 꽤 빨아먹었지만, 뭔가 이상한 것을 눈치챘을 터.

‘죽이자.’

품에 손을 넣었다. 품에서 익숙한 그립감이 느껴졌다.

여명.

그것을 쥐어 잡고, 휘둘렀다. 회색빛의 검신이 번뜩인다.

쿠르르르르릉!

보랏빛의 번개가 검신을 따라 허공을 그었다.

콰득.

그레고리가 열 개의 팔로 일격을 막았다.

­이건……!

힘의 여파.

그것으로 그레고리는 50m 뒤로 물러났다. 팔의 4개는 너덜너덜해졌다.

‘버틴 건가.’

나름 자신이 있는 일격이었는데.

일월.

음의 기운이 몸속에서 들끓었다. 가면을 쓴다. 대해의 마나. 칠색. 어검.

그리고 ■■을 사용했다. 바꾸는 것은 마도황제. 지식열람에서 임나연이 지닌 천영의 꽃을 복사했다.

일월천뢰검

월식­영천뢰폭

하늘마저 얼릴 냉기와 허뢰가 여명을 감싸고, 그것을 휘두르자 번개와 냉기의 폭풍이 생겨났고.

­이건……!

그것이 그레고리의 몸 전체를 뒤엎었다. 폭풍이 한순간 그레고리의 몸 중앙으로 구슬의 모양으로 축소했다.

그 순간.

다른 존재가 난입했다.

이번에는 그레고리보다 두터운 장갑을 하고 있는 충익이었다. 이름은 기억이 안 나는데 방어력이 높은 녀석이었다. 칠익의 직속 부하 중 하나.

입을 비죽였다. 허공에 팔을 뻗었다. 구슬로 변한 형태가 내 의지에 따라 폭발하기 시작했다.

────────────────!!!!

폭발속에서 그레고리를 몸으로 보호하는 충익.

그러면 한 번 더 공격하면 그만이다.

일월천뢰검

월식­영천의 리

냉기와 번개가 폭풍처럼 쏟아지는 곳으로 절대영도의 힘을 검에 담고는 그대로 휘둘렀다.

쩌저저저적──!!

주변의 모든 것들이, 얼어붙기 시작한다. 그 힘의 종착지는 충익들. 충익들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얼어버렸다.

얼음속에서 충인들이 미약한 기척을 내는 것이 느껴졌다.

살릴까 고민했지만, 좋은 선택지는 아니다.

이들을 이대로 두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영천의 리가 가진 냉기는 강하지만, 이것은 영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에 풀려난다면 그 참상은 쉬이 예상이 갔다.

나는 여명을 쥐고, 그대로 검을 내리쳤다.

콰득.

얼음이 산산이 조각나며, 그대로 충인들이 죽었다.

***

칠익 중 하나와 그 직속 부하 하나를 죽이고, 나는 히어로 아카데미로 돌아왔다.

“습격이……있었습니까?”

드물게도.

그란데힐이 굉장히 분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응. 그래도 별거 아니었어. 대충 최상격에서 중급이랑 상격 하나 정도?”

“…….”

그란데힐이 표정 관리를 못 하고 입을 벌렸다.

“역시 내 반려자답군. 그러나 그대…오베론이 그랬다는 건가?”

티타니아가 분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거지?”

“네.”

그레고리는 무슨 사건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 입을 열지 않았지만, 나는 미래의 지식이 있어서 살짝 입을 털었다.

오베론이 지금 미국에서 흉악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큰일이군. 요즘 미국은 사건이 많이 터지는데.”

“사건이요?”

“응. 자신들이 무신의 사도라고 주장하는 마인들이 나타나서 지금 미국이 혼란스럽거든.”

“…….”

나는 침묵했다.

무신이 원영신을 만들기 위한 마지막 재료를 찾기 위해서 미국을 들쑤시는 사건이 있다.

‘그런데 그건 한참 있어야 하는데.’

이것도 변한 걸까, 아니면 먼저 저것부터 모으는 걸까.

전자면 좋지 않다. 원영신을 만든 무신은 정말 말도 안 되게 강하니까.

‘최악의 상황은 그릇과 그 재료를 제외한 모든 재료를 모았나.’

나는 김은정을 떠올렸다.

김은정이 살아있으니, 아직 다 재료를 모은 것은 아닐 터.

“데힐, 이번에 교류전에 혹시 김은정을 데려갈 수 있을까?”

“김은정?”

조금 떨떠름한 표정으로 티타니아가 되물었다.

“김은정 님이라면 문제없습니다.”

그란데힐은 그렇게 말하면서 수첩을 꺼냈다.

“김은정 님은 인형 같은 걸 좋아하십니다. 테디베어를 주문해놓겠습니다.”

과연 같이 가기 위한 선물인가­라고 생각하다가 그란데힐을 봤다. 미동없는 표정으로 조용히 근처 요정족을 불러서 명령하는 그란데힐.

나는 천의 가면으로 그란데힐을 살폈다.

“…….”

거무죽죽한 감정이 그란데힐 몸속에서 생겨났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내가 김은정에게 관심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닙니까?”

“아니었어?”

반문하는 티타니아와 그란데힐. 내 사회적 위치, 이대로 괜찮은 건가.

“그런거 아니야. 거악 중 하나인 무신이 김은정을 노린다는 제보를 받아서.”

“……그렇군.”

티타니아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혁월은 김은정을 죽이고 그녀가 가지고 있는 물품으로 그의 목표를 이룰 거야. 아마도 그가 목표를 이루면, 단순하게 무력만으로 오만한 용과 동급일지도 몰라.”

“……그게 진짜인가?”

“응.”

내 말에 티타니아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삼왕과 이연아. 그 넷이 오만한 용과 붙었는데도, 오만한 용을 죽이지 못했다.

오만한 용의 무력은 그만큼이나 강하다. 아마 나랑 티타니아가 결합해서 세계수의 힘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면 누구 하나쯤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곤란하군. 자칫하면 거악 세 명과 정면으로 붙을 수 있는 건가.”

“그럴 수도 있지.”

오만한 용은 인간이랑 종족 자체를 혐오한다. 벌레의 왕 오베른은 인간과 같은 땅에 사는 것 자체를 끔찍하게 싫어한다.

그에 반해서 혁월은 지독하게 이기적이다. 자신의 무공을 상승시키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광인.

그러나 그 움직임을 방해받는다면, 그도 다른이들과 협력해서 우리를 노릴지도 모른다.

‘최악의 경우, 내가 오베론을 맡고, 이연아가 무신을 맡아도…….’

전력의 공백이 너무 크다.

삼왕이 전부 달려들어도 오만한 용 하나를 죽일 수 없다. 그렇다고 저렇게 전력비를 세워도, 우리에게 지독하게 불리하다. 정수기는 아직 완전히 믿을 수도 없고.

“그럼 교류회를 취소할까요?”

“……아니, 교류회는 필요해. 미국에는 우선 가야 되니까.”

혁월을 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자신이 방해받았다고 생각하면, 그는 즉시 다른 거악과 손을 잡을지도 모르니까.

그렇다면 최대한 빠르게 지금 결전을 준비 중인 오베론을 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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