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1화 〉 결전
* * *
안휘성.
나랑 이연아는 지금 기린이 자신의 위치를 알려준 곳으로 이동하고 있다.
‘중국은 처음인데.’
중국이 크다, 더럽게 크다라는 말을 들었지만, 정말로 컸다. 당장 지금 내가 있는 안휘성만해도 남한보다는 크니까.
“흐음.”
이연아가 한쪽을 돌아보며 옅은 숨을 내쉬었다.
“데이트는 좀 오래 즐기고 싶은데, 시간이 별로 없을 것 같네요. 마수왕이 슬슬 진격할 준비를 하고 있어요. 빨리 내단을 섭취하고 가죠.”
“그렇게 빨리요?”
“네, 아마 한 시간쯤 지나면 엄청 쑥대밭이 되어 있을 걸요.”
“빨리 움직여야 하겠네요.”
그래도 워프 게이트 근처에 기린의 몸체가 있는 위치랑 가까웠다.
“조금 뛸까요?”
이연아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빠르게 강 쪽으로 향했다.
“강 아래에 있다는 건가.”
“네, 아무래도 강쪽으로 가야 할 것 같은데.”
“찾기에는 시간이 없는데다가 근처에 영웅도 없는 것 같으니.”
이연아가 새하얀 손을 뻗었다. 나는 재빨리 이연아를 관찰했다. 하늘을 굽어보는 눈으로 그녀의 몸속에 마나의 흐름을 보았다.
느릿하게.
마치 나에게 보여주겠다는 듯, 이연아는 무언가를 움켜쥐는 것 같은 자세를 만들고는.
일월천뢰검.
천의무봉천령의 인(?).
이연아가 아래로 그었다. 그러자 강이 검으로 가른 듯, 반듯하게 갈라졌다.
“어때요? 좀 멋있어요?”
“네, 멋있네요.”
아부가 아니라 진짜였다. 거기다가 저걸 좀 응용하면 무위의 검도 절삭력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영천의 리를 좀 더 범위를 좁히고 파괴력을 극대화하는 쪽도…….’
“저기에 있네요.”
이연아가 한쪽을 가리켰다. 나도 그곳으로 눈을 돌리니 동굴 같은 곳이 하나 보였다.
“빨리 가죠.”
나는 뇌혼을 끌어올렸다. 번개가 지직거리며 내 속도를 가속했다.
동굴 입구를 지나고, 동굴 안으로 한참을 걸어갔다.
‘깊다.’
동굴은 깊었다. 뇌혼 상태로 빠르게 앞으로 나가고 있음에도, 시간이 좀 걸릴 정도로.
동굴 끝에는 기린의 몸체가 보였다. 회색빛으로 번들거리는 비늘. 그리고 보랏빛의 번개가 이는 듯한 눈동자.
왔구나.
기린이 념으로 나에게 말을 건넸다.
……그리고 동행자도 왔군.
천의 가면으로 조금 탐탁잖은 감정이 느껴졌다.
‘역시 내 자아를 먹어치울 생각이었군.’
그리고 내 육체를 자기 뜻대로 사용했을 것이다.
기린의 눈이 내 육체를 보더니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내 육체를 봤다.
그런데 육체가 상상 이상이군. 마치 무언가를 받아들일 거대한 그릇(大?)과도 같아. 어떻게 가능한 거지? 그럼에도 그 그릇을 꽉 채우고 있는 재능은…….
기린의 눈이 강한 탐욕으로 바뀌었다.
정말 말이 안 되는 군. 어떻게 그 큰 그릇을 채울 수가 있지? 육체 자체도 엄청나지만, 안에 있는 뇌단(?)도 무시무시해. 이 정도면 곧 최상위 격에 도달할 수 있을 거다…….
의아한 눈으로 기린이 내 몸을 훑었다.
“미안한데, 우리가 시간이 없거든. 빨리 내단을 넘기면 좋겠는데.”
이연아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랬지. 먼저 내 내단을 넘기겠다.
파지직!
기린의 몸속에서 회색빛의 번개가 들끓더니, 허공에서 보랏빛의 번개가 뭉치기 시작하더니 이내 그것이 구체의 형태로 만들어졌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건 내단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내단이라기 보다는 내 번개의 정수(?) 같은 느낌이니까.
“정수?”
그렇다. 이건 내가 지금의 세월까지 몰아온 번개를 한없이 응축한 것이지.
나는 하늘을 굽어보는 눈으로 번개의 정수를 바라봤다.
‘……흠.’
나는 나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하늘을 굽어보는 눈으로 정수를 바라보니 알겠다.
‘뇌신보다 더…….’
뇌신을 단전 안에 품은 뒤로, 저만한 번개는 처음 본다. 번개라는 성질을 극한으로 압축한 듯한 느낌.
아마 섭취한다는 행위 그 자체로도 격 자체가 달라질 것이다.
‘가능할까?’
천수로 살펴봤다. 아슬아슬하게 가능한 수준이라고 판단된다.
나는 뇌단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뇌단이 번쩍!하면서 강렬한 빛을 뿜어냈다.
자색의 번개가 뻗은 손을 따라 내 몸으로 흡수되었다. 파직파직. 번개가 내 몸속을 헤집기 시작했다.
이건……?
직후, 기린이 무언가 이상을 감지했는지,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어딜 도망가려고?”
조금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것에 신경 쓰지 않고, 내면에 집중했다.
이연아라면 문제없이 해결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녀가 배신한다고 해도, 옛날에 배신했지.’
그녀를 믿는 것은 이러한 믿음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기린이 내어 준 정수에 집중했다.
***
“귀찮게 하네.”
이연아는 중간부터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무언가 하려는 기린을 제압했다.
강대한 영성이 느껴지지만, 이미 죽어가는 몸. 큰 수고는 없었다. 마수왕과 싸우기 전에 몸풀이로도 조금 부족한 수준.
‘정수는 어떻게 돼가는 걸까.’
이연아는 묘한 눈으로 이시우를 바라봤다.
이시우가 보랏빛의 번개가 깃든 눈으로 정수를 바라보고 있다.
‘제법…….’
자색의 번개가 튀어 올랐다. 보랏빛의 번개와 회색빛의 번개가 뒤엉키면서 이윽고 하나가 되기 시작했다.
이연아는 문득 아련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부터 있을 싸움은 그녀로서도 생존을 장담하기 힘들었으니까.
이연아는 강하다.
그냥 강한 수준이 아니라 사람 중에서 순서를 매기자면 가장 먼저 있을 수준이다.
마수왕은 강하지만 이연아 손으로 어떻게든 할 수 있는 수준이다.
삼왕이 전부 덤벼도 승산을 장담할 수 없는 무신이라도 그녀는 승산을 장담할 수 있다.
무신이 약한게 아니라 무신과 그녀의 상성이 너무 좋아서 그런 거다.
‘하지만.’
상대는 마수왕 뿐만이 아니다. 이시우가 가르쳐 준 정보에 따르면, 그랬다.
번쩍!
회색빛을 띤 자하빛이 이시우의 눈에서 번뜩였다.
이연아는 미소를 지으면서 이시우를 바라봤다.
“다 흡수하셨나 봐요?”
“아뇨, 아직은요. 생각보다 훨씬 더 좋아서 다 흡수하지 못하고 몸에 기운을 일부 나눴어요. 그래도 곧 흡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제 진짜 조금만 경험이 있으면 최상격에도 드시겠는데요? 이거 인류 역사를 뒤져봐도 없을 수준인데.”
이시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폈다.
파지직!
손에서 번개가 솟았다. 손에서 핀 번개가 동굴 윗 천장을 강타했다. 콰쾅!
“……이건 바로 실전에서 쓸 수 없겠네.”
“아직 다루기 좀 힘든 건가요?”
“예, 그래도 위력은 강하니까.”
이시우가 손을 앞으로 뻗었다. 회색빛을 띠는 자주빛의 번개가 파지직!거리며 창 형태로 쏘아졌다.
콰콰쾅!
번개가 동굴 쪽을 가로지르면서 동굴의 내부를 폭파시켰다.
그 장면을 보며 이시우는 웃었다.
‘강해졌다.’
번개 자체의 위력이 강해졌다. 다만, 위력이 강해져서 몸에 부담이 좀 가고 제어가 잘 안되는 단점이 있지만.
‘항상 그랬으니까.’
그래도 슬슬 유아독존 말고 버틸 수 있는 능력 하나가 필요할것 같기는 하다.
만족스럽게 미소짓는 이시우를 보며 이연아는 조금 아련한 기분이 들었다.
이시우는 점점 강해질 것이다. 최상격을 넘어 얼마 가지 않아서 초월경에 도달할 것이다.
그리고 온갖 능력들을 사용하면서 이윽고 마왕을 퇴치할 것이다.
이연아는 그 미래를 알고 있다.
하지만.
이연아는 다만 아쉬웠다.
‘이게 마지막이니까.’
그때의 이시우는 자신이 볼 수 없다는 서글픔이었다.
나를 위해서 죽어줘.
이시우의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자신을 위해서 죽어달라는 그 말.
그래도 이연아는,
이시우의 말이라서, 이연아라는 사람은 그를 위해서 웃으면서 죽을 수 있었으니까.
***
“남펴어어언!”
굉장히 익숙한 목소리가 울렸다. 고개를 돌리니 금발을 흩날리며 나에게 달려오는 윤채린이 보였다. 그 뒤에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는 윤승하가 보였고.
“누가 네 남편이야.”
“당연히 내 남편이지.”
윤승하와 윤채린이 투닥거리는 것을 보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가 나는 놀랐다. 윤승하하고 윤채린이 정말 강해져 있어서.
'이 정도면 상격에 든 것 같은데?'
아니더라도 상격과 싸우면 시간을 엄청나게 벌어줄 수 있을 거다.
‘그러고 보니.’
가면의 마수를 잡으면서 나온 풍유환도 줘야 하는데. 가면의 마수가 준 임팩트가 너무 커서 줘야 할 타이밍을 놓쳤다.
“헐, 뭐야! 얼굴이 왜 반쪽이 됐어!?”
“호들갑 좀 떨지…뭐야, 진짜 왜 이렇게 됐어? 굶은 거야? 누가 이렇게 만들었어?”
윤승하와 윤채린이 내 얼굴을 보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그렇게 호들갑 떨 것 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아무래도 티타니아에게 빨린 영향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 같다.
“아, 맞다.”
나는 요정왕의 장막에서 물건 하나를 꺼냈다.
일전에 나태의 산양을 잡았을 때, 공허족의 왕인 에니스가 준 공상의 구슬을.
“……이건?”
“공허족의 왕인 에니스 님이 준 물건이에요. 아마, 한 번 정도는 이연아 님의 목숨을 구해줄 거에요.”
그동안 고민했다. 이걸 어떻게 써야 가장 잘 쓸지. 그러나 지금은 이게 맞는 것 같다. 이연아가 마수왕에게 진다는 상상은 잘 가지는 않지만, 세상일이란 것은 잘 모르니.
‘이번 전쟁은 마수왕으로 안 끝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마수왕은 강하다.
그렇지만 이연아가 나서면 해결이 된다. 그러나 문제는 마수왕이 인간들을 혐오하는 데에 기인한다.
어쩌면, 다른 거악이 참전할지도 모른다. 용들을 증오하는, 단일 개체로는 가장 강하다고 평가받는 묵시록의 붉은 용인 오만의 용.
혹은 폭식의 벌레인 요정왕 오베른도 참전 가능성이 있다.
정숙한 처녀인 서큐버스 여왕은 괜찮다. 그곳은 따로 조치해놨으니까.
“그럼 슬슬 출발할까?”
“오케이. 새롭게 달라진 천마의 힘을 보여주지.”
윤채린이 자신만만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하고.
“빨리 가자. 그러고 보니 이렇게 싸우는 건 또 오랜만이네.”
윤승하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승하야, 이거.”
“응? 뭐야, 이거? 선물이야?”
내가 구슬을 건네자 윤승하가 환하게 웃었다.
“선물, 풍유환이란 건데 먹으면 가슴이 커진 데.”
“……진짜?”
내 말에 윤승하가 눈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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