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9화 〉 상승
* * *
[혹시 입구에서 마주쳤던 인물 때문에 걱정이신가요?]
문자가 왔다.
나는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그거라면 걱정 안 하셔도 되요~왜냐하면 아직은 제가 이기거든요. 아차, 그리고 동전은 제가 샀어요.]
묘한 말투다.
차분하게 문자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직은이라. 하긴, 혁월이 대업을 이루어 원영신을 이룬 상태는 진짜 강하기는 하다.
그 상태의 혁월은 손짓으로 산맥을 지우니까.
하아.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핸드폰을 바라봤다.
혁월을 이길 수 있는 존재는 현재 인간 중에서 한 명이다.
멸망의 용사, 이연아.
세계를 멸망시키고, 지구로 귀환한 용사. 나는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이연아는 도대체 뭘까.
핸드폰 번호를 알 수는 있다. 그러나 혁월의 대한 정체를 알고, 나에 대해서 아는 듯한 눈치였다.
혹시.
나는 팔짱을 끼고 생각했다. 순간적인 상상이 머릿속을 꿰었다. 이연아, 얘도 나처럼 게임 속으로 떨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난 이레귤러인데?’
이건 아니다. 나는 이레귤러다. 갑작스레 게임 속 세계로 빠진 이레귤러.
머리가 복잡했다. 기분도 별로였고.
“다음 물건은…….”
사회자가 보랏빛의 물약을 들어 올렸다.
삑.
나는 손을 올려서 물건을 입찰했다.
***
“후우.”
가볍게 호흡했다.
이시우는 훈련장에서 몸을 풀었다. 얼마 전에 삼왕에게서 받은 영약 중 하나를 소화하기 위해서이다.
혹시 몰라서 그란데힐에게 부탁했다.
만약 내가 문자를 보내지 않으면, 내가 수련하는 것이거나 영약을 흡수 중이니 어지간하면 양해를 구해달라고.
‘준비는 거의 끝났어.’
처리해야 될 것은 거의 끝났다.
송라희를 도와주기로 한 것은 일단 김하린에게 떠맡겼다. 물론 내가 깨어나면 내가 해야 하지만, 혹시 몰라서 일단 부탁해뒀다. 시간이 늦으면 곤란하니까. 이시우는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남은것은 하나.
뇌신(?)을 만드는 것이다.
“비염.”
[오케이. 누가 오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공격하면 되는 거지?]
“……그 정도는 아니고.”
호위로 비염을 소환하고, 이시우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가부좌의 자세.
그리고 호흡한다. 특성을 발동했다. 천수. 이시우의 손이 팔뚝까지 시꺼멓게 물들었다. 천수의 재주는 손재주에 그치지 않는다. 마나에 대한 모든 것에 전반적인 재주를 크게 올려준다.
그리고 마나를 끌어 올렸다. 파직!
번개의 마나가 몸속을 유영한다.
파지직!
번개가 튄다. 마지막 남은 뇌령이 발버둥치고 있다. 이시우는 마나를 공급했다. 가장 큰 뇌령이 뇌광이 섞인 자색의 마나를 받아먹고 뇌령을 노리기 시작했다.
우웅!
근육이 번개에 의해서 덜덜 떨렸다. 전신세맥에 번개가 내달린다. 강제적으로 뇌혼의 상태에 돌입했다.
파지지직!
번개가 몸을 짓이긴다. 으득고통에 이시우는 이를 물었다. 동시에 머리 위에 검은색의 왕관이 등장했다. 유아독존. 고통 속에서도 마나의 통제를 잃지 않기 위해서, 유아독존을 꺼냈다.
우웅!
몸을 한껏 부풀린 뇌령이 작은 뇌령을 잡았다. 붙잡힌 뇌령이 도망치려고 발버둥치며, 뇌광을 뿜었다.
뇌령의 크기가 작아진다. 뇌령의 마나를 먹고 큰, 커다란 뇌령이 커진다. 마치 고독에 남은 마지막 벌레가 가장 진한 독을 품듯이, 커다란 뇌령에 묵직한 힘이 맴돌기 시작한다.
그리고 신(?)이 깃든다.
뇌령신공의 처음이자 끝이다.
몸속의 뇌령을 하나둘 만들고, 그다음에 하나의 뇌령이 모든 것을 잡아먹는다. 그렇기에 뇌령신공은 일종의 그릇을 만든다고 표현한다. 번개의 신이 깃들기 위한 그릇을 만들고, 그것을 휘두른다. 그것이 바로 뇌령신공.
파지지직!
보랏빛의 번개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러나 아까와는 달리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다.
이시우는 가볍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번개가 몸속으로 들어왔다. 파지직! 번개의 마나가 몸속으로 완전히 갈무리 되었다.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시우는 고개를 돌렸다. 벽 한쪽에 있는 시계를 바라봤다. 오전 3시. 시간이 벌써 3시간이나 지나갔다.
‘유아독존은 멀쩡해.’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갔다.
하지만 그게 내가 멈출 이유는 되지 않는다. 이시우는 아공간에서 영약 하나를 꺼냈다.
초록빛으로 빛나는 구슬이 나왔다.
세계수의 정기.
복용 시, 체력을 향상하며 대지의 활기라는 능력을 얻는다. 땅에 내딛는 것으로 활력을 급속히 회복시켜주며, 마력도 회복시켜 준다.
‘하지만 진짜 효능은 큰 그릇이지.’
탑을 쌓기 위해서는 그 토대를 완벽하게 다져야 한다. 내 능력은 극단적으로 쏠려 있다. 번개의 속도를 이용한 극한의 공격력.
몸에 과부하를 주고, 단기 결전으로 강한 공격을 연달아서 공격한다.
세계수의 정기 같은, 체력이라는 기둥을 크고 단단하게 쌓아두는 영약은 나로서 환영이다.
왜냐하면 땅이 단단해지면 그만큼 더 몸에 부하를 줘도 몸이 받쳐주기 때문이다.
즉, 더 무리할 수 있다는 거다.
이시우는 초록빛의 구슬을 입에 넣었다.
화아악!
순간 생명력이 몸속에서 솟구쳤다.
‘이거 생각보다……!’
활력이 몸속을 솟구쳤다. 생명력에 뇌신이 반응했다. 뇌신이 존재감을 드러내며 생명력을 먹었다.
[…….]
비염은 그 광경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뇌신. 뇌령신공에 대한 기본 골자는 알고 있다. 이시우가 직접 설명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저건.’
저건 이상하다.
뇌령. 번개의 정령. 저것은 번개의 정령이지만, 정령이 아니다. 자의식이 깃들지 않는, 그저 번개의 원소가 이리저리 뭉쳐진 것이다.
평소에는 주인이 하라는 대로, 주인이 시킨 대로 반응할 뿐.
그렇지만 주인이 위험할 때, 주인을 강제적인 뇌혼의 상태로 돌입하게 한다. 어느 순간부터 번개 덩어리들이 자의식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거다
속으로 상처를 받을까 봐 일부로 이시우에게 말하지 않았지만……저것은 이미 하나의 정령이다.
‘그리고.’
비염은 뇌신을 바라보았다. 이시우가 강제적으로 만든 정령. 아니, 저걸 정령이라고 할 수 있을까.
비염은 이시우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정령왕의 적합한 혈통이다.
아마 이대로 500년 정도 인간계에서 뛰어난 정령사를 만난다면 정령왕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자질을 타고났다.
정령왕들을 가까이서 봐왔기에 비염은 알 수 있다.
‘저건 정령왕이야.’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정령왕.
그것이 이시우의 몸속에 똬리를 틀었다. 저건 조만간 ‘눈’을 뜰 거다. 비염은 고민했다. 정령의 성향은 제멋대로다.
그러나 보통은 계약자에게 호의를 가진다. 하지만 이시우와 번개의 정령왕이 계약의 관계를 맺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웅!
비염의 상념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세계수의 힘이 이시우의 몸에 깃든다. 이시우는 생각보다 힘겨워하고 있었다.
이시우나 비염은 모르지만, 이것은 이시우가 요정왕의 시련을 통과하였기 때문이다.
요정왕의 문장.
그것은 이시우에게 하늘을 굽어보는 눈을 주었고, 불가해한 감각을 주었다.
이시우는 그저 기연이라고만 생각했지만, 그것은 요정왕이 되기 위한 과정이다. 요정왕은 요정여왕의 반려이자, 세계수의 반려.
그것이 세계수의 힘에 반응했다.
세계수가 문장에 호응했다. 원래 있어야 할 힘에 세계수의 힘이 더해졌다.
‘어쩔 수 없네.’
비염은 이시우의 몸에 손을 대었다. 그러자 세계수의 생명력이 비염에게 전해진다.
원래대로라면 비염은 이럴 생각은 없었다. 세계수의 정기는 비염으로서도 탐나지만, 세계수의 정기를 머금은 이시우의 마나가 더 맛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이상했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세계수의 정기가 이시우의 예상보다 훨씬 강했기 때문이다.
비염은 그 초과치를 받아먹는다.
우웅!
뇌신이 몸을 틀었다. 번개가 비염에게 쏟아졌다.
[아니, 이 미친놈이?]
순간적으로 공격하려는 줄 알고 몸을 빼려다가 비염은 그게 아님을 깨달았다. 뇌신이 자신에게 번개의 기운을 넘기고 있었다.
그제서야 비염은 깨달았다.
뇌신도 한계까지 이시우의 부담을 지우고 있던 것임을.
이시우의 몸에 부담되는 생명력을 한계까지 먹어치우고, 그것을 비염에게 준다. 비염은 그것을 먹고 성장한다.
선순환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끼이익─.
이시우의 귀에 문이 열리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
나는 눈을 떴다.
주위는 어둑했다.
‘밤인가?’
나는 몸을 일으키고는 당황했다. 몸이 가볍다. 뭐라고 해야 되지. 육체를 한 꺼풀 벗어던지고 영혼만 있다고 해야 되나.
몸의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우선 몸을 관조했다. 몸속에 묵직한 존재감을 뿜어내는 것이 확인되었다.
뇌신.
그런데 뇌신의 상태가 이상했다. 아까 전보다 훨씬 커다랗게 변한 것 같은 모습이라서.
세계수의 정기를 어느 정도 나눠 먹었다고 해도 이 정도는 아닐 텐데.
“비염?”
비염을 불러봤지만, 대답이 없다. 아마도 세계수의 정기를 상상 이상으로 먹어서 정령계에서 잠을 자는 것 같은데. 어렴풋하게 기억이 난다.
세계수의 정기를 먹었는데 생명력이 내 예상보다 훨씬 쏟아져 나와서 당황했던 기억이.
나는 기지개를 켜며 지식열람으로 상태창을 켰다.
상태창.
▼
이름 : 이시우
근력 : 30
민첩 : 40
체력 : 37
마력 : 30
고유능력 : 유아독존
특성 : 지식열람(S+), 천수(S+), 천의 가면(S), 하늘을 굽어보는 눈(S), 불가해한 감각(S), 오버로드(S), 태극지체(S), 변강쇠(A+)
“오.”
나는 나지막이 감탄했다. 민첩이 10 이상 올라갔다. 뇌신을 얻음으로써 나는 상시로 뇌혼을 킬 수 있는 상태니까 이건 예상했다.
그런데 음양체가 태극지체로 진화한것은 꽤 큰 수확인데.
파직.
손을 펴자, 손에서 번개가 파직거렸다. 보랏빛의 번개가.
“……?”
파지지직!
몸속의 번개를 방출했다. 보랏빛의 번개가 사방으로 날뛰었다. 단지 번개를 방출하는 행위지만, 그것은 내가 쓰던 마법들과 비교될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상태에서 마법으로 정제하면 상상 이상의 파괴력을 가지겠군.
……이 아니라.
왜 마력의 색이 바뀌지 않은 거지?
머릿속에 여러가지 가설들을 세우다가 나는 문득 내가 옷을 아무것도 안 걸치고 있단 걸 떠올렸다.
아니, 정확하게는 입고 있었다. 다만 감촉이 느껴지지 않아서 그랬을 뿐. 불가해한 감각으로 살피니 확연하게 느껴졌다.
초록빛의 잎사귀가 그려진, 하얀색의 로브가 내 몸에 걸쳐져 있었다.
“…….”
나는 이 의복을 안다.
요정의 왕, 오베론. 그가 입던 옷이다.
가장 추악한 벌레인 오베론을 물리치면 한가지 회상씬이 나온다. 그것은 오베론이 마에 타락하기 직전에 전(?) 요정여왕과 함께 사과나무 아래에서 다정하게 있을 때. 그 회상씬에서 오베론이 입고 있었던 로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로브는 다르게 말하자면 요정왕만이 입을 수 있는 로브라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왜 이걸 입고 있는 거지?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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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왕의 장막
세계수에게 선택된 요정왕만이 사용할 수 있는 로브.
스킬, 수복, 변형, 강화, 아공간외 보조 마법 5종 내장.
스킬, 꿈꾸는 요정의 화원 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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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눈을 한번 깜빡였다.
내가 왜 요정왕이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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