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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나에게 최면어플을 사용한다-178화 (178/298)

〈 178화 〉 마켓(2)

* * *

우리는 마켓에 들어왔다.

다른 멤버들도 왔다. 한껏 힘을 준 장신구에 백금의 용이 새겨진, 검은색 치파오를 입은 샤오메이와 타오 리.

“다들 가면을 먼저 써 주세요.”

“가면이요?”

사나에가 물었다.

“네. 마켓은 마인들도 오는 곳이라, 자칫하면 시비가 걸릴 수 있거든요.”

“아하.”

사나에는 그렇게 말하면서 아공간에서 여우 가면을 썼다.

“상격의 영웅은 가면을 구비하는구나.”

타오 리가 감탄하듯 말했다. 그러자 아키의 얼굴이 붉어졌다. 사나에는 그게 아니라, 그냥 멋있어서 들고 다니는 것 같던데.

나도 천의 가면으로 가면을 작성했다. 아무런 효능이 없는 가면을 실체화한다. 무면(無?)의 가면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뭐야, 그것도 능력인가?”

“어. 아무런 효과가 없는 그냥 가면인데, 만들어 줄까?”

“그럼 좋지.”

나는 타오 리의 가면도 만들어 줬다. 샤오메이도 나에게 가면을 받아갔고, 윤승하도 나에게 받아갔다. 아키도 받아갔고, 사나에도.

“나, 나도 바, 받고 싶어서. 기, 기념품 같은 느낌으로.”

“…….”

가면을 만들어 줬다.

“저도 가능할까요?”

“물론이죠.”

이연아가 웃으면서 내게 물었다. 나는 찝찝함을 감추며 웃으면서 가면을 작성해 줬다.

“재밌네요.”

이연아가 재밌다는 듯 웃으며 내 가면을 받았다. 찝찝한 말투다. 가면을 만드는 내 능력보다는 그 진체를 알고 있는듯한 느낌이었다.

“그럼 갈까요?”

우리는 마켓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건장한 차림세의 남성과 여성 두 명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각각 검은색의 치타 가면을 쓰고 있었다.

“초대장을 확인하겠습니다.”

“여기요.”

샤오메이가 검은색 초대장을 다섯 장 내밀었다.

“여기도요~.”

이연아가 싱글벙글 웃으며 초대장 두 장을 건넸다. 남성과 여성은 초대장을 받고는, 검은색의 스캔 같은 것으로 초대장을 확인했다.

“확인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딸깍.

검은색의 문이 절로 열리면서 안에 푸른색의 포탈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곳으로 가시면 됩니다.”

나는 안내를 받으며 생각했다.

준비한 총알은 꽤 있지만, 오늘 경쟁은 꽤 과열될 것이다. 나중에 김호동에 물어서 얻은 정보에 따르면 그 물건이 경매에 나올 테니까.

­마켓에 물품? 잠시만 기다려줘. 이번에 물품이……어, 이거 진짜야? 오색향취가 나온다는데?

오색향취.

은수아가 가진 칠색의 하위호환이다. 오색빛의 힘을 다루는 것까지는 같으나, 칠색이 개념을 다룬다면 오색은 화, 수, 풍, 지, 목이라는 속성을 다루니까.

‘하지만 특성이지.’

고유능력인 칠색에 비할 바는 아니나, 오색향취 역시 특수한 영약이나 다름이 없다. 특성을 올려주고 능력치를 올려 다 주는 영약.

등급으로 따지자면 전쟁이 나도 이상할게 없는 A등급의 영약이다.

마켓에서도 어지간하면 보안을 철저히 하겠지만, A등급의 영약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경쟁을 과열시키기 위해서, A등급의 영약이 이번에 출품된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겠지.

오색향취는 없어도 된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원하는 물건을 얻지 못하면 속이 좀 쓰릴 것 같다.

***

“이제부터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포탈을 넘으니 이번엔 하얀색의 토끼 탈을 쓴 여성 안내인이 일행을 안내했다.

윤승하는 자신의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가면에 가려져 있지만, 윤승하는 이연아가 싱글거리며 웃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게 웃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이연아는 대부분 무표정했다. 자신이나 윤채린이 무엇인가를 했을 때, 채찍을 쥐여주며 보상으로 무언가를 줄지언정, 웃음을 보이지 않았다.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 그녀가 웃었던 적은 한 손으로 꼽는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물었을 때.

­아버지? 아버지는 말이야, 엄청 잘 생기셨어.

­아버지는 안 계신단다. ‘지금’은 말이야.

이연아는 항상 두루뭉술하게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흘렸다. 그러면서도 아버지에 대해 생각을 하며 줄곧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는 항상 의문이었다.

윤승하는 자신과 어머니의 무력을 비교해 보았다. 아마 자신과 윤채린이 수백 명이 있어도 웃으면서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머니에 대한 정보는 어디에도 없다. 마치 무언가에 의해 삭제되었거나, 혹은 어머니라는 존재가 이 세계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다 왔습니다.”

안내인이 문을 열며 허리를 굽히며 인사했다. 그러자 이시우가 묘한 눈길로 토끼 탈을 쓴 안내인을 바라보았다.

“부디 좋은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일행은 문을 통과하자 거대한 공동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미 가지각색의 화려한 옷차림과 가면을 쓴 이들이 넘쳐났다. 그 수는 무려 1,000여 명 가까히 있다.

“아까 토끼 탈을 쓴 여성이 취향이야?”

“네?”

“묘한 눈으로 봐서.”

이연아가 살랑거리며 말했다. 교태로운 몸짓.

이시우는 잠깐 묘한 눈으로 이연아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뇨. 눈에 익은 사람이 있어서요.”

“눈에 익은 사람?”

이연아는 고개를 돌려 토끼 탈을 바라보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해 보였다. 무력은 범상치 않기는 했다. 중격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다. 하지만 마인도 아니고, 굳이 이시우가 신경 쓸 정도는 아닐 텐데.

“그럼 아쉽게도 이만 헤어져야겠네요. 저희 자리는 반대쪽이라.”

샤오메이가 아쉬운 말투로 말했다. 그러나 가면 너머의 눈은 그러지 않았다. 경계 어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이연아는 옅게 웃으며, 윤승하의 손을 잡고 배정된 자석으로 향했다.

“저희 좌석이 51번이네요?”

“네. 50번은 안타깝게도, 구하기가 어려워서요.”

이시우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샤오메이를 바라봤다. 50위권도 얻기 되게 어려울 텐데.

앞으로 향하니 공간이 일렁거리는 것이 보였다. 100번대 좌석 아래는 모두 특별한 좌석들이다. 사회적으로도, 무력적으로도 누구나 인정하는 이들만 앉을 수 있는 곳.

그런 만큼 좌석도 특별하다.

특별해 봤자, 그냥 방 하나가 있고, 그곳에 음식이나 술을 약간 즐길 수 있는 정도지만.

20평 남짓한 공간.

그곳에는 유리판이 하나 있었다.

“샤오메이는 이곳에서 뭐 사실 것 있으신가요?”

“으음. 전 역시 오색향취일까요? A급 영약은 부르는 게 값이라, 출혈이 좀 예상되지만, 그만큼 좋으니까요.”

샤오메이가 그러면서 타오를 바라보았다. 타오에게 먹일 생각인가. 나쁘지 않다.

이시우는 옆을 잠깐 바라보았다. 옆에서 사나에가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사나에 누나는 뭐 사고 싶은 거 있으세요?”

“누, 누나?”

“네. 님이라고 하기는 너무 거리가 먼 것 같아서요. 혹시 싫으세요?”

“아, 아니야. 좋, 좋지. 그, 그럼 나도 시우라고 불러도 될까?”

“네, 마음대로 하세요.”

이시우는 그렇게 말하며 포도를 하나 입에 넣었다.

그러자 유리창에 검은색의 연미복을 입고, 얼굴의 반을 가리는 가면을 쓴 남자가 나타났다.

“저희 블랙 마켓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자가 꾸벅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제 곧, 저희 블랙 마켓에서 경매를 시작합니다. 이번에는 양질의 물품들이 가득합니다. 그리고 오늘! 저희가 특별하게 구한 영약도 존재합니다. 부디 여러분들 모두 원하시는 물건을 가져가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하겠습니다! 그럼 바로 경매를 시작하지요!”

경매가 시작되었다.

그 뒤에 진귀한 물품들이 나왔다. 값비싼 약초들이나 마법물품. 그리고 실전됐다고 알려진 어떤 유파의 무공서까지.

삑.

“사시게요?”

“네, 꽤 좋아보여서요.”

이시우는 웃으면서 경매에 참가했다. 실전되었다고 알려진 어떤 유파의 무공서는 큰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냥저냥한 창술이지만, 저 창술의 진짜 가치는 마족, 그것도 어떤 종족에 대해서 절대적인 상성을 지닌다.

가격은 1억 5천만 원.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이 물건은……소재가 파악되지 않는 물품입니다. 감정사들이 감정해도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물품이지요.”

말이 길었다.

이시우는 턱을 괴고 연미복을 입은 남성을 바라보다가 멈칫했다.

저게 왜 여기에 있지?

“다만, 이 동전은 정말 특이합니다. 어떤 공격에서든 부러지거나 찌그러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삼대속성으로 유명한 공간과 시간조차도 이 동전에 어떤 흠짓도 낼 수 없었습니다.”

당연하지. 저게 어떤 물건인데.

이시우는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혁월, 그가 왜 왔는지 알 것 같았다.

만약 정보를 얻었다면, 이시우는 무슨 수단을 써서도 사방에서 돈을 빌렸을 거다.

아니면 그란데힐과 여왕에게 부탁해서 엄청난 돈을 끌어오던가.

“이 가격은 1억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삑.

이시우가 경매에 참여하기 전에 빨간불이 울렸다. 누군가 입찰했다는 뜻이다.

삑.

동시에 다른 누군가가 입찰했다. 전광판에 2억 원이라고 쓰여 있었다.

삑.

10억 원. 가격이 올랐다. 그러자 삑.하고 울리며 30억이란 숫자가 써졌다.

삑.삑.삑.

소리가 연속해서 울린다. 100억은 이미 한참 넘은 지 오래였다. 이시우는 본능적으로 누가 경쟁에 참여했는지 알았다.

한 명은 회귀자로 유명한 신유진의 동료, 혁월. 그리고 다른 한명은 멸망의 용사, 이연아. 둘 다 돈이라면 아쉬울 것 없는 인물들이다.

“저깟 동전이 뭐길래, 저렇게 값이 올라? 혹시 이시우, 넌 아나?”

타오가 물었다. 이시우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건 저깟 물건이라고 저평가 당할 것이 아니다. 저건 굉장히 중요한 물건이다.

콜렉터.

신유진이 갖춘 능력이다. 하나의 세계를 만들고, 그 세계에 여러 가지 것들을 수집하는 능력.

그리고 저 동전은 신유진이 가진 세계에 들어가는 일종의 열쇠 역할을 가진 물건이다.

저 동전을 제대로 쓰려면 컬렉터의 능력이 필요하다.

혁월이 경계하는 것은 바로 컬렉터의 등장일 거다. 신유진은 마왕을 경계하며 그를 위한 유산을 남겨두었으니까.

컬렉터의 능력을 갖춘 이가 등장하여 저 동전을 손에 넣는다면 혁월은 강제적으로 세계에 편입될 테니까.

삑.

숫자가 계속해서 올라갔다. 백억 단위를 넘어서 그 단위는 벌써 천억을 향하려고 하고 있었다.

“……저게 도대체 뭐길래.”

다들 입을 벌리며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이시우는 허탈하게 웃었다.

컬렉터의 가면은 1년 이내에 완성되는데, 하필…하필 저 동전이 지금 나타나다니.

“어, 엄청난 일이 벌어졌습니다! 동전의 경매가는 무려 1,000억, 1000억 원이 너, 넘었습니다!”

사회자가 말을 떨며 말했다.

그리고 7,750억.

동전은 정말 터무니없는 숫자에 팔려버렸다.

이시우는 냉정하게 생각했다. 혁월이나 이연아. 둘 중 하나가 샀음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동전은 누가 샀을까?

혁월의 성격은 안다. 아마 혁월이라면 단순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동전을 가로챈 녀석을 죽이겠다고.

혁월에게는 그런 무력이 존재한다. 마켓에는 여러 명의 영웅들이나 마인이 있지만, 그건 전부 어중이떠중이들이다. 수백 명이 아니라 수천 명이 모여도 혁월을 막을 수 없다.

이연아가 정당하게 경매를 통해서 얻은 동전이지만, 혁월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만약 이연아가 사면 어떻게 될까.

이것도 좋은것은 아니다. 최악은 아니지만, 차악이라고 생각된다.

이연아의 성격은 모르지만, 자신의 신념 때문에 세계를 멸망시킨 여인이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

‘그리고 그 둘이 싸운다면.’

여긴 통째로 무너진다. 아니, 무너질 뿐일까? 마켓이 위치한 곳은 그리스 쪽이다.

차라리 한국이라면 에니스랑 티타니아가 바로 와서 도와주겠지만, 이곳에서 전투가 벌어지면 생존의 가능성이 한없이 0으로 떨어진다.

이시우는 차분하게, 도망칠 준비를 시작했다.

***

“아쉽군.”

돈이 부족했다. 혁월은 의자에 기대며 차분하게 생각했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컬렉터의 힘을 가진 능력자가 나타날 리 없다. 아니, 나타난다 해도 상관없다. 지금이라면 그는 주박에서도 벗어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것을 앎에도 불안했다.

그래서 동전이 경매장에 나온다는 소식에 돈을 최대한 준비했다. 그리고 혹시라도 자신이 입찰하지 못하면 동전을 부수거나 그 자를 습격해서 강제로 취할 생각이었는데.

“흐음.”

입구에서 만난 여인과 자신의 무력을 비교한다. 능력 자체는 자신이 위일 거다. 그러나 여인이 가진 능력이 너무 불명하다.

그리고 상성도 좋지 않다.

거기다가 뇌신의 그릇도 있고.

툭. 툭.

그는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들겼다. 부술까, 말까. 부술까, 말까.

혁월의 곁을 지닌 마인은 혁월이 탁자를 두들길 때마다 불길했다.

자신도 마인이면서 난폭한 성정을 가지고 있지만, 저자와는 비교가 불허하다. 아마 지금쯤이면 경매장을 부술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더 무서운 건 그가그런 무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툭.

손가락이 멈췄다. 혁월은 결정했다.

“가지.”

동전이 다른 이에게 넘어갔다면 여기서 더 머물 이유는 없다. 혁월은 등을 돌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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