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 마인(2)
* * *
수업이 끝나고 송라희가 나를 호출했다. 나만 호출한 게 아니라 임나연과 한종우, 은수아, 윤채린과 윤승하도 같이 불려왔다.
"무슨 일로 우릴 불렀지? 난 요즘 사고 친 거 없는데."
"어제 양아치 한 명 잡아서 겁준 거는? 걔 바지에 오줌 지리고 입에 거품 물었던데."
"아니, 그건 내가 사고 친 게 아니지. 내가 걔가 사고 칠 일을 먼저 예방했으니 사고 친 게 아니지 않을까? 나는 오히려 학교 평화의 기여를 했다고 생각해."
윤채린이 당당하게 가슴을 펴며 이상한 말을 했다. 말은 말인데 개소리가 들어가 있었다. 대체 뭔 논리야.
"고운 말 좀 써. 생각이란 것도 좀 하고."
"동생 주제에 어디서 훈계질이야."
윤채린하고 윤승하가 아옹다옹했다. 옆에서 강한남이 그 모습을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그러고 보니 강한남은 학기 초에 윤채린에게 대시를 했다가 엄청난 경험을 겪은 적이 있다.
'주먹 한 방에 하늘로 날아가는 경험은 흔치 않지.'
강한자 교수가 멍한 표정을 하다가 강한남이 떨어지기 직전에 받아 준 기억은 아직도 선명했다. 그리고 이후의 이어진 윤채린의 파격적인 선언도.
난 나보다 약한 녀석의 말은 듣지 않아.
물론 기절까지 했던 강한남은 듣지 못했다.
근데 쟤는 또 왜 여깄대.
"그런데 한남이는 왜 따라오는 거야?"
나만 궁금한 게 아니었는지 임나연이 물어봤다. 은수아와 한종우도 강한남을 바라보았다. 윤채린과 윤승하는 관심 없단 표정으로 있었다.
"난 가는 길이 같아서……."
강한남이 말끝을 흐렸다. 강한남의 말에 임나연이 기억이 난 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 부실'로 가는 길과 같구나."
"그 부실?"
"남자들의 모임이지."
강한남이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여자들은 싫어하지만, 남자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부실로 유명했다. 강한 남자라는 부실이었다. 온갖 헬창들이 모여 24시간 365일 땀 냄새 나는 부실. 냄새를 환기하는 마법 물품이 있음에도 근처에만 가면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렇게 적당히 수다 떨다 보니까 금세 도착했다.
정면을 바라보니 마법학과송라희. 라고 쓰여 있는 문패가 보였다.
문에 노크하고 문을 열었다. 앞에 송라희와 그녀를 따르는 조교 3명이 보였다.
"왔니?"
송라희가 웃으며 우리를 환대해 주었다. 로브 사이로 보이는 하얀 다리가 눈에 띄었다.
나는 슬쩍 송라희 옆에 놓인 종이를 보았다. 글은 보이나 내용이 읽히지 않았다. 특별한 마법 처리를 한 까닭이다. 교무실에 있는 서류들은 모두 이러한 처리를 받는다. 사소한 정보로도 내신 점수에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아, 다름이 아니라 너희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 호출을 헀단다."
송라희가 살짝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너희도 알지. 학교에 지금 이상한 소문이 떠도는 거?"
"최면 어플이요?"
윤채린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순간 임나연의 어깨가 순간 움찔했다.
"흥, 그런 시시한 걸 대체 누가 믿는다고. 애초에 이 학교에 입학한 주제에 그까짓 거에게 통할 나약한 사람이 있나?"
한종우가 그렇게 말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어처구니없는 기분이 들었다. 게임 내에서 몇 가지 루트가 있는데 그 루트에 대부분은 그 최면 어플에 속아 누구보다 열렬하게 윤승하를 공격하는 게 한종우였기 때문이었다.
여러 가지 대가를 필요로 하지만, 그건 학생들이 쉽게 저항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거악. 칠죄종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놈들이 만든 것이다. 다른 게임으로 치자면 사천왕쯤 되는 괴물들이 작정하고 만든 물건이다. 일개 학생이 저항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야, 한종우 너!"
"뭐래, 약한 게."
임나연이 한종우에게 뭐라 쏘아붙이려고 하자 윤채린이 한종우를 비웃으며 말했다.
한종우가 윤채린을 노려보았다.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윤채린이 한종우를 노려보았다. 그렇게 둘이 눈싸움하기 10초쯤 지났을까. 둘이 슬슬 기세를 피워올리고 있었다. 둘의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그만."
서늘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보랏빛의 눈동자가 이글거렸다. 슬쩍 둘러보니 조교들의 분위기도 나빴다. 당연한 일이었다. 일개 학생이 교수가 있는 앞에서 대놓고 싸우려고 들었으니까. 우습게 봤다고 해도 뭐라 할 말이 없겠지.
"너희는 내가 우습니?"
송라희가 서슬 퍼런 기세를 뿌렸다. 한종우하고 윤채린이 조용히 고개를 깔았다. 그러나 이 정도로 봐주지 않는다. 자색의 마녀라 불리지만 상아탑에서 불리는 그녀의 별명은 미친 마녀였다.
교수라는 타이틀을 달면서 얌전해졌다지만 한 번 뚜껑이 열리면 요정 여왕을 제외한 누구도 말릴 수 없는 것으로 유명했다.
"죄송합니다."
"죄송이고 나발이고 우습냐고. 교수 앞에서 쳐 싸우고 아주 난리 났네? 교수가 없었으면 아예 죽일 기세로 싸웠겠다?"
그 후로 한종우와 윤채린은 10분 동안 혼났다. 그나마 10분 동안 혼난 것은 조교 덕분이었다. 한종우와 윤채린을 갈구는 송라희에게 귓가에 무어라 말을 하더니 송라희가 잠시 눈을 감더니 말을 했다.
"……아무튼 최면 어플과 관련되었거나 증거를 가져오시면 상점을 드릴게요. 상점뿐만 아니라 잘 해결될 경우 교장님께서 따로 포상을 줄지도 모릅니다."
송라희가 차분하게 말했다. 다들 고개를 열렬하게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집중했다.
"질문하실 거 있으신가요?"
"최면 어플이란게 진짜라면, 이미 최면 어플에 당한 학생들도 있을 테고, 고학년도 당할 위험이 있다는 것인데 폭력은 어디까지 허용됩니까?"
송라희의 물음에 윤승하가 답했다. 송라희가 머리가 아픈 듯 이마를 문지르며 말했다.
"학생들에게 주먹을 휘두르면 안 됩니다. 라고 하고 싶지만, 일이 좀 많이 커졌어요. 실종된 학생 수가 벌써 일곱을 넘었습니다. 1학년뿐만 아니라 2학년도 피해자가 발생했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에게까지 손을 벌리는 것이고요."
송라희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저희가 부탁하는 입장에서, 무력을 쓰지 말라는 것은 너무 무리한 요구겠죠. 상대방이 범인이라고 판명된다면, 무력은 어느 정도 허용하겠으나, 상대에게 사적인 감정을 가지고 폭력을 쓰는 것은 안 됩니다. 알아들으셨죠, 한종우 학생, 윤채린 학생."
""네! 명심하겠습니다!""
한종우와 윤채린이 우렁차게 답했다. 윤승하가 쓰게 웃었다.
"학생들은 학생들 나름의 커뮤니케이션이 있지요? 그것을 활용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무래도 저희가 교수다 보니까 놓칠 수 있는 것이 있으니까요."
"네!"
"더 질문할 게 있나요?"
우리는 슬쩍 서로 눈치를 보았다. 없는 것 같았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송라희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송라희에게 부탁받은 직후, 우리는 근처 카페로 향했다. 송라희 근처에서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지, 윤채린이 제의했고, 한종우가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일단 여기서 그냥 이야기하기도 뭐하니까 뭐라도 시키고 이야기할까?"
내 물음에 다들 찬성했다.
"난 흑당 버블티에 타피오카 펄 넣은 거에 당도 100% 라지 사이즈."
"나는 밀크티에 쥬얼리 펄에 당도 70% 얼음 적당히."
"……."
윤승하와 윤채린이 말했다. 슬쩍 은수아와 임나연을 보니 은수아와 임나연은 평범하게 주문했다.
"나는 아이스티. 시원한 거로."
"그럼 난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그럼 나도 아메리카노로 하지."
다른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럼 내가 주문하고 올게."
"아, 계산해야 하지? 나도 같이 갈게!"
임나연이 슬쩍 옆으로 왔다. 한종우가 자리에 앉으려는 자세에서 멈칫하고는 헛기침을 했다.
"내가 갔다 오지."
"메뉴는 외웠고?"
옆에서 윤채린이 말하자, 한종우가 멈칫했다. 나는 일행에게 갔다 올게, 라고 말한 뒤 카운터로 갔다. 메뉴를 주문하고 테이블로 향했다.
"그럼 조를 짜 볼까?"
"굳이 조를 짤 필요가 있나?"
내 말에 한종우가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며 말했다. 일반적인 학교였다면 수용할만했다. 하지만 여기는 히어로 아카데미다. 아카데미라지만, 여의도 면적의 3배에 달하는 말도 안 되는 인공섬. 학교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된 시설, 던전, 아카데미 관계자들을 위한 시설 등등…….
그것들을 모두 뒤지자면 한 조로는 어림도 없다. 이 정도면 조가 아니라 개인으로 움직여서 수색해야 한다.
"히어로 아카데미가 얼마나 넓은데 한 조로 움직이자고?"
"……."
내 말에 한종우가 입을 닫았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들 불만은 없는 것 같았다.
나는 현재 시점에서 적과 부딪쳐도 무사할 수 있는 조를 꾸렸다.
"윤승하와 한종우. 임나연과 은수아. 그리고 나와 윤채린. 이렇게 가자."
"왜 내가 임나연과 한 조가 아니지?"
당연하게도 한종우가 불만을 표했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는 당연했다. 만약 한종우와 임나연이 조를 이루고 적을 상대한다고 가정한다면 한종우와 임나연이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윤승하와 윤채린, 은수아는 당연히 필수 조원이었다.
꼬우면 네가 더 강해지든가. 라고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그것을 최대한 풀어서 말했다. 내 말에 어찌어찌 설득되었다기보다는 임나연의 역할이 컸다.
***
빛이 짙으면 짙어질수록 그림자 또한 짙어진다.
이지아와 비견되는 한 천재가 있었다. 마도 명가에서 태어나 찬란한 재능을 꽃피우기 전에 그것을 시기한 사람들에 의해 고꾸라지고 그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교단'에 투신한 남자가 있었다.
비록 마력을 쓸 수 없는 몸이 되었지만, 그의 두뇌는 영민했다. 마법을 개조하고, 새로운 마법을 창조할 수 있을 정도로. 그것이 바로 검은 왕의 계시.
'개조한 만큼 효능이 떨어지지만.'
성능이 떨어지기는 했다. 그러나 발현할 때 동반되는 요란한 전조는 사라졌고, 은밀하게 펼칠 수 있는 장점이 있게 되었다. 단점은 비싸다는 것. 준비 기간이 좀 더 길어졌다는 것이다.
여기서 재밌는 점이 하나 있는데 교단에 투신한 남자의 몸을 망가트린 것이 이지아의 아빠였다.
생각해보면 그 사람도 참 대단하다. 이지아의 재능을 못 알아보고, 내팽개쳤다.
대마법사가 되어 인류를 수호할 수 있는 남자를 인류의 적으로 만들었다.
"여기는 왜 온 거야?"
"여기가 수상해서 말이야."
나와 윤채린은 현재 강당으로 도착했다. 강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당연하다. 강당은 학교에서 어떤 행사를 할 때, 학생들을 집합시키기 위한 용도로만 쓰인다.운동은 이보다 뛰어난 훈련장이 존재하니 사실상 평상시에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좋았다.
나는 강당의 앞쪽에서 세 번째 창문 앞으로 이동했다.
사각형의 널찍한 창문. 그 앞에 화분이 있었다. 나는 주먹을 들어 올려 마력을 보호하고는 그 화분을 내리쳤다.
쩌저적.
내려치자 보랏빛의 마나가 화분 위의 생성되며, 쉴드채로 화분을 깨트렸다.
"뭐야, 그게."
윤채린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나는 화분의 잔해에서 구슬을 하나 꺼내 들었다. 보랏빛이 소용돌이치는 문양이 있는 검은색의 구슬. 럭키. 한 번에 찾았다. 이 구슬이 나올 장소는 랜덤이라 오늘 종일 뒤질 각오를 했었는데 한 번에 나올 줄이야. 운이 좋군.
보기에는 평범하나 마?와 관련된 그녀의 특성상, 이 구슬이 무엇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검은 왕의 계시'라는 결계를 펼치기 위한 장치지."
"검은 왕의 계시? 그거 아까……."
"어. 송라희 교수님이 가르쳐주신 수업에 나오는 결계야. 이 결계를 펼치면 어지간한 상격의 영웅들조차도 죽을걸?"
"그게 왜…? 아니, 그전에 검은 왕의 계시는."
윤채린이 입을 닫았다. 검은 왕의 계시에 필요한 것은 인신공양人???이다. 사람을 의식용 제물로 바치는 것. 그것으로 마계에 '왕'에게 바치고 그의 마력으로 지어진 결계.
그러나 이 기술이 사장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만 명에 달하는 인원을 제물로 바쳐야 한다. 제물로 바치기 위해 제물이 살아있음은 필수다.
이런 인신 공양에 민감한 '협회'나 영웅들은 항시 사회를 주시한다. 또한 빌런들도 인신 공양을 하는 마인들을 싫어한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법의 테두리 바깥에서 자기가 추구하는 욕망을 쫓는 것이지, 세계의 멸망이 아니기 때문이다.
"맞아.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것이지."
윤채린의 낯빛이 사나워졌다. 그녀의 주변에 검은색의 기가 넘실거렸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며 최면 어플의 목적을 떠올렸다.
최면 어플의 목적은 간단하다. 바로 그 약식검은 왕의 계시를 이용하는 것. 그들은 제물이다. 히어로 아카데미의 학생 쯤 된다면 제물로서의 가치가 뛰어나다. 일반 제물 수십 명보다 히어로 아카데미 학생의 가치가 더 뛰어나다. 애초에 이곳은 학생들이 넘치는 곳.
"조질 거냐?"
"물론. 범인은 알고 있어."
이대로 교수들에게 신고하는 방법도 있다. 확실한 물증이 있는 이상 제대로 조사할 테고, 어떻게든 범인을 잡으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안된다. 그래서는 주인공들이 기술을 습득할 수 없다.
애쉬와 더스트. 가진바 무력은 중격에 약간 미치지 못하나, 그들의 장점은 잠입과 계략, 함정 등에 있다. 도주 방법 역시 기상천외하며 그들을 처음 마주한다면 당할 수밖에 없는 방식이다. 그 상황에서 주인공들은 위기를 겪고, 적을 이기고, 기술을 습득한다.
다만 그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콰득.
구슬을 콱 쥐어 터트렸다. 구슬이 깨지더니 안에서 새까만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것은 이내 흑수정이 박힌 반지가 되었다.
'오. 검은 독사의 반지네.'
검은 왕의 계시란 결국 '왕'이 만족한다면 해결되는 문제다. 사람의 목숨을 돈으로 계산할 수는 없지만, 계산하고자 한다면 그 값에 준하는 아티팩트로 어느 정도는 대체가 가능하다. 그러나 '왕'이 원하는 것은 결국 생명이기에 결국 제물이 필요하다.
어쨌든 중요한 건.
이 구슬로 파밍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