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 2. (11/11)

외전 2.

여름

투두둑.

이마에 한두 방울 떨어지는가 싶던 빗방울이 일순간 돌변했다. 5월 내내 맑았던 하늘은 먹구름을 불러오더니 이내 무서운 기세로 비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나는 들고 있던 파일로 머리를 가리며 주차장으로 뛰었다. 몇 번의 헛손질 끝에 가방에서 차 키를 꺼내 들었다. 그 때문에 안전한 차 내부로 들어왔을 때는 이미 머리며 셔츠가 젖은 상태였다. 손수건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대충 털어 내고 차창 밖을 보았다. 와이퍼가 빗물을 쓸어 낸 자리에 벚꽃 나무가 보였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빗물에 휩쓸려 떨어지는 분홍 잎을 바라보며 지난주 벚꽃을 미리 봐 두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종하 말 듣기를 잘했다. 바쁘다고 미뤘다가 예쁜 모습을 놓칠 뻔했다.

나양에서도 나를 이곳저곳 데려가길 좋아했던 이종하는 서울에 와서조차 끊임없이 나를 밖으로 끌어냈다. 서울에 온 지 1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그동안 나는 내 평생 돌아다닌 것보다 더 많은 곳을 이종하와 함께했다.

남들은 수년을 준비해 왔을 입시를 단기간에 끝마치고, 대학에 입학하고, 공모전에 몰두하고, 그도 모자라 아르바이트까지 겸하면서 이종하는 한 번도 불평을 입에 담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퇴근한 나를 데리러 꼬박꼬박 미술관 앞을 찾았다. 날이 좋은 날엔 사람도 광합성이 필요하다고 내 손을 잡아끌었고, 날이 좋지 않은 날엔 이럴 때일수록 기운을 내야 한다는 이유를 갖다 붙였다. 타고난 부지런함은 성실한 연애로 고스란히 발현되었다.

“종하 우산 안 챙겼는데.”

나는 주행을 시작하며 중얼거렸다. 빗방울을 맞은 순간 이종하부터 생각했다. 먹고 자고 생활하는 모든 반경에서 이종하를 떠올리게 된다. 그 애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캠퍼스로 들어선 차가 미대 건물 앞에 미끄러지듯 세워졌을 때는 오후 4시를 막 넘기기 직전이었다. 이종하의 수업이 끝났을 즈음이다. 휴대폰을 꺼내 익숙한 단축 번호를 누르려는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 이종하가 눈앞에 나타났다.

“어…….”

이종하에게 우산을 씌워 주려고 서성이는 여자도 함께였다. 와이퍼만 열심히 일하는 차 안에서 나는 가만히 그 너머를 지켜보았다. 무어라 말을 붙이는 여자의 앳된 얼굴에 붉게 홍조가 올라 있다. 여자의 용기를 간단히 밀어내는 이종하의 행동만 아니었다면 제법 풋풋한 장면이었을 것이다.

여자는 포기하지 못하고 우산을 이종하의 손에 쥐여 주었다. 같이 쓰지 않을 거면 우산이라도 가지고 가라는 제스처인 듯했다. 돌아서 빗속으로 뛰어드는 여자를 쉽게 따라잡은 이종하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하. 뭐 하는 거야, 쟤네.”

핸들을 쥔 내 손에 힘이 들어갔다. 로맨스 드라마의 엔딩 장면이라도 보는 것처럼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됐다.

입안의 연한 속살을 치아로 지그시 깨물고 있는데, 이종하가 여자에게 펼치지도 않은 우산을 도로 건넸다. 여자가 받지 않는 우산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이종하는 미련 없이 여자를 등졌다.

다정한 녀석이 정색하는 모습이 낯설게 다가왔다. 하긴, 그러고 보면 나와의 첫 만남에서도 저리 쌀쌀맞았었다.

그날도 오늘처럼 비가 내렸었다. 종점인 줄도 모르고 곯아떨어졌던 버스. 기사에게 깨워져 내린 곳은 나양 시외버스 공용 터미널이었고, 비를 피해 들어선 오락실에서 처음 이종하를 만났다. 오락실 주인의 부름으로 설렁설렁 걸어온 녀석의 첫인상은 동네 양아치가 따로 없었다.

“화투 치자고 불러 놓고 왜 사람을 데려다 놓으래? 알지도 못하는 여잘.”

오락실 문을 신경질적으로 툭툭 차던 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던 길쭉한 눈.

“이대로 갖다 팔아도 되지?”

못된 말까지. 당시를 떠올려 보면 이종하와 내가 아직도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옛 생각을 불러오느라 눈앞의 이종하가 사라진 줄도 몰랐다. 차창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주위를 살폈다. 바닥에 버려진 빨간 우산만이 조금 전 상황이 실재했음을 증명해 주었다.

“……!”

다급하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길어진다 싶을 즈음 그가 전화를 받았다.

“너, 어디야.”

다짜고짜 물었다.

─비 많이 온다, 수연아.

“알아. 너 어디냐고.”

─네 옆에.

말뜻을 이해하기도 전에 조수석 문이 벌컥 열렸다. 비에 흠뻑 젖은 남자가 허락도 없이 안으로 들어왔다. 멀뚱히 보고 있는 나를 대신해 이종하가 통화를 종료시켰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빗소리가 멈췄다. 내리는 비는 여전한데 차 안에 이종하와 함께 있으니 더 이상 빗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비 올 줄 모르고 우산 안 가지고 왔는데.”

내가 쓰고 놔둔 반쯤 젖은 손수건으로 머리를 털어 내며 이종하가 말했다. 턱에 고인 물기를 닦아 내는 그 애의 입가에 숨길 수 없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 근사한 미소를 보자니 뱃속이 근질근질하기도 하고, 괜한 심술이 생겼다.

“같이 우산 쓸 사람 많아 보이던데?”

“봤어?”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은 창밖에 버려진 빨간 우산에 둔 채였다.

“나 인기 많아.”

“그럴 것 같았어.”

“너는, 질투 같은 것도 안 하냐.”

“질투 안 났다고 안 했는데.”

“……뭐?”

툴툴대던 이종하가 되물었다. 그의 손이 내 턱을 부드럽게 잡아 돌렸다.

“한 번 더 말해 봐. 뭐라고?”

“질투 났다고. 우산 받았으면 너 그대로 두고 가려고…….”

마지막 말은 이종하의 입속에 삼켜졌다. 커다란 두 손에 뺨이 감싸진 채 나는 그 애의 혀를 받아들였다. 말캉하고 뜨거운 혀가 입속을 제멋대로 돌아다녔다. 그게 싫지 않았다.

나는 이종하가 이끄는 대로 입안을 내주기도 하고, 빠져나가는 그의 혀와 내 혀를 얽은 채 힘주어 빨기도 했다. 끙끙대는 신음이 절로 목을 울렸다.

키스에 열중하던 사이, 뺨을 감싸던 손이 셔츠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등허리를 쓸어 올리던 이종하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제 쪽으로 끌어당기려는 속셈이 보여 입술을 떼어 냈다. 아쉬운 듯 입술이 짧게 촉촉 따라붙었다.

“두면 아주 끝까지 가겠다?”

“하게만 해 주면.”

밖에서 조금이라도 야릇한 행위가 이어질 때면 걱정에 걱정을 거듭하던 이종하는 그사이 제법 능글맞아졌다. 이종하가 수줍어할 때는 대담하게 나갔었는데, 막상 그가 노선을 달리하니 어쩐지 이쪽이 수줍어지는 느낌이다. 답지 않게 뺨이 뜨거워졌다.

“아, 진짜. 김수연 왜 이렇게 귀엽냐.”

붉어진 귓불을 깨물며 이종하가 환하게 웃었다. 나 역시 비실비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벨트 매. 집에 가자.”

웃음이 묻은 목소리로 바짝 다가와 있는 녀석을 밀어냈다. 이종하는 마지막까지 내 입술에 도장 찍듯 제 입술을 갖다 대고는 안전벨트를 맸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고, 이종하와 나는 우리의 집으로 향했다.

“종하야. 나랑 갈래? 같이 있어 줘.”

멋없는 고백. 서울로 함께 올라가자는 말을 했을 때, 나는 당연히 내가 이종하를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 애가 이곳에서 자리 잡을 때까지는 힘이 돼 주어야 한다고. 나의 각오는 절반쯤만 실현되었다.

이종하의 엄마, 그러니까 미용실 원장은 이종하의 서울행에 반대하지 않았다. 그동안 아들의 앞으로 들어 둔 적금 통장을 밀어 주며 집 보증금을 마련해 주었다.

미술 대학 진학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하는 데까지 해 보되 안 되면 돌아와라. 손재주는 곧잘 있으니 차라리 미용을 배우라는 것이 그녀의 의견이었다.

서울로 올라온 이종하는 통장을 깨서 냉큼 집을 얻었다. 오랫동안 비어 있던 내 원룸의 맞은편 호수에 입주했다.

이종하와 나는 이웃이 되었다. 이종하의 원룸은 크고 작은 화구와 연습 작품들로 금세 가득 찼고, 발 디딜 틈도 없다는 핑계로 작업 이외의 생활은 자연스럽게 나의 집에서 이루어졌다.

나는 이종하에게 동양화과를 추천했다. 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이종하는 물감의 농담만으로 광활한 자연을, 사물의 질감을 표현해 냈다. 대단한 재능이었다.

그즈음 다녀온 동양화 전시회는 다행히도 이종하의 흥미를 끌었다. 먹을 처음 다루었음에도 그 애는 놀랍도록 빠르게 재료에 적응해 나갔다.

이종하는 그로부터 채 3개월도 지나지 않아 열린 미술 대회에서 입상했고, 그 이력 덕에 특기생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이종하의 대학 입시를 위해 발품을 팔고, 친하지 않은 지인에게 술을 사 주며 모은 정보들이 꽤 쓸 만했다고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입상한 그림을 마주한 순간, 나는 그것이 나의 오만이었음을 깨달았다. 아름다웠다. 나는 단번에 이종하의 그림을 알아보았다. 버들잎은 바람에 나부끼듯 여유작작했고, 끝을 모르고 펼쳐진 보리밭은 태양 볕에 보석처럼 반짝였다. 먹의 농담만으로 빛의 양과 농도까지 조절하고 있었다.

나는 이종하가 그려 낸 세계 앞에서 한참 동안 발을 떼지 못했다. 대회 평가를 위해 강당에 깔려 있던 수백 장의 수묵화 속에서 그 애의 그림은 빛났을 것이다. 누구의 눈에라도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때때로 내 옆에서 곤히 잠든 이종하를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도 망설였던 건지. 이 애를 옆에 두기 그렇게 두려워했던 건지.

그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언제고 이종하가 나를 떠난다면 그를 보낼 수 없을 것 같아서.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가는 이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봐 줄 수 없을까 봐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 지금 당장은 이런 모든 걱정을 접어 둘 것이다. 이종하를 뜨겁게 마주 안겠다. 그 애에게 온전한 내 마음을 전하겠다. 이종하가 가르쳐 준 방법으로 비겁하지 않게 마음껏 사랑하겠다.

“종하야.”

이름이 불린 남자는 잠결에도 나를 찾았다. 허리를 끌어가는 힘에 몸을 맡겼다. 나보다 한참은 더 큰 남자를 끌어안고 머리를 쓸어 주었다. 결 좋은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를 사르륵 빠져나간다. 다시 한번 그를 불렀다.

“종하야.”

이종하를 품에 안고 나는 깊은 안도감을 느꼈다.

다음 달부터 새로 들어갈 전시회 일정 회의를 마치고 나니 시간이 붕 떴다. 예상보다 무난하게 진행된 탓에 모처럼 여유가 생겼다.

당연하게도 이종하가 먼저 떠올랐다. 밖으로 불러낼까 싶어 꺼내 들었던 휴대폰을 그대로 조수석에 던져두고 시동을 걸었다. 학교 과제에 공모전 일정에 치여 잠잘 시간도 모자란 애를 불러다가 뭘 하려고. 한창 작업에 빠져 있을 때는 밥을 거르기 일쑤라 걱정부터 들었다.

집으로 가기 전 초밥을 포장했다. 이종하와 외식을 할 때 종종 찾던 집이었다. 생선보다는 고기를 외치던 이종하도 이 집의 초밥만큼은 꽤나 마음에 들어 했다. 그 애의 엄마도 아닌데 먹는 모습만 보면 뿌듯했다.

맛있게 먹어 줄 이종하를 생각하며 빌라 앞에 차를 세웠다. 저녁때면 주차된 차들로 복잡할 좁은 골목이 낮이라 그런지 한산했다. 차에서 내린 나는 습관적으로 빌라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반쯤 열린 3층 창문은 고요하기만 하다. 주인의 차 소리를 알아듣고 꼬리치며 반기는 강아지처럼, 내 차 소리만 듣고 창밖으로 고개를 삐죽 내밀던 이종하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를 확인하고는 환하게 웃어 주는 이종하를 내심 기대했었나 보다.

“차암, 복에 겨웠다. 김수연.”

이게 뭐라고 조금, 아주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든다. 그동안 이종하의 무한한 애정 표현에 길든 모양이다. 적당히를 모르는 이종하는 모든 것에 최선을 다했지만, 특히 나에 관한 것이라면 더욱 그 정도가 심했다.

전시 구도 조율로 밤을 새우고 퇴근하던 어스름한 새벽, 밖을 나오다 미술관 앞에 서 있는 커다란 인영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작업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으니 먼저 자고 있으라는 말에 알겠다고 담백하게 전화를 끊어 놓고는 걱정이 되어 지키고 서 있던 것이다.

왔으면 전화라도 하지. 속상한 마음에 이종하를 나무랐다. 이종하는 방해되기 싫었다며, 그래도 조금만 더 기다리면 내가 나올 것 같아 발을 못 돌렸다고 했다. 기다리는데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고. 피곤하겠다고 내 어깨를 주무르며 배시시 웃는 얼굴을 마주하는데 굳은 얼굴이 절로 풀렸었다.

언제까지 그 마음이 내게 향해 있을까 싶은 우려를 불식시키듯 이종하는 아낌없이 마음을 표현했다. 그러니 내가 이렇게 어리광이 늘어 버린 것은 순전히 이종하의 책임이다.

“나 왔는…….”

익숙하게 비밀번호를 누르고 화실 안으로 들어섰던 나는 목소리를 낮췄다. 긴 다리가 소파 밖으로 삐죽 튀어나와 있다. 작업용 앞치마를 벗지도 못한 채 이종하가 소파에 잠들어 있었다.

크지 않은 원룸 바닥은 미완성의 그림들로 가득했다. 하나의 완성작을 내기 위해 수백, 수천 장의 그림들이 버려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그 애의 손에서 탄생한 그림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애틋하게 느껴진다.

한참을 자리에 선 채 버려질 작품들에 눈길을 주던 나는 초밥 상자를 테이블에 내려 두었다. 발소리를 죽여 이종하의 앞으로 다가갔다. 쪼그리고 앉아 남자를 관찰했다.

“이종하.”

먹이 묻은 손끝을 쥐고 살살 흔들며 그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잠든 이종하는 대답이 없다. 나는 그의 손가락 사이에 내 손가락을 슬며시 끼워 넣었다.

커다란 손을 잡는 것만으로 안심이 됐다. 이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 같은 거 말이다.

“종하야.”

나는 한 번 더 그의 이름을 불렀다. 제법 길어진 머리카락이 이마를 살짝 가리고 있다. 이종하의 손을 잡지 않은 나머지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 드러난 이마에 키스했다. 코끝과 입술에 차례로 입을 대었다 떼어 낼 때였다. 검은 눈동자와 마주했다.

“……다녀왔어.”

“기다렸어.”

“밥 먹었어?”

“작업하느라.”

“그럴 줄 알았어.”

우리는 아랫입술을 맞댄 채 소곤댔다. 이 공간에 누군가 들어와 있다면 그들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대화했다. 별것 아닌 이야기가 비밀스럽게 포장되었다.

“초밥 사 왔어.”

“우리 자주 가던 곳?”

“응. 우리 가던 곳.”

테이블 위에 놓아둔 초밥 상자를 펼치려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아니, 세우려고 한 순간 이종하의 힘에 이끌려 그의 품에 안겼다. 떨어졌던 입술이 다시금 맞닿았다. 입술이 세게 빨리고 갈라진 틈 안으로 혀가 들어왔다.

“밥은…….”

“나는 지금 네가 더 급해. 너부터 먹을래.”

“아직 밝아.”

“어제 너 못 안았단 말이야.”

“하아, 겨우 하루거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 역시 이종하를 먹고 싶었다. 입안으로 들어온 혀를 막대 사탕 먹듯 빨았다. 이종하의 목울대가 배고픈 짐승처럼 그르렁 낮게 울렸다. 정신없이 키스를 나누는 동안, 나는 나도 모르는 새 이종하의 몸 위에 올라타 있었다.

단단한 가슴에 내 가슴이 세게 맞닿아 있는 느낌이 아찔했다. 이종하의 손이 셔츠를 들추고 안으로 들어왔다. 등허리를 쓸어 올리던 손이 브래지어를 풀어냈다. 가슴을 주무르기도 하고 바지 안으로 들어가 엉덩이를 감싸기도 하는 그의 분주한 손에 몸이 달아올랐다.

“으응.”

나는 이종하의 입안에서 끙끙거렸다. 그와의 섹스에 익숙해진 몸이 젖어 드는 것이 느껴졌다. 이종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딱딱하게 굳은 그의 중심으로 손을 내렸다. 앞치마를 들추고 트레이닝 바지 안으로 손을 밀어 넣다가 웃음이 터졌다.

“왜 웃는데.”

“꼭 아녀자 희롱하는 기분이라.”

“알몸에 앞치마만 하고 있을 걸 그랬지?”

그의 너스레에 큭큭 웃는 내 얼굴을 잡고 이종하가 짧게 여러 번 입을 맞췄다. 나는 사양하지 않았다. 기대해도 되냐고 물으며 단단해진 그의 분신을 손에 쥐었다.

“아윽.”

이종하가 낮게 탄성을 내뱉었다. 그의 까만 눈을 바라보며 나는 손을 위아래로 천천히 움직였다. 손안에서 무섭게 용적을 부풀려 간 것은 한 손에 잡기 버거울 정도였다. 힘줄이 도드라진 표면을 꾹 한 번 손에 쥐었다 놓으며 몸을 일으켰다.

이종하의 시선이 그의 다리에 앉은 나를 따라온다. 그의 눈에 왜 멈추느냐는 물음이 담겨 있다. 나는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셔츠 단추를 풀었다. 어깨너머로 셔츠가 흘러내리고, 풀어놓은 브래지어 아래로 가슴이 드러났다. 다급히 몸을 따라 세운 이종하가 가슴을 덥석 물어 왔다.

“아으, 하아…….”

나는 강인한 두 팔에 허리를 끌어안긴 채 가슴을 빨렸다. 자꾸만 뒤로 넘어갈 것 같은 몸을 지지하려 이종하의 어깨를 잡았다. 그의 머리를 끌어안고 더운 호흡을 내뱉었다.

가슴에서 배로 내려간 입술이 배에서 다시 쇄골과 턱을 타고 올라왔다. 입술에 촉 입을 맞춘 이종하가 나를 조심스레 소파에 눕혔다. 빠르게 자신의 옷을 벗어 던지고, 내 바지와 속옷까지 단번에 끌어 내렸다.

곧은 손가락이 안을 가늠하듯 파고들었다. 손가락의 개수가 늘어날 때마다 젖은 아래에서 질척이는 소리가 났다. 나는 손등으로 붉어진 얼굴을 가린 채 숨만 간신히 내쉬었다. 협탁 서랍이 열리고 닫혔다. 마트에서 새로 사 두었던 콘돔이 들어 있는 곳이었다.

“들어갈게.”

“으응.”

무릎이 가슴에 닿을 듯 크게 벌려졌다. 손가락이 빠져나간 자리에 그보다 굵은 살덩이가 밀려들어 왔다. 익숙하지만 할 때마다 사람을 벅차게 하는 열기가 가득 찼다.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다 빠져나가며 길을 냈다.

“안에, 후우, 너무 조여.”

“하아.”

이종하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평소보다 흥분되었는지 그의 성기를 문 아래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강인한 어깨 위에 힘없이 흔들리는 내 다리가 이질적으로 보였다.

너무 좋아. 좋아, 수연아. 속삭이며 이종하가 내 볼을 쓸어 주었다. 허릿짓은 그동안에도 멈추지 않았다. 나는 빠르게 절정으로 향했다.

“아으응.”

눈앞에 하얀 점이 번졌다. 바르르 떨리는 몸을 추스르기도 전에 바닥으로 몸이 끌려 내려갔다. 시야가 다시 돌아왔을 땐 내가 바닥에 엎드린 채였다. 성기가 빠져나가 허전한 아래에 뜨겁고 물컹한 것이 닿았다. 이종하의 혀다.

“이종하! 싫어. 그거.”

놀라 몸을 빼려 해도 커다란 손에 잡힌 허리를 움직일 수 없었다. 녀석의 잘난 얼굴은 한동안 내 다리 사이에 박혀 떠날 줄 몰랐다. 차라리 들어오라고 애원할 때가 되어서야 떨어져 나간 입술이 엉덩이에 촉 짧게 닿았다.

다시금 뒤에서부터 성기가 들어왔다.

“그림, 망가져.”

“…….”

“종하야, 그림.”

“상관없어.”

나는 이종하의 그림들 위에 엎드린 채였다. 미완성이라고 해도 내가 사랑하는 작품이다. 그의 그림들이 망가질까 신경 쓰는 내가 못마땅했는지 뒤에서 치받는 힘이 더욱 거세졌다.

이종하는 제게 집중하라고 몸으로 말했다. 나는 참지 못하고 신음을 내질렀다. 깊숙한 곳까지 찔러 들어오는 아찔함에 현기증이 일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종하의 밀어붙이는 힘에 못 이긴 나는 엉덩이만 든 채로 상체를 바닥에 힘없이 늘어뜨렸다. 땀이 밴 가슴에 그림이 들러붙었다. 떼어 낼 정신도 없이 나는 이종하의 허릿짓에 흔들릴 뿐이었다.

“고개 돌려 봐.”

귓불을 물고 빨던 이종하가 속삭였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 입술이 삼켜졌다. 각도가 맞지 않아 혀가 외설스럽게 얽혔다. 입술을 빨다가 턱까지 핥아 올린 이종하가 마지막 스퍼트를 올렸다. 머지않아 뜨거움이 확 끼쳤다.

“후우.”

나는 이종하의 단단한 가슴에 눌린 채 가쁜 숨만 내쉬었다. 어깨에, 목에, 등에 짧게 키스를 하던 이종하가 천천히 몸을 빼내었다. 정액을 받아 낸 콘돔을 벗겨 내도 아직 그의 성기는 가라앉지 않은 상태였다. 새로운 콘돔을 씌우려는 것을 보고 기겁한 나는 고개를 힘없이 내저었다.

“나 힘들어.”

“아직 다 못 했는데.”

“밥부터. 배고파.”

거짓말이다. 밥이고 뭐고 지금은 그냥 이대로 내버려 두었으면 했다. 연달아 여러 번 절정에 오르고 난 체력은 완전히 고갈되어 버렸다.

이종하는 미안한 듯 내 몸을 조심스레 끌어안고 소파에 기대 앉혀 주었다. 나는 이종하가 벗어 둔 티셔츠를 끌어와 젖은 아래를 슬며시 가렸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내 가슴에 박혀 있었다. 가슴으로 뻗어 오는 손을 뿌리쳤다.

“밥 먹고 하자니까.”

“그게 아니라…….”

고개를 내려 내 몸을 내려다보았다. 가슴에서 아랫배까지 흐릿하게 난초가 수놓아져 있었다. 이종하의 그림이 땀에 배어 내 몸에 옮겨진 것이었다.

기분이 묘했다. 간혹 흥분에 겨운 이종하가 내 몸 여기저기 남겨 놓았던 키스 마크와는 또 다른 감각이었다.

“타투 한 것 같아.”

나는 가슴 언저리를 손끝으로 덧그리며 중얼거렸다. 그치? 하고 되물어도 대답이 없기에 고개를 들었다. 이종하의 짙은 시선이 내 가슴을 향해 있었다.

“기분 좋다.”

“뭐가?”

“꼭 내 거라고 써 놓은 것 같아서.”

내 손 위로 이종하의 손이 올려졌다. 얽힌 손을 움직여 함께 난의 잎을 따라 움직였다. 그의 입에서 뜬금없는 말이 떨어졌다.

“너 예전에 나한테 진짜 못되게 굴었지.”

“……그랬지.”

“너 그때 묶어 놓고 싶었어. 묶어서 아무 데도 못 가게, 내 마음 다 헤집어 놓고 나 몰라라 도망 못 치게, 그러고 싶었어.”

“지금이라도 그럴래?”

나를 저 자신보다 위하는 이종하가 그럴 수 있을 리 없다. 알면서 던진 말이다. 그러나 이종하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는 말이기도 했다. 그 말 속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 어떤 마음으로 그 애가 그런 말을 하는지 너무도 잘 아는 탓이다. 나는 그 애에게 빚이 있었고, 그가 원하는 방식으로 기꺼이 갚아 나갈 생각이었다.

픽 힘없는 웃음을 보인 이종하가 내 가슴을 어루만졌다. 흐릿하게 번져 버리는 난을 보니 아쉬워졌다.

“종하야.”

“…….”

“그림 그려 줘.”

“…….”

“내 몸에.”

나는 이종하에게 부탁했다. 내 몸에 그 애의 그림을 잔뜩 새겨 넣고 안심시키고 싶다. 너에게 몸도 마음도 전부 주고 싶다고. 그러니 이제는 불안해하지 말라고. 네가 날 떠나기 전까지 너를 떠나지 않을 거라고.

대답이 없던 이종하는 이내 묵묵히 먹을 갈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영화 속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기대감에 젖어 있었다.

반듯이 누워 있는 내 곁으로 이종하가 다가왔다. 그를 올려다보며 눈을 깜빡이자 이종하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먹을 머금은 붓끝이 배에 닿았다. 배에서부터 가슴까지 스윽 이종하의 손길에 따라 난이 피어났다.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붓끝이 볼록이 솟은 유두를 스칠 때는 간지럼에 웃음이 터져 버렸다.

“웃지 마.”

“미안.”

나는 들썩이는 가슴을 움직이지 않으려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태연함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실은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미간을 좁힌 채 내 가슴에 난을 치고 있는 이종하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한참 만에 붓을 내려놓는 이종하를 보며 물었다.

“다 된 거야?”

“누워 있어.”

일어서려는 내 어깨를 이종하가 지그시 눌렀다.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먹이 마를 때까지 잠자코 누워 있었다. 이종하는 차분하게 주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손을 아주 오래도록 씻는지 화장실에서 물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한참 만에 돌아온 이종하가 내 옆에 앉았다. 흐트러진 내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손에서 시원한 비누 향이 났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난을 그려 주고 싶었는데.”

“그랬는데.”

“손이 너무 떨려서.”

“거짓말. 너가 인상 팍 쓰고 있어서 내가 다 쫄았는데?”

“진짜야. 확인해 봐.”

이종하가 내 손을 끌어가 자신의 가슴에 대었다. 내 심장처럼 그의 심장도 세게 박동하고 있었다.

내 손에 고스란히 쥐어진 그의 심장을 어루만지며 나는 어쩐지 그에게 알몸을 드러낼 때보다 수줍어졌다. 아닌 척 죄도 없는 이종하에게 캐물었다.

“애도 아니고. 내 몸 처음 본 것도 아닌데 뭐가 그렇게 떨리는데.”

“애 아니고, 네 몸 처음 본 거 아닌데. 그래도 나는 너 볼 때마다 이래.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어. 내 건데도 내 마음대로 안 돼.”

툭 내뱉어진 말에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나도 그래. 이제는 내 심장도 내 마음대로 안 된다. 나는 몸을 일으켜 이종하를 꼭 끌어안았다. 한 품에 들어오지 않는 커다란 몸을 조금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사랑해.”

내 등을 다정히 쓸어 주던 이종하의 손이 멈추었다.

“사랑해.”

이종하는 대답이 없었다. 그래도 상관없다. 나는 온 마음을 다해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종하.”

“…….”

“종하야, 사랑한다.”

이제 막 태막을 뚫고 나온 어린 동물처럼, 이윽고 이종하가 짙은 숨을 터트렸다.

이종하는 근래 드물게 들떠 있었다. 주말 미술관 데이트 약속을 잡았다. 수묵화로 손꼽히는 중국 작가 장쉬우멍의 내한 전시로, 단번에 이종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작품들이 포함돼 있었다.

도감에 인쇄된 것만으로도 큰 감동을 주었던 작품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에 이종하는 전시 일정이 확정되기도 전부터 설레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나랑 놀 때보다 더 좋아한다, 너?”

“질투해?”

봄비 내리던 날, 빨간 우산의 여자와 함께 있던 모습을 목격하고 질투 난다는 말을 했었다. 이종하는 그 말이 썩 마음에 찼는지 틈이 생길 때마다 질투하느냐고 내게 묻고는 했다. 그게 귀엽다고 느껴지니 딱히 이종하를 나무랄 것도 없었다.

“응. 해, 질투.”

순순한 대답이 재미없었는지 이종하가 눈썹을 까딱였다. 우리는 시답지 않은 농담을 몇 번 더 주고받으며 미술관 안으로 들어갔다.

장쉬우멍의 이번 전시회는 규모가 컸다. 주로 큰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성향에 따른 것이기도 했고, 그 자체로 관객 몰이를 할 만큼 유명한 작가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우리는 하나의 그림 앞에 멈추어 섰다. 깊은 바닷속 어딘가, 검은 물속과 저 멀리 아스라이 비추는 태양. 벽 하나를 가득 채울 듯 거대한 그림에 압도당하는 느낌이었다.

이종하는 어느 순간 말이 없어졌다. 나 역시 그랬다. 작가가 구축한 세계 속에서 나라는 존재는 먼지 한 톨만큼의 의미도 없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생각은 선배의 녹음을 보았을 때 들었던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

생각을 하니 눈앞에 나타났다. 선배와 눈이 마주쳤다. 선배의 시선이 내 옆에 선 이에게로 옮겨갔다. 이종하 역시 선배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인사, 해야겠지?”

“아니.”

“왜?”

이종하는 선배를 잔뜩 의식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이종하를 의식했다. 선배는 그저 고마운 사람이고, 미운 사람이고, 여전히 동경하는 대상이다. 선배는 내게 더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다. 내게 모든 의미가 되는 사람이 바로 옆에 있는 탓이다. 선배와 다시 마주하는 순간 그걸 깨달았다. 마음이 편해졌다.

이종하의 팔이 내 어깨에 둘러졌다. 선배에게 우리 둘 사이를 내보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전해졌다. 그 애의 치기 어린 마음을 무시하고 싶지 않았다. 어떤 누구보다 이종하의 마음이 내게는 중요했다.

나는 어깨를 감싼 이종하의 팔을 떼어 냈다. 당황하는 시선이 내게 향한다. 그 애와 눈을 마주하며 떼어 낸 팔을 끌어 꼭 손을 잡았다. 마디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깍지를 끼고는 씨익 웃었다. 흔들리던 눈동자가 그제야 안정을 되찾는다.

선배와는 멀리서 눈인사만을 나누고 헤어졌다. 미술관을 나올 때까지 이종하는 잡은 내 손을 놓지 않았다. 차에 오를 때도 손을 놓지 않으려고 해 웃음이 터졌다.

“뭐 어떡하라고.”

“놓기 싫은데.”

“이러고 집까지 걸어갈까?”

“그럴까 봐.”

우리는 차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 있었다. 연애가 처음이 아닌데도 나는 이종하와 처음 경험해 보는 것이 많았다. 유난이다 싶을 행동들을 내가 하고 있었다. 그게 싫지 않다는 것이 제일 놀라웠다.

“운전할 때 손잡아 줄게.”

“키스도 해 줘.”

중요한 안건이라도 체결하는 것처럼 조건이 내걸어졌다. 나는 즉시 조건을 받았다. 이종하의 손을 잡아당겨 그의 입에 입을 맞추었다. 맞닿은 입술 끝이 호선을 그리며 올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종하는 몇 번이고 나의 쾌감을 정상으로 끌어올렸다. 머리끝까지 차올랐던 오르가슴이 서서히 가라앉는 동안에도 다정한 손길을 멈추지 않고 나를 달랬다. 온몸 구석구석 이종하의 입술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커다란 고래 뱃속에 삼켜졌다 나온 것처럼 온몸이 축축하고 저릿하다.

“그만…….”

“힘들어? 미안, 못 참아서.”

“그게 아니라. 이리 와서 나 안아 줘.”

힘이 들어가지 않는 두 팔을 뻗었다. 이종하는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으며 나를 감싸 안았다. 가슴을 마주 대면서도 체중을 싣지 않으려 내 머리맡에 팔꿈치를 괴었다. 나는 이종하의 목을 가볍게 끌어안고는 그와 눈을 마주했다.

“예뻐 죽겠다.”

이종하가 무심코 중얼거렸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이종하, 예뻐 죽겠다. 푸스스 웃으며 목을 감싼 손에 힘을 주자 이종하가 얼굴을 내린다. 도톰해서 더 예쁜 입술에 내가 먼저 촉 소리가 나게 입을 맞췄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상태에서 나누는 관계는 어느 때보다 큰 만족감을 주었다. 관계 후에 나누는 이런 소소한 후희도 그랬다. 이제는 정말로 이종하가 내 것이라는 실감이 든다. 나 역시 마음 한쪽이 아닌 전부를 이종하에게 내주었다. 온전히 서로를 마주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하루하루 깨달아 가고 있다.

“아씨. 안 되겠다.”

입안 가득 밀려들어 왔던 혀를 거두며 이종하가 몸을 일으켰다. 급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나도 따라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유를 물으려다 말았다. 속옷 한 장 꿰어 입고 있는 이종하의 아래가 다시금 부풀어 올라 있었다.

“후우. 나 좀 짐승 같아.”

대체 몇 번째야. 저도 민망한지 목덜미를 주무르며 내뱉은 이종하의 말에 나는 웃음을 크게 터트리고 말았다. 정력이 과하긴 했다. 그도 나도 쉬는 날에는 종일 침대 밖을 벗어나지 못한 적도 있었다. 힘들어서 항복을 외친 적도 많지만, 싫지 않았다. 오히려 마지막까지 그와 어울려 주지 못해 미안하기도 했다.

“나 운동 시작할까.”

“나랑 매일 운동하잖아.”

“이런 거 말고, 진짜 운동. 젊은 애인 두려니까 좀 버겁네.”

무슨 말인지 이해한 이종하가 내 볼을 툭 건드린다. 이런 말을 하는 내가 귀엽다는 듯이. 이종하의 마음은 투명할 정도로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안 그래도 요즘 얼굴 볼 시간도 부족한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싫은 내색이 아니다. 내가 체력을 키워 관계 시간이 늘어나는 것이 나을지, 아니면 그 시간까지도 제 옆에 끼고 보듬는 것이 좋을지 고심하는 표정이다.

“그럼 나랑 같이해.”

“너는 더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여기서 몸 더 키우면 나 죽어.”

약한 척을 하는 내가 웃긴지 큭큭 거리는 이종하의 허리를 손바닥으로 쓸었다. 곧바로 배에 힘이 단단하게 들어가며 허리를 내뺀다. 실없는 대화를 나누는 동안 용적을 더욱 부풀린 아래가 아픈지 이종하의 잘생긴 미간이 찌푸려졌다.

“나 잠깐…….”

“여기서 해.”

혼자서라도 빼고 올 모양인지 화장실로 가려는 이종하의 손을 잡았다. 놀란 듯 조금 커진 이종하의 눈을 피하지 않으며 나는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여기서 해 봐.”

“…….”

그의 말마따나 짐승처럼 나를 잡아먹을 때는 언제고, 이종하는 순간순간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는 소년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가 수줍은 모습을 보일 때면 나는 더 짓궂어졌다.

“종하야. 응?”

이종하는 붉어진 얼굴로 속옷을 끌어 내렸다. 빳빳하게 고개를 세운 성기가 튕겨져 나왔다. 내 앞에 크게 다리를 벌리고 앉은 이종하가 제 성기를 손에 쥐고 자위를 시작했다.

질끈 물고 있던 입술이 벌어지며 그 사이로 하얗고 고른 치열이 드러난다. 붉은 혀가 아랫입술을 훑고 들어간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목덜미에는 핏줄이 섰다. 제 성기를 쥐고 흔드는 팔목에도 파란 힘줄이 돋아났다.

“후우, 후…….”

나는 숨도 멈춘 채 이종하의 행위를 빠짐없이 눈에 담았다. 들썩이는 가슴을 손으로 쓸어 주다가 멀건 액체가 흘러내리기 시작한 선단을 불시에 입에 담았다.

“아아!”

이종하의 아랫배에 힘이 바짝 들어간다. 동시에 내 머리를 떼어 내려는 그의 손을 붙잡아 깍지를 꼈다. 목구멍 깊숙한 곳까지 넣어 힘주어 빨아들인 지 얼마 되지 않아 그가 사정했다. 입 앞에 내민 손에 비릿한 액체를 뱉어 냈다. 이미 반쯤은 삼키고 난 후라 양이 많지는 않았다.

티슈를 뽑아 정액을 닦아 낸 이종하가 머쓱하게 웃었다. 귓바퀴와 목덜미까지 새빨갛게 물들인 주제에 좋은지 웃음을 참지 못한다. 나를 꼭 끌어안아 주고는 씻을래? 하고 물어 왔다.

“응. 나 씻겨 줘.”

이종하는 나를 가뿐하게 안아 들어 욕실로 향했다. 밤새 괴롭힌 것이 미안한지 욕실 안에서 이종하는 내 몸을 씻기는 것에만 열중했다.

욕실을 나와선 이종하가 차려 준 아침을 먹었다. 맑은국을 시원하게 끓여 낸 이종하의 솜씨에 나는 밥을 두 그릇이나 해치웠다. 밤사이 체력을 쓴 만큼 술술 들어갔다.

창문으로 해가 비스듬히 들어올 무렵에는 거실에서 TV를 틀어 놓고 노닥거렸다. 이종하는 소파에 등을 기대앉았고, 나는 이종하의 허벅지를 베고 누운 채였다.

TV에서는 이종하가 좋아하는 홍콩 영화가 방영되고 있었다. 방금 화면에 스치고 지나간 배우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이종하의 다리를 톡톡 건드렸다.

“저 사람 이름이 뭐더라?”

“어! 나 아는데…….”

홍콩 배우라면 줄줄이 꿰고 있는 이종하였지만, 조연 배우의 이름까지는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었다. 모르면 그만이다. 쉽게 포기하는 나와 달리 이종하는 궁금한지 머리를 굴렸다.

괜히 그의 영화 감상을 방해한 것 같았다. 나는 팔을 뻗어 이종하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서울에서 깨트리고 돌아왔기에 신형으로 바꾸어 주었었다. 그래 봐야 겨우 휴대폰일 뿐인데 보물이라도 되는 양 흠집 하나 내지 않고 조심히 다루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했다.

이종하의 휴대폰에는 그 흔한 비밀번호도 걸려 있지 않았다. 검색 몇 번 만에 방금 화면에 지나갔던 배우의 이름이 나왔다.

“두문택.”

“아, 맞다! 두문택.”

기억해 내지 못한 것이 아쉬웠던지 이름을 두어 번 되뇌는 이종하를 카메라에 담았다.

찰칵, 셔터음에 이종하가 나를 내려다본다. 나는 아랑곳없이 여러 번 셔터를 눌렀다. 아래에서 찍은 각도에서조차 흠결이 없다. 나를 내려다보며 웃고 있는 이종하의 눈이 더없이 다정했다. 이게 내 거라니 새삼 뿌듯해져 빤히 그를 바라보았다.

“왜?”

“그냥.”

싱겁다는 듯 이종하가 내 머리를 쓸어 준다. 다시 영화에 집중하는 이종하를 내버려 둔 채 나는 그의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갤러리 안은 예상대로 내 사진으로 가득했다. 그의 파인더에 담긴 내 모습이 제법 예뻐 보여 기분이 이상했다. 그러고 보면 그의 스케치북에 담긴 내 모습도 내가 알던 나보다 더 여성스러운 느낌을 내긴 했었다. 이종하의 눈에는 내가 이렇게 보이는 걸까.

나는 빠르게 사진을 넘겼다. 내 사진 중간중간 길거리 풍경이나 음식, 화방이나 화구의 사진도 섞여 있었다. 그 외에는 특별할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런 줄 알았다.

“……!”

사진을 넘기는 손끝이 저렸다. 이종하가 찍은 음식들은 외식할 때의 근사한 요리 사진이 아니었다. 플레인 요거트, 지방 함량을 줄였다는 음료수, 겨울 한정으로 나왔던 딸기 맛 셔벗, 아몬드가 들어간 사탕, 국물이 자박한 편의점 떡볶이.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제품명이 정직하게 보이는 사진들이 가득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메모장에는 아예 나에 관한 폴더가 따로 만들어져 있었다. 수연이가 좋아하는 책. 수연이가 싫어하는 말. 수연이가 못 먹는 음식. 수연이가 자주 쓰는 물건. 분류별로 참 꼼꼼하게도 적어 두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재빨리 닦으려는데 이종하의 무릎에 먼저 닿았나 보다. 허리를 숙여 내 얼굴을 확인한 이종하가 놀라 물었다.

“수연아. 왜 울어? 어디 아파?”

“아니.”

“내가 뭐 잘못했어?”

“아니.”

나는 이종하 때문에 마지못해 몸을 일으켰다. 이종하는 내 뺨을 두 손으로 감싸고 눈을 들여다보며 안절부절못했다. 별것도 아닌데 괜히 걱정하게 만들었다.

“그럼 왜.”

“네가 몰라서 그래. 나이 들면 원래 가만있다가 눈물도 나고 그래.”

창피해져서 나는 이종하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이종하는 더 묻지 않고 내 등을 쓸어 주었다.

너무 행복해서 그래. 종하야, 네가 너무 좋아서 그래.

꽃 내음 물씬하던 봄도 서서히 지나가고 있었다.

기말 실기가 가까워지자 이종하는 학교에 매여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집에서 작업하기 힘든 대형 그림은 실기실에 두었다. 그편이 동기나 선배들에게 조언을 얻기도 좋았다. 물론 내 학교생활에 빗대자면 말이다.

“기말 실기.”

이종하가 씻으러 욕실에 들어간 사이 나는 그 단어를 입안에 굴려 보았다. 겨우 두 마디 단어만으로 새삼 이종하와 나의 나이 차가 실감이 난다. 처음 그와 관계를 맺고 난 뒤 문득 미성년자는 아니겠지 싶어 오싹했던 기억이 뒤따라 떠올랐다. 그때 이종하가 내게 뭐라고 했더라.

“유부녀 아니냐고 했었나.”

“무슨 소리야?”

젖은 머리에 수건을 올려놓은 채 이종하가 욕실에서 나왔다. 나는 싱겁게 웃고는 고개를 저었다. 이리 오라고 손짓하자 이종하가 성큼성큼 걸어와 내 앞에 앉았다. 화장대 의자에 앉은 터라 바닥에 앉은 이종하의 머리가 내 무릎을 간질였다.

나는 익숙하게 이종하의 머리를 말려 주었다. 수건으로 물기를 털어 내고 드라이기 바람을 약하게 쐬어 주었다. 손가락 사이에서 푸스스 흔들리는 머리카락의 느낌이 좋았다.

밤샘 작업을 마치고도 이종하는 내 옆에 누울 때면 꼭 샤워를 했다. 혹여나 자신에게 배어 있는 물감이나 먹의 향이 불쾌하게 느껴질까 싶은 그 애의 배려였다. 겨우겨우 씻고 나와 젖은 머리를 한 채로 조는 것이 안 되어 보여 머리를 말려 주었던 적이 있다.

이후로 이종하는 씻고 나와서 당연하다는 듯 내 무릎에 등을 대고 앉았다.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살살 쓸어 만져 주는 손길이 좋다고 했다. 그런 주제에 내 젖은 머리카락은 자기가 말려 주려 했다.

그럴 거면 그냥 각자 알아서 하지? 멋없는 내 말에 이종하는 어디선가 외워 온 지식을 주저리 읊었다.

굳이 해 주지 않아도 될 일을 굳이 해 주는 것, 그게 연애라고.

“종하야.”

이종하가 흘깃 뒤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돌아간 고개를 슬며시 앞을 향해 고정시켰다. 드라이기 소리에 내 목소리가 묻힐까 봐 귓가에 입을 가까이 댔다.

“바쁘면 집에 꼭 안 들러도 돼.”

실기실에 샤워실이며 수면실까지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밤샘 작업을 밥 먹듯 하는 학생들은 집을 오가는 시간을 아껴 한잠이라도 더 자려고 할 것이다. 겪어 봤기 때문에 잘 알았다.

그런데 이종하는 단 하루도 집을 비우지 않았다. 저녁을 함께 먹고 시간을 보내려 했다. 붉게 충혈된 눈을 한 주제에 매일 밤 나를 안았다. 질리지도 않는지 정성껏 나를 어루만지고 내 몸에 들어왔다. 잠들 때까지 내 곁을 지키다 슬며시 빠져나가 그림 고민에 빠져 있는 모습도 두어 차례 목격했다.

“너 때문이 아니야. 나 때문이야.”

“응?”

“너 봐야 내가 좋아. 안심돼.”

나는 드라이기 전원을 잠시 내렸다.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빗어 내리며 말했다.

“너 전에 사흘만 어디 다녀오겠다면서 열흘 넘도록 안 돌아왔던 거 기억해? 연락 한 통 없이.”

“열흘 만에 왔더니 외간 남자가 내 여자 집에 들어와 있었고?”

“그건! 다 설명했잖아.”

설명했어도 기분 나쁜 건 나쁜 거라고 퉁퉁거리는 입술을 꼬집었다. 지금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었다.

나는 이종하가 사흘을 기다리라고 하면 사흘을 기다린다. 한 달을 기다리라고 하면 기꺼이 한 달을 기다릴 것이다. 그 애가 약속한 시각에 반드시 돌아올 것을 알았다. 이종하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믿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네가 기다리라면 어디 안 가고 여기서 기다린다고.”

내가 말없이 훌쩍 떠날까 더 이상 불안해 말라고. 나는 그대로 몸을 굽혀 이종하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의 뺨에 내 얼굴을 기댔다.

이종하가 말한 기간은 일주일이었다. 일주일 내에 작업을 전부 끝내고 돌아오겠다고 했다. 나는 잠자코 기다리겠다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담백하게 대답한 주제에 일주일이 차기도 전에 이종하가 보고 싶어져 안달이 났다. 허리를 단단하게 끌어안는 팔 없이 잠들기 허전했다. 날이 밝으면 잘 잤냐며 머리를 쓸어 주는 커다란 손이 없는 것이 이상했다. 시도 때도 없이 몸을 부딪쳐 오는 체온이 없어, 눈을 마주할 때면 환하게 웃어 주는 네가 없어 하루가 참 길었다.

“어른인 척은 다 해 놓고.”

이게 뭐야. 자조적인 웃음이 난다. 이종하가 과할 정도로 표현을 해 와서 그렇지, 어쩌면 내가 그 애보다 더 그 애에게 의지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보고 싶다. 이종하가 보고 싶었다.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던 나는 결국 차 키를 찾아들고 밖으로 나왔다. 동이 트기 전이라 아직 사위가 어둡다. 불을 밝힌 헤드라이트 너머 부연 안개가 비쳤다.

막히지 않는 도로 덕분에 반 시간도 되지 않아 캠퍼스에 도착했다. 얼굴만 잠깐 보고 오려고 생각했지만, 막상 도착하니 이종하를 불러낼 수 없었다. 작업에 방해만 될 뿐이다. 겨우 일주일을 못 참아서 득달같이 쫓아온 것도 민망했다.

너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미술관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던 이종하를 떠올렸다. 보고 싶은 이를 기다리는 마음이 무엇인지 알았고 생각보다 지루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잠도 잘 안 왔는데 뭘.

나는 느긋한 마음으로 차 시트에 몸을 기댔다. 라디오에선 잘 듣지 않는 옛 팝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얼마쯤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까.

해가 뜨기 직전, 까만 밤안개를 걷어 내고 걸어오는 그 애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손짓하려던 것을 멈추었다. 서두르지 않는 이종하 특유의 걸음걸이가 눈에 들어와 박혔다.

언젠가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된다면 가장 처음으로 그릴 풍경은 지금 이 순간 너의 모습이다. 내가 그릴 그림의 주인은 네가 될 것이다.

“수연아.”

나를 발견한 이종하의 걸음이 멈칫하더니 이내 빨라졌다. 차에서 내려선 나는 내게 다가오는 이종하를 마주했다.

“나 기다렸어?”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이종하가 품에 안았다. 나는 그 애의 넓고 강인한 어깨너머로 눈만 빼꼼 내놓은 채 말했다.

“너 보고 싶어서. 못 참겠더라.”

“나도 너 보고 싶어서 빨리 끝냈어. 내가 가려고 그랬는데 조금만 참지. 이 새벽에 왜 위험하게 혼자 왔어. 나한테 전화했으면 내가 빨리 갔을 텐데.”

뺨에 이종하의 얼굴이 닿았다. 귓가에, 목덜미에 짧게 키스가 퍼부어졌다. 힘주어 끌어안고, 등을 쓸어 주고, 서로의 뺨을 비볐다. 자신이 안고 있는 것이 신기루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이라도 하듯.

“근데 수연아.”

“응.”

“네가 와서 너무 좋아. 나 보러 와 줘서. 내가 널 보고 싶어 하는 만큼 너도 날 보고 싶어 해 줘서. 나 지금 엄청 행복해.”

“나도.”

얼굴을 뒤로 물린 이종하가 내 얼굴을 빤히 내려다본다. 피로한 그 애의 얼굴에 미소가 번져 나갔다. 그 미소는 안도였고, 희망이었고, 기쁨이었다. 내가 이종하에게 그런 존재가 된 것이다.

1년 전 나양에서 나를 보는 이종하의 얼굴에는 늘 짙은 불안이 드리우고 있었다. 한여름, 이유 없이 찾아든 불청객으로 잠 못 이뤘을 밤이 얼마나 길었을까. 처음 마주쳤을 때처럼 끝날 때도 훌쩍 도망가 버릴 나를, 잡지도 못할 생각으로 얼마나 마음 아파했을까.

“집에 가자. 우리 집.”

그때의 못났던 나. 사랑받음에 어색하고 사랑이라곤 줄 수 없었던 망가진 나양의 불청객은 떠났다.

우리가 맞는 두 번째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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