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 3학년 F반에는 닌자가 있다(02)
* * *
"호오?"
내가 리타를 바로 찾아내자 사일리안이 흥미롭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고 다른 학생들도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리타 본인도 꽤 놀랐는지 투명망토를 나에게 잡힌 상태로 굳어있었고.
나중에 알게되는 일이지만 사실 리타는 학교에 충실히 나오고 자리에도 잘 있는 편이었다.
다만 [투명화]특성 때문에 눈에 띄지 않을 뿐이라 1회차 플레이를 할 때에는 중반에 사고로 리타의 투명망토가 사라진 뒤에야 처음 만날 뿐이지.
그 때 리타는 주인공, 즉 아렌의 정보를 줄줄 읊고 있는데 사실 그녀는 교실 내부에 있는 전원의 정보를 수집하여 가지고 있었고 주인공에 대해서도 꽤 흥미를 보이고 있었다.
대화를 걸면 처음부터 주시하고 있었다고 있다고 하는데 그 말은 처음 전학올 때부터 내 정보를 수집했다는 이야기고 현재 오필리아는 다른 여학생들에게 둘러쌓여 있으니 나에 대한 정보를 먼저 수집할거다...는 개뿔.
'내가 주인공이니까 내 근처에 있겠지'
지극히 시스템적인 판단으로 시도해본거다.
원래 게임상에서는 허공을 돌아다니면서 상호작용키가 뜨면 말을 걸어보고 '착각인가?'라고 몇 번 넘기고 나서야 리타가 투명화를 풀고 말을 걸면서 인연이 시작되지만, 지금은 내가 조종이 가능하니 투명망토를 벗긴 것이고.
"......"
리타는 기본적으로 말을 하지 않는다. 필요할 때에는 필담을 하는데, 절친 단계를 넘어야지 겨우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투명망토 안쪽에 있는 주머니에서 펜과 수첩을 꺼내서 빠르게 글을 적어 나에게 물었다.
[어떻게 알았지?]
"눈 앞에서 무언가 울렁거리길래 잡아봤지."
[우리 가문의 투명화는 그런 식으로 티를 내지 않아]
안다.
원래 투명마법이 걸려있는 망토는 미세한 일그러짐이 있어서 주의력이 깊으면 알아볼 수 있지만, 그녀의 투명화는 단순히 투명망토로 인한 것이 아니거든.
"나에게는 사람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이 있거든."
사실 정신을 집중하면서 각자의 스탯을 확인하려 할 때 앞자리에 있는 홀리오의 능력치가 아니라 리타의 능력치가 떠서 확인할 수 있었다.
'아무리 투명하더라도 시스템은 벗어날 수 없으니까 말이지'
원래 교실에서는 대화창을 띄워야 상대방의 스탯을 확인 가능하고, 그조차도 최소한 지인단계는 되어야 스탯을 볼 수 있고 그 전까지는 ???로 초상화만 나오게 되어있지만.
지금은 게임을 간접적으로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몸으로 볼 수 있는 상황이기에 강제로 스탯창을 띄워버리니 들킨 것이다.
'이것도 다들 아군으로 취급되어서 그런거지만'
애초에 적이라면 관찰스킬이나 특별한 아이템이 없으면 적의 능력치를 확인하지 못한다.
물론 게임 프로그램 자체를 뜯어서 공략에 올려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최종보스의 생명력이 5만이라던가 하는 대략적인 능력치는 외우고 있었지만.
"네가 리타지?"
"......"
내가 이름을 부르자 캐릭터 상태창에서 리타라는 이름이 해금되었다. 이미 정보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는 ???로 가려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눈빛이 사납게 변했다.
어떻게 알았냐, 는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어깨를 으쓱하며 미리 생각해둔 핑계를 대었다.
"카렌 선생님에게 친구가 될 이들의 이름은 들었으니까."
홱.
리타는 불쾌한 듯이 내 손에 잡힌 투명망토를 회수하고 다시 모습을 감췄는데, 그녀의 상태창이 보이는 나에게 있어서는 숨어봐야 벼룩이었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듯 싶다가 슬쩍 내 뒤로 돌아온다.
리타의 호감도가 '지인'단계가 되었습니다
초상화의 표정이 약간 홍조를 띄고 있었는데, 아무리 본체를 숨겨봐야 상태창은 숨길 수 없는 일이지.
'뭐... 눈에 보이는 태도로는 싫어하는 것 같아도 정석적인 호감도 공략을 시작하고 있구만'
리타는 정보력이나 통찰력이 좋은 남자가 취향이다. 닌자로써 동질감을 느끼는 건지 아니면 그냥 인텔리한 이미지를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하하하! 대단한데?"
이 모습을 구경하고 있던 사일리안이 다가오면서 먼저 손을 내밀었다.
"사일리안."
"아렌. 이미 이름은 알겠지만."
"카렌 선생님께서 몇 번이나 이름을 불러주셨으니 말이지."
씨익하고 웃으면서 나와 악수하고 있는 사일리안. 누가 봐도 나는 그냥 소심한 보조 NPC고 이쪽이 원래 RPG주인공의 정석이 아닌가 싶었다.
"우리도 리타의 존재를 알아채는데 반 년이 걸렸는데 말이야."
"반 년? 리타는 2학년이 되고 나서야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나?"
홀리오의 물음에 사일리안은 음흉한 미소를 지어보였는데, 홀리오는 그제서야 이곳에서 뛰어난 몇몇 강자들은 리타의 존재를 미리 알아차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각자의 사정으로, 특히 사일리안은 리타가 모습을 숨기고 있는 이유를 존중해주기 위해서 티를 내지 않았던 것이고.
"하여튼 다들 괴물들이라니까..."
"칭찬으로 들어두지. 그리고 앞으로도 잘 부탁할게 아렌."
"아아. 그래..."
사일리안은 뛰어난 인재를 좋아한다.
[빛의 왕자]특성은 단순히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라 사일리안이 이 왕국의 왕자라는, 즉 왕족의 혈통임을 나타내고 있었기 때문에 진짜로 백마탄 왕자님인 것이다.
사일리안의 호감도가 '지인'단계가 되었습니다
'성능도 좋고 사일리안과 친해지면 기사쪽 가문과는 덩달아서 친해질 수 있으니 나쁘지 않겠지'
1회차에서는 정신없이 아무하고나 친해지려 하다가 서로 사이가 불편한 친구들끼리 싸우고 호감도가 떨어지는 등 개판이 되어서 사일리안도 놓치고 말았지만.
아카데미 루트를 진행할 때 사일리안의 호감도가 절친급으로 높으면 지휘권을 나에게 양도하면서 군사로써 밀어주며 자신이 기사이자 왕위후계자로써 싸우지만 호감도가 낮으면 별도의 유격대를 만들어서 싸우게 허락만 해준다.
원수를 지면 조금씩 들어오는 지원군과 아이템, 도와주러 오는 NPC도 적어지니까 난이도가 심해지고.
참고로 나는 초반에는 지인 정도여서 중립이었다가 중간에 희생작전을 펼치는 바람에 사일리안이 격노, 단숨에 적대단계로 올라가는 바람에 마리안 하나로 깼으니까.
"그럼 점심시간에 보자고."
다들 수업을 들을 생각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오늘 자습이 시작될 것임을 알았는지 슬슬 모여있던 F반의 학생들이 한 명씩 교실에서 나가고 있었다.
하루 종일 교실에서 말을 걸면서 호감도 노가다를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2명 정도 호감도를 올리면 알아서 흩어지게 만들었는데 여기서 필요한 학생들을 따라가거나 찾아가서 추가로 호감도를 올릴 수 있었다.
드르륵.
내가 의자를 끌면서 밖으로 나가려고 하니 오필리아가 대화를 중단하고 나를 따라온다.
"아렌, 어디가?"
"화장실."
사실 장소는 어디라도 상관없었다.
거울을 꺼내서 뒤를 비춰보는 것으로 작은 상태창이 뜨는 것을 확인한 뒤 나는 인적이 드문 F반 건물의 옥상으로 향했다.
덜컹덜컹.
자물쇠가 걸려서 열 수 없는 장소였지만 옥상과 뚫려있는 창문틈으로 손을 넣어서 창 자체를 떼어내고 그 밑에 숨겨진 열쇠를 꺼냈다.
달칵.
이 열쇠는 앨리스가 숨겨둔 것인데, 그녀는 원래 옥상으로 통하는 문을 잠글 때 사용하던 자물쇠를 일부러 파손하고 자신이 미리 예비열쇠를 준비한 자물쇠로 바꿔두었다.
그 덕분에 교사들은 옥상을 철저하게 막아두었다고 생각하지만 앨리스는 이렇게 예비 열쇠를 통해 가볍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흠칫.
이 사실을 알고 있는건 자물쇠를 바꿔치기한 앨리스와 F반 학생들의 정보를 모으는 리타 정도?
본인도 알고 있는 정보겠지만 처음 전학온 사람이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오늘은 앨리스가 안 나오는 날이니까... 옥상에는 아무도 없지'
낡아빠진 F반 건물이었지만 옥상은 마음에 들었다.
군데군데 부서진 구멍에는 앨리스가 흙을 가져와서 간단한 텃밭을 만들어 두었고 중앙에 설치되어 있는 천막에는 하늘을 보기 위한 마법 망원경과 천문학 관련 책이 있었지만 저걸 건드리면 알람마법이 터지기 때문에 건드리지 않고.
입구로 들어오자 마자 나는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여기쯤이면 되겠지? 리타."
내가 한번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리타는 대답하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서 가만히 있는 모양이었는데 내가 빤히 그녀의 상태창이 떠 있는 부분을 노려보고 있으니 잠시 후 투명한 공간 안에서 리타의 검은 머리카락이 모습을 드러냈다.
스스스슥. 스슥.
[어떻게...]
"말했잖아. 나에게는 사람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글씨를 쓰던 리타는 눈쌀을 찌푸리면서 다음 말을 이어나갔다.
[어떤 수를 썼는지 모르겠...]
"네 진짜 이름이 타나미 이노리라는 사실도 알고 있지."
"......!"
달각...
리타, 아니 이노리의 손에 들려있던 펜이 바닥에 떨어졌다.
하기야 처음 만난 놈이 갑자기 자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나, 그것도 대외적인 이름이 아니라 실제 진명( 名)을 부를거라고는 예상하기 힘들겠지.
"어, 어떻게!"
1회차에서도 리타의 호감도를 크게 올리지 못하고 무난하게 이탈하는 상황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내가 직접 모은 정보는 아니었다.
'위키에 나와있더라'
위키에 리타(스포일러)라고 적혀있는데 그곳에는 진명이 기재되어 있었다.
자신의 복면을 벗고서 다급하게 묻는데 이미 주도권은 나에게 있었기 때문에 내가 능글맞은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자 그녀는 부들부들 떨면서도 다시 자신의 복면을 코까지 덮어썼다.
"리타라는 이름도 이곳 방식으로 이노리 타나미라고 바꾸고 앞글자를 따온 거지?"
이것도 위키에서 본 내용이다.
원래 리타와 친해지기 위해서는 역으로 그녀의 정보를 얻어야 하는데, 리타는 주기적으로 출몰해서 자신의 정보를 싹 치워놓기 때문에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운에 모든 것을 맡기고 투명화로 숨어있는 리타에게 계속 말을 걸어서 호감도를 올려야 하는데 이게 셀레스티얼 아카데미의 캐릭터들은 랜덤출몰이라 운이 없으면 리타 하나만 노려도 호감도를 끝까지 채울 수가 없었다.
어찌어찌 운이 좋아서 계속 찾아낸다 해도, 절친의 끝에 다다르면 다른 여캐와는 다르게 연인단계가 활성화되지 않는데 그 때 이벤트를 통해서 기밀유지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본가에 잡혀가게 되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쳐들어가는데 무한정 나오는 그림자 분신들과 싸워야만 했다.
일정 숫자를 잡는다고 클리어도 아니고 일정 턴이 지나면 강제 패배가 되면서 리타의 호감도가 초기화된다.
클리어를 위해서는 친구들을 통해서 막아서는 동안 주인공을 움직여서 그녀의 방으로 들어가 족보에 적혀있는 이름을 골라야 하는데 이것도 정말 악랄하다.
부모님의 성은 키타자와 유지로라면서 소개하고 전투를 시작하기 때문에 아버지 성을 따라서 키타자와 이노리라고 불러버리면 틀리고 리타의 호감도가 초기화되어서 돌아오게 되는 거다.
닌자 가문의 은밀성을 위해서 성씨조차 그 때 그 때 새로 지어주기 때문에 그녀의 실제 성은 족보를 찾은 방의 벽에 어린아이의 낙서로 적혀있는 타마미.
성공하면 가문의 규칙에 따라서 리타를 구하면서 절친 이상의 단계가 열리게 된다.
가문의 규칙이란 바로......
"항상 이름이 없는 무명인으로 살아갈 것. 필요하다면 그 때 그 때 버릴 수 있는 가명을 사용할 것. 하지만 단 한 명에게만 진명을 알려줄 것.
모든 것을 알고있는 내가 가문의 규칙을 부르자 리타는 자신의 얼굴을 푹 숙였다.
"이 정도의 통찰력을 가지고 계시다니..."
더 이상 복면으로 스스로를 감출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리타, 아니 이노리는 자신의 복면을 벗었다.
그녀의 표정에서는 존경과 신뢰, 그리고 애정이 담겨있었다.
"그림자 가문의 미천한 여식이 주군을 뵙습니다.
리타의 이름이 변경됩니다 : 리타 〉 타마미 이노리
이노리의 특성이 변경됩니다 : 투명화 〉 그림자인술
이노리의 호감도가 '주군'단계가 되었습니다
이름을 알려주는 한 명이 바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주군이 될 사람이다.
이노리는 이토록 얻기 어려운 캐릭터였지만, 그 대신 한 번 주군단계를 찍게 되면 어떠한 수를 쓰더라도 호감도가 줄어들지 않았다.
그리고 어렵다는 것도 1회차에서의 이야기지 2회차에서는 몇 가지 키워드를 통해서 그녀의 이름을 맞출 수 있었기 때문에 초반부터 얻어둘 수 있었고.
'물론 이노리의 이름을 물어보는 선택지를 띄우려면 일단 최소 한 번은 그녀의 주군이 되었던 데이터를 인계해야 하고, 그 이후로도 중반까지는 가야 이름 맞추는 선택지가 열렸지만...'
지금은 내가 마음대로 대화를 할 수 있으니 이름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이노리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할게."
"네. 주군."
그리고 이노리는 생일이 7월이라 성인모드에서 버그성 성향이 걸리는 바람에 마리안처럼 꼬여버릴 일도 없었다.
7월 이후에는 랜덤으로 배치되는 성적취향을 보면서 잘 굴려야 하겠지만.
가까이 붙어 있을 때 얼굴 옆에 새로운 창이 떴다가 사라진 것 같은데... 착각이겠지?
'뭐... 버그가 많은 모드니까. 잠깐 켜지려고 했다가 연령 확인하고 꺼졌나 보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