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파티가 너무 강함
* * *
고양이 수인 여자, 엘빈의 말에 따르면 이랬다. 인간 제국에서 날이면 날마다 박해당하고 살해당하고 노예로 잡혀가고 기타 등등의 취급에 질렸던 수인 무리는 용감무쌍하게도 저주 받은 대지로 대탈출을 감행했다.
"왜 하필 저주 받은 대지야?"
"오크도 인간도 모두 적이고, 사막에는 먹을 것이 없으니까요. 소거법이었습니다."
"이곳은 고블린과 마수 천지잖아?"
"고블린도 신의 은총이 없기는 마찬가지고, 그렇다면 수인이라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오판이었구만."
"먹을 것은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아무리 고블린들을 쓸어버려도 계속해서 다시 수가 불어났고, 년에 한두 번은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마수가 튀어나오니 이곳은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었어요."
"제국으로 돌아가는 건?"
"노예가 되어 운명을 남에게 맡기고 죽느니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싸우다 죽겠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각오했어요."
이만큼 표독스러우니 그나마 정신이 곧바로 다시 망가지지 않고 버틴 것일까. 현재는 조금 놀랐다.
"굉장히 꿋꿋한 의지를 가진 것 같은데, 너는 어쩌다가 수인이 되었나?"
왜 불의 신의 미움을 산 걸까. 현재는 그녀가 조금 궁금해졌다.
엘빈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수인인 남자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를 감싸다가 신께 버림 받았습니다."
"그 남자는 또 어쩌다가 수인이 됐는데."
"그는 태어날 때부터 수인으로, 아버지와 어머니 대가 모두 수인이었죠."
별 것도 아닌 웃긴 이야기라, 현재는 피식 웃었다.
"역시, 불의 신은 개새끼가 맞네."
그의 태도에 엘빈은 염려하며 떨었다. 오늘 처음 만난 현재지만 그녀를 구해준 은인이었다. 그런 현재가 신벌을 받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기에, 그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당신은 어떻게 그런 만용을? 신벌이란 언제 내릴지 아무도 모르는 것인데."
"미안한데 나는 애초에 불의 신한테 은총 받은 적이 없어. 그러니까 수인이 될 일도 없지."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자세한 건 비밀이다. 처음 만난 여자한테 털어놓을 정도로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라서. 아무튼, 이 여자들 전부 그 마을까지 데려다주면 되는 거겠지?"
현재는 기왕 구출한 김에 여자들을 수인 마을까지 데려다주기로 했다.
'사람을 쌀포대처럼 들고 있으니 기분이 묘하네.'
미아도 파탈리테도 벨딜도 둘씩 여자를 들었지만 그래도 여섯 명이나 남아서 현재는 혼자서 여섯을 들었다.
그의 넓은 어깨와 팔뚝을 생각하면 못 들 것도 없는 숫자였지만, 누군가는 밑에 깔려야 했기에 현재는 그게 좀 꺼려졌다.
"둘만 덜 기절했어도 훨씬 쉬웠을 거 같은데."
"제가 하나 업을까요?"
"환자는 무리하지 마셔."
엘빈의 제안을 거부하고 현재 일행은 그녀의 안내에 따라 수인 마을을 향했다.
현재가 로브를 빌려준 엘빈을 제외하면 여자들은 모조리 알몸이라 행렬의 기묘함은 한층 더했다.
* * *
수인 마을은 상당히 멀었다. 현재 일행의 발걸음이라면 1시간쯤 걸렸겠지만 안내자인 고양이 수인의 발걸음에 맞춘 까닭에 3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래도 나름 마을 같이 생겼네."
"고블린의 습격을 막으려면 이 정도 방비는 있어야죠."
마을은 통나무를 깎아 세운 목책이 사방을 꽁꽁 싸매고 있어 흡사 나무로 된 성과 같이 보였다.
벽돌을 만들 정도의 여유는 없었던 모양이지만.
"어, 어떻게!"
경비를 서던 마을 청년들은 깜짝 놀랐다. 영원히 다시 못 볼 줄 알았던 여자들이 잔뜩 돌아왔기 때문.
"마을의 사람은 얼마나 남았어?"
"마흔 명 정도야."
"이젠 쉰 명이 넘네."
엘빈이 웃었다. 감시탑 위의 청년들은 엘빈과 이야기를 나누더니 통나무를 깎아 만든 문을 열어주었다.
"그래도 경비들이 제대로 된 철제 무기를 가지고 있네? 철광을 캐서 제련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을은 아닌데."
"최초에 가지고 왔던 도구들을 다시 녹여서 재활용하고 있죠. 오히려 사람 수가 계속 줄어서 철은 남아돌 지경이랍니다."
사람 수가 줄어드는 건 죽기 때문, 그럼에도 엘빈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설명했다.
'정말 익숙한 건지 멀쩡한 척을 하는 건지.'
이 세계에 막 떨어졌던 현재보다도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의 모습에 어지간해선 흔들리지 않는 그의 마음도 부들부들 떨렸다.
"어딜 가나 장례식 같은 분위기, 익숙한 느낌이다."
파탈리테가 수인 마을 사람들에게 공감하며 한 마디 했다.
'엘프들 사는 곳도 이거랑 비슷한 분위기란 건가?'
역시 파탈리테의 소원은 빨리 이루어줘야겠다. 현재는 이미 갖고 있던 다짐을 한 층 더 강하게 했다.
그들은 안고 온 여자들을 청년들에게 맡긴 후 그들 중 하나의 안내에 따라 마을의 대표자인 촌장을 만났다.
"엘빈!"
"브사이!"
촌장은 젊은 청년이었는데, 물소의 귀와 뿔과 꼬리가 달린 물소 수인이었다. 아무래도 엘빈이 사랑했다는 수인은 그인 것 같았다.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꼭 끌어안았다.
"무사했구나! 엘빈! 나는 네가 꼼짝 없이 고블린에게 붙잡혀 모체로 쓰인 줄 알았어."
"맞아. 나는 고블린한테 붙잡혀 녀석들의 새끼를 스무 마리도 넘게 낳았어."
"뭐라고?"
브사이의 얼굴에 경악이 스쳤다. 그는 엘빈을 안은 팔을 풀고 떨어져 그녀를 보며 물었다.
"정말이야?"
"그래. 이분들이 날 구해주지 않았다면 죽을 때까지 계속 그러고 있었겠지."
엘빈의 말에 브사이의 시선이 현재와 그 일행에게 향했다. 그의 눈에 드러난 감정은 경악 뿐이었을까? 놀람 뿐이었을까?
아니면, 혐오감이나 역겨움 또한 섞여 있었을까?
현재는 브사이의 눈빛에 감사나 기쁨이 싹 사라졌다는 것에 상당한 착잡함을 느꼈다.
'나라도 부인이 고블린 새끼를 잔뜩 까고 왔다면 충격 받겠지만, 적어도 본인 앞에선 표정 관리 좀 해라 새끼야.'
과연, 엘빈도 브사이의 눈빛을 알아봤는지 여지껏 애써 견뎌왔던 그녀의 표정이 무너져내리는 게 옆에서도 보였다.
"저희 마을 주민들을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목숨만 겨우 부지한 채 살아가는 마을인지라 대접할 만한 것은 없군요. 되도록 빨리 떠나시는 것이 모두에게 좋은 일일 겁니다."
"브사이,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우릴 구해주신 은인인데."
"구해? 구한 게 아니라 데려온 거잖아. 구한 거라고 말하려면 고블린에게 범해지기 전에, 적어도 새끼를 배기 전에는 구했어야 구한 거지."
"너, 그게 무슨 의미야?"
브사이는 숨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혐오감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솔직히, 고블린의 새끼를 낳았던 여자들을 누가 반기겠냐고. 그 여자가 낳은 고블린이 우리 마을 사람들을 죽였으면 어떡해?"
"너, 지금 그거 내가 죽고 돌아오지 않았던 편이 나았다는 소리야?"
"차라리 거짓말을 하지 그랬어. 무사히 돌아왔다고 말해주지 그랬어. 고블린 따위 낳지 않았다고. 네가 나를 조금만 생각했다면 그렇게 날 속였어야지."
"너의 사랑은 겨우 그 정도로 바뀔 수 있는 거였어? 그럼 난 뭔데. 인간으로 잘 살아가다 너 때문에 은총까지 포기해버린 나는 뭐가 되는 건데?"
"포기한 게 아니라 빼앗긴 거잖아. 꼭 나 때문에 포기한 것처럼 얘기하지 마라? 나한테 반해서 잃어버린 거면서."
"이 미친놈!"
짝! 엘빈은 브사이의 싸대기를 때렸고 브사이는 기꺼이 맞아주었다.
"하나도 안 아프네. 정말 쓸모 없어졌구나."
엘빈 또한 험지 생활로 근육이 나름 붙은 여자였으나, 고블린 소굴에 붙잡혀 목줄에 매여있는 동안 근육이 전부 빠져버린 것이었다. 그녀의 힘은 마치 어린 아이 같았다.
"하아……."
엘빈은 감정을 억누르기 힘든지 한숨 직후에 거칠어진 숨을 쉬며 마을 저편으로 달려가버렸다.
'씨발. 구한 보람이 하나도 없네.'
아예 이해 못할 것은 아니었다. 사회적 인프라가 갖추어진 곳이라면 모를까,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마을에서 힘든 삶을 이어가는 이들이 폐인에 가까워진 피해자들을 마냥 반기기는 힘들었겠지.
'그렇다고 내가 돌봐줄 수도 없고.'
자원봉사도 정도가 있지. 바빠죽겠는데 괜히 어딘가에 얽매인다는 건 현재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모험가 분들, 보셨으면 알겠지만 드릴 것도 가진 것도 없는 곳입니다. 부디, 빨리 나가주셨으면 좋겠군요."
"그러지."
현재는 일행을 데리고 마을을 지나쳐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반대편 목책 너머로 나가려 하니 마을 구석에서 울고 있는 엘빈이 눈에 밟혔다.
'왜 이렇게 기분이 좆같지?'
현재의 발걸음이 뚝 그쳤다.
"얘들아.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냐?"
"신에게 버림 받은 종족에게선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파탈리테는 그 어떤 가감도 과장도 없이 이런 일에 익숙하다는 듯 담담하게 답했다. 현재는 그게 마음에 안 들었다.
"아니, 지금 저 여자들을 버린 건 신이 아니라 수인이잖아."
먼 옛날에 전쟁 포로로 잡혀갔던 여자가 돌아왔는데 적국의 아이를 배거나 낳은 후라면 화냥년이라 부르며 돌팔매질을 해 죽이거나 마을에서 쫓아냈다고 했던가.
딱 그런 느낌이었다.
'미개함에 열이 오르는 건가.'
이 시대에 21세기 한국의 방식으로 생각하는 인간은 없다. 황제도 귀족도 노예도 신도 모두 당연하게 존재하니, 그 모든 것이 없는 세상의 상식을 들이미는 건 말도 안되는 폭거요 이해받지 못할 기행일 뿐이다.
하지만, 현재는 그것 때문에 이 마을 놈들을 이해해줘야 한다는 게 갑자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이 시팔, 이대로는 못살아."
현재는 걸어왔던 길을 돌아가서 브사이를 찾았다. 별로 넓지 않은 마을이라 몇 분도 걸리지 않았다.
"무슨 일이신지?"
여전히 이방인을 경계하는 촌장의 모습. 현재는 대화 대신 주먹을 선택했다.
"으악!"
죽지 않을 정도로 힘조절을 해서 뺨을 쳤다. 그러나 죽지 않을 정도만 힘조절을 해서 이가 막 뽑혔다.
"고블린한테 붙잡혀갔던 게 네 가족이라고 생각해봐라! 아, 네 아내 맞지? 아내를 고블린한테 좀 당했답시고 가져다 버려? 너는 진짜 마음에 안 들어. 그러니까 내 마음에 들 때까지 맞아야겠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
퍽!
현재는 설명을 더하지도 않았고 변명을 듣지도 않았다. 그냥 때렸다. 왜냐하면 브사이를 때리는 게 매우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타격감이 좋군!"
물소 수인인 그는 체격이 커다랬고 근육도 매우 탄탄했다. 덕분에 한 대 칠 때마다 쫄깃한 감촉이 손을 휘감아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오늘부터 너는 촌장이 아니라 샌드백이다!"
현재는 신이 나서 브사이를 마구 팬 다음 밧줄로 묶어서 나뭇가지에다 매달아버렸다. 그걸 막아야 할 마을 청년들은 은총 받은 인간의 압도적인 무위에 겁 먹어서 덤벼들지 못했다.
애초에 인간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여기까지 도망쳐온 이들이었다. 그들에게는 목숨 걸고 싸우는 적인 고블린보다 멀쩡하게 눈 옆쪽에 귀가 달린 인간들이 훨씬 더 공포스러웠다.
대신 그들은 촌장을 살리기 위해 엘빈을 데려왔다. 인간을 데려왔으면 말려도 보라는 책임 전가였다.
"그만하세요. 그가 옳았어요. 고블린을 낳은 제가 마을의 환영을 받는 것 따위 처음부터 있을 수 없는 일이었어요."
다른 여자들은 그걸 알고 있었기에 정신을 고쳐줘도 도로 미쳐버리거나 자살을 시도했던 걸까.
엘빈은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만은 다를 거라고 착각했기에 어떻게든 버텨낼 수 있었던 걸까.
현재는 이 모든 상황이 정말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불의 신 개새끼."
은총을 주려면 전부 주든가 줬으면 뺏지 말든가 아니면 아예 다 주지 말든가.
왜 인간은 주고 뺏어가면 수인으로 만들어서 이딴 꼬라지를 만들었단 말인가? 현재는 정말이지 불의 신이란 놈이 마음에 들지 않기 시작했다.
'내가 은총 없던 시절이 생각 나서 정말 기분 더럽잖아.'
현재는 고민했다. 일단 기분이 나쁘니 촌장을 패기는 했는데 그래봤자 엘빈과 여자들을 그가 거둘 수는 없었다.
멀쩡히 은총 받은 케이트도 싸워본 적 없으니 짐이라고 돌려보냈는데, 그보다 훨씬 약한 수인들을 어디다 데리고 다닌단 말인가? 물론 케이트는 임신한 게 제일 큰 원인이기는 했지만.
"벨딜, 이 마을 수인들이 고블린들도 마수들도 무난히 이길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은 없겠냐?"
현재는 답답함에 드래곤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건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닌데요?"
그런데 벨딜은 너무도 쉬운 일이라는 듯 이야기했다. 현재는 당황했다.
"아니, 어렵지 않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는 이 상황에 답이 있다고?
"네."
"방법이 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