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순애조교 위강력간물-98화 (98/119)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작품후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달 한 해의 마무리 잘하시길 빕니다

파티가 너무 강함

* * *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고블린 무리를 학살하며 현재 일행은 주위를 수색했다. 그 결과 거대한 나무 뿌리 사이에서 마침내 지하 던전으로 가는 입구를 찾을 수 있었다.

"횃불을……, 들 필요는 없나?"

"빛이라면 맡겨주세요."

벨딜의 광원 마법이 있었기에 던전 초입부터 불을 들고 다닐 필요는 없었다. 말이 불이지, 건전지를 쓰는 랜턴보다 훨씬 어둡고 뜨거워서 위험하고 안 꺼지게 관리해야 하고 온갖 면에서 정말 끔찍한 조명이었는데, 그것을 전혀 신경 쓸 필요 없이 편해진 것이었다.

그렇게 형광등을 켠 듯 대낮 같이 환해 적응이 안되는 지하 던전으로 진입하여 빠르게 길을 걸었다.

"평소에는 그냥 벽돌이 있네 신기하네 했었지만, 이제 와서 보니까 무너진 신전 잔해 같은 모습이잖아?"

현재는 어렴풋이 램프로 비춰볼 때는 몰랐던 사실을 깨달았다.

"대지의 여신이 만든 던전이니, 그녀의 신전을 닮았다 해서 이상할 건 없지."

파탈리테가 그에 대답해주었다.

"수십 번을 들락날락했지만 이렇게 선명한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라, 좀 많이 낯설다."

"꼭 안에 해가 뜬 것 같아."

계속되는 현재의 감탄에 미아도 한 마디 거들었다.

"후후, 저의 쓸모에 감동하셨나요?"

단신으로 신에 비견하는 힘을 지녔으면서도 단순한 랜턴 역할에 즐거워하며 웃는 드래곤. 그녀는 아무래도 시끌벅적하게 걷는 이 순간이 굉장히 마음에 드는 듯 했다.

"전방에 마수 등장이다."

파탈리테가 아티팩트의 힘으로 다가오는 마수를 발견하고 경고했다.

"가볼까."

벨딜을 제외한 세 사람은 마수를 향해 공격을 했다.

쿠에엑!

집채만한 멧돼지 형태의 마수는 현재의 일검에 절명했다. 괜히 무기를 들었던 미아와 파탈리테가 민망해질 정도.

'몸을 채우는 이 충만한 느낌. 레벨이 올랐구나.'

현재는 상태창을 켜고 레벨을 확인했다. 확실히 19에서 20으로 한 계단 올라 있었다.

'고블린도 잔뜩 죽였고, 내 강함에 비해 레벨은 엄청나게 낮으니까.'

현재는 강함에 비해 레벨 업에 필요한 경험치가 매우 낮았다. 이런 쉬운 던전을 진행하면서도 금방 레벨이 오를 정도였다.

마수를 쓰러뜨리고 고블린 병사 수십 기와 전투하기를 여러 번, 모든 전투가 3분 내로 끝났기에 버벅이는 일도 없고 지치는 사람도 없어 휴식하는 일도 없었다. 그야말로 전차가 궤도로 도로를 밀듯이 나아가는 쾌속진격이었다.

"아니, 빨라도 너무 빠르잖아."

"빠르면 좋은 거 아닌가?"

"뭔가, 이전의 삶을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을 정도야."

"그러게."

마냥 만족하는 파탈리테와 달리 현재와 미아는 싱숭생숭한 기분을 느꼈다.

방금 30분간 지나온 구간은, 예전처럼 미아가 리더고 평범한 모험가 둘셋에 짐꾼 현재가 낀 파티였다면 하루는 족히 걸릴 구간이었다.

체력 분배와 휴식, 길어지는 전투, 극한의 긴장 등등을 모두 생각하면 그보다 더 걸릴지도 몰랐다.

"또 전투다."

"그리고 또 시시하겠지."

"긴장 풀지 마라."

"맞아. 방심은 좋지 않아 현재야."

파탈리테와 미아가 한 마디씩 하자 현재는 억지로 의욕을 끌어냈다. 공격력 치트를 치고 게임을 하는 느낌이랄까. 모든 적이 한 칼에 썰리니 시시해서 의욕이 나지를 않았다.

'나 언제 전투광이 되어버렸던 거지?'

그러고 보면 국경에서 강력한 기사와 싸울 때는 즐거움마저 느꼈다. 거미 하나 죽이는 것조차 꺼려서 미아에게 호되게 혼이 났던 서울 시민 유현재는 어디로 가버린 걸까. 현재는 옛 추억에 아련한 기분이 되었다.

"보스방이다."

"벌써?!"

3시간쯤 진행했을까. 옛날에는 1주일 정도 걸렸던 던전을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주파했다.

던전의 보상을 지키는 파수꾼은 몸집보다 커다란 순록 뿔 같은 걸 달고 있는 사슴인간이었다. 그리고 역시 한 방이었다.

"이런 건 던전이 아니야!"

현재는 슬픔에 차 소리질렀다.

"대체 뭘 바란 거냐?"

"추억은 추억으로 남겨야 아름다운 법."

"보상으론 뭐가 나왔을까요? 두근두근하네요!"

일행이 모두 한 마디씩 하며 보스방 뒷편의 보상방으로 들어섰다.

보물 상자에는 많은 금화와 보석이 박힌 목걸이가 하나 들어있었다.

"이거 아티팩트냐?"

"아니."

신력을 구분할 수 있는 파탈리테의 단언에 현재의 얼굴이 칙칙하게 굳어갔다.

"제일 쓸모 없는 것들만 나왔네."

금화가 통용되는 인간의 제국까지는 산맥을 도로 넘어가야 한다. 1년을 아예 안 들를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적게 들르자는 것이 현재의 계획이었고 그렇기에 금화나 보석 따위는 그때까지 무겁기만 한 짐이 될 예정이었다.

"가지고 다니기 무겁게시리."

그렇다고 버리기는 또 아까운 계륵 같은 존재. 그런 현재에게 벨딜이 해결책을 제시했다.

"제가 보관하고 있을까요?"

"배낭도 없는게, 아, 마법으로 수납할 수 있던가?"

"그렇답니다."

현재가 금화자루와 보석 목걸이를 넘기자 벨딜은 가슴골 사이로 그것들을 쏙하고 집어넣어버렸다.

"어휴 속시원해. 이게 인벤토리지."

"인벤토리?"

"대충 아공간 마법이란 뜻이다."

"아시는군요!"

"그런데 우리 배낭도 집어넣을 수는 없나?"

"그런 게 들어갈 것 같나요?"

벨딜은 자기 가슴 양쪽에 손을 얹고 물었다. 당연하지만 배낭이 가슴골 사이로 들어가는 건 무리인 걸로 보였다.

"아니, 왜 하필 입구가 거기인 거냐."

"구멍으로 인식되는 곳과 연결하기가 쉽거든요. 하지만 다른 구멍으로 나오는 건 그래서."

'거기를 구멍이라 생각하는 거냐.'

현재는 벨딜의 말에 아랫입에서 금화가 쏟아져나오는 그녀의 모습을 상상했다. 확실히, 벨딜의 말대로 그건 상당히……,

'상당히 꼴리는데?'

날이 갈 수록 변태 성욕만 늘어가는 현재는 나중에 한번 시켜볼까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럼 돌아갈까."

"보스도 물리쳤는데 급할 게 있을까. 잠시 휴식하기를 제안한다."

파탈리테의 말에 현재는 그녀를 살폈다. 말과 달리 그녀는 전혀 지치지 않아보였다.

'공기도 퀘퀘한 지하에서 무슨 휴식?'

그리 말하려던 현재는 미아가 상당히 지쳐보이는 걸 깨달았다. 여러 번의 전투를 포함해 세 시간동안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걸었으니 지칠만도 했다.

그녀의 페이스에 맞췄다면 모를까, 파티의 평균 이동속도가 너무 빠른 바람에 미아는 평소보다 훨씬 빨리 걸어야 했을 게 뻔했다.

'리더로서도 연인으로서도 영 눈치 없었구나.'

현재는 자신보다 약한 미아를 챙겨줘야 한다는 감각이 매우 생소하면서도 약간 흐뭇했다. 남자면서도 여자인 미아보다 훨씬 약했던 자신이 이젠 강해졌다는 한심한 생각일지도 모르고, 애인으로서 그녀를 지킬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안도감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이것이 옳게된 남녀 관계?'

그런 사실쯤이야 한참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미아에게 갈굼 당하거나 보호 받았던 기억이 잔뜩 있는 던전이란 공간에 들어오니 새삼 느껴졌다.

"그럼 밥이나 먹고 가자."

근처에 보스인 사슴 인간의 시체가 남아있긴 했지만, 여기에 그 정도로 비위가 상하는 나약한 인간은 아무도 없었다.

현재는 배낭에서 조리도구들을 꺼내고 장작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비장의 무기, 간이 냉동고에서 식재들을 꺼냈다.

황도의 암흑가에서 루스키에게 빼앗아온 아티팩트, 끝없이 냉기를 뿜어내는 신의 보물은 식재료를 보관하기 딱이었다. 아티팩트를 냉동고 대신 쓰다니 불경죄로 신의 심판이 내리면 어찌할까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걸 신경 쓰기에는 너무 자주 신을 거슬러왔기 때문에 이제 와서? 싶은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냉동한 식재료는 냉동하지 않은 것에 비해 수십 배는 더 오래 보관할 수 있었으므로 현재는 그럴 듯한 요리를 만들었다.

"이거 진짜 무슨 소풍 온 느낌인데?"

대낮인듯 환하게 밝혀진 지하 던전 안에서 냄비에 물을 끓이고 탕을 끓여먹는 이 감각. 도저히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에 현재는 실소를 흘렸다.

"즐거운 나들이네요."

"힘든 것보다는 편한 게 당연히 낫지 않으냐, 아니면 그대 스스로 괴로운 걸 즐기는 취향에 눈 떴나?"

"현재가 같이 있는 곳이라면야, 지옥도 천국으로 바뀌는 거지."

일행도 나름 즐기고 있는 듯 보였기 때문에 현재는 별 거 아닌 고민을 집어치우기로 했다. 그래, 힘든 게 문제지 편한 게 어떻게 문제겠는가. 앞으로도 계속 이렇다면 소풍 느낌으로 순식간에 던전을 싹 쓸어버릴 수 있을지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 * *

이틀 뒤, 네 개의 던전을 돌파하고 바깥에서 새 던전을 수색하던 현재 일행은 수상한 동굴을 발견했다.

고블린이 이상할 정도로 많이 등장해 동굴 깊은 곳이 던전과 이어져있지 않을까 의심하던 참이었다.

가장 안쪽 '번식방'에서 일행은 열 명이 넘는 수인 여성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토끼 수인, 사자 수인, 양 수인, 고양이 수인, 등등 종류가 다양했으나 그런 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고.

"왜 수인이 여기 있냐?"

수인은 인간이 신에게 버림 받아 영락한 모습, 즉 인간 제국에나 있어야 할 존재들이었다. 숫자가 겨우 한둘이라면 어쩌다 흘러들어왔겠거니 했겠지만은, 열 명이 넘는 숫자는 무언가 이상했다.

"저런."

미아가 같은 여성으로서 고블린의 임신 공장이 된 여자들에게 연민의 시선을 보냈다. 고블린은 암컷이 없고 예외 없이 전부 수컷으로, 소나 말이나 늑대, 또는 인간 등의 대형 포유류 암컷을 임신시켜서 번식했다.

신의 은총을 지닌 인간이 제국 영토 안에서 그런 꼴이 될 확률은 0에 가까웠지만, 던전과 마수가 가득한 저주 받은 대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까지는 아니었다.

애초에 이곳에 오는 인간은 거의 없지만 만일 온다면 높은 확률로 이런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현재 일행처럼 특별히 강력하지 않다면 말이다.

"모두 정신이 나갔군."

몇 번이나 출산을 했는지 아무도 제정신인 여자가 없어 말이 통하지 않았다. 대부분은 허공을 보며 아무 반응이 없었고 그나마 움직이는 여자도 울다가 웃거나 웃다가 울거나 할 뿐이었다.

"제가 고쳐볼까요?"

그런 상황에 벨딜이 앞으로 나섰다.

"고칠 수 있냐?"

"육체의 치료는 젖을 물리는 정도 밖에 못 돕지만, 정신의 수복이라면 맡겨두세요."

벨딜은 정신 지배 마법을 응용해 조각난 여자들의 정신을 이리저리 기워붙였다.

"큭!"

"끼야아아아아아악!"

"이건 꿈이야! 악몽이야!"

일부는 정신을 되찾자마자 기절해버렸고 누군가는 자살을 시도했다. 현재는 혀를 깨물어 죽으려고 한 여자를 파탈리테에게 치료시키고 기절하지도 자살을 시도하지도 않은 유일한 여자를 향해 다가갔다.

그녀는 고양이 수인이었는데 초췌한 와중에도 빛이 바래지 않는 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고블린의 임신 공장으로 쓰이고 있었다는 사실에 현재는 굉장히 안타까워 했다.

'아무리 그래도 고블린이랑 구멍 동서가 되기는 좀.'

고블린한테 따먹히지만 않았어도 작업을 걸었을 텐데. 현재는 아쉬워하며 대화를 시도했다.

"나 지나가던 모험가인데 너희는 대체 왜 여기까지 와서 고블린들한테 붙잡혀 있는 거냐? 제국에서 산맥을 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수인인 채로 넘어온 거냐, 아님 인간인 채로 넘어온 다음 수인이 된 거냐?"

"인간에게는 알려줄 수 없습니다."

"아니 그냥 인간이 아니고 생명의 은인이잖아."

"하지만 그렇다해도 인간에게는 알려줄 수 없습니다."

현재는 생각했다.

'겁나 튕기네. 그냥 벨딜한테 정신 지배를 다시 걸라고 시켜?'

정신 지배를 걸면 거짓말을 듣게 될 일은 없겠지. 여러모로 대화를 시도하는 것보다 훨씬 쉬운 길로 보였다.

"저희는 수인을 혐오하지도 않고 사냥하지도 않아요."

"모든 수인 사냥꾼이 그렇게 말하죠."

미아의 설득도 여자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나는 엘프다. 그리고 이들의 노예가 아니라 동료다. 이 이상의 보증이 더 필요한가?"

파탈리테가 나서서 자신의 기다란 귀와 구릿빛 피부를 보여주자 고양이 수인의 눈가가 떨렸다.

"정말로 노예가 아니라 동료인가요?"

"그래."

현재는 친근감을 보여주기 위해 파탈리테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러자 고양이 수인이 크게 움찔했다.

"아닌 것 같은데."

"뭐? 누가 봐도 화목한 모습이잖아?"

"잔인한 노예 상인과 비운의 노예 같은데요."

"이렇게 얼굴색이 좋은 노예가 있겠냐고."

"구릿빛이라 모르겠는데요."

"불의 신 개새끼."

"?"

"쪼잔하게 은총 가지고 갑질하는 찌질한 신 새끼. 내가 꼭 뒷통수 한 대 때리고 만다."

갑자기 시작된 현재의 신성 모독에 고양이 수인은 벌벌 떨었다.

"신벌이! 신벌이 내릴 거에요!"

"응. 안 내려. 그렇게 겁이 많으면서 무슨 수로 배교자가 됐대?"

그제서야 고양이 수인은 간신히 현재의 말을 좀 믿는 눈치가 됐다.

"어떻게 된 거냐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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