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순애조교 위강력간물-2화 (2/119)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작품후기]

잘 부탁드립니다.

아르젠타의 영웅

* * *

"으아아아아아아악!"

현재는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깨어나? 깨어난다는 건 죽지 않은 자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인데. 그럼 나는 죽지 않은 건가?'

흥분한 심장이 거칠게 뛰어 손을 대지 않아도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숨을 들이키면 폐가 늘어나는 감각, 어디에도 아픈 곳은 없다. 현재는 안도했다. 자신의 몸은 멀쩡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놀랐다.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기에.

썩은 내가 나는 뒷골목이었다. 꿈에서 깬 것이라면 집의 침대 위였을 텐데. 본 적 없는 양식의 건물들 사이였다. 술에 취해 서울의 거리에서 잠든 것이라면 고층 건물들 사이에서 눈을 떴을 텐데.

아니, 서울이 문제가 아니다. 시골 어디든지 한국에서는 본 적이 없는 양식이었다. 완전히 말끔하지는 못한 벽돌집들. 유럽의 거리로 던져진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낯선 건물들이었다.

"영어 마을인지 뭔지 하는 그거냐?"

영어 마을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지만 현재는 대충 그런 곳이기를 소망했다. 한국이라면 어떻게든 집에 갈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골목을 벗어나 거리에 나온 현재는 그 기대를 내려놓아야 했다. 사방에 지나다니는 이들 모두가 형형색색의 머리칼을 지닌 외국인들이었기 때문에.

"몰카인가?"

연예인도 아닌 그에게 이런 대규모 인원이 필요한 몰래 카메라 따위 찾아올 리가 없다. 그걸 알면서도 유현재는 부디 이 상황이 지랄 맞은 직장 선배들이 벌이는 장난이기를 바랬다. 그러지 않으면 아주 큰일이었기에.

"너, 뭐하는 거지?"

가죽 갑옷을 입고 롱소드로 무장한 경비병이 검을 겨누며 질문했다. 한국어는 아니었다. 한국어는 아닌데 왜인지 현재는 그 질문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뭐, 뭐가, 뭐요?"

당황하는 게 당연했다. 식칼을 겨눠도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든 것이 사람이었다. 그런데 살육 목적이 분명한 롱소드를 겨눠지다니 엄청나게 겁을 먹는 게 당연했다. 현재는 그런 삶을 살아왔다. 같은 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처음 보는 복식, 본 적 없는 얼굴, 아주 수상하기 짝이 없군."

"그냥 평범한 사람인데요."

여기가 어딘지, 왜 자기는 다른 나라의 언어를 알게 된 건지, 현재는 그걸 질문해서는 안됨을 직감했다. 이미 거동수상자로 찍힌 상태, 거기서 그런 의아한 질문을 던지면 잡혀갈 것이 분명하다고 느꼈다.

"신분증."

경비병이 신분증을 요구했고 현재는 주민등록증을 꺼내는 수 밖에 없었다. 가진 신분증이라곤 그것 뿐이기 때문이었다.

"뭐지, 이 카드는? 특이한 재질인데. 그리고 알 수 없는 말이 쓰여있어."

예상한대로, 경비병의 경계는 한 층 강해졌다. 그는 손짓하여 동료들을 불렀다. 경비병의 수가 하나에서 셋으로 늘어났다. 현재를 겨누고 있는 칼도.

"저기, 칼은 좀 내려주시면 안될까요? 저 비무장인데."

"온몸이 흉기처럼 생겨가지고, 비무장은 무슨."

경비병은 현재를 아주 경계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경비병 셋은 모두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170의 키를 넘지 못했다. 현재와는 머리통 하나 만큼 차이가 나는 상황. 경비병 뿐 아니라 거리 어디를 봐도 170을 넘는 이는 드물었고, 180을 넘는 이는 현재 뿐이었다.

"만약 고레벨이라면 맨손으로 우릴 찢어죽일 수 있겠지. 그러니까 긴장 풀지 마라."

경비병은 동료들에게 주의를 주며 현재의 거동을 살폈다. 세 사람에게 경계 당하는 상태인지라 현재는 마음을 전혀 놓을 수 없었다.

"어디에서 왔지?"

"서울에서 왔는데요."

"서울? 알아?"

"아니. 들어본 적 없어."

"서울이란 게 어디 있는 지명이지? 근처에 유명한 도시는 없나?"

한국에 서울보다 유명한 도시가 어딨어. 서울을 모르면 한국도 모르는 거 아니야? 현재는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필사적으로 굴렸으나 이 상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완전히 다른 세계, 한국은 커녕 지구조차 아닌 이상한 세계로 날아왔다는 생각이 들 뿐.

그렇지만 대답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대답하지 않으면 저 롱소드 세 개가 일제히 덮쳐들지도 모르고, 비무장인 자신은 무엇 하나 하지 못한 채 꼬챙이가 되어 죽을 것이었다.

"레벨이라니, 설마 오를 수록 강해지는 그 레벨?"

"뭔 당연한 질문을. 수상하군."

경비병은 아는 말이 수상하다 밖에 없는지 뭘 할 때마다 수상하다 수상하다 앵무새마냥 되풀이하고 있었다. 현재는 이 황당한 세상에 대해 어떻게든 이해하려 애썼다.

"그 레벨이란 건 어떻게 아는 건데요?"

"이 녀석, 수상한 정도가 아니라 위험한 녀석이다. 증원을 불러."

"아니 어째서?"

수상함에서 위험함까지 경계 레벨을 올린 경비병은 동료를 시켜 증원을 불러왔고, 현재를 포위한 경비병은 열 명까지 늘어났다. 경비병이 열 명이나 모이니 사람들이 구경을 하기 시작했고, 현재 주변에는 서른 명이 넘는 인파가 모여 장사진을 이뤘다.

190을 넘는 현재와 평균키 160 언저리의 사람들, 그 모습은 흡사 거인을 구경하는 소인국 사람들과도 같이 보였다.

"배교자가 아닐까?"

"아니, 저런 짧은 머리 안에 귀를 숨길 수 있을 거라 생각되진 않아."

"그럼 역시 무슨 흉계를 꾸미고 있는 건가?"

"경계를 늦추지 마라."

열 개의 롱소드가 겨눠진 현재는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괜히 움직이기라도 하면 그럴 줄 알았다며 칼이 쑤셔질 것 같은 상황.

"아니, 뭔 소린지 모르겠는데요. 레벨이 대체 뭔데? 어떻게 보는 건데?"

현재는 할 수 있는 최악의 선택을 했다. 자신은 그 사실을 몰랐지만.

"정말로 레벨이 뭔지 모른다고?"

"몰라요!"

"상태창, 이라고 말해봐라."

"상태창?"

현재는 그리 말했으나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

"뭐가 보이지?"

그러나 경비병은 당연히 뭔가가 보이리라 확신하는 모양새였다.

"아무 것도 안 보이는데요?"

순간 연기를 할까 생각도 해보았으나 현재는 그 생각을 접어두었다. 이 세계가 어딘지, 어떠한 세계인지 전혀 모른다. 롱소드 열 개가 겨누어진 상황. 괜히 어설픈 연기로 경계 레벨이 올라갔다간 정말로 꼬챙이 형에 처해질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이 느껴져서, 어쩔 수 없이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것은 또 최악의 선택이었다.

"역시 배교자다!"

"그럼 왜 저주가 피해간 거지?"

"어쩌면 곰 수인일지도 몰라. 그리고 귀를 자른 거지."

"과연! 그러면 저 덩치가 설명되는군!"

"목걸이가 없는 곰 수인이라고? 대체 여기까지 어떻게 들어왔지?"

현재는 그 말들을 거의 이해할 수 없었으나, 배교자니 저주니 하는 것들이 결코 좋은 의미일 리 없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도망쳐야 하나? 맞서싸운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아무리 체격 차이가 난들 검으로 무장한 이들과 맨몸으로 싸울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

그러나 도망친다는 건 또 어떨까. 어디로 가야 할지, 얼마나 가야 할지도 모르면서 도망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그러나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다고 좋은 결말이 나오지도 않을 것 같은 상황. 현재는 도망치기로 결심했다.

"잠깐, 비켜봐요."

그 순간 인파를 헤치고 어떤 소녀가 나타났다. 형형색색인 군중의 머리들 속에서도 특히 아름답게 빛나는 선연한 분홍색의 머리칼, 그와 같이 신비한 분위기와 색을 지닌 눈동자, 앳됨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다 자라지 못한 미인의 얼굴, 허리춤엔 벨트 위로 검을 차고 있고 가슴팍에 철판을 덧댄 원피스 비슷한 독특한 복식을 입고 있는 소녀였다. 움직이는 것에 방해가 되지 않게 단발을 하고 있는 소녀였지만, 긴 머리가 아니라는 점은 그녀의 미모를 전혀 해치지 못했다.

"미아 님이시다!"

"미아 님이 오셨어!"

"좋아! 우린 이제 무사할 거야."

경비병들이 좋아하고 또 안도하는 것에 현재는 매우 의아함을 느꼈다. 마치 터무니 없는 강자가 나타나 자신들을 지켜주리라고 믿는 것 같은.

그러나 그렇다기에는 너무 작고 가녀린 소녀였다. 인파를 헤치고 나왔다는 것은, 다시 말해 헤치지 않으면 인파에 묻힐 정도로 작은 체구라는 뜻이었다. 그녀의 키는 행인들 중에서도 더욱 작아 150 남짓의, 한국의 기준으로 보면 초등학생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현재와는 머리통 하나를 넘어 그것보다 더한 차이가 나니, 나란히 서면 가슴보다도 밑에 머리통이 오는 수준이었다.

"이름은?"

한 박자 늦게 현재는 소녀가 자신에게 물은 것임을 깨달았다.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반말을 해서 눈치 채지 못했었다. 저런 꼬마에게는 아저씨라고 불리는 게 너무 당연한 일이었기에.

"현재, 유현재, 요."

그러나 분위기에 휩쓸린 현재는 존대를 붙일 수 밖에 없었다. 꼭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도 된 기분이었다. 이상한 건물, 이상한 사람들, 그리고 이상한 소녀.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한 기분.

"어디서 왔지?"

"서울. 한국이란 나라의, 서울이요."

"한국이란 나라? 무슨 소리야."

소녀는 아주 이상한 소리라도 들었다는 듯이 미간을 좁혔다.

"인간이 사는 나라는 하나 밖에 없잖아. 휘렌스 제국. 그럼 너는 제국 바깥에서 왔다는 거야?"

소녀의 말에 현재는 깔끔히 인정했다. 이곳은 지구가 아니다. 꿈이라기엔 공기의 감촉 귀를 간질이는 사람들의 소음 그리고 눈 앞에 있는 소녀의 이미지가 너무나 선명해서, 이게 현실이라고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지구에는 제국이 없었다. 적어도 21세기에는.

"아니, 제국 바깥이 아니라 다른 세계에서 온 것 같은데요."

"다른 세계?"

"네. 다른 세계."

"농담하는 거야?"

현재는 황당했지만, 황당한 만큼 소녀가 이해도 됐다.

"아니, 진짜 다른 세계에서 왔는데, 이걸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네."

자신도 서울 한복판에 나타난 이상한 복장의 사람이 자기는 다른 세계에서 왔다 하면 그냥 미친놈이라 생각하고 말았을 테니까. 하지만 현재에게 한 자리에서 그럴 듯한 이야기를 꾸며내는 재주 따위는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진실을 말하는 수 밖에는 없었다.

"왜 왔는데?"

"모르겠는데요."

"왜 왔는지 모른다고?"

"차에 치일 뻔 했다가 겨우 피했더니 비행기에 깔려서……. 아니 생각하니까 열받네."

차를 피했으면 살려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대체 왜 비행기가 추락하는데?

"비행기가 뭐야? 마차를 피했더니 비행기에 깔렸다고? 무슨 소리를 하는지 하나도 이해가 안 가는데. 다른 세계에서 온 거랑 마차가 대체 무슨 상관?"

저도 하나도 모르겠다고요 씨발! 현재는 소리를 지르려다가 겨우 참았다. 자신은 최대한 무해한 인간이라는 걸 어필해야만 했다. 안 그랬다간 순식간에 롱소드 10개, 이제 눈 앞의 소녀까지 11개의 검이 자신을 노릴 테니까.

"아무튼 저는 나쁜 의도는 하나도 없고요. 위험하지도 않고요. 누굴 공격할 생각도 없습니다. 그러니 그 싸늘한 날붙이들 좀 치워주시지 않을래요?"

경비병들은 소녀의 눈치를 봤다. 소녀가 말했다.

"다들 검은 거둬주세요. 이 자는 제가 데려가서 취조하도록 하겠습니다."

"미아 님께서 맡아주신다면야."

"고생이 많으십니다."

"따라와."

소녀는 그리 말하고는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인파가 모세의 기적마냥 갈라지며 길을 터줬고, 구경꾼들과 경비병들은 흩어지기 시작했다. 현재는 어쩔 수 없이 소녀의 뒤를 따랐다.

뭐라 물을 생각도 못한 채 소녀의 뒤를 걷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아는 체를 해왔다.

"미아 님! 안녕하세요!"

"안녕."

도시 소녀의 인사.

"미아 누나! 저 거인은 누구야?"

"다음에 얘기해줄게. 지금은 바쁘거든."

"힝."

도시 꼬마의 인사.

"미아 님, 잘 익은 사과가 들어왔는데, 가져가서 드시죠."

"고마워요."

과일상의 인사와,

"미아 님, 빵이 잘 구워져서."

"미아 님, 베이컨."

"미아 님."

빵집, 정육점, 기타 등등, 중간부터는 뭔가 연예인에게 조공을 바치는 팬처럼 도시 사람들이 이것저것을 떠넘겨줘서 소녀의 품은 뭘 더 들 수 없을 정도로 가득 찼다.

'지금 도망치면 못 잡는 거 아닐까?'

현재는 도망칠 찬스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러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이 대하는 걸 보면 미아라는 소녀는 굉장히 인망 있고 착한 성격일 듯 했다. 단순히 귀여워서 그러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그때는 그때고.

'경비병들한테 또 포위 당하느니 이 아이에게 확실한 설명을 듣는 게 낫겠지.'

뭘 하려 하든 정보라는 게 필요했다. 그리고 이 아이라면 굉장히 무해해 보였다.

'살짝 두근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지옥 같은 나날들이었다. 그 자체로 고된 주방일에 역겨움을 듬뿍 끼얹는 사람들. 언제 때려칠까 고민하길 반복하는 나날들이 숨막혀서 죽어버릴 것 같았다.

'뭔가 설레는 일이 있을 것 같잖아? 다른 세계라는 건.'

레벨이 있는 세계. 그렇다면 게임에 가까운 세계가 아닐까. 게임이란 건 재미 있으라고 만든 것이고, 그러니 분명 이 세계도 재미 있으리라고, 현재는 근거 없이 그런 희망적인 관측을 했다.

곧 산산조각날 관측을.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