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8 영지시찰 =========================
‘설마, 포니걸이 그녀를 차 날렸단 말인가’
포니걸들은 기본적으로 함부로 다른 인간이나 가축에게 해를 가하지 않도록 되어있었다.
자신이 주인이 아닌 이상 왠만한 기사들 조차 무시하는 백작의 최고급 포니걸들은 엄청난 자존심으로 유명했지만, 그만큼 혹독한 조교와 훈련으로 주인을 태우거나 마차를 끄는 것 이외에 반응하지 않도록 훈련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벌어진 일의 이유보다 위중한 상태임이 분명한 소녀의 애완암캐를 살펴보는 것이 더 먼저였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병사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애완암캐를 살펴보기 위해 제시가 그녀에게 다가가려 하였지만 한명의 병사가 제시의 앞을 막아섰다.
“죄송합니다, 제시 기사님. 지금 가셔도 어차피 죽을 암캐입니다”
“뭐? 저렇게 살아있는데 어째서 죽는다는 거냐?”
“저 암캐는 백작님의 포니걸을 더럽혔기 때문에 처분되어야 할 암캐입니다”
제시를 막아선 병사가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포니걸을 구경하던 소녀의 암캐가 포니걸의 다리에 오줌을 갈겨 포니걸을 더럽혔다는 것이었다.
포니걸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의복인 포니부츠는 모든 포니걸의 자존심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최고급 가죽과 강철로 마감된 포니부츠가 한낱 저급 암캐의 오줌으로 더러워진 것에 극도로 분노한 포니걸이 오줌을 싼 암캐를 그 강인한 근육이 압축된 다리로 차 날려버렸던 것이다.
자신의 신체보다 몇 배는 무거운 마차를 가볍게 끌 수 있고, 풀 플레이트메일을 착용한 기사를 태운 채 수km를 달릴 수 있는 포니걸의 다리근육은 그 자체만으로도 흉기에 가까웠다.
수대에 걸쳐 마법에 의해 품종과 혈통이 변질되어 하반신에 특화된 근육을 가진 포니걸의 허벅지와 종아리 그리고 발목근육은, 극도로 압축되어 아름답고 매끈하게 보일지언정 그 질김과 탄력은 인간의 것과 완전히 달랐다.
인간의 형상을 취하고 있기에 그 높이와 힘을 발휘하는 구조적 한계로 인해 전투에는 활용되지 못하고 있지만, 근력 자체만 보면 전투마보다 뛰어난 하반신의 근력은 부유한 기사들이나 귀족들이 즐기는 이동수단이었다.
보통인간이었다면 일반적인 말의 뒷발에 채이는 것만으로 절명할 수도 있지만, 강인한 육체를 가진 애완가축이었기에 전투마보다 강력한 포니걸의 발차기를 맞고도 숨이 붙어 있었다.
“비켜라! 책임은 내가 지겠다”
제시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병사를 밀쳐내고 바닥에 쓰러져 움직이지도 못하는 비스킷에게 다가갔다.
그렇지 않아도 자신에게 극히 불리한 조건이 걸릴게 뻔한 병력지원을 앞두고 있었지만, 눈앞에 부상당해 고통스러워하는 생명을 좌시할 만큼 제시는 이기적이지 않았다. 기사로서 귀부인이던 평민이던 심지어는 가축이던 간에 약자는 보호해야할 존재였기 때문이다.
“케헥... 흐으, 꺼어... 헤엑 헤에엑...”
“보, 보지기사 언니! 비스킷을 구해주세요, 제발!”
바닥에 널브러져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자신의 애완암캐 비스킷에게 다가가는 제시를 알아본 소녀가 소리쳤다.
머리통보다 거대한 젖가슴을 드러내고 훈련으로 단련된 아름답고 매끈한 나신을 드러낸 여기사는 멀리서도 단숨에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은 세상에 공개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새하얗게 햇빛이 부서지는 아름다운 알몸과 음란한 존재감을 과시하는 거대한 젖가슴을 따라 흘러내리는 은빛 체인은 둘도 없을 만큼 환상적인 조각이었다.
“......이봐, 비스킷. 비스킷! 일단 숨을 쉬어봐”
자신을 애타게 바라보는 어린 소녀와 눈을 마주친 제시가 고개를 굳게 끄덕이고 비스킷의 상태를 살폈다.
호홉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도 약간씩 숨을 들이킬 때마다 고통스러워 하는 것을 보니 갈비뼈가 제대로 부러진 것 같았다. 강인한 가축의 육체와 마차에 얽매여 제대로 힘을 주지 못한 포니걸의 상황이 맞물려 그나마 심한 부상이 아닌 것으로 그쳤다.
“허억, 컥, 히으으으읏...”
자신을 돌봐주는 누군가의 손길을 느낀 것인지 비스킷의 호흡이 점차 안정되게 변했다.
잔뜩 힘이 들어간 사지의 근육도 이완되며 천천히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안쓰럽게 주인이 찾아올 수 없었기에 방치되었던 비스킷은 가축의 본능으로 의존할 수 있는 사람의 온기를 찾았던 것이다.
“병사, 그녀, 아니 이 암캐를 얼른 치료소에 데려다 주도록”
일단 급한 대로 근처의 돌아다니는 나뭇조각을 부목으로 응급처치를 한 제시가 병사에게 명령했다.
아무리 강인한 육체를 가진 암컷가축이라도 갈비뼈가 부러진 이상 숨을 쉬는 것 조차 고통스럽고 움직이기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네발로 기어 다니는 암컷가축의 특성상 앞다리와 상체를 격하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갈비뼈가 부러진 것은 매우 치명적이었다.
그러나 명령을 받은 병사의 반응은 제시의 예상을 벗어났다.
“죄송합니다, 제시님. 이 암캐는 백작님의 포니걸을 더럽힌 죄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더 이상은 사정을 봐드릴 수 없습니다.”
“내가 백작님께 말씀드린다 해도 말인가?”
“즉결처분이 원칙이지만 백작님께서 오늘 마을에서 일어난 모슨 사건은 직접 보고 결정하신다는 명령을 내리셔서 어쩔 수 없습니다. 더 이상은 제시님이라 할지라도...”
병사가 긴장된 표정으로 휘하 병사들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비무장이라 하더라도 제시가 마음만 먹으면 병사 열댓 명쯤은 피해 없이 제압하는 것도 가능했기 때문이다. 병사들은 단순히 백작의 명을 충성스럽게 이행하기 위해 더 이상 제시가 임무를 방해한다면 희망이 없었지만, 제시를 향해 무력을 사용해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알았다. 대신 저 암캐는 이대로 건드리지 말도록. 갈비뼈가 전부 부러져서 움직일 수도 없을 것이다...”
백작에게서 자유롭지 못한 이상 더 이상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만약 추가병력지원을 부탁해야하는 상황만 아니었다면 백작의 불쾌함을 감수하고서라도 행동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자신은 주군을 위해 백작에게 부탁을 해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백작의 심기를 상하게 할 만한 어떤 행동도 쉽게 할 수 없었다.
“보지기사님! 비스킷을, 제 친구를 살려주세요!”
병사와 제시가 나눈 대화가 얼핏 들렸을 것일까.
열 살 남짓한 어린 소녀가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운 말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 자신이 어릴 때부터 함께했던 소중한 애완암캐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큿... 미안하구나...”
제시는 고개를 숙인 채 소녀의 옆을 빠르게 지나쳤다.
차마 자신을 쳐다보는 소녀의 애처로운 눈망울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묵직했던 허리춤이 오늘따라 너무나 허전하게 느껴졌다. 한 자루 검만 있으면 누구라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지금 자신에게는 갑옷도, 검도 아무것도 착용이 허락되지 않는 부끄러운 알몸이었다.
물론 갑옷과 검이 있다고 해서 지금 상황을 해결하는 데에는 어떤 도움도 되지 않겠지만 제시의 마음은 이상하게 불안하여 무엇인가 의지할만한 것이 절실히 필요했다.
‘비스킷을 차버린건...’
제시는 소녀의 애완암캐 비스킷을 걷어찼다는 포니걸을 찾기 위해 마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역시 한 마리의 포니걸의 표정이 무섭게 굳어있었으며 얇게 흙먼지가 앉아있어야 할 검정색 포니부츠에는 짙은 얼룩이 번져있었다.
게다가 곧은 자세로 자리를 지켜야 했기 때문에 포니걸의 자존심인 포니부츠의 주변에 번진 암캐의 오줌웅덩이도 그대로 남아있어, 포니걸의 굳은 표정을 풀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저 포니걸인 모양이군’
언제나 높은 자존심과 자부심으로 오만해보이기까지하는 미소를 머금고 있는 포니걸 중 유일하게 한 마리의 얼굴만이 굳어있었다.
병사들이 서둘러 포니부츠만은 닦아낸 모양이지만 이미 오줌은 포니걸의 포니부츠에 스며들어 천한 저급암캐의 더러운 분비물의 흔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지?”
때마침 백작이 자신의 포니마차로 돌아오며 소란스러운 상황을 알아채고 병사를 향해 질문했다. 영지시찰을 모두 마치며 무엇인가 큰일을 끝낸 듯한 후련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언제나 정기적으로 하는 영지시찰인데 저렇게 보람있었다는 표정을 짓는 것이 약간은 이상하기도 했다.
============================ 작품 후기 ============================
쿠폰을 주신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그만큼 재미있으셨다고 생각하니 글쓰는 재미가 더욱 많이 납니다.
이제 슬슬 길고 길었던 영지시찰 편이 끝나가네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