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화 〉 인터넷 박제소(4)
* * *
건물 내부에는 그림자가 짙었다.
하지만 실내전에서 유리한 것은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린 더스트 연막 수류탄을 던져넣곤 먼저 돌입한 헌터들의 상태를 살펴봤다.
"괜찮아요?"
"저, 저희는 괜찮습니다!"
"윗층으로 도망쳤어요!"
다행히 헌터들은 죽진 않았다.
놈이 무고한 헌터들까지 죽일만큼 미치진 않은 것이다.
앨리스와 나는 서둘러서 계단을 올랐다.
어차피 밖에는 예리엘이 대기하고 있으니, 놈은 건물 안에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자리를 옮기는 것은 우리에게도 전혀 나쁜 일이 아니었다.
어차피 연막 수류탄은 여유롭게 챙겨왔으니, 건물 전체를 제압하면 그만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 바깥쪽의 팀원이 무전을 보내왔다.
[팀장님. 사이트에 새 영상이 올라왔습니다. 한 번 보셔야겠는데요?]
"뭐야?"
뻔히 체포 작전 중인 걸 알면서 저런 소리를 한다니.
보통 심각한 사안이 아니라는 뜻이다.
내가 서둘러 스마트폰을 꺼내들자 인터넷 박제소 사이트에서 새로운 투표가 진행되고 있었다.
가짜 그린 더스트는 아예 실시간으로 방송중인 듯, 방독면을 쓰고 출연했다.
"이 자식, 아예 생중계를 하고 있잖아?"
"돌입할까?"
"잠깐만 기다려봐."
어차피 퇴로는 막혔으니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다.
나는 실내의 구조를 살펴볼 겸, 동영상의 내용에 집중했다.
어두운 방 안에는 체포 대상 외에도 2명의 사내가 묶여있었다.
보아하니 인질인 것 같은데, 섣불리 진입하지 않길 잘 했다.
하지만 그런 감상도 잠시.
가짜 그린 더스트가 놈들의 정체를 공개하자 경악이 온몸을 휩쓸었다.
[안녕, 정의의 아군들. 갑작스럽게 투표를 진행하게 됐는데 많이 모여줘서 고맙다. 이놈들의 이름은 강전호와 박민재. 우리 사이트, '인터넷 박제소'의 운영진이다.]
"뭣? 그, 그럼 아군이잖아?"
"쉿..."
일이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다.
분명 해외 서버를 쓰고있는 줄 알았는데, 정작 운영진이 국내에 있었다니.
내가 당황하고 있자 화면 속에서 이런저런 증거물이 속속 공개됐다.
[이들은 해외 서버 호스팅 서비스를 이용하여 인터넷 박제소 사이트를 개설하고 운영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정작 본인들이 범죄를 저질렀더군. 강전호는 마약류 사용 및 판매, 박민재는 성범죄 전과가 있다.]
그럼 그렇지.
저런 정신나간 사이트를 운영하는 놈들이 멀쩡한 인간이리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전과 하나둘 정도는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진작 예상하고 있었다.
가짜 그린 더스트는 채팅창이 폭주하는 가운데 담담히 목소리를 이어나갔다.
[두 사람이 사이트에 게시한 '범죄자'들 중에는 무고한 사람도 없지 않았다. 개중에는 본인들을 잡아넣은 형사와 검사, 형을 내린 판사까지 포함되어 있었지. 하마터면 우리 모두가 속을뻔 했던 것이다.]
멀쩡한 사람을 범죄자로 몰아서 피해를 입힌다...
이것도 그리 놀라울 것은 없는 활용 방식이다.
우리가 염려했던 악용법 그 자체.
불행 중 다행으로 가짜 그린 더스트가 놈들에게 속을만큼 멍청하진 않았던 것 같다.
아니... 과연 다행이 맞는 걸까?
내가 금세 생각을 고치고 있자 화면 속에서 투표가 시작됐다.
[과연 이 거짓말쟁이들을 어떻게 처벌해야 할지, 판결을 부탁하고 싶다.]
[사형! 결단코 사형!]
[성범죄자는 거세가 답 아닌가?]
[거세로 사형을 하는 거지.]
굉장히 열광적인 시청자들의 반응.
나와 앨리스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방으로 돌입했다.
그러나, 문을 열자마자 진한 피비린내가 코를 찔러댔다.
"읏..."
"늦으셨군요. 늘 그랬던 것처럼."
가짜 그린 더스트는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것은 결코 쇼맨십 따위는 아니었다.
놈의 얼굴에는 강행군으로 인한 피로가 역력했다.
어제부터 제대로 휴식도 취하지 못하고 살인과 납치를 반복한 결과였다.
놈의 뒤에는 피를 흘리며 죽어있는 피해자가 두 명.
반면, 화면 속의 투표는 아직도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겨우 상황을 눈치채곤 격분했다.
생방송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녹화본이었다.
건물의 내부라서 시간 파악이 정확하게 되지 않았다.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죽인 거냐!"
"어차피 사형이니까요. 이거 보세요."
핼쑥한 얼굴의 녀석이 투표의 결과를 보여줬다.
당연하지만 결과는 사형파의 압승.
이윽고 화면 속에서 처절한 비명이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어쩌자고 이런 짓을 하는 거야! 너는 도대체 뭘 하고 싶은 건데!"
"글쎄요...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어요. 다만 이번 일은 끝까지 해볼 생각이에요."
"이미 운영진까지 죽여놓고 뭘 한다고?"
내가 애써 코웃음을 치자 녀석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도살인, 사형. 성범죄, 사형. 마약 사범, 사형. 성추행도 사형."
지금껏 인터넷 박제소에 내걸렸던 범죄자들의 죄목이 줄줄이 튀어나왔다.
앨리스가 작게 움찔거리며 내 앞을 막아섰다.
놈은 그것을 본 체 만 체 하며 태연히 말을 이어나갔다.
"판결이 참 명쾌하지 않습니까? 이거야말로 진정한 정의구현이죠. 이제부터는 점점 더 수위를 낮춰볼 생각입니다."
"아, 그러셔?"
"다음은 무고범. 그 다음에는 절도범... 언론인들을 심판대에 세우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인터넷 심판대? 그게 네 결론이냐?"
"네. 이거야말로 진정한 배심원 제도 아니겠습니까? 익명성 뒤에 숨어서, 아무런 부담감도 없이 처벌을 내리죠. 어떠한 외압도 적용되지 않는 공정한 판결... 진정한 민주주의의 구현입니다."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연막 수류탄을 던졌다.
그러나 놈은 즉시 그림자를 일으켜서 그것을 건물 밖으로 쳐냈다.
진작부터 경계하고 있었던 느낌.
아까 지하에서 무턱대고 던진 다음 돌입했던 것이 실수다.
"멈춰!"
그새 소환을 준비한 앨리스가 회중시계를 휘둘렀다.
실내라는 환경은 그녀에게도 상당히 유리하다.
순식간에 살인토끼가 나타나고, 칼날이 벽면에서 솟아오른다.
놈은 그것을 피하며 능숙하게 반격을 날렸다.
"아앗!"
채앵!
앨리스는 어둠 속에서 날아든 단검을 어렵사리 쳐냈다.
단검 자체는 평범한 물건이지만 가속도가 어마어마하다.
지난번에 일본에서 다리를 부숴먹었을 때 얻은 교훈으로 개발한 신기술 같다.
"요즘 애들은 진짜 쑥쑥 자란다니까."
"사실은 아저씨도 이미 알고 있잖아요!"
격한 전투의 소음 사이에서 놈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지금까지의 것과 달리 가성을 전혀 섞지 않은 목소리였다.
"어차피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무슨 짓을 하든 소용없다는 걸!"
"그래서 그 인식을 바꾸려고 하는 중인데 네가 개판치고 있잖아!"
발끈하며 대꾸하자 부끄럼도 없이 꼬박꼬박 대꾸하는 녀석.
"범죄자들 몇 놈 잡는다고 인식이 바뀌어요?"
"너 지금 검사 출신한테 범죄학 강의하냐? 무턱대고 강하게 처벌한다고 세상이 나아졌으면 진작 다들 그렇게 했지!"
억울한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강한 처벌보다 공정한 처벌, 예외없는 처벌이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도대체 왜 몰라주는 걸까.
답답한 마음에 심장이 끓는다.
나도 거들고 싶지만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을까봐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내 정체가 드러나는 것은 인터넷 박제소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대형 사건이다.
다행히 앨리스도 그리 쉽게 밀리진 않았다.
"건방져! 나와!"
콰드득!
밖에서 놀고만 있진 않았다는 듯, 주저없이 최강의 소환수를 불러내는 녀석.
괴룡 재버워크는 비교적 넓은 방 안을 가득채웠다.
덕분에 도망칠 곳을 잃게 된 가짜가 다시 한 번 도주를 시도했다.
'풀 컨디션이었다면 확실히 위험했겠네.'
그래도 이번에는 확실히 잡는다.
나는 바닥이 무너져내리는 것을 느끼며 앨리스의 품에 안겼다.
그녀는 마치 아기나 고양이를 드는 것처럼 나를 안아들었다.
직후, 건물 밖에서 대기하던 티아가 깨진 유리창 너머에서 빛을 비췄다.
정말 쓸모없는 능력같지만 적어도 저놈을 상대로는 극상성.
놈은 피부가 불타는 것처럼 신음하며 창 밖으로 몸을 내던졌다.
"으으윽!"
"잡아!"
사실 굳이 뒤쫓을 필요도 없다.
바깥쪽에는 예리엘이 대기하고 있으니까.
놈의 교통수단도 이미 처리해뒀다.
석양이 내리쬐는 가운데.
마침내 예리엘 프로스트와 마주한 놈은 허탈한 얼굴이 됐다.
비록 미디어로만 접해본 상대지만, 직접 마주하면 알 수 있다.
그녀는 다른 헌터들과는 격이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예리엘은 그의 앞에 가만히 서서 손으로 입을 살짝 가렸다.
언뜻보면 웃는 것 같지만... 아니다.
그녀는 놈에게 무어라 말을 하고 있었다.
"뭐, 뭐야? 왜 안 잡고..."
"..."
두 사람의 대화는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내용이 가짜 그린 더스트에게 무척 충격적이었다는 것은 명확했다.
잠시 몸을 크게 떨던 놈은 이내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곤 석양을 피해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예리엘은 가만히 서서 그를 지켜볼 뿐이었다.
"어? 어어?"
"언니?"
나는 물론이고 앨리스도 영문을 모른 채 한참동안 굳어있었다.
뒤늦게 허겁지겁 뛰쳐나간 나는 놈이 사라진 방향을 멍하니 지켜보다가 예리엘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무척 미안하다는 듯 웃고있었다.
"무... 무슨 짓이야 이게?"
"죄송해요. 놓쳐버렸어요."
"... 뭐?"
"서방님. 정말 죄송..."
예리엘의 목소리가 내 귓속에 들어오지 못하고 허무하게 귓불을 스쳐지나갔다.
나는 차마 그녀를 마주보지 못하곤 모든 것을 잃어버린 기분으로 몸을 돌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