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은퇴한 1위 헌터의 남편이 됐다-115화 (115/131)

〈 115화 〉 허위 사실(1)

* * *

비교적 평온한 분위기의 사무실.

대원들이 열심히 각종 서류와 씨름하는 동안, 티아는 내 뒷자리에서 느긋하게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었다.

우리 사무실은 물론이고 협회 전체를 통틀어도 티아보다 팔자가 좋은 녀석은 거의 없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녀석을 안쪽의 방으로 쫓아냈다.

"야, 들어가서 해. 들어가서."

"네에, 주인님. 케르야 가자."

"왈!"

내 개인 사무실엔 이런저런 군것질거리나 휴식용 시설이 갖춰져있어서, 앨리스도 은근슬쩍 녀석을 따라 자리를 옮겼다.

나는 때마침 음료를 갖다준 서지유에게 투덜거렸다.

"저 녀석한테 SNS 시켜주면 블랙 로터스고 뭐고 순식간에 항복하는 거 아닌가?"

"그러게 말이에요. 저... 그런데, 팀장님."

서지유는 뭔가 바라는 게 있는 듯, 목소리를 한껏 낮추며 작게 물었다.

"저도 강남에 부동산 하나만 생기면 업무의욕이 급상승할 것 같은데, 어떻게 안 될까요?"

"..."

"아, 아니... 그냥 해본 소리예요. 죄송해요 진짜."

나라 잃은 표정이 된 나를 보고 황급히 사과하는 서지유.

나는 그녀에게 거의 애원했다.

"너까지 이러지 마라..."

"저, 정말 죄송하다니까요. 저 그래도 지난번 임무는 잘 했잖아요."

"지유 씨, 서우 씨나 다른 팀원들이 일 잘했다고 칭찬해달라는 거 봤어?"

"아, 아뇨... 근데 듣고 보니 좀 이상하네요."

서지유는 잠시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더니, 아예 티아의 자리를 차지했다.

이젠 그녀도 사무실에 책상을 얻었지만, 그 위에는 업무용 서류보다 이런저런 화장품이 더 많다.

"뭐가 이상해?"

"이서우 씨는 저랑 같이 들어왔으니 그렇다 쳐도, 다른 팀원분들은 다 어디서 구하신 거예요? 다들 군소리 한 마디 안 하고 일도 척척 잘 하잖아요. 무슨 군대 출신인가?"

"아, 그건 다 방법이 있지."

내가 은근슬쩍 대답을 회피하려던 찰나.

김정태가 타이밍 좋게 난입했다.

"팀장님. 특이한 건입니다."

"고마워."

이젠 다른 팀원들의 사건 처리 능력도 많이 좋아져서, 내가 직접 처리하게 되는 사건은 하나같이 괴상하거나 난해한 것들이다.

이번에는 또 어떤 이상한 사건이 들어왔나 싶어서 냉큼 살펴보자 영 달갑지 않은 단어가 보였다.

"인터넷 방송 크리에이터 관련 사건인가... 슬슬 올 때가 되긴 했지."

지난번엔 버튜버 사건도 있었는데, 이번 건은 느낌이 많이 다르다.

보통 특수대가 맡게 되는 사건은 경찰 측에서 송치해주는 건이라서 사건성이 나름대로 보장되어 있는 편이다.

하지만 인터넷 방송 관련 건은 대부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판정되어서 경찰 선에서 커트해버리기 마련.

이번 건은 이미 피해자가 발생한 것 같다.

"뭐야, 이건. 인방이 엮인 실종 사건이라고?"

"네에? 방송하던 사람이 실종이라도 된 건가요?"

"달라."

이번 사건의 주범급인 인터넷 방송인은 '공뻥이TV'라는 사건사고계열 전문 방송인이었다.

일명 사이버 렉카... 라고 하지만 직접 만든 컨텐츠도 없진 않은 모양.

나는 주저없이 티아를 호출하여 그에 대해서 물어봤다.

하루종일 동영상만 보는 일도 있었던 티아는 곧바로 그를 알아봤다.

"아, 저 이 사람 엄청 싫은데..."

"유명해?"

"채널 자체는 규모가 좀 있죠. 근데 내용이 완전 엉망이에요."

동영상 채널에선 자칭 특수부대 출신에 헌터 관련 보안 업체 근무, 해외 파병 경력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 신상명세에는 교통사고 경력 정도밖에 없다.

방송의 내용도 상당히 두서가 없어서 몰래 카메라를 하거나 갑자기 정치색을 드러내기도 하는데...

얼마전에 올린 영상 중 하나가 큰 문제였다.

"이게 도대체 뭐야..."

나는 영상의 제목을 보자마자 눈을 질끈 감았다.

[일반인도 손쉽게 할 수 있는 던전 공략! 내일부터는 나도 현역 헌터?! 전리품 대박으로 부자되기...]

"염병. 진짜 보고 싶지 않은데. 이거 플랫폼에서 뭐라고 안 하나?"

"걔들 진짜 일 안 하는 걸로 유명하잖아."

내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앨리스.

확실히,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동영상이 올라올테니 그걸 모두 조치하거나 하는 건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이런 건 최대한 빨리 처리해줬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동영상 채널의 구독 연령층이 꽤 낮은 듯, 댓글창은 그야말로 개판이었다.

영상의 내용 자체도 완전 엉터리.

민간인이 사냥을 아예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해당 제도는 헌터 출동이 늦은 오지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그마저도 오래된 조항이라서 헌터들이 충분해진 뒤에는 곧바로 사장됐다.

"던전 공략 영상은 진짜 같은데... 얼굴은 끝까지 안 보여주네. 다른 채널에서 가져온 건가?"

만약 직접 공략을 진행했다면 싫을 정도로 카메라에 얼굴을 들이밀었으리라.

애초에 협회의 허가가 없는 공략은 평범하게 위법이다.

문제는 이 엉터리 영상을 진짜로 믿어버린 시청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번 건은 실종 사건이야."

"실종 사건? 설마..."

"그래. 현재 중학교에 재학중인 15세 김군의 부모님에게서 실종 신고가 들어왔어. 김군의 PC에는 해당 영상의 시청 내역이 몇 번이나 남아있었고, 실종 직전, 던전 근처의 편의점 CCTV에서 목격된 게 마지막이야. 참고로 헌터 장비를 구매한 정황도 확인됐어."

물론 헌터 장비라고 해봤자 일반인들도 구매가 가능한 헌팅 나이프 수준이리라.

실종된 김군은 영상을 보곤 실제로 던전 공략을 시도했던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그렇게 멍청할까 싶지만...

중학생 정도면 한창 이상한 짓을 저지를 때다.

협회는 경찰의 보고를 받기 무섭도록 헌터들을 급파했으나...

김군은 해당 던전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시간차를 감안하면 몬스터들의 한 끼 식사가 됐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세, 세상에..."

"지유 씨, 지금 당장 이놈한테 피의자 출석 요구서 보내."

"네, 팀장님."

서지유는 냉큼 전화로 안내부터 했으나...

그녀가 통화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저쪽에서 뚝, 하고 끊어버렸다.

서지유는 무척 황당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봤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뭐야, 안 받아?"

"네. 지금 당장 잡아올까요?"

서지유가 씩씩거리자 옆에서 냉큼 일어나는 김정태.

그러나 나는 놈이 너무 괘씸해서 고개를 저었다.

"이런 쓰레기에게 시간낭비를 할 수는 없지. 블랑쉬?"

[네, 마스터.]

"이 새끼 동영상 채널 정지시켜. 협회 특수대의 요청으로 일시정지된 계정이라고 확실하게 써줘."

[알겠습니다.]

공뻥이TV의 주인은 현재 동영상 채널에서 얻는 수익 외엔 별다른 수입원이 없는 상태.

피의자 출석 요구를 무시하는 것은 법이 보장한 권리라지만... 그런 식으로 꼼수를 부린다면 나도 꼼수를 부려줄 생각이다.

과연. 놈은 그로부터 2시간도 되지 않아서 부랴부랴 사무실에 찾아왔다.

당연하지만 그는 격분한 상태였다.

"아니, 이게 뭐하자는 거예요? 선량한 시민을 이런 식으로 괴롭혀도 되는 겁니까?"

"세상에 시발. 개나소나 선량한 시민이래. 무슨 조사받을 때 쓰는 교과서 같은 거라도 있나?"

"뭐, 뭐요?"

"혼잣말이니까 신경쓰지 마시고 얼른 앉아. 계정 정지 풀고싶지?"

우르르...

김정태를 비롯한 팀원들이 인간 장벽을 만들자 손님의 태도가 많이 누그러졌다.

그는 진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격하게 항의했다.

본인의 생계가 달려있으니 이렇게 구는 것도 당연하다.

"제 계정, 이쪽에서 정지시켰다면서요? 얼른 돌려놔요!"

"안 되지. 네가 동영상 삭제라도 하면 귀중한 증거물이 날아가잖아."

"저... 제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그래요! 허위 사실 유포? 그 영상은 누가 봐도 농담이었다구요."

역시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건가.

나는 작게 한탄하며 그의 오해를 정정해줬다.

"일단, 허위 사실 유포라는 죄명은 없어. 적어도 형사 사건에선 그래."

사실 이놈을 기소하기 난해한 것은 사실이다.

이번 건은 고의성을 입증하기가 상당히 힘들기 때문에 공무집행방해로 기소하기 힘들다.

업무상과실치사나 명예훼손 등의 죄목도 너무 무리한 감이 있다.

이놈의 나라는 경제사범이나 기레기들에게 너무 관대한 것이다.

그는 계정 정지를 풀라는 요구를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아무튼 풀라고요! 군사독재까지 했던 나라에서 이런 걸로 일일이 검열이라니, 이게 말이 됩니까?"

"와... 틀린 곳은 없는 말인데 네가 하니까 진짜 짜증난다."

"뭐, 뭐요?"

"내가 진짜 이렇게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너는 안 되겠다. 정태야, 잠깐 나가서 피의자 아드님 좀 불러와라."

"!"

그렇다. 이놈은 이래봬도 결혼까지 했다.

실종 피해자보다 조금 어린 자식도 있는 놈이 이토록 뻔뻔하게 나왔던 것이다.

어쩌면 자식이 있어서 이토록 뻔뻔해졌을지도 모른다.

특수대에 불려온 사람들은 만약 죄를 인정하면 그대로 감옥에 간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잠깐... 지금 애를 불러서 뭘 하시려고..."

"당신 떳떳하잖아. 그래서 아드님 불러서 사실대로 말해줄거야. 너희 아버지가 올린 동영상 보고 사람 한 명 실종됐다고. 너희 아빠가 이렇게 훌륭한 일을 하신다고 가르쳐줘야지."

"아, 아니... 그러지 마시고..."

"왜 그래? 이것도 죄는 아니야. 네가 나를 무슨 혐의로 기소할건데? 있지도 않은 허위 사실 유포? 아니면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한 판 해볼래?"

"..."

"야. 너만 똑똑하고 너만 잘난 줄 알지? 사람들이 다들 너보다 멍청해서 도덕을 지키면서 사는 줄 알아?"

결국 그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털썩 무릎을 꿇었다.

"수, 수사관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해당 영상 바로 삭제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도 할게요. 그러니 제발..."

내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그를 조금 더 갈구려던 찰나.

돌연 데스크톱에 블랑쉬의 알림이 떠올랐다.

[마스터. 사건 조사 도중 수상한 정황을 발견했습니다.]

"음? 뭐야?"

[실종 신고를 넣은 김군의 부모님들... 그 사람들 또한 현재 익명으로 동영상 채널을 운영중이었습니다. 계좌 추적 과정에서 발견했죠.]

'... 뭐?'

나는 너무 말도 안 되는 소식에 잠시 사고를 정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실종신고를 넣은 놈들도 사실은 이 놈과 똑같은 직업이었다는 건가?

아예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지만 정황이 무척 수상하다.

나는 무릎꿇은 피의자를 쫓아내곤 실종자와 신고자에 대해서 자세히 조사하도록 시켰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