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 〉 테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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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라는 것은 보기보다 적용범위가 굉장히 넓은 단어다.
경우에 따라선 민간인 한두명이 죽은 것도 테러로 친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보통 테러라고 하면 총기나 폭탄, 비행기, 차량, 또는 생화학무기 등을 이용한 대량학살 사건을 상상하는 것이 보편적인 인식이다.
불행히도, 현재 우리가 잠입 수사중인 테러도 그런 종류의 대량 학살 사건으로 발전할 확률이 상당히 높다.
사람과 자금을 이만큼 모아놓고 길거리에서 식칼이나 휘두르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런 짓을 해봤자 지나가던 헌터에게 진압당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서지유와 함께 위장용 숙소에서 뒹굴거리던 나는 그런 사정을 대충 설명해줬다.
"테러를 용의자별로 분류하면 크게 세 종류로 나눌 수 있어. 다만 이건 내 주관적인 관점이고, 단순 보복범죄 느낌의 테러는 제외한 거야."
"알겠어요. 첫 번째는 뭔가요? 잃을 게 없는 사람?"
"오, 정확해."
나는 서지유의 예측에 작게 박수를 쳐줬다.
첫 번째.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 자포자기형으로 저지르는 테러.
보통 이런 케이스는 거창한 사명감이나 프로파간다 따윈 가지고 있지 않다.
단순히 동반자살이나 관심을 목적으로 테러를 저지르는 경우도 많다.
첫 번째 케이스의 테러는 딱히 철저하게 계획되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망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거나 도중에 포기하거나 실패해서 도망치는 경우도 흔하다.
현재 대한민국은 테러에 대한 내성이 많이 생겼는지라 이 정도 사건이라면 우리가 나설 차례조차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사실 테러를 제대로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도 상당히 힘들거든. 한국에는 총기가 막 굴러다니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야."
테러라는 것은 본인이 자라온 환경과 사회를 모두 부정하고, 죄없는 민간인들을 휘말리게 만들어서 만인의 공분을 사게 되는 행위다.
결말은 크게 두 종류. 테러 도중 본인도 함께 죽거나, 감옥에 처박히거나.
둘 다 썩 매력적인 선택지라고 볼 수는 없다.
게다가 만약 테러 혐의로 감옥에 가도 좋은 취급을 받긴 힘들다.
"사람이 그 정도로 심하게 삐뚤어지는 것도 쉽진 않아."
"아무래도 이번 건에 적용하긴 힘들겠네요. 그럼 두 번째는요?"
"종교적 광신에 의한 테러 행위. 이쪽도 상당히 골치아프지."
다만 두 번째 케이스도 의도적으로 유도하긴 힘들다.
이쪽은 어린 시절부터 세뇌에 가까운 교육을 받거나, 아예 사이비 종교에 투신해버린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번 건에선 아직 종교적인 색채 따윈 보이지 않으니까 일찌감치 제외해도 되겠지.
사이비들과는 영속교 사건 때 한 번 엮여봐서 느낌을 대충 알고있다.
"이번 건은 마지막 세 번째 케이스... 명확한 사상과 목적을 가지고 조직적, 체계적으로 시행되는 테러야."
앞선 테러 집회에선 반헌터라는 명확한 조직 이념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내가 이번 건을 무척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테러가 꼭 저학력, 저소득층에 의한 범죄는 아냐. 특히 세 번째 케이스의 지도자 정도 되면 학위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아."
"그렇군요.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 건데요?"
"그걸 미리 말해주면 재미없지."
조금 성의없는 대답에 서지유의 얼굴이 샐쭉해졌다.
그녀의 연기력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작전을 아예 모르고 있으면 무심결에 내색할 수도 없다.
다만 실마리 정도는 주기로 했다.
"모든 테러 조직원들이 세 번째 케이스라면 이상적이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될 수가 없지. 그 정도의 능력과 강인한 의지를 지닌 사람들은 극소수니까 말야. 그런 놈들이 여럿 있으면 조직이 저절로 갈라질테고. 원피스로 치면 패왕색의 소유자라고 해야하나?"
그 어떤 프로파간다를 갖다붙여봤자, 결국 테러라는 것은 최후를 향해서 곧게 달려가는 행위.
테러를 실행하는 개인의 입장에선 그저 파멸에 불과하다.
테러를 실행하긴 커녕 예고하거나 계획하는 것조차 중범죄가 되는 판국.
아무래도 국가 조직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보니 형량이 강하게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 조직을 이끌 수 있는 사람이 많았다면 세상이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으리라.
물론 그 변화가 꼭 긍정적이리란 보장은 없지만.
서지유는 내 설명에 대충 감을 잡은 듯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우리는 그 뒤로도 일부러 뜸을 들이다가 적당한 날을 잡아서 집회에 참여했다.
우리가 주시하고 있었던 곳은 본거지인 듯, 이번에는 다른 장소에서 집회를 가지는 모습.
나는 시작부터 살짝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모임은 이름이 뭔가요?"
"이름은 없습니다. 그냥 모임이라고 불러주시죠. 이름을 붙이면 추적당하기 쉬워진다는 모양이더라구요. 최악의 경우에는 특수대나 경찰에게 마크당할 수도 있구요."
"아... 그렇군요."
역시 이상할 정도로 능숙하다고 생각하던 중.
서지유가 내 옆에서 몸을 살짝 떨었다.
내가 몸을 담고있는 회사도 똑같은 이유로 이름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우리가 회장에 들어서자 곧바로 몸수색이 시작됐다.
"스마트폰은 바깥쪽에 보관해주시고, 금속 탐지기를 통과해주시면 됩니다."
"본격적이군요."
"영찬 씨도 아시겠지만, 이런저런 고초를 겪으신 분들이 많아서요. 모임의 회원들 중에는 헌터들도 몇 분 있지만, 다들 좋으신 분들이니 잘 지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 신경쓰지 않습니다. 헌터들에게 상처를 입은 동지라면..."
이 정도는 대충 눈치채고 있었다.
헌터도 없이 헌터들에게 맞서싸우겠다는 것은 용감한 게 아니라 무식하고 멍청한 것이다.
그대로 마력 감지기까지 통과한 우리는 그제야 회장에 들어설 수 있었다.
언뜻 보면 평범한 축하 행사처럼 보이지만, 사람들의 얼굴은 더없이 굳어있었다.
대부분은 음식에 손도 대지 않고 음료만 깔짝일 뿐이었다.
'티아가 봤다면 아깝다고 난리를 쳤겠네.'
이 자리까지 왔다는 것은 나름대로 모임의 핵심 멤버라는 뜻이다.
나는 자산가 겸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사람으로 위장한 덕에 비교적 빨리 도달할 수 있었다.
'보아하니 활동 자금은 상당히 여유로운 것 같아. 나 말고도 후원자가 있는 건가?'
아까 마력 감지기까지 갖다놓은 것을 보면 헌터업계에도 연줄이 있는 것 같다.
참석자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자기들끼리 분통을 터뜨렸다.
헌터들과 협회, 그리고 정부를 끝도없이 저주하는 분위기는 어딘지 모르게 사이비 종교와 조금 닮아있었다.
"저는 섬에서 살고 있었는데, 헌터들 출동까지 1시간이나 걸렸어요. 그래서 주민들은 거의 다..."
"공략이 끝나자마자 건물이 폭삭 무너져내렸는데 나몰라라 한다니까요."
"저는 20년 동안 서울을 지켰는데 제 아파트 하나 없습니다. 헌터업계도 죄다 버는 놈들만 버는 구조라구요."
그동안 쌓이고 쌓인 원한 때문에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분위기.
나는 속으로 웃으며 그들의 대열에 참여했다.
역시 대부분의 인원들은 첫 번째 케이스였다.
협회와 헌터들로 인해서 모든 것을 잃고, 갈 곳 잃은 울분만 떠안게 된 사람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사이를 능숙하게 돌아다니며 바람을 잡는 사내가 한 명 있었다.
그는 비교적 최근에 잡힌 헌터 범죄자들... 즉, 내가 잡아처넣은 놈들에 대한 기사나 이야깃거리까지 풀어놓으며 군중을 선동했다.
"회원 여러분, 이것은 독립 운동입니다. 우리는 조국 대한민국을 헌터들에게서 해방시킬 것입니다!"
"오오..."
이 자리의 그 누구도 '테러'라는 단어를 감히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것은 일종의 신성모독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서로의 원한을 되새기는 고통스런 집회.
모임의 대표는 가끔씩 공감이 되는 소리도 던졌다.
"급이 높은 헌터들을 같은 인류로 생각해선 안 됩니다. 세상에 총을 맞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인류가 어디에 있습니까? 서로 다른 두 개의 종은 결코 대등한 위치에서 공존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에 대한 견제 정책을 마련해놓지 않은 정치인들과 협회가 가장 큰 죄인들입니다."
서지유와 나는 손이 반쯤 마비될 정도로 열심히 박수를 쳐댔다.
내가 보건대, 지금 이 회장에 모여있는 인원들 정도로는 거사를 진행할 수 없다.
어중이 떠중이들을 모아봤자 정보가 새어나갈 뿐이다.
아마 이 자리에서 대표에게 선택받은 몇몇만 진짜 집회에 참가할 수 있겠지.
나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내게 다가온 대표의 손을 꽉 잡았다.
"이... 이 모임이야말로 저희 부부가 찾던 그곳입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 모임은 헌터들에게 고통받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싸우겠습니다."
대표는 내 손을 맞잡으며 웃었으나, 그의 연기에선 어딘지 모르게 위화감이 느껴졌다.
분명 훌륭한 연기이지만 이 사내가 진짜 우두머리는 아닐 것이다.
서지유도 그렇게 판단한 듯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쯤에서 슬슬 작전을 시작하기로 했다.
"대표님. 혹시 후원금 같은 것도 받으십니까?"
"후원금이요? 물론 이런 운동에는 자금이 필요하지만, 회원님께선 이미 충분히 베풀어주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제가 원래 부동산을 좀 가지고 있어서... 헌터들과 몬스터들 때문에 벌어들인 것이나 다름없는 돈이니, 이런 좋은 일에 쓰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대 헌터 시대가 시작된 이후, 서울의 집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안전한 곳에서 살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들의 당연한 욕망인데, 한국에서 서울보다 더 안전한 곳은 없지 않은가.
나는 목소리를 조금 낮추며 그에게 속삭였다.
"우선 당장 30억 정도는 얼마든지..."
"3, 30억 말입니까? 회원님... 저희가 이 일을 꼭 성공시키겠습니다."
혁명을 향한 열망으로 쉴새없이 타오르던 대표의 눈동자.
그것이 순간 황금빛의 탐욕으로 물들었다.
그 빛은 금방 사그라들었지만, 나와 서지유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서지유는 내가 갑자기 돈을 펑펑 써대는 것을 보곤 비로소 감을 잡았다.
"티, 팀장님. 설마..."
"지유 씨. 대부분의 테러리스트들은 첫 번째 분류야. 배 부르고 한 몸 뉘일 곳만 있어도 테러 같은 극단적인 선택은 하기 힘들어지지."
만약 취업이 되면, 굳이 계속해서 대학에 다닐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렇다.
나는 테러라는 조별과제의 조원들이 스스로 자퇴하도록 만들어버릴 것이다.
그것이 작전명 조별과제의 정체였다.
"아무리 그래도 죽은 사람을 되살려줄 수는 없지만, 집이 없는 놈에겐 집을 주고 명예를 원하는 놈에겐 명예를 주지. 물론 복수도 우리가 대신 해줄거야. 만약 사람들이 모두 행복하면 테러 따윌 왜 하겠어?"
"에엑..."
"돌아가자마자 아파트 하나 구해놓고, 여기서 이야기 나온 범죄자 놈들 모두 기억해놔. 이놈들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보자고."
"정말로 아파트 같은 걸 주실 건가요?"
"걱정하지 마. 테러단체는 단순 가입만 해도 무조건 징역이야. 부동산 자산도 범죄수익으로 판정해서 나중에 환수받으면 그만이야."
서지유는 내 설명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나는 그녀가 우는 것처럼 보이도록 냉큼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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