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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1위 헌터의 남편이 됐다-73화 (73/131)

〈 73화 〉 은퇴 헌터(4)

* * *

정태한 씨를 구속한 지 3일 뒤.

나는 심문실에서 그와 공범을 다시 마주했다.

두 남자는 이미 아침에 신문을 읽은 듯, 무척 얌전한 태도였다.

둘 중 정태한이 먼저 괴로운 침묵을 깨고 말했다.

"... 어떻게 하신 겁니까?"

그가 내민 신문의 1면에는 대문짝만한 글씨로 낭보가 쓰여있었다.

이번 사건의 진정한 원흉이라고 할 수 있는 학폭 사건을 일으킨 일진들.

그 일진들의 부모들이 산업 스파이 혐의로 잡혀들어갔다는 내용이었다.

너무 잘난 체 하지 않으려고 애쓰던 나는 그저 솔직하게 털어놓기로 했다.

"사실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그 새끼들이 좀 상상 이상의 쓰레기들이더라구요."

"그, 그럼 이게 진짜라는..."

"당연히 진짜 혐의죠. 설마 제가 없는 죄를 만들어서 그놈들을 처넣었겠습니까?"

나는 아직까지 침묵을 유지하고 있던 공범 쪽에게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정태한의 동료는 살인을 직접 실행했기 때문에, 형이 비교적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는 스마트폰의 동영상을 보자마자 눈을 부릅떴다.

영상의 주인공이 누군지 곧바로 알아본 것이다.

"이건..."

영상 속에서는 예의 일진들이 역으로 폭행을 당하는, 보기좋은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제 부모들이라는 뒷배가 사라졌으니 그동안 부린 온갖 패악질에 대한 대가를 치루고 있는 셈이다.

두 사람의 아이들을 괴롭히던 놈들은 소위 부자 타입의 일진들이었다.

성적이 좀 애매해서, 엘리트 타입의 일진이라고 보긴 힘든 정도.

그런 녀석들이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됐으니, 언더독 타입의 일진들에게 응징을 당하는 것이 당연했다.

일진들도 포켓몬처럼 여러가지 타입이 있는 것이다!

'그래봤자 다 나쁜 놈들이지만...'

그러나 내 등 뒤에 서있는 서지유는 물론이고, 두 범인들도 아직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당황한 얼굴이었다.

"그런데 보통 범죄라는 게 이렇게 빨리 처벌이 되는 겁니까? 그놈들 집이 보통 사는 게 아니던데?"

"헌터 관련 정보가 포함된 산업 스파이는 보통 범죄가 아닙니다.헌터 산업 스파이 특별법으로 잡히면 일단 전재산 몰수하고 시작합니다."

"정말입니까?"

"대한민국 법조계에서 가장 좋아하는 게 바로 이런 특별법이죠. 특히 국회에서 아주 좋아합니다."

어떤 사회적 이슈가 발생했을 때, 기존의 법을 고치는 것은 굉장히 손이 많이 가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일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에선 보통 특별법을 한두개 새로 제정하는 것으로 해결한다.

특별법은 일반법에 비해서 적용 범위가 좁고, 내용이 상세하며 우선순위 또한 높아서 바로바로 결과가 나온다.

물론 특별법이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헌터 시대가 막 시작됐을 때, 특별법 특유의 간편하고 기민한 제정이 큰 도움이 됐다.

참고로 특수대에서 애용하고 있는 협회법도 일단은 특별법의 일종이다.

"특별법은 정치권의 요구사항이 듬뿍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수사기관들도 꽤 빡세게 잡습니다. 아쉽게도 해당 사건은 헌터 범죄가 아니라서 저희 관할은 아니지만요."

"흐흑..."

정태한과 공범은 더 이상 아무말도 못하고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아무리 억울했다지만, 범죄를 저질러버린 입장에서 이 이상을 바랄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그들의 구형도 대충 귀띔을 해줬다.

"아, 그리고 교도소에 자리 없다니까 대체 복무 준비하세요. 자녀분들은 프로스트 재단에서 운영하는 학교로 전학시키겠습니다. 저한테 인질로 잡힌 거니까 허튼 생각 하지말고 똑바로 하십쇼."

"세, 세상에..."

그들은 내 비열한 술수에 치를 떨며, 몇 번이고 거듭해서 고개를 떨궜다.

그대로 두 남자를 감방으로 돌려보내곤 사무실로 귀환.

일단 자리로 돌아가려는데 김정태가 내게 작게 속삭였다.

"마스터, 안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 고마워."

오랜만에 내 개인실로 들어간 나는 미리 대기하고 있던 한예진의 인사를 받으며 의자에 앉았다.

대부분의 업무는 밖에서 처리하기 때문에, 이 사장님 의자는 오직 휴식용으로 마련한 것이다.

덕분에 상당히 편했다.

한예진은 조심스런 손놀림으로 내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컨디션은 괜찮으신가요?"

"뭐, 버틸만해."

"조금 더 휴식하시는 게 좋으셨을텐데..."

그대로 한예진이 작업을 시작하려던 찰나.

밖에서 서지유가 방문을 멋대로 열고 뛰어들어왔다.

그녀는 내가 옷을 벗고 있는 것을 보곤 얼굴을 붉혔다.

"팀장님,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지유 씨. 얼른 문이나 닫아."

나는 열받은 김정태가 그녀를 죽여버리기 전에 잽싸게 명령했다.

뒤늦게 한예진을 발견한 서지유가 천천히 다가오더니... 우리들의 치료를 지켜봤다.

내 복부에는 아직 심한 궤양 같은 것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 이게 뭔가요? 괜찮으신 거예요?"

"방사선 화상. 약식 그린 버스트라곤 해도, 근거리에서 썼으니 후유증이 남을 수밖에 없지."

블루 라이트닝이 너무 빨라서 반쯤 자폭으로 썼던 기술의 폐해.

원래 그 정도 방사능에 노출된 피부는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지만...

다행히 한예진은 솜씨가 아주 좋은 치유계 헌터였다.

그래도 치료에 시간이 좀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한예진이 서지유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내 치료에 집중하는 사이, 서지유는 작게 울먹거리며 주먹을 꽉 쥐었다.

나와 함께 있었던 밤에는 너무 어둡고 경황도 없어서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 틀림없다.

"저 때문에 이런 거에요?"

"아니. 블루 라이트닝 때문이었지."

"그, 그게 그거잖아요."

쓸데없는 죄책감을 느끼는 듯 하던 서지유는 내 상처에 손을 갖다대려 했으나...

나는 그것을 주저없이 쳐냈다.

제독은 이미 완료됐다지만 만져봐서 좋을 것은 없다.

"어허. 유부남에게 무슨."

"죄송해요. 정말..."

"나는 괜찮다니까. 얘가 고생이지."

"아, 아뇨. 이게 제 역할인 걸요."

그새 치료를 마친 한예진이 열심히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방 안에 서지유와 단둘이 남겨진 나는 잠깐이나마 눈을 붙이기로 했다.

앞선 사건 때문에 며칠동안 수면패턴이 엉망이 됐다.

"그럼 나는 좀 잘게. 밤에 증거 모으느라 거의 못 잤어."

"네? 설마 팀장님이 직접 모으셨던 거에요?"

"당연하지. 그런 일을 내가 아니면 누가 하냐?"

"혹시 부인께 협박 같은 거 당하고 계신 건 아니죠?"

"... 그런 협박은 아니야. 오히려 내가 예리엘의 덕을 보고있지."

내 앞에서 왠지 모르게 끙끙 앓던 서지유는 이내 풀이 죽은 채 방을 나섰다.

그대로 기절하듯 잠든지 얼마나 됐을까.

나는 사무실을 나가서 야근반과 인사를 나눴다.

"다들 아직 안 갔네?"

"팀장님은 퇴근 하시는 게 어떠신지..."

"나도 가끔은 일 좀 해야지."

퇴근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지난 밤의 활동은 특수대의 업무량을 줄이는데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배달 도시락으로 저녁 식사를 해결하고, 그동안 쌓여있던 결재업무들을 처리하고 있자...

경찰 측에서 갑작스런 연락이 걸려왔다.

이서우는 전화를 받곤 무척 난처한 얼굴이 됐다.

"아, 예. 알겠습니다. 일단 저희쪽으로 데려오시죠."

"서우 씨, 왜 그래?"

"헌터가 엮인 폭행 사건입니다. 벌써 기사까지 나간 것 같은데요?"

"이런 한밤중에? 기자 양반들 진짜 부지런하네."

아마 주변의 구경꾼들이 동영상을 찍거나 해서 제보하고, 기자는 그것을 그대로 올린 것뿐이리라.

내가 잽싸게 인터넷 기사를 검색해보자 자초지종이 드러났다.

"헌터가 엮인 폭행 사건... 이거군."

나는 단순히 헌터가 일반인을 팼다... 정도를 기대했으나 사건이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인터넷 기사에 첨부된 동영상 속의 헌터는 오히려 하루종일 얻어맞고 있었다.

아무래도 취객들에게 잘못 걸렸던 것 같다.

"뭐야 이게? 요즘은 헌터들이 무슨 동네북 취급인 건가?"

"이게 바로 네가 원하던 거 아니야?"

양치를 마치고 돌아온 앨리스가 한 마디 하자 나는 주저없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헌터들보고 범죄를 저지르지 말라했지, 어디서 맞고 다니라 했던 적은 없다고."

영상 안팎의 사람들이 일반인들의 만행에 당황하고 있던 중.

취객들 중 한 명은 아예 나이프를 꺼내들었다!

원래 좀 양아치처럼 생겨서 불안불안 했는데, 마침내 도를 넘어버린 것이다.

결국 헌터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들을 주저없이 때려눕혔다.

나는 그가 육체강화계 헌터라는 것을 알아보곤 속으로 혀를 찼다.

'이건 문제가 되겠는데?'

헌터가 사람 패면 가중처벌 당한다... 는 것은 편견도 뭣도 아닌 사실이다.

영상 속의 일반인들도 그것을 알곤 굳이 시비를 걸어온 것이리라.

게다가 하필이면 육체강화계라니.

이 경우엔 실제로 찔렸더라도 칼이 안 박혔을 수도 있다.

앨리스는 혹시나 싶어서 내게 물었다.

"이 정도면 정당방위 인정되는 거지? 거의 5분 이상 가만히 맞고 있던데?"

"글쎄... 확신은 못하겠어."

"뭐? 어째서?"

"우리나라에선 정당방위를 인정받기 굉장히 힘들어. 요즘은 그래도 정당방위를 곧잘 인정해주는 편인데... 기나긴 소송 동안 간접적으로 피해를 입게 되지."

그나마 헌터 관련 사건은 소송 과정이 굉장히 빠른 편이다.

앨리스가 작게 치를 떠는 사이, 연락을 했던 경찰들이 해당 헌터와 폭행 사건 피해자들을 데려왔다.

헌터는 나를 보자마자 저승사자를 만난 것처럼 얼굴을 딱딱히 굳혔다.

반면 일반인들은 뭘 잘했다고 벌써부터 이긴 것 같은 분위기다.

덕분에 내가 세간에 어떤 이미지인지 대충 알 수 있었다.

'역시 이런 느낌이었나...'

"일단 사실 확인부터 시작하죠."

나는 내가 파악한 것이 모두 맞는지 간단히 확인했다.

경찰들이 늦지 않게 출동한데다, 영상 자료도 있어서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다만 일반인들이 자꾸만 대놓고 엄살을 부려대서 짜증이 났을 뿐이다.

이서우와 앨리스는 그런 나를 보며 전전긍긍했다.

"팀장님, 이거 진짜로 처벌해야 하나요? 아무리 봐도..."

"실제 소송까지 가면 꽤나 골치아프겠지. 근데 나한테 좋은 방법이 있으니까 걱정마."

"좋은... 방법?"

경찰 출신인 이서우는 벌써부터 뭔가를 눈치챈 듯 불안한 얼굴이었다.

나는 그런 그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고 경찰들에게 말했다.

"조사 끝났습니다. 모두 귀가하시죠."

"네? 그럼 처벌은..."

"저희 특수대에선 이번 사건을 불기소 처리하겠습니다."

"불... 기소? 그게 무슨 소립니까? 아니, 선량한 시민들이 이 새끼한테 맞았다니까요?"

명목상 피해자인 일반인들이 언성을 높이자 김정태를 비롯한 보안팀이 무서운 표정으로 벌떡 일어났다.

순식간에 덩치들에게 둘러싸인 그들은 잔뜩 겁먹은 얼굴이 됐다.

나는 그들에게 다시 한 번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야, 기소 안 한다고. 집에 가."

"엑..."

죽을상을 하고있던 헌터의 얼굴이 천천히, 활짝 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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