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 은퇴 헌터(3)
* * *
협회 본부의 중간층에 위치한 트라우마 치료 센터는 우리를 썩 반기는 기색이 아니었다.
몇몇 헌터들은 우리를 본 것만으로도 경기를 일으킬 듯 몸을 떨어댔다.
특히 티아는 명색이 몬스터라서 더더욱 반응이 심했다.
"자, 잠깐! 특수대 여러분은 몰라도 헌터펫은 입장 금지에요! 여긴 몬스터 공포증 환자들도 적지 않다구요."
"엑..."
위풍당당하게 입장했던 것이 무색하도록, 트라우마 치료 센터장은 곧바로 우리를 끌고 나갔다.
아래층의 미팅룸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 우리는 한참동안 꾸중을 받은 뒤에야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특수대 여러분들께서 왜 저희 센터에..."
"그야 당연히 수사하러 왔죠. 센터장님께선 몇 가지만 확인해주시면 됩니다."
나는 쓰게 웃으며 단체 치료를 받고있던 헌터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지난번에도 설명했지만, 우리나라의 은퇴 헌터 관리는 굉장히 잘 되어있는 편이다.
트라우마 치료 센터에선 헌터들의 PTSD 치료는 물론이고, 그들이 일반 사회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도록 상담도 해준다.
사실상 헌터들이 범죄자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주는 1선인 셈이다.
나는 나름대로 경의를 품고 있던 상대에게 확인차 질문을 시작했다.
"헌터 협회 트라우마 치료 센터에선 국내의 모든 헌터들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맞습니까?"
"맞습니다. 전·현직 헌터들 모두 센터에서 정기적으로 상담을 받도록 되어있죠. 협회의 센터는 서울 최대 규모라서 앨리스 씨도 몇 번 오셨습니다."
앨리스가 옆에서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은퇴한 헌터의 상담은 정확히 어떻게 진행됩니까?"
"은퇴 절차 완료 3개월 전부터 집중적으로 케어에 들어가고, 희망자에 한해서 이후에도 정기적으로 치료와 상담을 진행하게 됩니다. 혹시 정태한 씨 사건 때문에 오신 겁니까?"
"알고 계셨군요."
"그야 유명하니까요. 그놈들이 뭐가 그리 억울한지 언론까지 써서 공론화를 했는데, 정작 전후사정이 밝혀지고 나자 여론이 다시 뒤집혔죠."
센터장은 본인이 직접 정태한 씨의 상담을 맡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히며 울분을 토해냈다.
"정태한 씨와 그 따님이 놈들의 괴롭힘으로 얼마나 힘들어했는데, 이제와서 이런 식으로 2차 가해를 저지르다니..."
"뭐, 그건 저도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정태한을 의심했을 수는 있다. 전부터 찔리는 구석이 있었으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언론을 이용한 것은 확실히 비겁한 범죄다.
아쉽게도 내 역할은 그 비겁한 범죄를 심판하는 것이 아니었다.
특수대는 어디까지나 헌터 범죄자를 검거하는 집단이다.
"혹시 이곳에서 정태한 씨와 집단으료 치료를 받던 헌터들이 있습니까?"
"그야 많지요. 집단 정신 치료는 확실히 도움이 됩니다. 헌터들은 현역 시절 동료들과 전우애를 형성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으니까요. 본인과 같은 아픔을 겪고있는 동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조금 더 쉽게 속을 터놓을 수 있게 됩니다. 개인 상담보다 심리적 거부감이 훨씬 덜하죠."
"전우애..."
나는 묘하게 신경쓰이는 단어를 못 들은 체 하며 질문을 이어나갔다.
"그럼 해당 파일을 보여주시죠. 내부 CCTV 영상 같은 게 있으면 그것도..."
"자, 잠시만요. 환자의 정보를 유출하라는 건가요?"
"헌터 범죄 사건의 용의자로 의심받고 있는 협회원의 정보를 제공하라는 겁니다. 특수대는 해당 정보를 제공받을 권한이 있습니다. 아주 완벽하게 합법적이죠."
내 말에 살짝 찌푸려지는 센터장의 얼굴.
사실 정신과 의사로서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긴 하다.
나는 그런 그를 다그치고 싶지 않았다.
"만약 환자가 범죄를 저질렀다면, 그걸 감싸주는 것이 환자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그건 아닙니다."
"잘 아시는군요. 센터에는 최대한 피해가 가지 않도록 처리하겠습니다."
내 설득을 겨우 납득한 센터장이 해당 정보를 가지고 내려왔다.
나는 그것을 빠르게 훑어보곤 예상했던 부분을 짚었다.
"여기 있군. B랭크의 전격계 헌터. 현역 시절엔 정태한 씨와 접점이 없었지만, 몇 번이나 함께 치료를 받았어. 이 사람이라면 이번 사건을 저지를 수 있을만한 능력이 있지."
"잠깐, 고작 그런 걸로..."
"고작이 아니야. 상담 내용을 자세히 봐."
두 남자가 참여했던 집단 치료의 내용은... 학교 폭력으로 고통받는 가족들을 케어하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비슷한 고통을 겪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치료를 진행했던 것이다.
애초에 이런 치료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나는 서지유에게 지시를 내렸다.
"보안팀 보내서 이 사람 지금 당장 마크하고, 정태한 씨 다시 불러들여."
"네, 팀장님."
앨리스는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한 눈치였으나 일단 아무말 않고 있었다.
여기서 조바심을 내면 내가 2번 설명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녀의 성장에 감격의 눈물을 흘릴 뻔했다.
"우리 앨리스가 드디어 사람이 됐어."
"이상한 소리 하지마..."
잠시 뒤, 협회로 돌아온 정태한은 명백히 긴장한 얼굴이었다.
이 양반... 아무리 봐도 전업 범죄자의 길은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일단 포커 페이스가 너무 형편없다.
별실로 자리를 옮겨서 그를 앉혀둔 나는 앨리스와 서지유가 지켜보는 가운데 다시 심문을 시작했다.
"정태한 씨. 다시 불러서 죄송합니다."
"아, 아뇨. 혹시 더 궁금하신 거라도..."
"혹시 '교차 살인'이라고 아십니까?"
"!"
내 질문에 몸을 부르르 떠는 정태한.
반면 앨리스와 서지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교차 살인?"
"A를 죽이고 싶어하는 B가 있다. 그리고 C를 죽이고 싶어하는 D가 있지."
나는 최대한 간단하게 설명을 시도했다.
A와 C는 희생자. B와 D는 살인자라고 기억하면 편하다.
"하지만 아무리 은밀하게 살인을 저질러도, 한국의 수사인력들은 굉장히 우수한 편이야. 평범하게 저질렀다간 헌터라도 무조건 잡혀."
"..."
정태한은 고개를 떨군 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담담히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래서 서로의 목표를 바꿔서 살인을 저지르는 거야. B가 C를 죽이고, D가 A를 죽인다. 이게 바로 교차 살인이야."
"자, 잠깐만요. 뭣 때문에 그런 짓을..."
서지유가 말도 안 된다는 듯 외치자 웬일로 심사숙고 중이던 앨리스가 교차살인의 이점을 눈치챘다.
그렇다.
교차살인에는 굉장히 큰 메리트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알리바이의 확보구나?"
"앗?"
"맞았어. A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은 B였지만, 실제로 실행한 사람은 D야. 그러니까 B는 살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 확실한 알리바이를 확보할 수 있어. 지금처럼 의심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증거는 잡히지 않지."
왜냐하면, 실제로 B는 A를 죽인 적이 없으니까!
그러니 몇 번을 수사해봤자 증거 따윈 절대로 나오지 않는다.
이런 헌터 범죄 사건에선 그 강점이 더더욱 부각된다.
물론 교차살인이 그저 만능인 것은 아니다.
일단 본인과 마찬가지로 살인을 저지를만한 동료를 찾는 것이 최대의 난점이다.
헌터들은 그나마 살인의 문턱이 좀 낮은 편이다.
"전투계 헌터들은 실제로 현역 시절에 생명을 살해해본 경험이 있으니까 말이지. 그... 전우애란 것도 있을테고."
"아, 아뇨. 저는 그런 모의 따윈..."
정태한이 뒤늦게 변명을 시도했으나... 그래봤자 늦었다.
나는 그를 다그치지 않고 내가 예상한 시나리오를 설명해봤다.
이번 사건은 전후사정이 워낙 딱해서, 되도록 좋은 말로 풀고 싶다.
"따님을 자살 시도까지 몰고간 놈들입니다. 그야 당연히 복수하고 싶었겠죠. 그게 부모로서 당연한 마음이었을 겁니다.
"..."
"하지만 그걸 직접 실행하지 않으신 것은 정말 현명한 선택이었습니다. 따님을 생각해서라도, 그런 짓을 저질러선 안 됐어요."
불행 중 다행으로 정태한의 딸은 살아있었다.
만약 딸이 죽었다면 정태한은 직접 살인을 저질렀으리라.
"따님의 자살 시도 이후, 태한 씨는 센터의 집단 정신 치료에서 알게 된 동료와 연락을 하게 됐습니다. 본인과 비슷한 원한을 지닌 전자계 헌터였죠. 둘 중 어느쪽이 교차살인을 제안한지는 모르겠지만, 나머지 한쪽은 그것을 받아들였습니다."
"..."
"그 다음부터는 우리 모두가 아는대로죠. 동료분이 범죄를 실행하는 동안, 정태한 씨는 보란듯이 알리바이를 만들었습니다. 너무 깔끔한 알리바이라서 오히려 위화감이 느껴졌을 정도였어요."
학교에 잠입한 방법까진 모르겠지만, 현역 헌터들에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카메라 등의 방범장치를 무력화할 수 있는 전자계 헌터라면 더더욱 그렇다.
나는 이쯤에서 그에게 마지막 기회를 줬다.
"정태한 씨. 저희들의 수사는 아직 충분히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백은 양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입니다."
"... 이, 이제와서 그 친구를 배신하라구요?"
"배신이고 자시고, 어차피 남은 한 건의 살인은 실행할 수 없습니다. 제가 그렇게 놔둘 것 같습니까? 동료분께도 이미 대원들을 보내놓았어요."
이래서야 사실상 선택지라고 할 수도 없는 수준이다.
입을 꾹 닫은 채 몸을 부르르 떨던 정태한은 이어진 설득에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태한 씨의 원한은 해결됐잖아요? 이제 태한 씨가 살인을 저지를 차례인데, 그거 정말로 하실 건가요?"
"저, 저는... 아닙니다. 수사관 님의 말씀이 모두 맞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두 분 모두 최대한 참작을 받을 수 있도록 해드릴테니..."
"하지만!"
정태한은 기어코 몇 마디를 덧붙이고야 말았다.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는 말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 그 친구의 원한은 누가 갚아줍니까? 법률은 국가의 입장만 신경써주는데, 저희 같은 피해자들은 어떻게 해야한단 말이죠?"
아까 내게 들었던 말을 그대로 써먹는 정태한.
나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학폭 사건 또한 아까와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예?"
"범죄가 충분히 보편화되면 사실상 범죄가 아니게 된다고 했던 것, 기억하시죠? 이제 그 사건도 보편적인 학폭 사건이라 볼 수는 없겠군요."
정태한은 내가 무슨 말을 할지 몰라서 멍하니 있었다.
나는 괜히 선심쓰는 것처럼 들리지 않도록 주의하며 말했다.
"해당 학교 폭력 사건은 이미 헌터 범죄의 원인이 되어버렸으니, 저희 특수대가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이 아예 없다고 하진 못하겠군요. 물론 손가락을 날려버리거나, 대동맥 출혈로 죽여버리거나, 성기를 절단시키는 것보단 통쾌하지 못하겠지만 최대한 만족스럽게 처리해보겠습니다."
"그럼... 재수사를 해주신다는 겁니까?"
"일단 조서부터 쓰시죠."
내가 종이를 내밀자 정태한은 주저없이 펜을 들었다.
사실 이번 것은 좀 월권행위가 되어버리겠지만... 뭐 어떤가.
범죄가 충분히 보편화되면, 사실상 범죄가 아니다. 더는 처벌할 수 없게 된다.
헌터 범죄가 그렇게 되는 사태를 막는 것이야말로 특수대의 존재 의의다.
나는 속으로 멋대로 우기며 야근을 준비했다.
예리엘은 분명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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