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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1위 헌터의 남편이 됐다-49화 (49/131)

〈 49화 〉 선상 카지노(1)

* * *

"티아, 티아앗..."

임시공휴일이 끝나버린 평일 아침.

방 안에 갇혀있던 티아는 나를 보자마자 슬프게 울부짖었다.

녀석에게 주어진 방은 제법 넓고 깔끔했으나, 식사가 될만한 것은 거의 없었다.

나는 함께 출근 준비를 하던 앨리스에게 눈총을 줬다.

"야, 라면이라도 좀 넣어주지... 애를 완전 굶겼어?"

"미안. 좀 급해서..."

"너 일단 씻고 나와라."

"엇... 정말로 나가도 되는 건가?"

티아는 내 말을 반신반의하며 호다닥 외출 준비를 마쳤다.

아직 이 녀석은 협회에 등록이 안 된 상태라서, 오늘 출근길에 등록을 해버릴 생각이었다.

S랭크 상당의 레이드 보스를 헌터펫으로 삼은 전례는 없으나...

협회는 나와 예리엘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는 처지다.

어차피 우리들 말곤 티아를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그렇다고 사상 최초로 포획에 성공한데다 말까지 제대로 통하는 S랭크 몬스터를 그냥 죽이고 싶을 리는 없으니...'

"이제부터 네 양육 허가를 받으러 갈테니까 대답 잘 해라. 알겠지?"

"티아!"

"너 그거 한 번만 더 해봐."

내가 인상을 팍 쓰자 티아가 겁먹은 얼굴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안이 사안인지라 오늘은 예리엘도 함께 출근했다.

그런데, 차를 몰고 사무실로 향하자 전에 없던 행렬이 길게 늘어선 것이 보였다.

시위라도 하는 듯 피켓을 든 사람들은 협회 본사 건물을 향해서 열심히 외쳐댔다.

"헌터들에 대한 기획 수사를 즉각 중지하라!"

"영장없는 압수 수색이 웬말이냐!"

"나라를 지킨 헌터들에게 이런 식으로 보답하지 마라!"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특별 수사대의 활동을 지탄하는 시위였다.

얼마 전에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했다고 우르르 몰려나온 모습.

우리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강렬한 혐오감을 느꼈다.

특별 수사대가 헌터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죄 지은 놈들 잡아들인 것 뿐인데 저렇게 나오다니.

특히 '나라를 지켜주니까 범죄 좀 저지를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듯한 대목은 천박함의 극치였다.

사실 놈들도도 본인들의 선전을 진심으로 믿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좀 정도껏 해줬으면 한다.

조수석의 예리엘은 급기야 차를 멈추려고 했다.

"서방님, 잠깐 세워보시죠."

"그냥 가자. 오늘은 티아가 있잖아. 저놈들에게 별로 보여주고 싶지 않아."

"아, 그러시다면야."

어렵사리 납득한 예리엘과 함께 지하 주차장으로 이동한 뒤, 곧바로 헌터펫 등록을 받으러 갔다.

헌터펫 등록을 담당하고 있는 직원은 티아의 언어 능력에 깊게 감명받은 듯 했다.

물론 그것과 별개로 허가는 이미 떨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다 끝난 건가요?"

"그렇습니다.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예리엘 씨."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이제 티아는 정식으로 우리의 헌터펫이 됐다.

나는 어제부터 쫄쫄 굶은 녀석을 데리고 가까운 카페로 이동했다.

예전에 서지유가 멋대로 질러버렸던 바로 그곳이다.

"우와아... 저, 정말 먹어도 되는 것이냐?"

"출근해야 하니까 얼른 먹어."

쉴새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티아는 내가 주문해준 브런치 메뉴를 허겁지겁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앨리스처럼 얼굴도 옷차림도 귀티가 줄줄 흐르는 주제에 막상 식사에 들어가니 며칠 굶은 강아지가 따로 없다.

양쪽 볼이 미어터져라 신나게 음식을 쑤셔넣는다.

제법 배가 고팠다는 것을 감안해도 상당히 충격적인 모습.

그것을 멍하니 쳐다보던 나는 녀석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어디서 지냈길래 그렇게 허겁지겁 먹냐? 너 인터넷도 좀 쓰던 것 아니었어?"

"사실 도시로 온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처음 2년 정도는 사람들의 눈을 피하면서 살았지."

나는 티아의 말에 대충 감을 잡았다.

녀석은 아마 몬스터들의 땅이 된 외국... 그것도 북쪽에 있었을 것이다.

어차피 그곳을 점령한 몬스터들이라고 해봤자 티아에겐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았을테니까.

물론 도시로 거처를 옮긴 뒤에도 썩 여유로운 생활은 하지 못했으리라.

녀석은 제대로 된 신분조차 없는 신세.

존재 자체가 불법인 미등록 헌터나 다름없었다.

어떻게든 돈을 구했다 쳐도, 기껏해야 PC방이나 찜질방 등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아주 흡족하게 식사를 마친 녀석은 의욕이 넘치는 얼굴로 내게 물었다.

"잘 먹었다! 너무 맛있구나. 이제 뭘 하면 되지?"

"간단해."

티아에게 대꾸한 것은 내가 아니라 예리엘이었다.

그녀는 벌벌 떠는 티아에게 조곤조곤 설명해줬다.

"서방님께서 숨쉬라고 하시면 숨쉬고, 죽으라고 하시면 죽어. 넌 생각 같은 거 할 필요 없어."

"아... 알겠다! 명심하마!"

"됐어. 예리엘, 너는 이만 돌아가봐. 아직 후원 행사 때문에 바쁠텐데..."

나는 예리엘의 의도를 눈치채곤 그녀를 배웅해줬다.

착한 경찰과 나쁜 경찰, 당근과 채찍... 유사품이 너무 많아서 뭐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예리엘이 갈구는 역할이고 나는 잘해주는 역할이다.

'기왕 헌터펫 등록도 했겠다, 바로 돌려보내는 것도 좀 아니지.'

예정을 조금 바꿔서 티아를 데리고 사무실로 올라갔다.

입을 닫고 가만히 있으면 앨리스 못지 않은 미인이다.

일단은 헌터펫 취급이니까 여차할 때엔 힘을 빌릴 수도 있다.

티아의 화려한 외모는 곧바로 사무실 식구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이서우는 굳이 물어보는 것도 겁난다는 듯 애써 외면하는 모습.

반면 서지유는 겁도 없이 호다닥 다가왔다.

"어? 팀장님. 얘는 뭐에요?"

"네 친구."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내 농담을 곧이곧대로 알아듣곤 서지유에게 불쑥 손을 내미는 티아.

서지유는 그걸 또 겁도 없이 맞잡고 흔들었다.

"치, 친구? 앞으로 잘 부탁해..."

"진짜 친하게 지내란 건 아니고, 사무실에서 서열이 대충 너랑 비슷하다고."

"그럼 바닥이잖아요?"

"이야. 알고 있었네?"

내가 긍정하자 진심으로 상처받았다는 듯 주춤 물러서는 서지유.

나는 그것을 깔끔하게 무시하며 오늘의 업무를 살펴봤다.

"팀장님, 앞에 시위 나온 거 보셨어요?"

"신경 쓸 필요없어. 국가 유공자는 뭐 면책특권이라도 있는 줄 알아?"

"역시 시원하시다니까."

"오늘 뭐 별 일 없지?"

앨리스가 굳이 바닥에 앉아있던 티아를 일으켜세우는 사이.

웬일로 이서우가 내게 파일을 하나 내밀었다.

"이건 잘못 온 것 같습니다. 헌터들이 엮여있어서 무턱대고 보낸 것 같은데..."

"뭔데? 아, 도박 건이구나?"

술, 마약, 도박, 그리고 섹스.

조직범죄에 한해서 '돈'까지 추가.

이 다섯가지 요소가 내가 헌터 범죄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던 것이다.

그 중 투톱을 꼽자면 역시 마약과 섹스다.

지금껏 우리가 해결했던 대형 사건들은 대부분 마약과 섹스 중 하나가 엮여있었다. 아니면 둘 다 엮여있었거나...

반면 술과 도박은 투톱에 비해서 위상이 많이 초라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단 술이 엮여있는 시점에서 금방 잡히지.'

술로 인한 범죄는 계획적인 범죄가 되기 힘들다.

강력 범죄가 될 수 있을진 몰라도 범인을 체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래서 우리의 차례까지 오는 경우가 드물다.

도박이 엮여있는 경우는 더욱 간단한데...

대한민국의 국민들에겐 스스로의 인생을 망쳐버릴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보통 헌터들은 수입원이 확실하기 때문에, 중증 도박 중독이라 해도 범죄까지 가버리는 경우는 드물다.

기껏해야 저금을 다 날려먹고 빚까지 져서 월급을 족족 갖다바치는 정도.

물론 거기서 다른 범죄로 발전을 하면 우리가 나설 차례가 맞지만...

그 전에는 나서선 안 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도박도 우리 관할이 맞긴 한데 그냥 패스하자. 나는 흥미없어."

"네에? 어째서요?"

"그야 수사력 낭비니까. 이런 놈들은 잡아넣어도 보람이 없거든."

이미 도박에 중독된 놈들은 손목을 잘라도 못 고친다.

본인의 재산을 본인이 탕진한다는데 말리기도 뭣한데다...

애초에 어지간해선 말릴 수도 없다.

도박죄는 거의 경범죄 취급이라서, 천만원대 불법도박을 즐겨도 거진 벌금이나 집행유예다.

특히 헌터들은 평균 수입이 높아서 도박죄로 판정되는 기준도 그만큼 높다.

그러나 이서우는 내 말을 납득하지 못했다.

티아는 앨리스가 안겨준 과자를 아주 맛있게 깨작거리며 우리들의 회의를 흥미롭게 지켜봤다.

"아니. 도박이 왜 우리 관할인지... 우리 원래 민간인들은 손도 못대지 않습니까."

"아, 거기서부터 설명해야 하는 건가?"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혀를 찼다.

"서우 씨, 한국인이 도박을 하고 싶으면 보통 어디로 갈까? 외국에서 한두판 재미로 즐기는 것 말고, 진지하게 인생을 걸고 싶다면 말야."

"그야... 강원랜드겠죠?"

그렇다.

대한민국 유일의 내국인 전용 카지노, 강원랜드!

일단 불법이 아니라는 것 하나만으로 심리적인 허들이 엄청나게 내려간다.

"근데 헌터들은 강원랜드 출입금지야."

"네에? 아... 도박에서 능력 쓸까봐 그런 겁니까?"

"바로 그거지."

오직 헌터들을 위해서 카지노 시설을 확충하는 것은 가성비가 많이 떨어지는 일이다.

따라서 강원랜드는 애초에 헌터들을 들여보내주지도 않는다.

덕분에 헌터들이 엮여있는 고액 베팅 도박판은 대부분 불법이다.

"당연하지만 불법 도박장들도 헌터들을 반기진 않아. 걔네가 능력이라도 쓰면 본인들이 질게 뻔하잖아?"

"그, 그렇군요."

그러니까 헌터들을 상대하는 도박장은 보통 헌터가 운영하는 곳이기 마련이다.

이것이 헌터 대상 도박장 사건이 대부분 우리 관할인 이유다.

그런데, 그 새 파일을 자세히 읽어보던 서지유가 흥미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팀장님. 이놈들 도박장 좀 크게 하는데요?"

"그래? 얼마나?"

"아예 인천에서 선상 카지노를 운영한다고..."

"뭐야?"

선상 카지노라고 하는 것을 보면 그냥 고깃배 한 대 띄워서 영업하는 수준은 아닐 것이다.

과연. 이번 건은 확실히 서지유의 눈이 돌아갈 법했다.

"오랫동안 방치된 대형 크루즈를 인수해서 안쪽의 시설을 그대로 써먹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게 가능해?"

"법적으로 완전 회색지대네요. 이 크루즈선은 이미 망해버린 나라에서 왔는데, 입항 당시 타국 영토로 인정받은 전례가 있거든요."

그러니까, 크루즈선 위는 엄밀히 말하면 대한민국의 영토가 아닌 셈이다.

그러자 이서우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하지만 한국인이 외국에서 도박하고 와도 처벌받지 않습니까? 원정도박이 괜히 잡히는 게 아니잖아요?"

이서우의 말도 맞다.

재미삼아 소액으로 한두번 즐기는 것이라면 또 몰라.

돈을 바리바리 싸들고 가서 원정도박 하는 건 당연히 처벌 대상이다.

도박 중독자 헌터들이 다니는 카지노... 그것도 대형 크루즈쉽 한 대를 통째로 쓰고있는 곳이라면 그 규모가 결코 작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나는 그들이 지금껏 처벌받지 않고 있었던 이유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결국 수사력 낭비군."

"네에? 어째서..."

"고액의 해외 원정도박이 처벌 받는 이유는 간단해. 도박 자체를 외화 유출의 일종으로 보기 때문이야."

누가 해외로 가서 원정 도박을 하면 보통 돈을 잃기 마련이고, 그럼 결과적으로 외화유출이 된다.

경찰이 굳이 그것을 처벌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경우는 다르다.

"근데 이 크루즈 카지노는 벌써 몇 년째 출항을 안 했어. 애초에 바다로 나갈 수 있을지 없을지도 확실하지 않아. 게다가 모국은 이미 망해버렸지."

"아..."

그러니까 이 크루즈 카지노에서 돈을 잃어도 외화유출은 일어나지 않는다.

어차피 국내에서 돌고 돈다.

경찰이 지금껏 잠자코 있었던 것은 바로 그것 때문이리라.

일단은 외국 영토 취급이라서 수사 자체가 힘든데, 심지어 보람도 없다.

하지만 이서우는 한국에 이런 시설이 어엿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은 듯 했다.

나도 이게 크게 마음에 들진 않는다.

강원랜드만 봐도 웃기는 노릇이다.

세상에 국민을 싹 벗겨먹어서 이익을 거두는 공기업이 있다니.

상식적으로는 존재해선 안 되는 곳이다.

나는 눈에 띄게 침울해진 이서우에게 합리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럼 퇴근한 다음 남는 시간에 조사하면 되겠네."

"옛?"

"지유 씨, 오늘 퇴근하고 여기 다녀와."

"아, 아니. 이거 정규 수사도 아니잖아요?"

안 그래도 전과범인 서지유는 기겁하며 물러서려 했지만, 내가 카드를 한 장 내밀자 넙죽 고개를 숙였다.

"이거 가지고 가."

"맡겨만 주세요! 보란 듯이 끝장내고 오겠습니다!"

"들키지 말고 조사만 해. 아, 맞다. 카지노는 현금만 되던가?"

"아마 체크카드도 될거에요."

나는 그냥 현금만 좀 주기로 하곤 본업으로 돌아갔다.

그새 과자를 다 먹어치운 티아가 더 달라는 듯, 아주 조심스럽게 빈 봉지를 내밀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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