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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1위 헌터의 남편이 됐다-40화 (40/131)

〈 40화 〉 기러기의 노래(2)

* * *

나는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사건 파일을 다시 처음부터 끝까지 훑었다.

여기선 역시 용의자의 근처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겠지.

만약 김우주의 말이 맞다면, 이번 건은 우발적으로 저질러진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계획된 범죄라는 것이 된다.

지나가던 염동력자가 하필이면 김우주의 아내를 노렸거나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책상으로 돌아오자마자 자연스럽게 오라클을 작동시키려고 했던 나는 오늘 아침의 공지를 떠올리곤 동작을 멈췄다.

이래서 습관이 무섭다는 건가.

지금까지 오라클에 너무 익숙해지긴 했다.

이런 사건에서까지 오라클을 쓰다보면 할당량이 금방 다 될 것이다.

나는 우선 사건 당일, 현장에서 촬영된 영상부터 보기로 했다.

그러나 내 예상대로 그쪽에선 별다른 수확이 없었다.

"가게 안에 달리 용의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요..."

"가게 안쪽은 그렇지. 하지만 두 사람은 쇼윈도 앞에서 말다툼을 벌였어. 현장에는 통행인도 많았고."

나는 서지유의 말을 차분히 반박했다.

B랭크 이상의 염동력자는 100미터 밖에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심장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부수는 것은 훨씬 쉽다.

'하필이면 골치아픈 능력이 엮여버렸군.'

차라리 불덩어리나 얼음 조각을 날리는 등, 조금 더 화려한 능력이라면 좋았겠지만...

염동력은 무색, 무형, 무음의 능력이다.

어찌보면 이런 암살에 딱이라고 볼 수 있다.

"잠깐만. 뒤로 돌려봐."

무슨 드라마라도 보고 온 듯한 앨리스가 나와 똑같은 부분에서 위화감을 눈치챘다.

피해자가 쓰러지기 직전, 그녀의 맞은편에 있던 김우주의 몸이 움찔거린 것이다.

서지유는 역시 김우주가 범인이라며 난리를 쳤으나...

현역 헌터인 나와 앨리스의 소견은 달랐다.

"이건... 뭔가 낌새를 눈치챈 것 같은데?"

"그런가요?"

"응. 같은 염동력자니까, 멀리서 염동력이 발동된 걸 눈치챈 거야."

실제로 영상 속의 김우주는 피해자가 쓰러지자마자 범인을 찾으려는 듯 가게의 밖을 두리번거렸다.

무척 당황한 그의 모습은 도저히 연기처럼 보이지 않았다.

'얘가 한 거 아닌 것 같은데?'

나는 어렴풋한 직감을 목구멍 속으로 다시 밀어넣으며 수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나는 김우주의 변호사가 아니라 협회의 특별 수사관이다.

내 역할은 김우주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증거를 찾아내는 것.

도중에 진범이 나온다면 좋겠지만 당장은 김우주가 유일한 용의자다.

"팀장님, 일단 김우주 씨 계좌 추적 해볼까요?"

"그건 소용없어. 용의자는 다년간 해외에 파견을 다녀왔어. 특별수당 같은 것도 두둑하게 나왔을테니까, 빼돌리려고 작정하면 얼마든지 빼돌릴 수 있었어."

"아..."

만약 차명계좌나 프라이빗 뱅크 따윌 이용했다면 오라클을 사용해도 잡기 어렵다.

나는 용의자와 피해자의 이혼 소송 그 자체에 주목하기로 했다.

사건 현장에 변호사들이 동석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혼 소송의 전말은 비교적 깔끔하고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이혼 소송의 계기는 피해자의 외도였다.

김우주 씨가 해외에 파견을 나가있는 사이, 피해자는 그가 보내준 돈으로 다른 남자와 놀아났던 것이다.

불륜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다시 마음이 무거워졌으나...

나는 조금 이상한 정황을 발견했다.

"이혼 소송을 엄청 빨리 걸었네? 거의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걸었어."

"엑..."

"그럼 피해자가 엄청나게 놀았나보네요. 원래 꼬리가 길면 밟힌다잖아요."

서지유의 말도 일리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틀렸다.

"아냐. 이 여자의 꼬리는 상당히 짧아. 상간남과의 만남은 3회 정도... 그마저도 오래 못가고 버려진 것 같아."

"3회라니..."

의심의 여지가 없는 먹버.

게다가 피해자 쪽은 나름대로 순애였는지, 불륜 상대에게 계속 매달렸다.

상간남은 그녀를 계속 피하다가 결국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상황을 눈치채고 소송을 걸었단 말이지? 게다가 증거자료까지 제대로 수집해뒀어. 이건 프로의 솜씨야."

아무래도 해외에서부터 낌새를 눈치채곤 흥신소 같은 곳에 의뢰한 모양이다.

그는 기러기 아빠였으니 이래저래 불안했을 법도 하다.

이혼 소송 관련 자료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던 나는 조금 묘한 기분이 됐다.

용의자에 대한 의혹이 사라지긴 커녕, 점점 더 강해지는 기분.

알고 보니 김우주에겐 피해자를 꼭 죽여야하는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심증일 뿐이야. 정작 현장에서의 영상은 다르게 보이고... 잠깐, 설마?'

"지유 씨. 지금 당장 양측 변호사들을 참고인으로 소환해. 직접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어."

"네, 팀장님!"

"변호사들의 증언은 갑자기 왜?"

"이거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한 사건이야."

이내 변호사들과 만나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본 나는 비로소 감을 잡았다.

이제 시간은 어느덧 점심.

하지만 나는 식사를 할 생각도 못하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앨리스, 따라와. 지유 씨는 남아있어."

"..."

앨리스는 평소의 회장님 자리가 아니라 조수석에 앉았다.

그것을 애써 신경쓰지 않으며 시동을 걸자 그녀가 물었다.

"지금 어디 가는거야?"

"블랙마켓."

"뭣? 거긴 갑자기 왜?"

"가보면 알아."

지난번에 내가 그린 더스트를 회수하기 위해서 방문했던 블랙 마켓.

그것과 비슷한 암시장이 한국에도 존재한다.

한국은 헌터 강국인데다 땅도 좁아서 블랙마켓 하나하나의 규모 자체는 오히려 더 크다.

나는 복면을 뒤집어쓰고 안쪽으로 쳐들어갔다.

앨리스는 복면의 눈구멍을 찾지 못해서 헤멨다.

길게 기른 금발을 어렵사리 옷과 복면에 쑤셔넣은 그녀가 내게 물었다.

"회원권은 있어?"

"당연하지."

애초에 좀 규모가 있는 블랙마켓에는 회사의 직원들이 상주하고 있다.

블랙마켓은 오라클의 재료를 구하기 딱 좋은 장소이기 때문이다.

아직 낮이라서 한산한 블랙마켓.

나는 휘하의 서번트를 조용히 찾아가서 물었다.

"어서 오십시오 마스터."

"여기 혹시 인력 전문 브로커 같은 놈 있나? 특히 청부살인을 다루는 놈으로."

"요즘은 그런 거 인터넷으로 받긴 하는데, 그쪽에도 정통한 놈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안내할까요?"

"그래, 고마워."

인터넷으로 살인 청부를 받다니, 말세다.

하긴. 요즘은 마약도 텔레그램이 대세라니까 안 될 건 없겠다.

나는 작게 혀를 차며 서번트가 안내해준 업소로 향했다.

낡고 어두운 실내에 들어선 나는 브로커로 보이는 사내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는 내 서번트가 직접 손님을 데려온 것을 보곤 눈에 띄게 놀랐다.

"뭐야, 네가 손님을 물어올 줄이야. 이건 안 받아줄 수가 없겠는데? 근데 당장은 좀 바쁘니까 나중에..."

한창 도망을 준비중이던 핼쑥한 인상의 브로커는 내 기억에 남아있는 얼굴이었다.

나는 서번트에게 고개를 돌려서 물었다.

"너 얘랑 친하니?"

"설마요."

"그럼 안심이군."

"음? 뭐가 안심이란... 아아악!"

어리둥절한 얼굴의 브로커에게 다가가서 손가락을 하나 붙잡고 휙 꺾어버리자 놈이 요란하게 울부짖었다.

벌어진 입에 옷자락을 쑤셔박아서 놈을 억누르자 이번에는 앨리스가 항의했다.

"무... 무슨 짓이야?"

"아, 괜찮아. 이 자식은 미등록 헌터니까. 굳이 사람 취급 해줄 필요없어."

"끄흑, 으으윽... 서, 선생님. 왜 이러십니까?"

브로커도 나름대로 한 가락 하는 헌터였지만, 심상찮은 분위기를 감지하곤 금방 비굴하게 나왔다.

이미 서로의 격차를 피부로 느꼈다.

나는 눈에 띄게 얌전해진 녀석에게 질문을 던졌다.

"푸른별 길드 소속 A랭크 헌터 김우주. 들어본 적 있지?"

"으아악... 그, 그야 요즘 유명한 헌터 아닙니까! 불륜 아내 살인 사건!"

"야. 너 괜히 대가리 굴리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 이미 다 알고 왔으니까. 진짜로 그것밖에 몰라? 그럼 내가 널 굳이 살려둘 필요가 없는데?"

부러진 손가락을 붙잡은 채 겁을 주자 그제야 사실대로 털어놓는 브로커.

"아... 알겠습니다! 제가 그 사건 피해자를 죽여달라는 의뢰를 받았어요!"

"뭣?"

앨리스는 내 눈총을 받곤 본인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 사이 브로커는 열심히 스스로를 변호했다.

"선생님도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그냥 브로커입니다. 직접 실행하는 업자는 따로 있어요!"

"의뢰를 언제 받았는데?"

"며칠 안 됐습니다!"

그가 말한 일자는 내 예상과 정확히 일치했다.

역시 이번 사건은 청부살해 사건이었다.

나는 서번트에게 업소 내부의 모든 자료를 챙기도록 명령하곤 브로커를 구속했다.

"너를 살인교사 및 헌터 협회 미등록 혐의로 체포한다. 실행범은 어디있어? 그 새끼 없으면 네가 전부 뒤집어쓴다?"

"곧 돈을 받으러 올겁니다! 아직 현금을 못 받았으니까..."

우당탕!

그 때, 업소의 문이 벌컥 열리더니 잔뜩 충혈된 눈의 헌터 한 명이 들어오며 외쳤다.

"이 새끼, 왜 절반밖에 안 준다는 거야? 너 내가 우습게 보여?"

"... 쟤냐?"

"맞습니다! 저놈이 죽였어요!"

뒤늦게 우리를 발견한 놈이 도주를 시도했으나, 앨리스가 늦지 않게 능력을 발동시켰다.

퍼억! 하고 경쾌한 소음과 함께 놈의 몸이 엎어졌다.

나는 그놈도 똑같이 구속시키곤 블랙마켓을 나섰다.

다행히 아직 낮이라서 불필요한 충돌은 없었다.

사실 블랙마켓이라고 해봤자 범죄에 특화된 개인 사업자들의 모임에 불과하다.

"처음부터 당첨이라니, 운이 좋네. 한 2,3군데는 돌아야 할 줄 알았는데."

"일이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갑자기 웬 살인청부?"

"서지유도 궁금해할 것 같으니까 나중에 설명해주면 안 될까? 두 번씩 하긴 좀 귀찮은데..."

예전 같았다면 단번에 싫은 소리를 던졌을법한 앨리스였으나, 이번에는 웬일로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범죄자들을 데리고 협회로 돌아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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