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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1위 헌터의 남편이 됐다-1화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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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서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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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는 적당히 소란스러웠다.

뜨겁지 않은 햇살과 선선한 바람.

전설적인 헌터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딱 맞는 날이었다.

고작 10년 남짓 활동한 헌터, 게다가 아직 서른도 안 된 여자에게 전설을 운운하는 것도 좀 우습긴 했으나...

그녀의 활동 실적을 감안하면 꼭 그렇지도 않았다.

시민들은 무슨 축제라도 벌어진 것처럼 거리로 나왔고,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

개중에는 더 이상 그녀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녀를 사랑했기에 웃는 얼굴로 보내주자고 마음먹은 듯 했다.

물론 나는 예외였다.

"사람이 너무 많아..."

"여기서도 볼 수 있을까?"

"한 장씩 받아가세요!"

혹시라도 그녀의 위업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봐, 자그마한 전단지를 나눠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필요없다고 손을 내저었으나 억지로 그것을 한 장 넘겨받았다.

자그마한 전단지의 위에는 정말 지긋지긋한 얼굴이 인쇄되어있었다.

그러나 차마 부정할 수 없을만큼 예쁜 얼굴이기도 했다.

예리엘 프로스트.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는 세계 최고의 헌터.

실력도, 실적도 압도적이며 인기는 더더욱 압도적이다.

섣불리 다가가기 힘든 모습에 사람들은 그녀를 성녀라 불렀다.

도로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적당한 벤치를 찾아낸 나는 냉큼 그곳에 앉았다.

기념 퍼레이드의 예정 경로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졌다.

과연 이곳에서 그녀가 보일까 싶었지만, 사실 큰 상관은 없었다.

내가 그녀를 직접 두 눈에 담았던 날은 대부분 재수가 없었으니까.

나는 멍한 기분으로 시선을 조금 내렸다.

전단지의 중간 부분에는 그녀의 위대한 업적이 작은 글씨로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그나마 유명한 업적만 가려서 뽑은 것인데도 이 정도다.

[SS랭크 레이드 보스 티아마트 격파.]

[세계 7대 미해결 던전 중 5개 공략.]

[제 1대 헌터 인권위원회장.]

[게이트 탐사에서 세계 최초로 생환.]

[헌터 전문 살인귀 그린 더스트 격퇴.]

다만 일개 팬들이 홍보용으로 만든 것이다보니 마지막에 좀 이상한 내용이 끼어있긴 했다.

천지신명께 맹세컨대 나는 그녀에게 격퇴당한 적이 없다.

당시에 내가 노렸던 목표물은 확실하게 사망했으니, 격퇴당한 것이 아니라 작전을 완료한 뒤 철수한 것이다.

암살은 성공적이었으니까 사실상 내가 이겼다고 볼 수 있다.

그대로 전단지를 구겨서 쓰레기통에 던져넣을까 싶었던 나는 마지막 문단을 보곤 동작을 멈췄다.

이런 류의 전단지들이 대개 그렇듯, 마지막 부분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음모론을 늘어놓고 있었다.

[예리엘 프로스트는 어째서 돌연 은퇴를 결정한 것일까? 그것은...]

확실히 예리엘의 은퇴는 그 이유조차 짐작이 되지 않았다.

다소 갑작스러운 느낌 또한 있었다.

티아마트와의 전투에서 입었던 부상이 악화됐다거나, 아예 헌터 능력을 잃어버렸다는 둥.

심지어 남자가 생겼다는 소리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의 영역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유야 어떻든 상관없다.

최근 2년간, 게이트의 발생 빈도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세계는 이미 평화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고 봐도 될 것이다.

적어도 시민들이 느끼기엔 그랬다.

이제 그만 보내줄 때가 됐다.

성녀, 예리엘은 은퇴해서 편히 쉴만한 자격이 있다.

사람들은 그런 암묵적인 분위기 속에서 그녀를 환송하기로 했다.

오늘만큼은 나도 그들과 생각이 다르지 않았다.

'그래, 좋은 남자라도 찾아서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아. 대신 절대로 돌아오지 말고.'

그녀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주고 있자 안 그래도 시끌벅적하던 주변이 한층 소란스러워졌다.

마침내 그녀가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대형 퍼레이드 카에 탑승한 예리엘의 환송식.

인파를 통제하던 경찰들은 죽을 각오로 통제선을 지켰다.

시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앞으로 뛰쳐나갔다.

가만히 놔두면 아예 가지 말라고 도로를 막아버릴 것 같은 분위기였다.

역시 여기선 안 보이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박수 소리를 조금씩 보탰다.

'잘가라, 괴물같은 여자야.'

함께해서 힘들었고, 다신 보지말자.

다른 사람들과 이유는 조금 달랐지만 나 또한 그녀의 은퇴를 진심으로 축복했다.

그러나... 어떻게 된 것일까.

슬슬 퍼레이드 카가 지나갔을 시간이 됐건만.

요란스런 환호성과 박수소리는 아까보다 줄어들긴 커녕, 오히려 더욱 커졌다.

시민들은 이제 거의 광란에 빠진 상태였다.

"예리엘! 예리엘 프로스트!"

"성녀님, 가지 마세요!"

"어어? 이쪽으로 오는 거 아냐?"

"에이, 설마."

웃기는 소리다.

퍼레이드 카에 타고있는 사람이 어떻게 여기에 오냐.

내가 그렇게 생각한 것이 무색하도록.

무수한 인파 너머에서 사람 한 명이 불쑥 튀어나왔다.

이쪽에는 경찰도 배치되어 있지 않았건만, 사람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질서를 되찾았다.

조금전까지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러대던 이들이 지금은 그저 경건한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성녀, 예리엘 프로스트.

분명 퍼레이드 카 위에 있어야 할 그녀가 사람들 사이를 자연스럽게 걷고 있었다.

원래부터 좀 4차원이긴 했지만 본인의 은퇴식에서도 저럴 줄이야.

나는 은근슬쩍 자리를 피하려 했으나 그녀가 다가오는 것이 훨씬 빨랐다.

소속 길드의 제복이지만, 그녀 말곤 아무에게도 어울리지 않는 하얀색 복장.

길게 기른 백은발을 경쾌하게 휘날리던 그녀가 어느순간 멈춰섰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맑은 두 눈의 생각은 늘 그랬듯 종잡을 수 없었다.

'들켰나.'

역시 배웅 따윌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는 후회도 잠시.

나는 마음 속에서 각오를 다졌다.

그린 더스트로 활동하며 증거 따윈 남기지 않았지만, 예리엘 프로스트는 이미 확신하고 있다.

그녀의 날카로운 감각은 나를 매번 힘들게했다.

'그나저나 이런 곳에서 일을 벌이다니. 이 여자도 결국 자기밖에 모르는군.'

속으로 작게 실망하며, 너무 늦기 전에 움직이려던 찰나.

예리엘이 마침내 입술을 뗐다.

"오래전부터 지켜봤습니다."

"뭣?"

"저 사람 누구야? 혹시 헌터인가?"

"언니, 갑자기 무슨..."

주변에 늘어선 구경꾼들은 물론이고 같은 길드의 동료 헌터들도 의아해하는 가운데.

그녀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저와 결혼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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