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207화 (208/266)

〈 207화 〉 206. S급(2)

* * *

성남의 연구소에서 안수호 일행이 성유진과 싸우고 있던 때.

“휴우…….”

아카데미 인근 카페에서 기말고사 공부 중이던 강하늘은 한숨과 함께 이마에 흐르던 땀을 훔쳤다. 그녀의 불안한 시선이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로 향한다.

===

[ 대상 ‘안수호’가 <스킬 :="" 연심의="" 벚꽃="">의 두 번째 효과를 활성화하였습니다. ]

[ 지금부터 120분 동안 스킬 사용자 ‘강하늘’의 ‘초인으로서 지닌 모든 능력’이 안수호에게 ‘대여’됩니다. ]

[ 사용자 ‘강하늘’이 대여한 ‘초인으로서 지닌 모든 능력’은 대상 ‘안수호’가 120분 이내에 반납하지 않을 경우 영구히 소실되오니 각별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

===

스킬은 정상적으로 발동되었다. 그것은 기뻐해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그녀가 불안한 표정을 지울 수 없는 건, 그녀가 안수호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실비2야. 오빠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는 정말 하나도 알 수 없는 거야?”

­죄송해요. 제가 느낄 수 있는 건 본체가 격렬한 싸움 중이라는 것뿐. 어떤 상황인지는 알 수 없어요. 저는 텔레파시 같은 건 못 쓰거든요.

그 말에서 알 수 있듯, 강하늘이 아는 거라곤 안수호가 전투에 돌입했다는 것뿐. 불안한 마음에 스킬을 발동하긴 했지만, 상대와 상황을 모르는 이상 그 불안한 마음이 쉬이 가시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오빠 말로는 오늘 안으로 성남에 있는 연구소로 이송될 거라 그러던데……. 그럼 가는 도중에 습격당한 건가? 아니면 연구소에 도착하고 나서?’

머릿속이 온갖 추측으로 가득 찼지만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안수호가 자진출두한 그 순간부터 그와의 연락은 끊긴 지 오래였고, 직접 가서 확인하고 싶어도 성남과 속초는 직선 거리로 100km 넘게 떨어져 있었으니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안수호에게 연신 전화를 걸어댔지만, 돌아오는 건 전원이 꺼져있다는 안내음성뿐. 무미건조한 안내음성이 반복될 때마다 그녀의 불안감은 더욱 배가되었고, 종래에 이르러선 ‘차라리 지금이라도 연구소라는 곳으로 직접 가보는 게 나을까?’하는 생각마저 하게 될 정도였다.

바로 그 순간.

­띠리리리리리!

갑작스레 울리기 시작한 전화를 강하늘이 기다렸다는 듯 집어들었다. 그러나 그녀의 기대와는 달리, 전화를 걸어온 건 안수호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예원 언니…?”

화면에는 지예원이라는 이름 석 자가 보란듯이 표시되어 있었다. 강하늘이 당황하는 것도 잠시, 이내 그녀가 불안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

­콰아아앙!!

안수호의 주먹질에 성유진의 몸이 속절없이 밀려났다. 두꺼운 털가죽과 근육을 뚫고 뼛속까지 스며드는 충격에 성유진은 위화감을 느꼈다.

무언가 이상하다.

안수호의 공격. 이미 수십 번도 넘게 맞아봤기에 그 위력은 잘 알고 있었다. 태초의 은을 통해 강화된 그 위력은 분명 상당했으나, 자신에게 결정적인 위협이 될 정도는 아니었다.

헌데 지금은 어떤가. 몸 위로 꽂히는 주먹 한 대, 한 대가 전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넋 놓고 맞다보면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만큼.

‘전투 중의 성장……. 아티펙트의 진짜 능력……. 아니면 나처럼 불법 약물……?’

짐승화 능력으로 인해 단편적으로 변한 사고로 그가 여러 가능성을 추측했다. 하나 그러는 사이에도 안수호는 철저하게 성유진을 압박해갔다.

‘이대로 가다간…… 진다.’

짐승화 능력이 이성을 약화시킨다곤 하나, 전투와 관련된 본능은 전보다 더욱 날카로워져 있었다. 순식간에 싸움의 결말을 추측해낸 그의 뇌리에 하나의 방법이 떠오른다.

‘그걸 써야겠어.’

­타앗!!

다음 순간 성유진이 크게 도약하며 안수호로부터 물러섰다. 그 모습이 꼭 도망치는 것 같아 안수호를 포함한 모두가 놀랐다. 지금껏 성유진은 전진만 했지 단 한 번도 후퇴한 적이 없었으므로.

그러나.

­꾸득. 꾸드득.

그의 물러섬은 도망을 위한 게 아니었다. 지면을 두 손으로 짚은 그의 골격이 또다시 변하기 시작했다.

반인반수의 웨어울프에서 완전한 짐승인 늑대로.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부분이지만 성유진의 능력은 웨어울프화가 아니었다.

그의 초능력은 짐승화.

평소에는 최소한의 이성을 유지하기 위해 능력을 어중간하게 발동했기에 반인반수의 모습을 취한 것일 뿐. 지금 변신하는 늑대의 모습이야말로 그의 진짜 전력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더욱 강한 전투력을 얻는 대신 이성이 거의 사라져버리는 부작용은 있다. 그로 인한 자잘한 실수도 많이 일어나는 편이다. 가령 조금 전 격리 구역에서 한여름을 완전히 마무리짓지 않은 것 또한 그런 실수 중 하나였다.

허나 지금과 같은 상황, 그저 눈앞의 적을 쓰러뜨리기만 하면 되는 상황에선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이성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을 전투본능은 안수호를 쓰러뜨릴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을 테니까.

­그르르르르르…….

낮게 떨리는 울음소리를 들으며 안수호가 자세를 바로잡았다. 어느새 그의 눈앞에 있는 건 몸 길이가 5미터는 될법한 거대한 늑대였다. 안수호는 그것이 꼭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전설의 늑대, 펜리르 같다 생각했다. 적어도 그것에게서 느껴지는 압박감만은 신화 속 괴물을 빗대어도 전혀 부족하지 않을 정도였다.

­파앙!

===

[ ‘샛별의 숨소리’를 발동합니다(2/3). ]

[ 신체의 움직임이 3분간 2배의 속도로 가속됩니다. ]

===

붉은 빛과 함께 두 번째 스택이 소모되고. 그 순간 한 마리 늑대로 화한 성유진이 안수호를 향해 아가리를 벌린 채 달려들었다.

­콰득!!

……라고 그가 인지한 순간, 늑대는 이미 그의 오른팔을 물어뜯고 있었다. 안수호가 기적 같은 반응으로 팔을 빼내자, 이빨과 갑옷이 부딪히며 갈리는 소리가 주차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까가가가가가각!!

이윽고 빼낸 오른팔 갑옷은 길게 그어진 이빨자국으로 인해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곧바로 실비가 그 틈새를 수복했으나, 태초의 은의 방어가 이리도 손쉽게 뚫렸다는 사실에 안수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크르아아아아아!!

직후 다시금 달려드는 검은 늑대.

전과 달리 미리 대비하고 있던 안수호는 가까스로 그 돌진을 피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급제동과 함께 휘둘러진 늑대의 앞발이 그의 가슴팍을 얕게 훑었다. 그리고 좀 전과 마찬가지로, 날카롭게 서있는 발톱에 흉갑의 일부가 종잇장처럼 찢어져 나갔다.

“이런 씨발…!”

속도도 위력도 웨어울프의 모습일 때와는 비교하는 게 실례일 정도였다. 이성이 거의 완전히 날아간 덕에 움직임이 직선적으로 변하지 않았다면 순식간에 당했으리라.

‘한 대라도 제대로 맞았다간 치명상 확정이야. 저 변신 상태를 얼마나 유지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길게 끌었다간 이쪽이 불리해질 수밖에 없어. 샛별의 숨소리 효과는 3분밖에 안 되니까. 그렇다면…….’

­파앙!

===

[ ‘샛별의 숨소리’를 발동합니다(3/3). ]

[ 신체의 움직임이 3분간 2배의 속도로 가속됩니다. ]

[ ‘샛별의 숨소리’의 모든 사용 횟수를 소모하였습니다. 금일 자정이 지날 때까지 발동 효과의 사용이 제한됩니다. ]

===

안수호는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았다. 1초의 고민조차 사치일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었다. 거기에 더해 안수호는 실비에게 출력을 최대로 올리라 명령했다. 곧 신경을 따라 펄펄 끓는 은이 흐르는 듯한 감각과 함께 전신을 감싼 갑옷이 더욱 두껍고 날카로워졌다.

그야말로 단기결전에 모든 것을 건 태세.

다음 순간 백색 갑옷과 검은 늑대가 동시에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곧 천지가 흔들리는 듯한 격돌음이 온 사방에 울려퍼졌다.

­콰아아앙!!

안수호가 주먹을 뻗었다. 주먹이 격돌한 순간 그 중심에선 시퍼런 냉기가 피어오르고, 그 주변에선 날카로운 가시가 솟구쳐 늑대의 털가죽을 가르고 피를 흩뿌렸다. 늑대가 반격하려하면 연막을 쏘아 그 시야를 아주 잠깐 가리고, 그 사이 사각으로 돌아가 다시 한 번 주먹을 내리꽂았다.

­쾅! 콰앙! 콰아앙! 콰아아앙!!!

초능력, 탈리스만, 샛별의 숨소리, 서리정령의 증표, 그리고 태초의 은까지.

그는 그야말로 자신이 기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성유진이 완전한 변신과 불법 약물로 S급의 경지를 초월했다면, 안수호 또한 온갖 아티펙트를 동원하여 억지로 그 경지를 초월했다. 그걸로도 모자라 그는 성유진보다 기어코 한 발자국 더 앞섰다. 어디까지나 샛별의 숨소리의 가속이 유지되는 3분에 한정된 일이었으나, 그 순간 안수호는 분명하게 성유진을 찍어누르고 ‘최강’의 왕좌에 한쪽 발을 걸칠 수 있었다.

­크르아아아아아!!!

고통과 분노에 찬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베고, 찌르고, 때리고, 꺾고, 밀어내고, 부수고. 안수호의 공격이 폭풍처럼 늑대에게 휘몰아치며 사방으로 검붉은 핏물을 흩뿌렸다.

­콰득!

허나 완전한 짐승으로 변한 성유진은 그 겉모습만큼이나 우직하기 그지없었다. 100번의 공격을 당하면서도 기어코 틈을 노린 그의 주둥이가 안수호의 왼쪽 어깨를 물었다. 곧바로 관자놀이를 쳐내 뿌리쳤지만, 그 짧은 순간에 그의 어깨는 걸레짝처럼 변해 있었다. 근육이 끊어지고 뼈가 부러진 격통에 안수호가 밀려오는 신음을 입 안에서 도로 삼켰다.

부러진 뼈를, 끊어진 근육을 태초의 은으로 보강한다. 펄펄 끓는 은이 유사 골격과 근육을 이루며 그의 몸과 하나가 된다. 몸속에 지네가 기는 듯한 이질감과 고통이 엄습해왔으나 그건 알 바 아니었다. 순식간에 왼쪽 팔의 운동 능력을 회복한 안수호가 더욱 가열차게 늑대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콰앙!!

그러나 쓰러지지 않는다.

­콰아앙!!

휘두른 주먹은 이제 수백을 넘어 천에 달할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늑대는 쓰러지지 않았다. 짐승의 우직함이 무엇인지 보여주겠다는 듯, 수백의 주먹을 넘어 기어코 주둥이를 뻗어 그의 몸을 물어뜯었다.

안수호는 자신의 공격이 정녕 상대에게 통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반면 상대의 공격은 그에게 확실하게 통하고 있었다. 실비를 이용해 곧바로 부상을 수복하곤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임시방편. 늑대의 아가리가 그의 몸을 찢어발길 때마다 그 손상은 확실하게 그의 신체에 누적되어갔다.

­크르르, 케륵! 케흐륵?!

물론 성유진이라 해서 멀쩡한 건 아니었다. 천의 권격을 감내한 그의 몸 또한 만신창이인 것은 마찬가지. 전신의 뼈에 금이 가고 내장에서 출혈이 일어나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다.

그렇지만 그는 짐승이었다. 고통을 경계하고 죽음을 두려워할 이성 따위 진즉에 사라진 채, 오직 우직한 전투본능만이 남은 그는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제발 좀 죽어라!!”

­콰드득!

안수호의 주먹이 늑대의 안와에 꽂혔다. 경쾌한 분쇄음과 함께 안와가 내려앉고 왼쪽 눈이 터져나갔다. 허나 직후 휘둘러진 발톱이 안수호의 옆구리를 가르고 지나갔다. 근육이 갈라지고 그 틈새로 튀어나오려던 내장을 실비가 가까스로 붙들어 다시 집어넣는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고통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내장의 위치가 뒤틀리는 고통에 입술을 잘근 깨문 안수호의 뇌리에 불길한 예감이 스친다.

이대로 가다간 진다.

어떠한 논리도, 근거도 없는 추측이었다. 즉 그의 본능이 그의 이성에게 던진 경고였다. 눈앞의 괴물은 정말 괴물이라고. 이대로 가다간 가속 효과가 끝남과 동시에 놈의 이빨과 발톱에 명을 달리하게 될 거라고.

‘내 공격이 아예 통하지 않는 건 아니야. 오히려 엄청 통하고 있어. 그런데도 무시무시한 집념으로 계속 물고 늘어지고 있는 거야. 그런 놈을 확실하게 잡으려면, 집념 따위로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한 방을 먹어야 해.’

커다란 한 방. 그 말에 순간 안수호가 떠올린 건 바로 한겨울이었다.

그의 두 눈이 다급하게 주변을 살피고, 이내 주차장 저편에서 넋을 놓은 채 싸움을 관망 중이던 그녀와 마주쳤다.

한겨울은 눈앞에서 벌어진 천외천의 싸움에 차마 끼어들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S급끼리의 싸움도 처음인 마당에 S급을 넘어선 규격 외의 전투와 맞닥뜨렸으니, 그녀로선 싸움의 흐름을 쫓는 것조차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녀에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부상으로 쓰러진 자신의 언니를 전투의 여파로부터 지켜내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나 안수호는 그녀야말로 이번 전투의 열쇠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한겨울!!!!”

안수호의 외침이 주차장에 울려 퍼졌다. 호흡 한 번에 할애할 노력조차 아껴가며 적에게 투자할 정도로 극한까지 몰린 전투 상황 속, 그 갑작스러운 외침은 안수호에게 아주 작은 틈을 만들었다. 그 틈을 노린 늑대의 아가리가 안수호의 오른팔을 물어뜯으려 짓쳐들었다.

­두근.

날카로운 이빨이 그의 오른팔을 사정없이 찢어발기기 직전. 안수호는 묘한 기시감과 함께 세상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동시에 드는 생각.

지금이라도 피한다면, 상처는 입을지언정 팔을 통째로 잃게 되진 않을 거라고.

­콰득!!

그러나 안수호는 일부러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먹을 내지르듯 팔을 뻗어 늑대의 아가리 속으로 자신의 팔을 집어넣었다. 직후 닫힌 주둥이가, 맞물린 이빨이 그의 갑옷을 뚫고 뼈와 근육에 박혔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안수호의 노림수였다.

“……잡았다.”

­콰드드드득!!

오른팔의 갑옷이 수십 갈래의 가시로 변하여 늑대의 입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동시에 왼손으로는 늑대의 귀를 있는 힘껏 부여잡고, 두 다리를 지면에 쾅 박으며 몸을 고정했다. 당황한 늑대가 몸을 빼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한겨울!!!!”

직후 다시 한 번 울려퍼진 외침.

“대련 때 나한테 썼던 기술!! 지금 당장 이 자식한테 쏴버려!!”

그 말에 한겨울의 표정이 흠칫 굳었다.

그녀가 대련 때 안수호에게 썼던 기술이야 수십 가지가 넘는다만, 그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겨울은 짐작할 수 있었다.

드래곤 브레스.

그녀가 가진 모든 기술들 중 최고의 화력을 자랑하는, 극한으로 압축한 대량의 불꽃을 일제히 해방하여 눈앞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일소하는 필살의 일격. 심지어 장소가 밀폐된 주차장이니 그 위력은 더욱 배가되겠지.

허나 그 말은 즉 기술을 썼다간 안수호나 한여름까지 휘말리게 된다는 뜻이었다. 그녀 자신은 불꽃에 내성이 있으니 괜찮지만 두 사람은 분명 무사하지 못할 거라고.

“……뭐하고 있어. 얼른 쏘지 않고.”

그 순간 쓰러져 있던 한여름이 그녀에게 속삭였다. 한여름이 힘겨운 표정으로 손아귀에 냉기를 그러모으며 덧붙였다.

“저놈을 죽일 수 있는 건 지금 네 불꽃밖에 없어. 내 몸 정돈 알아서 지킬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얼른…….”

“하, 하지만 그랬다간 저 사람이…….”

“넌 아직 안수호를 잘 모르는구나. 저 사람은 자기가 손해 보는 일은 절대로 안 해. 다 생각이 있으니까 하는 말일 거야.”

그러니 얼른 쏘라고.

그 말에 한겨울이 불안한 표정으로 안수호를 바라보았다. 안수호는 수십 마디의 말을 하는 대신 한 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그의 의사를 전달했다.

“…….”

그 끄덕임에 한겨울이 아주 잠시 망설였고.

­화륵.

직후 그녀의 양손에 시뻘건 불꽃이 피어올랐다. 곧 그녀가 두 손을 마주보게 가슴 앞에서 포개자, 갈 곳을 잃은 불꽃이 압축되기 시작하며 백색의 섬광을 뿜어내기 시작한다.

­크륵?

그 위협적인 섬광에 늑대의 본능이 경종을 울렸다. 이에 늑대가 자리를 피하려 했으나, 그 순간 안수호의 몸에서 뻗어나온 수십 다발의 촉수가 그것의 몸을 옭아매었다. 그 움직임에 하나 남은 늑대의 눈에 경악의 감정이 차오른다.

저 공격에 당했다간 자신은 무사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건 눈앞의 남자도 마찬가지일 터.

그렇다면 설마 이 자는 자신과 동귀어진이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눈앞의 남자가 뭣 때문에 자신과 함께 죽으려 한단 말인가. 남자의 목적은 자신의 안위이자 생존이다. 고로 함께 죽겠다는 생각 따위 할리가 없다고.

짐승의 본능에 억눌려있던 일말의 이성으로 성유진이 그렇게 생각한 순간.

­투화아아악!!

안수호의 왼손에서 시꺼먼 연기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연기는 조금도 확산하지 않은 채 안수호의 전신을 감싸듯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 농도가 어찌나 짙은지 성유진의 몸에 닿은 연기는 거의 액체 상태나 다름없었다.

“……불꽃은 연기를 태울 수 없다. 이쪽 업계에선 꽤 유명한 클리셰거든.”

그때 휘몰아치는 연기 사이로 안수호가 작게 읊조렸다. 짐승인 늑대는 그 읊조림의 의미를 알 수 없었지만, 갑옷 투구의 슬릿 사이로 느껴지는 비웃음의 감정만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장차 이 나라 최강의 발화능력자가 될 녀석의 전력전개다. 꽤 뜨거울 테니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크르르르르르르!!!!

그 이죽거림에 성유진이 분노에 차 이빨 사이로 그르렁거렸고.

­파아아아앗!!

직후, 한겨울의 손에서 작열하는 백색 섬광이 터져나왔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