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6화 〉 205. S급(1)
* * *
저벅.
등 뒤에서 발소리가 울렸을 때, 안수호는 자신의 앞에 있던 이들의 경악하는 표정을 보았다. 동시에 그의 심장을 꽈악 조이기 시작한 무형의 압박감은, 등 뒤에 있을 존재가 그의 예상과 다르지 않음을 직감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뒤를 돌아보자.
‘역시.’
성유진은 그곳에 어떠한 꾸밈도 반전도 없이 당당히 서있었다. 상반신은 헐벗은 채 조각 같은 몸매를 드러내고 있었고 하반신은 짐승의 털로 촘촘하게 뒤덮여있었다. 드러난 피부는 묘하게 붉었으며, 그 위로는 두꺼운 혈관들이 울긋불긋 도드라져 있었다.
“……설마 환풍구를 통해 도망쳤을 줄이야. 당신 냄새를 기억하고 있어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애먼 지하만 뒤지다 놓쳐버릴 뻔했습니다.”
“성유진, 너 지금”
“이봐, 당신 지금 제정신이야?! 아무리 태초의 은이 탐나도 그렇지, 이건 해도해도 너무하잖아 지금!”
한여름의 외침에 성유진이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리곤 싱긋 웃었다.
“그 상처로 용케도 살아남았군요. 상처를 얼음으로 막아 지혈하다니. 역시 최연소 S급다운 기개와 판단력입니다. 아, 질문에 대해 답해드리자면, 물론 저는 지극히 제정신입니다.”
“국가기관을 습격해 민간인 수십을 죽여놓고 제정신이라고……? 너 지금 이 사단을 내놓고도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아?”
“CCTV를 포함한 보안 시스템은 이미 전부 무력화 되었습니다. 제 얼굴은 어디에도 찍히지 않았고, 목격자라 부를만한 사람도 이젠 당신들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당신들을 마저 죽이면 오늘의 진상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게 되죠. 세간에는 그저 격리 미스로 인한 연구소의 궤멸로 발표될 겁니다.”
“도대체 다중능력 연구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그 말은 안수호의 것이었다. 한여름을 향해 미소 짓고 있던 성유진은 안수호를 봄과 동시에 그 얼굴에서 웃음기를 싸악 지웠다.
“글쎄요. 설명해준다 한들 당신은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꾸드드득!
다음 순간 성유진의 몸이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덩치가 커지고, 근육이 불어나고, 그 위를 시꺼먼 털이 뒤덮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변화를 마친 그 모습은, 이전 기사의 무덤에서 보았을 때보다 훨씬 거대하고 흉포해 보였다. 3미터를 족히 넘기는 거체를 올려다보며 안수호 또한 풀아머를 발동했다.
촤라라라락!!
오른손에서 뻗어나온 태초의 은이 그의 전신을 휘감았다. 이윽고 그것이 취한 모습은 빌헬름과 닮은 전신갑옷. 그 모습에 변이 중이던 성유진이 나지막한 조소를 흘렸다.
일찍이 빌헬름에게 죽을 뻔한 그가 보기엔 참으로 악취미적인 모습. 허나 겉모습을 따라한다 한들 강함 또한 그 괴물을 따라가는 것은 아니라며. 완전히 변모한 한 마리의 웨어울프가 은색 기사를 보며 몸을 낮췄다.
띠링!
그 순간 안수호의 시야에 새로운 알람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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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퀘스트 정보가 갱신됩니다! ]
[ 이번 사태의 배후이자, 진정한 흑막인 성유진이 당신과 학생들의 목숨을 노리고 있습니다! 그는 날고 기는 S급 초인들 중에서도 최강의 자리를 넘볼 수 있을 정도의 강자! 심지어 그는 불법 약물을 통해 신체능력과 초능력을 강화한 상태입니다! 따라서 당신은 두 학생을 지켜내기 위해 당신이 가진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전력을 다해 싸워야 할 것입니다! ]
<보상/>
1. 경비율 증가 10%→15% ( 현재 경비율 28% )
2. 칭호 ‘S급 살해자’ 획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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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가진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야 할 것이다. 그 말에 안수호는 퀘스트 창을 치운 뒤 현재 상태를 점검했다.
신체 상태는 거의 만전. 실비와 탈리스만도 혹사시키긴 했지만 당장 사용에는 무리가 없었다. 샛별의 숨소리 스택은 하나도 소모하지 않았으며 서리정령의 증표도 여전히 사용 가능.
과연 이 전력이 성유진을 상대로 부족할지 아닐지. 그것은 일단 부딪혀봐야 아는 일이라고.
안수호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그 마음을 읽었다는 듯 성유진이 달려들었다.
‘방어…….’
투콰아아아아아앙!!!!!
어줍잖게 가드했던 안수호는 가드 째로 허공을 날아 벽에 박혔다.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나 이는 오산. 수명을 깎아내는 불법 약물로 강화한 그는 기사의 무덤 당시보다 더욱 괴물 같아진 상태였다.
“크르아아아아아!!!”
성유진의 거센 포효가 주차장을 가득 메웠다.
까드드드드등!
화르르르르륵!
직후 그의 양 옆에서 붉은 화염과 푸른 얼음이 그를 덮쳤다. 허나 성유진은 간지럽지도 않다는 듯, 두 자매를 번갈아 보더니 좀 더 가까이 있던 한여름을 향해 날카로운 손톱을 휘두르려 했다.
“어딜!!”
콰아아아앙!!
그 순간 안수호가 쏜살같이 튀어나가 그의 어깨를 걷어찼다. 주르륵 밀려나는 3미터의 거체.
촤라라라락!
직후 안수호의 다리 부분 갑옷이 변형하더니 여덟 가닥의 날카로운 촉수가 휘둘러졌다. 성유진의 어깻죽지에서 검붉은 핏물이 피슛! 하고 튀어 올랐다.
“크르르아아아!!!”
하지만 그뿐. 얇은 가죽만을 가른 칼날들은 그에게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했다. 직후 성유진이 안수호의 다리를 붙잡아 그대로 지면에 패대기쳤다.
쩌저저적!!
거대한 균열과 함께 갈라지는 지면. 직후 은빛 칼날이 다시 한 번 성유진의 몸에 박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털가죽을 약간 꿰뚫은 정도에 그쳤으나, 그 순간 안으로 파고든 칼날 끝부분이 변형하여 사방으로 가시를 뻗쳐댔다.
“크아아아아!!”
수백 개의 바늘이 연약한 속살을 찌르는 고통에 성유진이 그를 잡은 손을 놓았다. 곧바로 일어선 안수호가 그의 품으로 달려들어 주먹을 뻗었다.
키이잉!
동시에 그의 왼팔에서 샛별의 숨소리가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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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샛별의 숨소리’를 발동합니다(1/3). ]
[ 신체의 움직임이 3분간 2배의 속도로 가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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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콰앙! 쾅쾅! 콰아앙!
폭발과도 같은 타격음이 연신 울려 퍼진다. 몇 대 얻어맞으며 속절없이 밀리던 성유진이 이내 자세를 가다듬고 마주서 주먹을 내질렀다. 좀 전의 경험으로 안수호는 그의 공격을 막는 게 불가능하단 걸 알았다. 그러나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후우우웅!!
옆구리를 후려치려던 주먹을 안수호가 허리를 뒤로 꺾어 피해냈다. 몸이 거의 지면에 드러눕듯이 한 회피 동작이었으나 안수호의 몸은 곧바로 탄성 있게 튀어올라 다시 주먹을 내질렀다.
인간에겐 불가능한 움직임. 허나 실비의 보조 덕에 가능한 움직임이었다. 안수호는 실비의 성능에 기대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폭풍처럼 몰아치는 성유진의 주먹을 피하며 그에게 연격을 꽂아 넣었다.
‘가능하다. 충분히 통해. 이길 수 있다!’
짓쳐드는 손톱을 허리를 비틀어 피해낸 직후, 팔 전체를 검으로 변형시켜 튕기듯 휘둘렀다. 검붉은 핏물이 투확! 터지며 성유진이 옆구리를 붙잡은 채 뒤로 물러선다.
허나 그 순간.
지끈.
몸의 중심에서 한 차례 피어오른 지끈거리는 아픔. 잠시 주춤한 안수호는 이내 다시금 달려드는 성유진을 보며 자세를 다잡았다. 그리고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아슬아슬한 회피와 공방이 다시금 시작되었다.
지끈.
지끈.
지끈.
그러자 다시 찾아오기 시작한 아픔.
안수호는 그 고통의 근원을 찾다, 이내 그것이 그의 뼈와 근육에서 기인하고 있는 것임을 알아차렸다. 실비의 보조를 받아 본래 스펙 이상으로 움직여댄 뼈가, 관절이, 근육이 삐걱이며 조금씩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내 몸이 실비의 보조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그럴 리가. 지금껏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는데?’
안수호가 그 부작용을 미리 깨닫지 못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가 실비의 운용을 연습할 때는 그의 페이스대로 움직였으니 몸에 무리가 가지 않았으니까. 허성찬이나 암살팀과 싸울 때도 마찬가지. 그들과의 싸움은 안수호의 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기에 이같은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허나 성유진은 S급 중에서도 궤를 달리하는, 그야말로 천외천의 상대.
실비는 그런 성유진에 맞춰 안수호의 몸을 극한으로 몰고 갔다. 그리고 본래라면 불가능할 움직임을 위해 뼈와 근육을 짜낸 결과, 싸움의 수준에 비해 한없이 초라한 B급 초인 수준의 몸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강하늘의 스킬과 달리 실비에 의한 강화는 물리적인 운동 보조. 그의 신체 스펙에 자체에 영향을 주진 않았으니까.
‘그렇지만 아프긴 해도 그리 심하진 않아. 지금은 그저 참는 수밖에…!’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건, 그 고통을 짊어진 채 내지르는 공격들이 성유진에게 확실히 통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 공격들마저 경상 이상의 상처는 내지 못하고 있었지만.
‘공방 자체는 내가 유리하지만 결정적인 한 방이 부족해. 한여름이나 한겨울 쪽에서 힘을 써줘야 하는데…….’
안수호가 두 사람 쪽을 흘긋 바라봤다. 그러나 언니든 동생이든 간에 큰 기대를 걸 수는 없었다.
먼저 한여름. 그녀는 현재 부상으로 인해 골골대는 상태였다. 출혈을 막기는 했지만 그뿐. 척 보아도 힘겨워 보이는 그 표정만큼이나 초능력의 화력 또한 저하되어 있었다. 그녀의 얼음은 지금의 성유진에게 있어 발목 잡기 이상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기실 빙결능력이란 게 애초에 한계가 명확한 능력이었다. 그동안은 압도적인 규모와 다양한 응용력으로 이를 보완했지만, 본인의 부상과 성유진의 강화라는 악재가 겹쳐 그녀는 거의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한편 한겨울은 비록 몸 상태는 멀쩡했지만, 난생 처음 겪어보는 S급의 싸움에 제대로 따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안수호와 성유진의 움직임을 쫓는 것조차 급급한 와중에 그녀는 아군 오사의 위험이 있는 불꽃을 함부로 쏘아낼 수 없었다. 한여름이 이따금 안수호를 보조하듯 능력을 쓰는 것과 대조되는 모습.
이는 단순 스펙보다는 경험의 부족에서 기인한 문제였다. 유수의 초인들과 협력해 싸워본 경험이 있던 한여름과 달리, 한겨울의 전투 경험은 기껏해야 1대1의 랭킹전이 고작이었으니.
“크르아아아!!”
그때 성유진이 어딜 한눈을 파냐는 듯 포효하며 기습적으로 발길질을 날렸다. 미처 예상치 못한 일격에 안수호의 허리가 기역자로 꺾였다.
“끄흡!”
띠링!
===
[ ‘샛별의 숨소리’의 효과가 종료됩니다. ]
===
그와 동시에 떠오른 시스템 알람.
순간 몸이 무거워진 감각에 안수호가 틈을 보이고, 성유진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달려들었다. 주먹이, 손톱이, 때로는 이빨이 그의 몸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갑옷 파편과 붉은 핏물이 튀어올랐다.
“안수호 씨!!”
까드드드드등!!!!
이를 지켜보던 한여름이 둘 사이를 갈라놓듯 거대한 빙벽을 일으켰다. 성유진의 근력이라면 그깟 빙벽 정도 부수는 건 일도 아니었지만, 반쯤 짐승이 된 그의 정신은 자신의 공격을 방해한 한여름에게 보다 강한 적의를 느꼈다.
콰앙!
곧 그의 몸이 90도 돌아 한여름에게 돌진했다. 한여름이 빙벽을 세워 방어하려 했지만 역부족. 유리처럼 깨져나간 얼음 파편들 사이로 내질러진 주먹이 그녀의 가슴에 제대로 꽂혔다.
“꺄, 흑?!”
투화악!
그 충격에 상처를 막고 있던 얼음이 깨지며 일제히 출혈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한여름은 재차 상처를 수습하려 했으나 이어지는 발길질에 속절없이 땅바닥을 구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그 공격 덕에 성유진으로부터 거리를 벌릴 수는 있었다.
물론 그래봤자 성유진이라면 한달음에 좁힐 수 있는 거리였지만.
“크르르르르…….”
피투성이 바닥을 짚고 일어서려는 한여름을 성유진이 노려봤다.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와도 같은 눈빛으로.
화륵.
허나 다음 순간 등 뒤에서 들린 소리에 성유진은 곧바로 몸을 돌렸다.
화르르륵! 치이이이익!
“크아아아아아아!!!”
직후 그의 어깨에 정통으로 꽂힌 고온의 섬광에 성유진이 비명을 내질렀다. 한겨울이 쏘아낸 AP샷. 극한으로 압축한 한 줄기 불길이 털가죽을 태우고 그 안의 근육에까지 작열하는 열기를 침투시켰다.
“크르르르르르…….”
또 다시 방해받았다는 상황에. 그리고 어깨에서 느껴지는 작열통에 성유진의 눈동자가 돌아갔다. 그가 한 마리 짐승과도 같은 울음소리를 지르며 반대편에 있던 한겨울에게 달려들었다.
스팡! 스팡! 스파아앙!
정직하리만치 일직선인 돌진. 한겨울의 손끝에서 고온의 섬광이 계속해서 뿜어져나왔다. 그러나 성유진은 제 살갗을 태워대는 공격에도 아랑곳않고 거리를 좁혔고.
'이런, 피해야…….'
한겨울이 그렇게 생각했을 땐 이미 지근거리까지 다다른 뒤였다. 달려들던 기세 그대로 치켜든 주먹이 한겨울의 머리 위로 내리꽂혔다.
피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한 한겨울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카아아아앙!!!!
그러나 절체절명의 순간, 아슬아슬하게 도착한 안수호가 두 팔로 그 일격을 막아냈다. 무릎이 덜컥 꺾이고 척추가 비명을 질러댔지만, 그는 S급마저 초월한 괴물의 일격을 그 한 몸으로 오롯이 받아내는 데에 성공했다.
"크으으윽……!"
그 신음에 한겨울이 감았던 눈을 떴다. 그러자 보이는 건 그녀를 지켜서듯 선 안수호의 등이었다.
"다, 당신……."
"보고만 있지 말고 얼른 도와줘요! 버티기 힘드니까!"
그 외침에 한겨울이 서둘러 불꽃을 그러모았다. 그러나 낌새를 알아챈 성유진이 자신의 주먹을 막은 안수호의 두 팔을 그대로 쥐더니, 그대로 휘둘러 한겨울을 후려쳤다.
"끄흣?!"
콰아아앙!
한겨울의 몸이 허공을 날아 주차되어있던 자동차 본넷에 박혔다. 안수호는 그녀의 안위가 걱정되었지만 그보단 눈앞의 적이 먼저였다.
콰아앙!!
성유진이 안수호를 지면에 내리꽂았다. 한 손으로는 여전히 안수호의 양팔을 붙든 채, 반대손을 꽉 쥔 그가 사정없이 주먹을 내려쳤다.
"이 자식이……!"
안수호는 곧바로 반격했다. 비록 두 팔은 묶여있었지만 태초의 은은 형태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었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나온 칼날이 성유진의 몸을 베어냈다.
"크르륵!!"
그러자 성유진이 그를 붙잡았던 손을 놓았지만, 여전히 마운트 포지션인 건 변함없었다. 오히려 성유진은 두 팔이 자유로워진 덕에 더욱 노도와 같이 공격을 쏟아냈다. 가드를 굳힌 안수호가 반격했지만 그는 급소로 향하는 공격을 제외하곤 전부 그 몸으로 받아냈다. 마치 뼈를 주더라도 살을 취하겠다는 것처럼. 온몸에 새겨지는 상처를 도외시한 채 그가 주먹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쾅! 콰앙! 콰득! 콰즉! 콰드드득!
"!!"
그 폭풍 같은 연격에 결국 태초의 은쪽이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균열과 함께 튀어오르는 갑옷 파편들. 실비가 곧바로 수복에 들어갔지만 공격 속도가 수복 속도를 웃돌았다. 급한대로 등쪽의 갑옷을 전면으로 돌렸지만, 그것도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주인님! 이대로 가다간 당해요! 얼른 빠져나와야 해요!
'나도 알아! 근데 지금 그게 마음대로 안 된다고!'
제 출력을 더 올리면 돼요! 그럼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어요!
'아니, 그건 안 돼!'
현재 안수호가 발동한 '풀아머' 상태는 실비의 안전한 운용의 사실상 마지노선이었다. 이 이상 출력을 올렸다간 언제 탈리스만에 과부하가 올지 모른다. 애초에 그만한 출력을 그가 지금의 몸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조차 미지수였고.
'그렇지만 그것 말곤 방법이 없어. 놈은 실비의 촉수 공격도, 붙잡힌 팔에서 발동한 서리마법도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랬다가 탈리스만이 꺼지기라도 하면…….'
그 순간 자신은 무방비해진다. 작금의 상황에 그나마 싸움이 성립하는 건 다 실비 덕이었으니까.
콰득!
그때 성유진의 손톱이 안수호의 배에 박혀들어갔다. 급하게 집중한 갑옷이 이를 막아냈으나, 미처 막지못한 손톱이 그의 옆구리에 푸욱 박혔다.
'젠장. 이 이상 더 지체할 순 없어. 이렇게 된 이상 이판사판이다…!'
놈을 뿌리치고 태세를 정비할 때까지. 그 잠시 동안만 실비의 출력을 최대로 올리자.
그렇게 생각한 안수호가 실비에게 명령하려던 순간.
띠링!
한 줄기의 시스템 메시지가 그의 눈앞에 떠올랐다.
직후.
콰아앙!!
안수호가 내지른 발길질이 성유진의 몸을 밀어냈다. 십미터 가까이 주르륵 밀려난 늑대의 얼굴에 의문이 서린다.
방금 그 발차기는 도대체 뭔가.
위력도, 속도도 그 전과는 비교가 안 되는 강력한 일격. 배에서 느껴지는 얼얼한 아픔에 성유진이 당황하고 있을 때.
"……와, 이럴 수가."
안수호 또한 당황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만 성유진과는 달리 긍정적인 의미로.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그렇게 생각하며 안수호가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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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킬 :="" 연심의="" 벚꽃="">의 두 번째 효과가 활성화되었습니다. ]
[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는 지고지순의 사랑! 지금부터 120분 동안 스킬 사용자 ‘강하늘’의 ‘초인으로서 지닌 모든 능력’을 대상 ‘안수호’에게 ‘대여’합니다! ]
[ 사용자 ‘강하늘’의 능력치만큼 대상 ‘안수호’의 신체 능력치를 보정합니다! ]
[ 근력 능력치가 D+에서 B+로 상승합니다. ]
[ 민첩 능력치가 B+에서 A+로 상승합니다. ]
[ 내구 능력치가 C에서 A로 상승합니다. ]
[ 마력 능력치가 C에서 A로 상승합니다. ]
[ 기교 능력치가 C에서 A로 상승합니다. ]
[ 행운 능력치가 B에서 S로 상승합니다. ]
[ 보유 초능력에 아바타(D)가 추가됩니다. ]
[ 사용자 ‘강하늘’로부터 대여 받은 ‘초인으로서 지닌 모든 능력’은 대상 ‘안수호’가 120분 이내에 반납하지 않을 경우 영구 소실되오니 각별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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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몸에 스며드는 활력에 안수호가 주먹을 꽈악 쥐었다. 조금 전까지 삐걱이던 관절과 근육이 거짓말처럼 생기를 되찾고, 군데군데 비어있던 갑옷의 틈새가 빠르게 메꾸어진다.
"도대체 어떻게 이쪽 상황을 알아낸 건진 모르겠지만……."
참 나답지 않게 운이 좋다고.
그렇게 중얼거린 안수호가 지면을 박찼고.
콰아아아아앙!!!!
다음 순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묵직해진 그의 주먹에 성유진의 턱이 돌아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