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105화 (106/266)

〈 105화 〉 104. 밤의 문답(1)

* * *

“……침입자. 배제……”

“움직이지 마.”

“컥.”

설아현의 발길질에 사냥개 중 하나가 복부를 부여잡고 신음했다. 그 사냥개 옆으로는 다른 열아홉의 사냥개들이 시장에 내다파는 생선들처럼 나란히 도열해 있었다.

설아현은 그 주위를 끊임없이 오가며 일어서려는 사냥개들을 툭툭 건드리며 제압했다.

“정말 항복이란 걸 모르는 놈들이네요. 각자 팔다리 하나씩 분질러놨는데 기운도 좋지.”

“말투도 어눌하고 꼭 세뇌라도 당한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요. 이것들의 배후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수호 씨도 꽤 성가신 사람들과 엮인 것 같네요.”

“그 형이 원래 이래저래 많이 휘말리는 편이죠.”

류태현이 어깨를 으쓱이며 주먹에 묻은 피를 손으로 닦아냈다. 그런 류태현에게 설아현이 넌지시 물었다.

“혹시 태현 씨는……. 수호 씨랑 많이 친한가요……?”

“저랑 형이요? 엄청 친하죠!”

주저 없는 대답이었다. 기실 두 사람은 엄청 친하다고 할 정도로 사이가 돈독한 건 아니었으나, 적어도 류태현이 생각하기에는 그랬다. 그는 원체 성격이 긍정적인 남자였다.

“그럼 혹시 수호 씨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줄 수 있나요?”

“형이야 뭐 좋은 사람이죠. 착하고. 친절하고. 사명감 넘치고. 불의를 보면 못 참고. 아, 또 싸움도 엄청 잘해요. 이게 막 기똥차게 강하다! 이런 건 아닌데, 배우는 게 빠르다고 해야 하나? 아마 아카데미 학생이었으면 제 담임 교수님이 침 질질 흘리면서 가르치려 들었을 걸요?”

“그런가요.”

“근데 갑자기 이런 질문은 왜? 아현 씨도 수호 형이랑 잘 아는 사이 아니세요? 자기소개할 때 두 분이서 돈독한 사이라고 했잖아요.”

“그냥요. 그 남자가 다른 사람한테는 어떻게 비치나 궁금했거든요. 흐음. 수호 씨는 그런 사람이었구나…….”

설아현이 혼자 고개를 주억거리며 살짝 미소 지었다. 혹시라도 무언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면 어쩌나 싶었는데, 일단 류태현의 평만 들어보면 그런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근데 수호 씨 정도면 엄청 강한 거 아닌가?’

듣기에 조금 의아한 부분이 있긴 했지만 설아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녀가 궁금했던 건 어디까지나 안수호의 인격적인 부분이었으므로.

‘그런데, 그렇게 착하다는 사람이 침대에선 그렇게까지 달라지는 거구나. 아니, 오히려 평소에 본성을 꾹꾹 눌러두니까 그렇게 변하는 건가……?’

방금 막 전투가 끝난 마당에 이 무슨 시답잖은 생각인가. 그러나 설아현에게 있어선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안수호는 그녀의 인생 26년, 회귀 전까지 합치면 30년이 넘는 짧지 않은 삶에서 처음으로 이성으로 인식한 남자였으니까.

고작 한 번의 미래시를 본 것만으로 안수호에게 연애 감정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미래를 본 이상 의식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시간. 번다…….”

“움직이지 말라니까?”

“커억.”

다시 몸을 일으키려던 사냥개 하나를 짓밟으며 설아현이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시작은 만약 안수호와 사귀게 된다면 어떨까, 하는 달짝지근한 것이었으나 결국 살색이 만연한 그렇고 그런 내용으로 귀결되었다.

“……헤응.”

적의 등을 짓밟으며 숫제 얼굴을 붉히는 설아현.

그런 설아현을 보며 류태현이 마른 침을 삼켰다. 식은땀 한 줄기가 그의 등골을 따라 흘러내린다.

‘……형도 참 피곤하겠어.’

그것은 단순한 연민인가. 아니면 같은 처지에 있는 자로서의 동병상련인가.

류태현이 창고 벽 너머. 안수호와 지예원이 올라간 산 방향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한편 그 시각.

지예원과 안수호. 두 사람이 나란히 산길을 내려갔다. 지예원의 등 뒤에는 의식을 잃은 강하늘이 업혀 있는 상태.

안수호의 상처는 지예원이 넘긴 포션 덕에 완치에 가깝게 치유되었다. 실혈로 인한 가벼운 빈혈과 통증은 조금 남아있었으나, 그 정도야 얼마든지 참을 수 있는 범위 내였다.

지예원은 안수호에게 이것저것 잔뜩 물어봤다. 대부분 칼리를 쫓아간 뒤 어떤 일이 벌어졌느냐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안수호는 무엇 하나 숨기지 않고 모든 사실을 말했다. 중간에 나은주가 난입한 것과, 그리고 칼리를 마침내 죽여버린 것까지.

지예원은 안수호가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에 대해선 별 말 하지 않았다. 반면 나은주에 관해서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쩐지. 그 애 능력이 그런 거였구나……”

일찍이 나은주의 능력에 노출된 적이 있던 지예원으로서는 이제야 아귀가 맞는 느낌이었다. 물론 그때 그녀는 정신이 조종당한 게 아닌, 가벼운 암시 정도만 받았던 것이지만.

그 말을 마지막으로 지예원은 무언가 생각할 거리가 있는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안수호 또한 구태여 대화를 이어가고자 하진 않았다.

­저벅 저벅.

풀잎이나 나뭇가지 따위를 즈려밟는 소리만이 작게 울렸다.

“안수호.”

그때, 침묵을 깨고 지예원이 입을 열었다.

“내가 임무 때문에 떠나던 날에 했던 말, 기억해?”

갑작스러운 질문.

그 질문에 안수호는 가슴이 불편해지는 걸 느끼며 간신히 대답했다.

“……어. 기억해.”

“아직 일주일도 안 지나긴 했지만 이렇게 만났으니까 물어볼게. 아마 이번 일로 민채령의 임무도 잠시 중단될 것 같으니까. 그, 아무튼.”

지예원은 일부러 걷는 속도를 늦추지 않은 채 말했다. 안수호보다 다섯 걸음 정도 앞선 채, 마치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듯.

그것은 안수호에 대한 배려인가. 아니면 스스로를 위한 방어기제인가.

무엇이 진실이든 지예원은 안수호의 얼굴을 마주하지 않은 채 그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하늘이랑, 어떻게 할 거야?”

­우뚝.

그 질문에 안수호는 반사적으로 발걸음을 멈췄다.

그러나 곧바로 그는 걸음을 재개했다. 마치 자신의 동요를 숨기려는 것처럼. 지예원이 자기 쪽을 보고 있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그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다.

지예원은 자신을 좋아한다.

강하늘 또한, 아마도 자신을 좋아한다.

그 둘 사이에 낀 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한 지도 꽤 오래 되었다. 그러나 안수호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결론을 내리지 못한 와중에 새로운 사실이 그에게 던져졌다.

강하늘이 빙의자라는 사실.

그것은 즉 이 거짓뿐인 세계에서 강하늘만이 유일한 진짜라는 것을 의미했다.

태양처럼 밝은 그 웃음도.

자그마한 것에도 감사해하는 그 순수함도.

지나치게 자신을 낮추며 상대방을 배려하려는 그 마음씨도.

이따금 어린 동생으로서 보여주는 순진무구함도.

비록 불평불만이 심하긴 하지만 결국 어떻게든 이겨내고자 하는 그 의지도.

자신 때문에 안수호가 다쳤을 때,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흘린 그 눈물도.

위기를 극복했을 때 내쉰 따스한 안도의 숨결 한 줌마저도.

그리고 마침내, 그러한 과정을 거쳐 안수호에게 품게 된 한 떨기 연심에 이르기까지.

이 거짓된 세상에서 오직 강하늘만이 진실이라면. 그녀의 사랑만이 진실이라면 그 사랑을 응당 받아줘야 할 것이다. 다른 그 무엇보다도 우선해서.

분명, 과거의 안수호라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안수호에게 있어서 이 세상은 거짓이 아니었다. 적어도 눈앞에 있는 지예원만큼은 비록 소설 속 캐릭터라 한들 거짓이 아닌 진실로 받아들였다.

설령 텍스트 몇 줄로 이루어진 가짜라 하더라도 자신만은 그녀를 진짜로 받아들이겠다고.

그날, 지예원과 몸을 겹쳤던 날 안수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가 생각했다.

만일 자신에게 이기적인 욕심이 허락된다면 둘 다 갖고 싶다고.

가진다, 라니. 이 얼마나 오만하고 건방진 표현이란 말인가. 그러나 두 사람이 안수호에게 이미 연심을 던진 상황에서, 안수호가 그 마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실로 ‘가진다’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행위였다.

그렇기에 안수호는 소망했다. 자신에게 향한 이 두 마음 중 어느 하나를 택하지 않고, 둘 다 갖고 싶노라고.

둘 중 그 어느 쪽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어느 쪽도 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안수호의 이기적인 진심이었다.

허나 그것이 가능할 것인가.

남녀간의 연애에 있어서 양다리란 사회적으로 지탄받아야 마땅한 일이다. 하렘이 허락되는 건 어디까지나 소설 따위의 창작물 속에서만이었다. 물론 이 세상이 소설 속이긴 하다만은. 주인공 류태현이라면 몰라도 중간에 끼어든 이물질인 안수호에게 있어서 이 세상의 이치는 그렇게 편의적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나마 지예원이 안수호의 결정에 호의적일 거란 게 그에게 있어선 행운이었다. 일찍이 그녀는 그녀의 입으로 직접 말했다. 자신을 선택하든 강하늘을 선택하든, 혹은 양다리를 걸치든 확실하게 마음을 정해주기만 하라고. 그리고 숨기지만 말아달라고.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지예원 한 사람에 한한 것.

다른 한 사람. 강하늘이 안수호의 이기적인 결정을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안수호에게 있어선 미지수였다. 더군다나 그녀는 소설 속 등장인물이 아닌, 그와 같은 ‘원래 세계’에서 온 현대인.

평범한 감성을 지닌 현대인이 과연 소설 속 주인공이나 할법한 양다리를, 하렘을 용인할 것인가.

안수호는 강하늘이 이를 받아들여줄 가능성이 한없이 낮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강하늘이 받아들여주지 않는다면, 결국 안수호는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지예원이냐 강하늘이냐.

혹은 선택받지 않은 쪽을 염려해 둘 다 선택하지 않을 것이냐.

결국 안수호의 선택은 강하늘의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안수호가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난 지예원, 네가 소중해. 그렇지만 강하늘도 내게 있어서 아주 소중한 사람이야. 어쩌면 너만큼이나.”

“…………그래서?”

되묻는 그 목소리에선 아무런 감정적 동요도 느껴지지 않았다. 고요한 밤 숲 속의 호숫가처럼 잔잔한 목소리가 안수호의 귓가를 스친다.

“그래서 그, 욕심 좀 부려보려고.”

“기어코 둘 다 품으시겠다? 정말 욕심이 많은 남자네.”

“미안.”

“왜 사과해? 난 딱히 상관없는데.”

우뚝 멈춘 지예원이 안수호를 돌아보았다. 그 등 뒤에 강하늘을 업은 채.

“야. 안수호.”

“응.”

“내가 소중해?”

“말했잖아. 소중하다고.”

“그럼 내가 좋아?”

“그래.”

“그럼 사랑해?”

“……그.”

“난 너 사랑하는데.”

사랑, 이라는 낯간지러운 단어에 안수호가 입술을 달싹였다. 차마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킥.”

지금껏 온갖 빌런들과 싸워왔고 오버랭크 던전의 보스와도 일기토를 벌인 남자가 고작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 말하는 게 부끄러워 망설이는 꼴이 지예원은 참 웃기다고 생각했다.

“대답 안 해?”

“사랑……하지. 그래. 어. 사랑한다고. 진심이야.”

“그래?”

지예원의 입가에 짓궂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가 등 뒤에 업은 강하늘을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충고 하나 하자면, 얘한테 고백할 때는 당당하게 사랑한다고 말해. 가뜩이나 양다리 선언하는 입장에 그따위로 우물쭈물대면 얘가 퍽이나 받아들여주겠다.”

“충고 고맙네 진짜. 그런데 그…….”

“그런데 뭐?”

“괜찮은……거냐? 너는. 내가 그, 너랑 하늘이랑 양다리 걸친다고 말해도.”

“괜찮아.”

세상에 좋아하는 사람의 양다리 선언을 듣고 괜찮을 여자는 없다. 그럼에도 지예원은 그렇게 대답했다.

“나는 널 사랑해.”

억지로 괜찮음을 가장했다. 괜찮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만약 자신이 그의 이기심을 용인하지 않는다면, 안수호는 결국 선택을 해야만 할 테니까.

“그리고 너도 날 사랑하고. 그럼 된 거 아니야?”

선택. 지예원은 그것이 두려웠다. 선택의 결과 자신이 선택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 두려웠다.

“그 이상 생각해봐야 복잡하기만 한걸. 그러니 괜찮아.”

지예원은 안수호가 강하늘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알고 있었다. 그간의 행적이 그의 마음을 대변했다. 그렇기에 만약 안수호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면, 자신이 아닌 강하늘을 선택하게 되지 않을까 두려웠다.

그렇다면 차라리.

불확실한 선택에 기대는 것보다는 비록 이 남자의 곁에 다른 여자가 있게 된다 하더라도 그의 곁에 남고 싶다고.

결국 지예원은 겁 많은 여자였다. 어쩔 수 없었다. 범죄자 신분인 그녀가, 어릴 적부터 여명단의 첩보원으로 길러져 이성의 사랑을 받아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던 그녀가 어떻게 남녀사이에서 자신을 가지겠는가.

결국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를 굽히고 양보하며 안수호의 동정심을 구걸하는 것뿐이라고. 지예원은 그렇게 생각했다.

늘 자신만만하고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는 지예원이었으나, 역설적이게도 그 속은 이처럼 연약하고 위태로웠다. 그것이 지예원이라는 여성의 민낯이었다.

“고마워. 여전히 날 사랑한다고 해줘서.”

그 말을 마지막으로 지예원이 발걸음을 돌렸다. 얼른 산 아래로 내려가 류태현 일행과 합류하자며 그녀가 안수호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허나 안수호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분명 자신이 듣고 싶은 답을 들었을 터인데.

자신의 이기적인 선택을 긍정해주겠노라고, 감내하겠다고 지예원이 말해주었으니 분명 기분이 좋아야 할 터인데.

어째서인지 가슴 한켠이 바위로 누르는 것처럼 무거워지기만 한다고.

그렇게 두 사람이 산기슭의 공장 창고에 도착했을 때, 설아현과 류태현은 그 앞에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적들은?”

안수호의 물음에 설아현이 대답했다.

“전부 제압했어요.”

“……제압?”

“네. 20명 전원 양손목과 발목의 인대를 끊어놨어요. 아무리 초인이라도 그래서야 움직일 수 없죠. 이 뒤는 경찰에라도 넘긴다면……”

“그, 사정이 있어서 경찰은 부를 수 없습니다.”

민채령의 부탁이었다. 어지간하면 경찰의 개입 없이 조용히 일을 끝내달라고. ‘명령’이 아닌 ‘부탁’을 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가 확연히 드러났다.

“그래요? 그럼 저들은 어떻게 하죠?”

“그냥 두고 가면 되겠죠. 연락이 없으면 놈들의 배후세력이 여기로 사람을 보낼 테니까.”

“형. 하늘이는 괜찮아?”

“어. 다행히 잠들기만 한 것 같아. 적어도 겉으로 봤을 때 몸에 이상은 없어. 그래도 얼른 의사한테 가는 편이 낫겠지.”

“경찰은 안 되는데 병원은 갈 수 있다고요?”

설아현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경찰과 달리 아카데미 의무실이라면 민채령의 입김이 닿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나, 안수호는 과연 설아현에게 어디까지 설명해야 할지 가늠하느라 말끝을 흐렸다.

“……당신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부외자인 제가 너무 깊게 파고들기도 좀 그러니.”

허나 설아현은 그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그저 막연하게, 안수호 또한 자신처럼 미래로부터 회귀했다면 그에게도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 끝에 나온 배려였다.

이를 대충 짐작한 안수호가 살며시 목례했다.

“아현 씨. 오늘 일은 정말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강하늘을 안전하게 구해낼 수 있었습니다.”

“뭘요. 우리 사이에 이 정도 일은 당연히 도와야죠. 서로 그러기로 약속했잖아요?”

“아까부터 궁금했던 건데…….”

그때 지예원이 불쑥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계속 우리 사이니 뭐니 하는데 도대체 두 사람은 어떤 관계인 거야? 어떻게 안수호 네가 S급 길드 길드마스터랑 아는 사이냐고.”

“그건 말이지…….”

안수호는 이중던전 사태 당시의 일과, 그로 인해 한여름에게 덜미가 잡혀 기사의 무덤 공략에 참가하게 된 경위를 두 사람에게 설명했다. 류태현은 흥미진진한 얼굴로 듣는 반면 지예원은 어딘가 못마땅하다는 표정이었다.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은데…….’

여명단 첩보원으로서의 통찰력인지, 아니면 여자로서의 감인지. 지예원은 안수호의 말로부터 무언가 켕기는 구석을 짚어내었으나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 그럼 슬슬 돌아가도록 하죠. 이제 시간도 늦었고. 각자 내일 할 일도 있을 거 아닙니까.”

그 낌새를 알아차린 안수호가 급하게 말했다. 그 말처럼, 안수호의 부름에 응해 이곳에 모이긴 했으나 그들 전원 내일부터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띠링.

그때, 사건의 일단락을 알리듯 안수호의 시야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

[ 날짜가 바뀌었습니다. 샛별의 숨소리의 사용 횟수가 초기화됩니다. ]

===

‘타이밍 참 야속하네.’

좀 더 일찍 스톡이 회복됐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생각한 안수호가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래도 끝나긴 끝났구나.’

또 한 번 이 세상의 고난을 넘어서는 데에 성공했다고. 안수호가 홀가분한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안수호 본인은 이렇게 또 하나의 사건이 일단락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기실 사건은 전혀 끝나지 않은 채였다.

아니, 오히려 새로운 사건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으리라.

안수호 일행이 있던 의정부의 섬유공장으로부터 한참 아래. 성북구에 위치한 부유한 단독주택가.

전망 좋은 언덕 꼭대기에 자리한 3층 저택. 그 테라스에 한 여성이 서있었다.

­휘오오오오.

멀리서 불어온 밤바람이 여성의 긴 흑발을 휘날렸다.

테라스에 선 여성은 불이 꺼진 실내를 바라보다 이내 그 안으로 들어섰다. 창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여성이 실내로 들어서자 고급스런 가구가 늘어선 거실 풍경이 보였다.

거실은 어둡고 고요했다. 그러나 이미 선객이 있었다.

“모처럼 밤하늘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설마 그쪽에서 직접 찾아올 줄은 몰랐구만.”

테라스로 이어지는 창문 맞은편에 있던 소파.

은은한 달빛이 비추는 그 자리에 초로의 신사가 앉아 있었다. 한 손에는 새하얀 머그잔에 담긴 커피가 들려있었다. 그 머그잔에는 어린애가 그린 듯한 색연필 그림이 프린팅되어 있었다.

초인재활연구소 연구소장 나주용.

그것이 남자의 정체였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커피를 홀짝이며, 남자가 불청객인 여성에게 물었다.

“그래서 민채령 자네가 내게 무슨 볼일이지? 설마 나를 직접 죽이러 온 건가?”

그 말에 여성, 민채령의 두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글쎄? 너 대답하는 거 봐서?”

그 얼굴에 뱀처럼 날카로운 미소가 그려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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