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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102화 (103/266)

〈 102화 〉 101. 동시사건(16)

* * *

“그럼 일단 짖어봐.”

“……뭐?”

순간 말을 이해하지 못한 칼리가 반문했다. 그런 칼리에게 안수호가 명백한 비웃음을 띤 채 다시 말했다.

“개처럼 짖어보라고. 멍멍 짖으면서 귀엽게 아양이라도 떨어봐. 제발 살려달라고. 다시는 안 덤비겠다고. 자기가 잘못했다고. 열심히 빌고 또 빌면 혹시 모르지? 그 꼴이 불쌍해서라도 살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너, 그게 무슨…….”

참으로 가학적인 요구였다. 안수호는 본래 그런 요구를 할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전투가 끝나고 칼리의 생사여탈권을 쥐게 되자 잊고 있던 분노나 살의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안수호가 저 멀리 가지런히 누워있는 강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뇌리에 복합적인 감정들이 떠오른다.

가장 먼저 든 감정은 안도감.

강하늘을 무사히 구해냈다는 사실에, 그녀에게 닥친 위기를 해결해냈다는 사실에서 오는 깊은 안도감이 그의 뇌리를 가득 채웠다.

그 다음으로 떠오른 감정은 자괴감.

분명 강하늘에게 지켜주겠노라고 말했음에도 납치를 허용했다는 자괴감. 심지어 그녀가 납치되고 한동안 강하늘과 스테파니가 뒤바뀐 것도 모른 채 애먼 던전 공략에만 집중하던 자신에 대한 자괴감과, 후회와, 회한이 그의 가슴에 사무쳤다.

이윽고 떠오른 감정은 분노.

강하늘을 납치하고 그녀에게 위험을 끼친 자들에 대한 분노. 그중에서도 특히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칼리에 대한 격한 분노의 감정.

한 대라도 더 패고 싶고, 한 번이라도 더 베고 싶고, 당장에라도 저 상판대기를 지면에 갈아버리고 그 멱을 따버리고 싶을 정도의 격한 분노.

그리고 그 분노로부터 비롯된 가학심.

그것이 지금 안수호가 느끼고 있는 감정들의 정체였다.

“왜, 하기 싫어?”

전투의 승패가 결정된 상황. 마음만 먹으면 단숨에 칼리를 죽일 수 있는 이 상황에 안수호는 칼리를 죽이기보다 괴롭히기를 원했다. 그런다 해서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었다. 다만 그의 가학심을 채우기 위한 여흥일 뿐이었다.

“……머, 멍.”

감히 자신에게 덤비고 강하늘을 위협한 적이, 살아남기 위해 자존심마저 다 내던지고 꼴사납게 시키는 대로 하며 빌어대는 꼴을 보고 싶다고.

“멍. 멍! 멍……! 머, 멍!”

그리하여 마침내 칼리가 입으로 개 짖는 소리를 냈을 때.

“……흐.”

안수호는 척추 깊숙한 곳에서부터 스멀스멀 끓어오르는 알 수 없는 쾌감에 전율했다.

일찍이 그는 소설 따위에 자주 등장하던, 타인에게 지금 그가 한 것과 같은 가학적인 요구를 해대던 등장인물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뭐가 좋다고. 뭐가 재미있다고 다른 사람한테 그런 짓을 하는 걸까.

그러나 이제는 이해할 수 있었다. 요는 행위의 내용이 아니었다. 자신과 똑같은 사람을, 똑같이 감정을 가지고 똑같이 사고할 수 있으며 똑같이 온전한 한 사람으로서의 자아를 가지고 있는 인간을 말 한 마디로 멋대로 휘두를 수 있다는 그 상황으로부터 오는 전능감.

바로 그것이 핵심이었노라고.

“병신. 하란다고 진짜 하네? 넌 자존심도 없냐? 나 같으면 그렇게 해서라도 살 바에야 그냥 혀 깨물고 자살하고 말지!”

난생 처음 느껴보는 생소한 만족감에 안수호가 신나하며 이죽거렸다. 그럴 때마다 반대급부로 칼리의 표정은 한없이 찡그러졌다.

“야. 표정 풀어. 웃어야지. 웃어.”

그러나 안수호는 칼리가 인상을 쓰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 말을 들은 칼리가 억지로 애써 웃음을 짓자, 그의 입가에 더욱 진한 미소가 그려졌다.

“여기까지 와봐. 걷지 말고. 네 발로 기어서.”

물론 제대로 걸을 수도 없겠지만.

그렇게 덧붙인 안수호의 앞으로 칼리가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의 말처럼 네 발로 기어서. 마치 개처럼.

이윽고 안수호의 앞까지 힘겹게 기어온 칼리. 그 엎드린 등을 보던 안수호가 들고 있던 검을 칼리의 종아리에 찍었다.

“꺄흑?!”

“빌어. 네가 뭘 잘못했는지 빌고 사죄해.”

“끄, 끄흑! 으, 으으……!”

칼리가 이빨을 아득 물었다.

굴욕적이었다.

치욕스러웠다.

당장이라도 일어나서 저 건방진 얼굴을 찢어발기고 싶었다. 그러나 불가능했다. 그랬다간 죽을 게 뻔했으니까.

“죄, 죄송합니다……”

결국 칼리는 안수호의 말대로 고개를 조아린 채 사죄의 말을 낱낱이 읊기 시작했다.

“가, 강하늘을 납치해서 죄송합니다. 건방지게 입을 놀려서 죄송합니다. 가, 감히 뭣도 모르고 덤벼들어서 죄송합니다…….”

처음에는 형식을 갖추던 사죄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점차 지리멸렬하게 변해갔고, 이내 망가진 기계처럼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게 되었다.

칼리의 몸이 사시나무 떨듯이 떨렸다. 그녀의 온 신경은 자신의 종아리에 박힌 차가운 칼날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칼날이 뽑히는 순간 자신은 죽지 않을까.

이 남자가 자신을 괴롭히는 것에 질려 이만 죽이고자 마음먹는다면, 그때 다리에 박아넣은 저 칼을 뽑아들지 않을까.

그리하여 칼리는 그저 사과하고 또 사과했다. 안수호의 다음 명령이 나올 때까지, 그가 자신의 가학심을 충분히 충족하도록 빌고 또 빌었다.

“그쯤 하면 됐어. 사과에서 아주 진정성이 느껴지네. 그럼 이번에는…….”

무얼 시켜볼까. 그렇게 생각하며 안수호가 칼리를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한없이 움츠러든 등과 그 자신의 발이 그 시야에 들어왔다.

‘그래.’

“야.”

“네, 네!”

어느새 칼리가 안수호에게 하는 말은 존대로 바뀌었다. 그 태도 변화에 흡족해하며, 안수호가 슬쩍 발을 들며 말했다.

“핥아.”

“……!”

칼리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적의 발을 핥는 건 그녀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못했다. 이미 굽힐대로 굽혀 진즉에 부러진 자존심이었지만 말이다.

“왜, 못 하겠어?”

그러나 안수호의 그 차가운 한 마디에 칼리의 자존심은 또 한 번 부러졌다.

“으흑……! 끄흡……!”

칼리의 뺨을 타고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평소의 안수호라면 그 눈물에서 일말의 동정심이나마 느꼈겠지. 그러나 지금의 안수호에겐 그저 가학심을 자극하는 요소일 뿐이었다.

“묻잖아. 못 하겠냐고.”

“……하, 할 수 있어요.”

결국 칼리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숙인 채 좀 더 앞으로 붙여, 안수호의 발등 위에 그 입을 맞추었다.

“내가 입술만 가만히 붙이고 있으라 했나?”

실제로 핥고 있는지 아니면 입술만 붙이고 있는지 신발 너머로 알 턱이 없었다. 그러나 안수호는 대충 넘겨짚기 식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게 우연찮게 들어맞았을 뿐.

그러나 졸지에 정곡을 찔린 칼리는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내 그녀가 눈을 질끈 감은 채 입술을 열고, 그 분홍빛 혓바닥으로 천천히 안수호의 발등을 핥았다.

한창 그 느껴지지도 않는 봉사를 받던 안수호가 천천히 발을 들었다. 그 발끝을 턱에 가져다 댄 채, 칼리가 자신과 눈을 마주치도록.

“…….”

눈이 마주친 칼리의 표정은 참으로 볼만했다. 적어도 안수호가 보기엔 그랬다.

분노와, 치욕과, 좌절과, 부끄러움과, 설움이 어우러진 그 표정은 안수호가 그녀에게 느끼던 분노나 살의를 희석시키기에 충분했다.

허나 그 순간.

­주륵.

자신의 코에서 흘러내리는 한 줄기 코피에 안수호가 칼리의 머리를 급하게 짓밟았다.

“케흑!”

칼리가 신음했다. 그러나 안수호의 신경은 거기로 향하지 않았다. 그가 자신의 코에서 흐르는 피를 손등으로 훔쳤다.

좀 전에 찔린 부상 때문인지, 아니면 탈리스만에 의한 반동 때문인지.

둘 중 어느 쪽이 원인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 한 줄기 피가 안수호로 하여금 정신을 차리게 했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지금 자신이 이럴 때인가. 한 시라도 빨리 강하늘을 데리고 병원이든 어디든 가야 하지 않는가. 게다가 지금 자신은 멀쩡한 상태도 아니었다. 상처를 임시로 얼려놨을 뿐 방치했다간 충분히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상처.

그런 상태로 뭐가 잘났다고 기고만장하여 적을 괴롭히는 데에 몰두해 있는가.

뒤늦게 되찾은 이성에 안수호가 덜덜 떨고 있는 칼리를 내려다보았다.

‘생포해야하나?’

허나 생포한다면 뒤처리는 누가 한단 말인가. 민채령? 스테파니는 민채령이 데려가긴 했다. 정보를 얻기 위해서. 칼리 또한 민채령에게 데려간다면 심문이라도 해서 정보를 캐낼 수 있겠지.

“…….”

그렇지만 그러기엔 위험부담이 컸다. 다른 걸 말하는 게 아니라 칼리의 능력 때문이었다.

카피 능력.

안수호가 기억하길, 칼리의 능력은 손으로 만진 대상의 능력을 복사하는 것이었다. 횟수의 제한은 없으나 한 번에 복사할 수 있는 능력은 하나뿐이었다. 그렇기에 칼리는 뭣도 모르고 안수호의 검은 연기를 복사했다가 이처럼 참패를 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안수호에게 패배했다 한들 그 능력의 사기성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하물며 그런 칼리가 민채령의 손에 들어간다면, 민채령은 분명 칼리의 능력을 120%의 효율로 활용해내겠지.

그 활용이 과연 자신에게 득을 가져다줄 것인가. 아니면 실을 가져다줄 것인가.

안수호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카피 능력이 민채령의 손에 들어가봤자 귀찮아질 뿐이다.

‘죽이자.’

결국 그 방법밖에 없었다. 경찰에 칼리의 신병을 인도할 수도 없는 이상, 그저 죽이는 수밖에.

지예원이나 강하늘과 깊은 감정을 나눈 이래 그는 더 이상 이 세상을 단순히 소설 속 세상, 사람들을 그저 캐릭터라고 치부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지예원이든 강하늘이든, 그의 눈앞에 조아린 칼리든 이제는 똑같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자신을 죽이려고 한 적을 죽이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그렇기에 그는 칼리는 죽이는 데에 이렇다 할 저항감을 느끼지 못했다.

­스윽.

그렇게 생각한 안수호가 칼자루를 쥐었다. 칼리의 몸이 흠칫 떨렸다.

그 순간.

“거기 오빠. 성격 진짜 나쁘네.”

숲 저편에서 들린 정체모를 목소리에 안수호가 파밧 지면을 박찼다.

­푸슉!

검을 뽑아든 그가 곧바로 강하늘의 곁으로 향했다. 바닥에 누워있던 강하늘을 한 손으로 일으켜 세우며 검 끝을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향했다.

“너는……!”

직후, 그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나참! 호출기를 눌렀으면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야지! 이런 산 속으로 들어오면 어떡해! 여긴 전파도 잘 안 터져서 찾는데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숲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자그마한 소녀였다.

나이는 열 살 정도 되었을까. 까만 머리카락을 트윈테일로 묶어 늘어뜨린 소녀는 그 앳된 얼굴과는 다르게 지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입에는 자그마한 막대사탕을 물고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손잡이 부분이 흰색이 아닌 검은색이었다.

안수호는 그 소녀를 처음 보았다. 그러나 소녀의 그러한 특징으로부터 어렵지 않게 소녀의 정체를 유추해낼 수 있었다.

“……나은주?”

“어라?”

강하늘의 납치를 꾀한 연구소장 나주용의 딸. 나은주.

그것이 갑작스레 나타난 소녀의 정체였다.

“신기하네.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지?”

“…….”

“저기, 오빠는 이름이 뭐야?”

안수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해선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이름을 말했다간 곧바로 조종당할 테니까.’

지금 그의 앞에 있는 소녀는 그와 같은 초인이었다. 그리고 가지고 있는 초능력은 여타 창작물에서 정신 계열 능력의 끝판왕으로 불리는 정신 조작.

정신 조작이라곤 해도 평소에는 가벼운 암시나 심리의 유도 정도만 가능한 별 볼일 없는 능력일 뿐이었다. 그러나 막대사탕 형태를 한 특수한 능력 강화제를 섭취하는 것으로 나은주는 초능력을 인공적으로 폭주시킬 수 있었다.

그 경우 그녀의 능력의 출력은 수십 배까지 불어난다.

한 사람의 정신을 온전히 조종할 수 있을 정도로.

“오빠? 이름이 뭐냐니까?”

그러나 그 막강한 능력에도 두 가지 약점이 있었다. 첫재는 강화제가 신체에 주는 부담이 어마어마하다는 것. 그리고 둘째는 정신에 간섭할 대상의 이름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지금 상황의 핵심은 바로 두 번째 약점이었다.

‘이름만 말하지 않으면 걱정할 건 없다. 나은주는 초인이긴 해도 신체능력은 별 볼일 없으니까.’

그렇게 생각했으나 다음 순간, 나은주가 경계심으로 가득한 안수호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히히. 사실 안 말해줘도 돼. 이미 알고 있거든. 오빠 이름 안수호지?”

“!!”

“아빠가 사진이랑 같이 보여줬거든! 조심해야 할 오빠라고! 꼭 얼굴이랑 이름 기억해두랬어!”

활기차게 답한 나은주가 안수호에게 손가락을 향했다.

‘아뿔싸!’

그 동작의 의미를 아는 안수호가 흠칫 몸을 떨었다.

그러나.

“…………어라?”

나은주가 고개를 갸웃하며 제 손가락을 바라봤다.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안수호 또한 마찬가지였다.

“왜 이게 안 되지? 에잇! 에잇! 에이이잇!”

귀여운 몸짓과 함께 나은주가 안간힘을 썼으나 안수호의 정신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 이유는 바로 능력의 조건 때문이었다.

나은주의 초능력은 대상의 정확한 이름을 알아야만 발동한다. 그것은 단순히 호적상의 이름이 아닌, 대상이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와 관련된 정신적인 상징을 의미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를 자신의 이름으로 정의내린다. 그리고 그건 안수호 또한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 대부분의 사람들과 안수호에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뭐야. 왜 안 돼?! 오빠 이름 안수호 아니야?”

바로 안수호가 평범한 사람이 아닌 남의 몸을 빌린 빙의자라는 것이요. 그에게는 원래 세상에서 쓰던 본래 자신의 이름이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 그가 자신을 정의내릴 때 ‘안수호’라고 정의할 리가 없지 않은가.

“하. 하하…….”

그러한 사정을 알지는 못했으나, 대충 나은주의 능력이 자신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린 안수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자리를 피하자. 나은주가 혼자 왔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괜히 가만히 있다가 적이 추가로 오기라도 하면 도망치기 힘들어진다.‘

안수호가 강하늘을 안아든 채 천천히 물러섰다. 머릿속으로 순간 이 자리에서 나은주를 죽일까 싶었으나, 적이라곤 해도 어린 소녀를 죽이는 건 차마 저항감이 생겨 할 수 없었다.

“에이. 무슨 일인진 모르지만 어쩔 수 없지.”

허나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그럼에도 말하자면.

“그냥 오빠 말고 언니야로 해야겠다!”

안수호는 그 자리에서 나은주를 지체 없이 죽였어야만 했다. 최소한 제압이라도 했어야 했다.

“언니, 라고?”

그 말에 안수호가 곧바로 칼리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칼리는 다친 몸을 추스른 채 여전히 주저앉아 있을 뿐.

“…………아.”

그리고 그 순간, 안수호의 품에서 나지막한 탄성이 새어나왔다.

“어?”

안수호가 고개를 내렸다. 그의 품에 안겨 있던 강하늘이 두 눈을 뜬 채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머리카락을 청명한 하늘색으로 물들인 채.

“하늘아. 너 어떻게…….”

“오빠.”

당황한 안수호를 올려다보며 강하늘이 다급하게 말했다.

“저한테서, 떨어져요.”

“뭐?”

안수호의 뇌리에 불안감이 엄습한 순간.

­콰직!

강하늘의 주먹이 안수호의 가슴에 사정없이 꽂혔다.

“크윽?!”

격통에 반사적으로 물러선 안수호가 아뿔싸, 하는 심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멀쩡히 두 다리로 선 강하늘은 자신이 뻗은 주먹을 내려다보며 충격 받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빠…….”

그녀의 입에서 새어나온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강하늘이 제 팔을 부여잡으며 덜덜 떨었다. 커다란 눈물방울이 맺힌 그 눈동자가 경고등처럼 간헐적으로 붉게 점멸했다.

강하늘은 자신의 몸을 지배하려는 정체모를 감각에 완강히 저항했다. 허나 그 저항은 시간이 갈수록 점차 약해져갔다. 굴복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같은 빙의자임에도 불구하고. 왜 안수호에겐 나은주의 능력이 통하지 않고 강하늘에게는 능력이 통했는가.

그 이유는 실로 간단했다. 안수호는 원래 세계에서의 이름이 안수호가 아니었으나 강하늘은 원래 세계에서도 이름이 강하늘이었다. 우연찮게도 빙의한 몸과 본래 삶의 이름이 같았다는 공교로운 우연. 단지 그뿐이었다.

허나 그 사소한 우연이 비극을 만들어냈다.

­뚝.

필사적으로 저항하던 강하늘의 정신이 마침내 꺾였다. 그녀의 몸이 추욱 늘어졌다. 마치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강하늘!"

안수호가 다급하게 외쳤으나 대답은 없었다. 직후 그녀의 몸이 천천히 움직여 자세를 잡았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한, 명백하게 전투를 위한 준비 자세를.

“이런, 빌어먹을…….”

그 모습을 보며 안수호가 속으로 말했다.

이 빌어먹을 쾌락천마 자식아.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하지 않냐고.

원망어린 불만을 속으로 삼키면서 안수호가 고개를 숙였다. 사무치는 괴로움에 차마 고개를 들 수조차 없었다.

허나 그런 안수호의 심정 따위 안중에도 없다는 듯.

­타앗!

다음 순간, 지면을 박찬 강하늘이 쏜살같이 안수호에게 달려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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