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화 〉 083. 사건의 전말. 그리고 거래. 혹은 협박.
* * *
일리아나 파우스트는 누군가로부터 정보를 얻어낼 때 말이 아닌 글로 얻어내는 걸 선호한다.
그것은 그녀가 ‘카인스프링의 단안경’이라는, 하루에 한 번 그 어떠한 거짓말도 간파해낼 수 있는 아티펙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단안경의 능력을 발동하면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나 거짓된 내용이 적힌 글이 보라색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정보는 말보다는 글로 얻는 편이 나았다. 진술서처럼 길게 이어진 글을 한 번 쭈욱 훑는 것만으로도 어느 부분이 진실이고 어느 부분이 거짓인지 알 수 있으니. 그야말로 탐정을 업으로 삼는 그녀에게 어울리는 아티펙트였다.
다만 흠이 있다면 명백한 거짓말이 아닌 일부 진실을 숨기는 행위를 간파할 수 없다는 점이나, 그 부분은 일리아나 본인의 추리력으로 커버할 수 있었다.
하여 내가 이중던전 사태 당시의 진실에 대해(물론 강하늘의 능력에 대한 건 제외하고) 진술서를 써 일리아나에게 넘긴 것이 오늘 아침.
그로부터 몇 시간이 지난 지금. 일리아나의 의뢰인, 한여름이 나를 만나러 왔다.
‘일리아나한테 넘긴 정보는 이미 다 한여름한테 넘어갔다고 봐도 좋겠지.’
그렇지만 한여름이 나와 일리아나의 관계에 대해서까지 아는지는 아직 미지수였다. 굳이 가능성을 따진다면 모르고 있다 생각하는 편이 맞겠지. 만약 그녀가 나와 일리아나가 이미 탐정과 의뢰인의 관계로 접촉한 점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일리아나에 대해 말할 때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지만.’ 같은 말은 하지 않았을 테니.
‘괜히 말을 잘못 꺼냈다가 한여름한테 쓸데없이 정보를 더 쥐여줄 수도 있다. 내 쪽에서 먼저 말을 꺼내는 건 삼가는 게 좋겠어.’
이윽고 행동 지침을 정한 나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시치미를 뗐다.
“상황이 조금 이해가 안 되는군요.”
“어느 부분이 말이죠?”
“한여름 학생은 한겨울 학생의 언니이지 않습니까. 한겨울 학생이 절 위해 매스컴을 막아준 건 알고 있으실 테고. 그럼 이중던전에서의 제 행보야 이미 알고 계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왜 굳이 탐정까지 고용하시면서…….”
“안수호 씨.”
그러자 한여름이 내 말을 끊었다.
“제가 분명 말했죠? 저는 시간 낭비 싫어한다고.”
“…….”
“얼굴 표정 보니 이미 상황은 대충 파악하신 것 같은데, 쓸데없는 탐색전은 집어치우고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가죠. 제가 왜 당신에 대한 조사를 탐정에게 의뢰했고, 이렇게 당신을 만나러 왔는지. 궁금하시지 않나요?”
“확실히 궁금하긴 하군요.”
기실 이 자리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이 바로 그것이었다.
왜 한여름은 아무런 접점도 없던 내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가.
시간 낭비를 극도로 혐오하는 그녀답게, 그 답은 곧바로 이어지는 그녀의 말 안에 있었다.
“한용수 헌터를 아시나요?”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S급 길드 흑룡회의 간부 한용수. 흑룡회 안에 단 셋밖에 없는 S급 초인 중 한 사람이며 이번 기사의 무덤 선행 탐사대의 리더를 맡았던 초인.
원작에서도 조연으로 종종 등장했던 캐릭터였고 이번 이중던전 사태를 다룬 기사에서도 줄기차게 이름이 언급되던 자였다. 분명 최후미에서 탐사대를 지키다 의식 불명의 중태에 빠졌다고 했던가.
“안다면 이야기가 빠르죠. 그 한용수 헌터가 얼마 전에 의식을 차렸어요. 그리고 토요일에 열린 던전 공략 회의에서 지금껏 밝혀지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을 이야기해주었죠.”
아마 그 새로운 사실이란 게 나와 관련 있는 내용이리라.
그렇게 진즉에 짐작하고 있었으나, 이어지는 한여름의 말에 나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말하길, 던전 보스가 당신을 애타게 찾고 있다던데요?”
한여름이 말했다. 던전의 주인 괴수인 빌헬름. 그가 한용수와 싸우며 줄곧 그에게 부르짖었노라고. 자신의 명예를 짓밟고 도망친 그 도적놈을 데려오라며. 주군에 대한 충성의 증거인 십자가를 도로 내놓으라며.
빌헬름은 내 이름을 콕 집어서 말하진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결국 소거법이었다. 탐사대가 들어가기 이전 빌헬름과 접촉한 자는 나와 강하늘뿐. 그중에서 ‘놈’이라는 말을 들은 대상은 남자인 나밖에 없었다.
“대부분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당신이 협회에 제출한 진술서의 내용과 무언가 다르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어요. 그래서 회의에서 돌아오는 길에 곧바로 탐정에게 의뢰한 거죠.”
“행동이 아주 빠르시군요.”
“저는 생각난 건 바로바로 실행하는 편이라서요. 게다가…….”
한여름이 마치 이쪽의 반응을 떠보는 것처럼, 조금 뜸을 들이다 이어서 말했다.
“한용수 헌터가 말하길, 그 ‘도적놈’에 비하면 네놈은 한심한 수준이었노라고 그 보스가 말했다고 하더군요. 전투 특화 인원이 아니라 해도 S급 초인은 S급 초인. 그런 한용수보다 더욱 고평가를 받는 아카데미 경비대원. 흥미가 안 생길 수가 없잖아요?”
“……놈도 과장이 참 심하군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빌헬름은 누군가의 강함을 재단하는 안목이 탁월했다. 그가 한용수보다 내가 강했노라 말했다면 실제로도 그랬을 가능성이 거의 100%였다.
‘의외로군. 아니, 상상 이상이라고 해야 하나.’
한용수와 나 사이의 정보 격차, 상황의 차이, 강하늘의 능력, 탈리스만, 샛별의 숨소리 등등.
한용수와 내 강함을 객관적으로 비교하기에는 수많은 변수가 존재했으나, 적어도 그 상황에 한하면 나는 한용수라는 S급 초인의 강함을 뛰어넘었다는 말이 된다. 그만큼 강하늘이 가진 능력이 비범하다는 뜻이겠으나, 내가 주목한 부분은 따로 있었다.
‘그 능력의 원리는 내 잠재력을 한계치까지 끌어내 주는 것. 즉…….’
여러 아티펙트의 보조를 받는다는 전제하에, 안수호라는 초인은 S급 초인 수준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그 사실이 개인적으로 상당히 놀라웠다.
‘여인혁한테 받은 근골정렬 덕이군.’
본래 안수호의 몸은 초인이라는 말이 아까울 정도로 수준미달이었다. 아마 지금도 백두산 꼭대기의 마력 폭풍 속에서 은거하고 있을 백발의 노인을 떠올리며 내가 피식 웃었다.
“왜 웃으시죠?”
“참 공교롭다 싶어서 말입니다. 잘 숨긴다고 숨겼는데 온갖 우연이 겹쳐 이렇게 들통나고 말 줄은 꿈에도 몰랐거든요.”
“공교롭다라……. 공교롭다면 공교롭고, 당신 입장에선 아무래도 불행한 일이겠죠. 하지만 너무 낙심하진 마세요. 이번 일을 아는 사람은 얼마 없어요. 기껏해야 회의에 참석했던 길드 간부진 몇 명 정도죠.”
적어도, 아직은.
그렇게 덧붙인 한여름이 차갑게 식은 눈으로 날 쏘아봤다.
“당신, 겨울이를 통해 매스컴을 막았었죠. 그리고 거짓 진술 건도 생각해보면, 자신의 강함이 남들에게 드러나는 게 곤란한가 보죠?”
한여름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실상은 조금 달랐다.
우선 나는 소위 말하는 ‘힘숨찐’ 짓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물론 탈리스만 같은 아티펙트는 남들에게 숨길 것이다. 결정적인 순간을 위한 비장의 수가 있다면 당연히 숨겨야만 할 것이다. 내가 말하는 건 가령 A급 초인 수준의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E급 초인 행세를 하고 다니는, 남들의 방심을 유도하고 약하게 보이기 위해 강함을 숨기는 짓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야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
강함을 드러내는 것에는 득과 실이 있다. 강함을 숨기는 것 또한 득과 실이 있다. 그 둘을 비교해봤을 때, 내 경우에는 강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편이 더욱 이득이었다. 비루한 E급 초인의 신세로는 원작에서 활약했던 수많은 캐릭터들과 관계를 맺기조차 어려울 테니까.
고로 나는 나의 강함을 숨길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의 사태는 조금 경우가 달랐다.
한여름이, 한용수가, 다른 길드의 초인들이, 그리고 빌헬름이 나 안수호 본연의 강함이라 생각하는 힘은 결코 나의 힘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강하늘의 능력에 의해 얻어낸 일시적인 힘.
그런 상태에서 남들이 멋대로 날 강하다고 착각해봐야 귀찮은 일밖에 더 벌어지겠는가.
그래서 나는 민채령이 강하늘의 진술을 자의로 검열했을 때 다행이다 여겼고, 이후 나 또한 협회에 던전에서 있었던 일을 말할 때 의도적으로 자신의 활약을 축소해서 말했다.
그렇기에 작금의 상황은 내게 있어서 곤란한 상황이었다. 그 이유는 전혀 달랐으나, 한여름은 내가 이 상황을 곤란하게 느끼고 있다는 걸 정확하게 간파해냈다.
“제가 곤란하다고 대답한다면 어떡하실 겁니까? 절 도와주기라도 하시려고요?”
“당신이 하는 걸 봐서 도와주지 못할 것도 없죠. 말하자면 거래예요.”
”거래라기보다는 꼭 협박처럼 들리는군요.“
“어떻게 받아들이든 당신 자유에요. 그렇지만 선택은 신중하게 해주길 바랄게요.”
“그래서. 한여름 학생은 제게 무얼 원하시기에 ‘거래’를 제안하려고 하시는 겁니까?”
내 말에 한여름이 싱긋 웃으며 답했다.
“간단해요. 이번 기사의 무덤 공략에 당신도 참가해주세요.”
그 말마따나 겉으로 보기엔 참으로 간단한 요구였다. 그러나 속에 담긴 내용은 전혀 간단하지 않았다.
“아카데미 경비대원한테 던전 공략 참가 요구라. 조금 이해가 안 되는군요. 전력이 부족하기라도 합니까?”
“네. 부족해요.”
즉답이었다. 한여름이 좌석 옆에 놔둔 태블릿을 꺼내더니 어느 화면을 내게 보여주었다. 한반도 전체 지도에 시뻘건 점들이 잔뜩 박혀있고 이런저런 수치들이 나열된 화면이었다.
“헌터 인력이야 언제든 부족했지만 요즘은 특히 그래요. 무슨 이유에서인지 2월 중순부터 던전 발생이 엄청 늘었거든요.”
“확실히. 뉴스에서 이상발생이니 뭐니 말하긴 했죠.”
현재 대한민국에서 발생하는 던전은 그 숫자도 등급도 예년에 비해 훨씬 수치가 올라가 있었다. 미래를 알고 있는 나는 그것이 내년 초에 있을 대규모 던전 크라이시스 사태의 징조라는 걸 알고 있지만, 소설 속 캐릭터인 이들 입장에서는 원인 모를 던전 이상발생이 그저 불안하겠지.
“어찌나 인력이 부족한지 협회에서는 은퇴한 헌터들을 다시 기용하거나 PMC(민간군사업체) 용병들한테 일시적으로 헌터 면허를 발급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어요. 덕분에 이번 기사의 무덤 공략도 오버랭크 던전임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인원 할당이 잘 안 되고 있거든요.”
“그래서 저보고 협력하라는 거군요.”
“기용할 수 있는 전력은 다 끌어오고 싶거든요. 던전 보스의 말이 사실이라면 당신은 아무리 낮게 잡아도 S급에 준하는 실력자죠. 이번 던전 공략에 참여하는 입장으로서, 강한 헌터가 한 사람이라도 더 공략에 참가해줬으면 한다……는 게 일단 표면적인 이유에요.”
“그럼 진짜 이유는 뭡니까?”
“별거 없어요. 좀 전에 말했잖아요. 제가 당신이란 사람에게 흥미가 생겼다고.”
흥미. 그저 단순한 흥미. 참으로 가벼운 이유.
그러나 그 주체가 한여름이라면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없는 일이었다.
“흥미, 라고 할까. 정확히는 호기심이죠. 저는 어지간한 일에는 호기심을 느끼지 못해요. 우울증이나 무기력증 같은 건 아니고 그냥 권태롭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한 번 생긴 호기심은 어떻게든 풀어야 직성이 풀리더라고요.”
“즉 제가 싸우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다?”
“네. 당신이란 초인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거든요.”
그야말로 지극히 개인적인 흥미본위였으나 한여름은 그런 사실을 전혀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내보였다. 그녀 정도의 위치가 있다면 굳이 숨길 필요가 없기는 했다.
“그래서 수락하실 건가요?”
그 말에 나는 창밖으로 천천히 흘러가는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오버랭크 던전 공략 참가 제의라…….’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아니, 따지고 보면 고민조차 할 필요 없이 곧바로 거절해야만 하는 제의였다. 아무리 내가 예전에 비해 강해졌다한들 A랭크도 S랭크도 아닌 오버랭크 던전에 들어가는 건 만용에 불과했다.
저번 이중던전 사태 때야 말 그대로 사고였고, 그마저도 도망치는 데에 급급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죽기 직전까지 몰리지 않았는가.
나는 나의 현재 수준을 잘 알고 있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안수호라는 초인은 오버랭크 던전 공략에 참여할 수준이 아니다. 고로 거절해야만 한다.
“…….”
그 사실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여전히 고민하고 있는 이유는, 순전히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기사의 무덤 공략에는 수많은 길드가 연합 형태로 참여한다. 그 현장에 한 발이라도 걸칠 수 있다면, 이후 스토리에서 도움이 될 대형 길드의 간부진들과 안면을 틀 수 있을 터.
당장 공략을 주관하는 흑룡회만 해도 길드마스터인 설아현은 반드시 아군으로 끌어들어야 할 캐릭터였다. 가능하다면 이번 기회에 어떻게든 그녀를 만나보고 싶었다.
‘……생각해보니 그렇게까지 위험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어.’
기사의 무덤은 일반 괴수가 거의 출몰하지 않는 특이한 던전이다. 고로 공략에 임할 때엔 최심부에서 벌어질 빌헬름과의 전투만 신경 쓰면 된다.
그 빌헬름이 워낙 강한 게 문제이긴 했으나 지금의 전력이라면 능히 당해낼 수 있을 것이다. 한여름은 인원이 부족하다느니 뭐니 말했지만 인원 부족은 기사의 무덤이 원래 등장했어야 할 원작 후반부에 더 심했으니까.
거의 확실하게 성공이 보장된 공략에 숟가락 하나 얹는 정도야 지금의 내 수준으로도 충분히 가능했다.
‘문제는 고작 숟가락만 얹고 끝나선 공략에 참여한 의미가 없다는 거지.’
공략에 참여한 다른 헌터들과 유의미한 관계를 맺으려면 그들이 내게 관심을 보일만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다. 가령 한여름이 말했듯, S급 초인에 준하는 막강한 무력이라든가.
그러기 위해선 강하늘의 협력이 필수불가결이었다. 바로 그 부분이 걸리는 지점이었다.
저번 만남 이후 강하늘과는 여전히 어색한 분위기였다. 어디 그뿐인가. 나는 강하늘의 정체를 아직 밝혀내지 못했으며 설상가상으로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숨기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헌데 내가 대뜸 가서 ‘던전 공략에 참여하고 싶으니 내게 능력을 걸어다오.’ 하고 말한다 한들 선뜻 도와주진 않겠지.
그러나 그걸 이유로 포기하기에는 너무나도 놓치기 아쉬운 기회였다.
“…….”
흘러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한참이나 고민했다. 한여름은 굳이 대답을 재촉하지 않은 채 진득하게 날 기다려주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한여름의 비서 신아영이 당초 말했던 30분이 거의 다 되었을 즈음. 점점 익숙해져가던 바깥 풍경은 어느새 내가 사는 원룸 앞 골목길로 변해있었다.
끼이익.
내가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리무진이 원룸 앞에 멈췄다. 고개를 돌려 한여름을 바라보자 그녀가 손목시계를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더 기다려주긴 힘들 것 같네요. 저도 다음 일정이 있어서.”
그러니 이제 그만 대답하라고.
그녀로부터 풍겨온 그 무언의 압박에, 나는 기나긴 고민을 서둘러 마무리해야만 했다.
‘……설령 강하늘의 협력을 얻어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내가 공략에 유의미하게 도움을 줄 방법은 있다.’
내게는 차선책으로써 빌헬름에 관한 정보, 즉 놈의 능력이나 기술, 공격 패턴 따위의 정보를 그들에게 제공한다는 선택지도 있었다. 단, 그 방법을 쓰면 괜한 의심을 받게 되는 건 피할 수 없으리라.
‘하지만 의심도 곧 관심이지.’
무슨 이유에서든 대형 길드의 간부진들이 내게 관심을 보인다면 그 관심을 토대로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나로서는 그렇게 되더라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기회를 마다할 이유는 더 이상 없겠지.
“좋습니다. 던전 공략에 참가하도록 하죠.”
기나긴 고민 끝에 내가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한여름이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잘 생각하셨어요. 조만간 제 비서를 통해 연락을”
“다만.”
내가 말을 끊자 그녀가 살짝 놀란 듯 고개를 갸웃하며 날 바라봤다.
“공략에 참가는 하되 전투적인 부분에서는 도움을 드리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을 유념해주셨으면 합니다.”
“네? 그게 무슨”
“단, 그럴 경우에도 던전 공략에는 확실하게 이바지하겠습니다. 제 나름대로의 방법으로요.”
“하.”
내 말에 한여름이 웃었다. 실소를 흘렸다는 표현이 정확하리라.
“그래요? 뭔진 모르겠지만 재미있을 것 같네요.”
그러나 그 표정은 불쾌해 보이지는 않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