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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77화 (78/266)

〈 77화 〉 076. 한겨울의 약점(3)

* * *

한겨울이 발휘하는 최대 화력의 불꽃에는 세 개의 약점이 있다.

첫 번째는 충전 시간이다. 그녀가 만들어낸 푸른 광구는 드래곤의 브레스에 버금간다곤 하나, 그만한 위력을 내기 위해선 적지 않은 시간을 화염의 압축과 제어에 집중해야 한다.

거기 필요한 시간이 대략 20여초.

결코 긴 시간은 아니나 급박한 전투 상황에서 20초나 상대를 기다려줄 자가 누가 있겠는가. 류태현처럼 강력한 공격을 직접 받아내보고 싶어하는 별종을 제외하곤 아마 없겠지.

때문에 그녀의 최대 화력은 일대일 전투에서는 사용하기가 힘들었다. 그것이 첫 번째 약점이었다.

두 번째 약점은 공격 범위다. 극한으로 압축된 끝에 해방된 불꽃은 그녀의 전방에 있는 모든 것을 쓸어버린다. 허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면에 인접한 범위에 한한 이야기.

그 넓은 2차원 범위에 비해 3차원, 즉 높이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물론 공중에 있는 적을 노릴 때는 공중으로 쏘면 된다만, 적어도 지상과 높은 상공의 적을 동시에 공격할 수 있을 정도로 만능은 아니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약점은 바로 공격을 쏘고 난 뒤에 한겨울의 움직임이 잠시간 마비된다는 점이다. 최대 화력을 쏘아낸 반동으로 몸은 굳어버리고 전방에서 터진 강렬한 섬광 때문에 시야마저 상실한다. 불꽃을 쏘아내고 약 3초. 그 시간 동안 한겨울은 완벽하게 무력화된다.

상기한 약점들은 하나같이 일대일의 대결에선 치명적이나, 반대로 말하자면 저런 약점을 보완해줄 동료가 있으면 그만큼 강력한 무기도 없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은 결국 안수호와 한겨울의 일대일 대결이었고.

“……그래서, 어떻게 한 거예요?”

이에 안수호는 자신이 알고 있는 그 약점들을 적극적으로 공략했다.

“한겨울 학생. 공격을 쏘기 직전에 눈을 감았죠?”

“그건……”

그 말대로 자신은 눈을 감았다. 작렬하는 섬광에, 안면을 강타하는 열풍에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한겨울 학생의 최대 화력은 강력하긴 하지만 자신의 시야마저 마비시킨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제가 이용한 게 바로 그 부분이죠?”

“그걸 이용했다고요?”

“예. 실제로 전 한겨울 학생이 불꽃을 쏜 순간 위로 도망쳤습니다만, 한겨울 학생은 그걸 보지 못했죠?”

“네? 위라고요?”

“예. 그게 또 하나의 약점이죠.”

한겨울이 불꽃을 토해낸 순간 안수호는 지면을 향해 연기를 해방해 공중으로 솟구쳤다. 한겨울은 그것을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불타오르는 지면과 달리 안전한 공중에서 안수호는 무방비하게 노출된 한겨울의 위치를 확인했다. 직후 연기 분사로 궤도를 조정하며 낙하해 발차기로 그녀의 가슴을 강타. 그것이 조금 전 있었던 사건의 전말이었다.

“…….”

안수호로부터 설명을 들은 한겨울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그래, 분명 하나하나 들어보면 이치에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치를 안다고 해서 누구나 안수호처럼 행동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한겨울의 최대 화력을 앞에 두고 저런 무모한 도박수를 던질 생각 따위 결코 하지 않을 테니까.

스스로의 판단과 능력에 100%의 확신이 있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행동. 그런 행동을 보란 듯이 해낸 안수호를 보며 한겨울은 문득 익숙한 느낌을 느꼈다.

‘닮았다.’

남들이 치를 떨 무모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것이 어딘가 그 남자, 류태현과 닮았다고.

“……류태현이 왜 당신을 추천했는지 알겠네요.”

한겨울은 안수호가 자신에 견줄만한 사람이라던 류태현의 말을 그제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기고만장하지는 마세요. 당신이 말한 약점은 저도 이미 다 알고 있던 것들이니까. 제가 무리해서 최대 화력을 쓰지 않고 지구전으로 나아갔다면 대련은 제 승리였을 거예요.”

“……시종일관 밀리기만 했으면서 뭔 소립니까? 혹시 넘어지면서 머리 잘못 부딪혔어요?”

“시종일관까지는 아니거든요?! 그거야 그, 당신이 갑자기 빨라져서 놀란 것뿐이에요! 다시 싸우면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다고요!”

한겨울이 씩씩대며 그렇게 말했으나 어디까지나 분해서 하는 말이었다. 그녀도 속으로는 안수호와 다시 싸운다 하더라도 이기기는 힘들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만일 한겨울이 탈리스만이나 샛별의 숨소리와 같은 그의 아티펙트에 대해 알고 있었다면 다른 판단을 내렸을 테지만, 지금 그녀에게 있어 안수호라는 남자는 류태현급의 속도에 더불어 성가신 초능력을 가진 강적이었다.

‘특히 초능력이 성가셨죠.’

한겨울은 조사를 통해 안수호의 능력에 대해 알고 있었다. D급 초능력 검은 연기. 손에서 검은 연막을 뿜어낸다는, 설명만 들으면 보잘 것 없는 초능력.

그러나 안수호는 창의적인 발상을 통해 그 초능력을 어떻게든 전투에 적합하게 바꾸어냈다. 연막을 통해 시야를 가리는 것은 물론 연기를 압축해 원거리 공격을 하거나 순간적인 폭발력으로 가속이나 공중 기동에 응용하기도 했다.

같은 원소 방출계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우직하게 불꽃을 쏘아대기만 하는 자신과는 사뭇 다른 모습.

“……혹시.”

기실 자신이 안수호에게 패배한 것은 그 차이에서 온 것이 아닌가 하여, 한겨울이 넌지시 안수호에게 물었다.

“혹시 그것 말고는 또 보이는 게 없던가요? 그, 제가 개선해야 할 점이라든가…….”

그 말에 안수호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한겨울 쪽에서 먼저 저렇게 말해올 줄이야.’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그녀는 결코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이번에 그녀에게 쓰라린 패배를 안겨주기는 했으나 고작 한 번의 패배로 그녀가 스스로를 돌아볼 줄은 몰랐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좋은 게 좋은 거지. 한겨울의 각성이 빠르면 빠를수록 이후 스토리를 진행하는 데에 도움이 될 테니까.’

한겨울은 원작 스토리의 핵심 인물. 그녀가 강해져야만 그 또한 앞으로 있을 난관을 극복하기 편해질 것이다. 이번에 그가 한겨울의 훈련을 도와주는 것도 다 그걸 위한 것이었다.

“한겨울 학생의 약점이라…….”

“약점이 아니라 개선할 점요.”

“그게 그거죠. 아무튼 짚이는 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뭔데요?”

한겨울이 조금은 분한 듯이, 그러나 한편으로는 궁금한 표정으로 안수호에게 물었다. 안수호가 말할 대답 따위 불 보듯 뻔했다.

“능력의 컨트롤.”

그 말에 한겨울의 표정이 흠칫 굳었다.

“한겨울 학생의 화력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학생임에도 이미 업계에서 통용될 수준으로 완성되어 있죠. 그렇지만 능력 컨트롤 부분은 아직 개선할 여지가 있습니다. 본래 발화능력자들이 대부분 컨트롤이 약한 경향이 있긴 하지만, 한겨울 학생은 재능이 뛰어나니 조금만 노력하면 얼마든지…….”

말하다 말고 안수호가 한겨울의 안색을 살폈다. 그녀의 얼굴은 싸늘하게 착 가라앉아 있었다.

“혹시 제 발언에 무언가 불편한 점이라도…….”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 저도 예상하고 있던 부분을 콕 짚으시길래.”

“아하.”

아무래도 한겨울 또한 방금 전의 대련에서 자신의 약점을 알아차린 듯했다. 류태현의 예상대로였다.

“하긴, 저 또한 같은 방출계 능력자니 싸우면서 참고할만한 부분이 많이 보였겠죠.”

“네 뭐……. 그것도 그거지만 사실 예전에 그쪽이랑 똑같은 말을 한 사람이 있었거든요. 지금까지 인정하지 않고 애써 무시해왔지만요.”

“저랑 같은 말을 말입니까?”

한겨울에게 컨트롤 부분을 지적한 사람이 또 있다니 안수호로선 의외였다. 적어도 원작에선 류태현을 제외하곤 그녀에게 조언 따위를 해준 사람은 없었다.

“류태현이 그렇게 말했습니까?”

“아뇨. 류태현은 아니에요.”

하여 안수호는 원작과 달리 류태현이 넌지시 한겨울에게 말해준 것인가 싶었으나. 한겨울이 약간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어보였다.

“그럼 누가 말해준 겁니까?”

“……한여름.”

한겨울의 뇌리에 어느 여성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신과 같은 붉은 머리카락과 붉은 눈동자를 지닌, 그러나 한없이 차가운 인상을 지닌 여성의 얼굴을.

“제 자랑스러운 언니죠.”

그 자랑스럽다는 말과 다르게 한겨울의 어딘가 언짢아 보였다.

***

그 시각. 그린하우스 내 경기장.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관객석 가득 찬 관중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 경기장 한복판에 붉은 머리의 여성, 한여름이 우뚝 서있었다.

한여름은 언뜻 보기에 한겨울과 비슷한 외모였으나 훨씬 도도한 인상이었다. 한겨울이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풋풋함을 간직하고 있었다면 그녀는 완연하게 자란 숙녀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항복하지 그래?”

그런 그녀의 물음에 그의 앞에 있던 남자, 앤드류 스피겔이 분한 표정으로 입술을 씹었다.

그의 몸은 머리만 제외하고 거대한 빙벽에 갇힌 상태였다. 평범한 얼음이라면 초인의 근력으로 어렵지 않게 벗어날 수 있었을 테지만 평범한 얼음이 아니었다. 대답을 망설이는 앤드류 스피겔을 쏘아보며 한여름이 서리가 낀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설마 더 할 생각은 아니지?”

­따악!

한여름이 손가락을 튕기자 그녀의 등 뒤에서 거대한 얼음송곳이 우후죽순 솟아났다. 날카로운 끝단을 앤드류에게 향했다. 그녀의 손짓 한 번에 당장이라도 짓쳐들 것 같은 그 흉악한 송곳들의 모습에 앤드류가 결국 고개를 꺾었다.

“……아니, 내가 졌다. 패배를 인정하지.”

­종합 랭킹 2위 앤드류 스피겔 학생 항복 선언! 이로써 이번 랭킹전의 승자는 한여름 학생으로 결정되었습니다! 한여름 학생이 도합 14번째 방어전을 성공적으로 끝마치고 랭킹전 종합 1위의 자리를 공고히 다집니다!

심판이 그렇게 외침과 동시에 관중석에서 일제히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일반 학생은 물론 수많은 경기를 봐왔던 스카우터들조차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 정도로 방금 전 경기는 명경기였다.

허나 한여름은 그런 것 따위 아무래도 좋다는 듯 경기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경기장을 나섰다. 그녀가 통로로 들어서자마자 말끔한 정장 차림의 여성 비서가 그녀의 곁에 따라붙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아가씨.”

“고생은 무슨. 늘상 하던 일인데.”

“이번 경기로 인해 앤드류 스피겔은 다시 3위로 떨어집니다. 그를 대신해 2위로 오를 오은수 학생은 저번 주에 아가씨께 패했으니 당분간은 랭킹전에 시간을 할애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그래봤자 시간이 지나면 다시 1위 자리를 노리고 덤벼들겠지. 귀찮아 죽겠어 정말.”

한여름은 쓸데없는 일에 자신의 시간을 할애하는 걸 그 무엇보다도 혐오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있어서 랭킹전이란 그러한 쓸데없는 일 중 하나였다. 어차피 자신이 다 이길 게 뻔한데 구태여 밑에 있는 자들과 싸울 필요가 없으니까.

“다음 스케줄은?”

“두 시부터 흑룡회 주관의 던전 공략 회의가 있습니다. 장소는 흑룡회 본사 13층 대회의실입니다.”

“의제야 이번에 발생한 이중던전 건일 테고. 참가 길드는?”

“아가씨께서 인턴으로 계신 아스테로이드 길드를 포함해, 현재 국내에 소재한 S급 길드 전부입니다.”

“그야 그렇겠지. 오버 랭크 던전이 발생했으니 누구나 숟가락 하나씩은 얹고 싶을 테니까.”

지난 번 1학년 1분반 학생들의 던전 실습 중에 발생한 세계 최초의 이중던전. 통칭 ‘기사의 무덤’

그 기사의 무덤을 공략하기 위해 이날 국내의 모든 S급 길드 간부진들이 한 자리에 모일 예정이었다.

한여름은 그 S급 길드 중 하나인 아스테로이드 길드에 재학생 인턴으로 들어가 있었으며, 인턴이라는 말단 직책임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간부진만 참여하는 던전 공략 회의에 참여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그녀의 막강한 배경인 한성그룹의 입김은 전혀 작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턴에 불과한 그녀가 회의에 참여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한여름이 회의에 참여할 자격이 있는 초인이었기 때문이다.

한여름. 그녀는 아직 학생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분기 S급 초인 승급이 유력한 명실상부 국내에서 가장 뛰어난 신인이었다. 한겨울 또한 1학년 중 1, 2위를 다투는 천재이긴 했으나, 언니 한여름에 비하면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그러고 보니 겨울이가 오늘 ‘그 경비대원’하고 만나기로 했다면서?”

“예. 저번에 병문안을 가셨을 때 따로 약속을 잡으신듯합니다. 아마 지금쯤 만나고 있을 거라 예상됩니다만, 소재를 파악해볼까요?”

“아니, 됐어. 그 애가 뭘 하고 다니든 내 알 바 아니니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한여름은 쓸데없는 일에 자신의 시간을 할애하는 것을 극도로 혐오한다.

그리고 그 쓸데없는 일에는 그녀의 여동생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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