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 001.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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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뿐만 아니라 가상의 이야기, 가령 소설 속이라 하더라도 예외가 아니다.
소설 1막에 벽에 걸린 엽총이 강조된다면 그게 곧 원인이다. 클라이맥스에 주인공이 그 엽총으로 살인마를 쏴 죽인다면 그게 곧 결과고.
포장조차 뜯지 않은 아기 옷을 파는 여인에겐 아이를 잃었다는 아픈 사연이 있을 것이고, 칼 한 자루만 패용한 채 정처 없이 사막을 헤매는 사내에게도 말 못할 사정은 있는 법이다.
이렇듯 소설 속이라 한들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존재하는 법이다. 아니, 오히려 소설 속이기에 더욱 인과가 뚜렷하다. 현실에는 우연이라는 게 존재하지만, 소설 속에서는 모든 것이 필연이므로.
그리고, 그러한 필연성을 사람들은 다른 말로 ‘개연성’이라 부른다.
모든 소설은 그러한 개연성 위에 성립되어 있다.
다만, 개연성이 성립하는 것과 그 개연성에 따른 이야기에 납득할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였다.
“…….”
나는 차갑게 빛나는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지금 막, 읽고 있던 소설 속 히로인이 죽었다.
그것도 주인공이 보는 앞에서 강간당한 끝에, 차마 말로 옮길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고 잔혹한 방식으로 죽었다.
피눈물을 흘리며 복수를 부르짖는 주인공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스크롤이 끝났다. 맨 마지막 줄에는 ‘초인들의 시대 : 368화 끝’이라는 무미건조한 글귀만이 있을 뿐.
그 마지막 글귀를 멍하니 바라봤다. 수많은 상념들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하아….”
이내 작게 탄식을 내뱉으며, 나는 수백 번도 더 했을 고민의 종지부를 찍었다.
칼바람이 몰아치는 1월의 버스정류장.
그 한 구석에서 얼다 만 손을 호호 불며, 나는 작가에게 보내는 장문의 댓글을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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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작가님. 작가님 글이 새싹 탭에서 선작 3이던 시절부터 꾸준히 후원 박던 독자 S급누렁이입니다.
그동안 작가님 글에 수도 없이 댓글을 달고 후원을 보냈지만 아무래도 오늘 이 댓글이 마지막이 될 것 같습니다.
네. 맞습니다. 차마 더 이상 볼 엄두가 안 나서 하차합니다^^
네 명이나 있던 히로인들이 각각 참살, 자살, 분양엔딩 당한 뒤로도꾸역꾸역 참고 봤습니다. 언젠가 이 비극을 딛고 일어서는 주인공과 히로인들의 서사를 보고 싶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보답이 양아름 간살입니까??
아니 마지막 남은 히로인이 그냥 죽는 것도, 그냥 강간당하는 것도 아니고 강간당하다 죽는다니요. 그것도 주인공이 보는 눈앞에서 말이죠. 정녕 독자들 전원 입에 게거품 물고 눈깔 뒤집어지는 꼴을 보고 싶으십니까?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 겁니다만, 작가님 요즘 전개 개판치고 계신 거 진짜 모르십니까? 오죽하면 편결도 아니고 정액제 사이트에서 그 많던 독자들이 우수수 떨어져나갔겠습니까?
작가님, 태그에 피폐 박아두셨다고 다 용서가 되는 게 아닙니다. 피폐도 피폐 나름이죠. 아카데미물에서 히로인 전원 몰살이 말이 되는 일입니까?
매번 후원 박으면서 아득바득 따라왔는데, 더는 못 봐주겠습니다.
전 여기서 하차할 테니 작가님도 이딴 글 그만 쓰시고 상하차나 하러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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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감정을 토해내듯 휘갈긴 댓글의 등록 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가슴을 짓누르는 답답함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누구에게라도 좋으니 지금 이 심정을 털어놓고 싶었다.
왜, 고통도 나누면 절반이 된다고 하지 않던가.
이 고통을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자, 나는 평소 이용하던 소설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아니나 다를까, 커뮤니티는 이미 건으로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게시판 곳곳에 대가리가 깨진 독자들이 보였다.거듭되는 잔혹한 전개에도 대가리 깨진 좀비마냥 관성으로 최신화를 따라가다가, 기어코 깨진 두개골에서 뇌수가 줄줄 새어나오고 있음을 깨달은 이들이 뒤늦게 제 이성을 주워 담고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독이 든 사과임을 알고 있음에도 그 겉모습이 지나치게 탐스러웠다. 차마 한 입 베어 물지 않고서는 못 배길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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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웹소설 제목 트렌드를 역행하는 그 여섯 글자의 간결한 울림은, 장문의 하차 댓글을 박은 지금도 여전히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감성이 있었다.
소위 말하는 남자의 로망이라는 것을 자극하는 제목이었다.
어디 그뿐이랴. 카타르시스의 끝판왕을 달리는 사이다 영웅형 주인공. 매력적인 히로인들과 입체적인 조연들. 몰입감 넘치는 묘사력과 숨 막히는 스토리 전개까지.
는 그야말로 명작 아카데미물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을 명작이었다.
딱, 전반부 200화 근처까지만.
215화. ‘피의 겨울방학(3)’ 에피소드를 기점으로 는 아카데미 소설의 탈을 화려하게 벗어던졌다. 그간 등장했던 거의 모든 주조연을 죽이는 방법으로.
그간 빌드업하던 히로인? 가차없이 죽였다.
주인공과 경쟁하던 라이벌? 역시 죽였다.
주인공을 이끌어주던 스승? 제일 먼저 죽였다.
불치병을 앓고 있던 여동생? 마찬가지로 죽였다.
갑작스러운 몰살 파티. 오직 비극을 위한 비극의 양산. 대부분의 독자들은 그쯤 하차했다. 남들이 떠날 때 나도 떠났어야 했는데. 이미 대가리가 깨질 대로 깨진 나는 꾸역꾸역 최신화를 따라갔다.
중반까지는 재미있었으니까. 중반까지는 명작이었으니까. 필사적으로 그렇게 되뇌며.
비록 지금은 글이 잠시 흔들리고 있지만, 언젠가 다시 예전의 폼을 되찾고 만족할만한 결말을 보여줄 것이라고.
그렇게 작가를 믿은 채, 나는 거의 1년 가까이 이 소설을 읽어왔다.
그리고 오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주인공의 버팀목이 되어주던 마지막 히로인이 죽은 순간. 마침내 내 인내심이 바닥을 보였다.
타다다다닥.
나는 마치 그간 이 소설에 품었던 애정을 보상받으려는 듯, 그동안 겉으로 꺼내지 못했던 불만들을 낱낱이 커뮤니티에 써내려갔다.
고통은 나누면 절반이 된다.
그 말이 맞았다. 내 의견에 동조하고 공감해주는 댓글들을 읽자 꿀꿀하던 기분이 그나마 나아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수많은 댓글 중 발견한 한 익숙한 닉네임에, 내 기분은 다시 수면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 쾌락천마/모든 전개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씀하시지 마시죠. ]
그 닉네임을 본 순간,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 ㅁㄴㅇㄹ/본인 등판ㅋㅋㅋㅋ ]
[ 비너스팬티/작가놈아 해명해!! ]
[ 무림맹주김갑룡/쾌락천마, 해명하시오! ]
쾌락천마.
그가 바로 를 쓴 작가 본인이었다.
어제까지의 나였다면 그의 등장이 반가웠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반가움보다 분노가 앞섰다.
뭐? 알지도 못한다고? 함부로 말하지 마?
내가 에 얼마나 애착을 가지고 읽어왔는지 알면 절대로 저런 말을 할 수 없을 테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 새 나는 맹렬한 기세로 스마트폰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 S급누렁이/그러신가요? 모든 전개에 이유가 있으시다면 소설 개연성은 왜 그리 말아먹으셨는지? ]
ㄴ[ 쾌락천마/개연성을 말아먹었다뇨? 도대체 어느 부분의 전개가 개연성이 없다는 겁니까? ]
ㄴ[ S급누렁이/진짜 몰라서 그럽니까? 당장 오늘자 양아름 간살 전개만 해도······. ]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의 논쟁이 시작되었다. 순식간에 게시판이 불타오르며 한 게시글에서만 댓글이 수십, 수백 개가 넘게 이어졌다.
나는 막힘없이 댓글을 적어 내려갔다. 족히 수십, 수백 번은 읽었을 소설 내용 따위, 어디가 미흡하고 부족한지 정도야 술술 말할 수 있었다.
[ S급누렁이/따지고 보면 애초에 배경 설정부터가 개판이죠. 아카데미가 국가중요기관이라면서, 정작 사건 터질 때마다 해결하는 건 학생들 아니면 선생들이지 않습니까? 아니 무슨 국립 아카데미에 경비원 한 명도 없답니까? ]
ㄴ[ 쾌락천마/그거야 소설적 허용이죠;;; 학생들이 활약해야 아카데미물인데 배 나온 50대 경비아저씨가 다 해결하면 무슨 재미로 봅니까? ]
ㄴ[ 비너스팬티/아 이건 좀 추했다 작가야 ]
ㄴ[ StillAlive/누렁좌 판정승. ]
거 보라지. 내 타당한 논리에 작가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내 의견이 옳았음을 알리는 댓글이 계속해서 달렸다. 작가와의 논쟁에서 이겼다는 우월감에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그래, 우월감.
하찮은 우월감이었다.
제아무리 그와 논쟁해봤자 하등 의미 없는 짓거리였다. 작가와의 말싸움에서 이긴다고 뭐가 달라지랴. 이미 쓰인 소설은 쓰인 소설이고. 일어난 전개는 바뀌지 않는데.
다른 작가면 여론을 의식해서 내용을 수정할 지도 모르지만, 쾌락천마는 도저히 그럴 위인이 아니었다. 제 작품에 대한 자존심 하나만큼은 하늘을 찌르는 놈이었으니.
[ 쾌락천마/아니, 정녕 아카데미물에서 경비원이 활약하는 꼴이 보고 싶으세요? ]
그거 보라지. 괜히 꼬투리 잡으며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 것 봐라.
한숨을 내쉬며 스마트폰 화면을 끄려던 찰나, 새로운 댓글이 곧바로 그 밑에 달렸다.
[ 쾌락천마/아니, 정녕 아카데미물에서 경비원이 활약하는 꼴이 보고 싶으세요? ]
[ 쾌락천마/그럼 어디 직접 해보시던가요. ]
ㄴ[ 힘법사로사/빙의각 떴닼ㅋㅋㅋㅋㅋ ]
ㄴ[ 응우옌헌터/“아카데미 경비원이 되었다” ]
ㄴ[ 난천/S급누렁이 조심해라 니 이제 공사장 철골 맞고 소설 빙의한다. ]
ㄴ[ 바르바토스/ㄴㄴ 환생트럭이 국룰이지. ]
ㄴ[ ㅁㄴㅇㄹ/쾌락천마 전작 주인공이 강도 칼 맞고 빙의하지 않았냐? 각인데? ]
ㄴ[ StillAlive/뭐가 이리 복잡해 ㅅㅂ 그냥 깔끔하게 번개로 하자. ]
뜬금없이 터진 빙의 떡밥에 나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뭐? 직접 해보라고? 할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교사도, 학생도, 라이벌도, 동료도, 빌드업하던 히로인마저 전원 평등하게 죽어나가는 아카데미계의 희대의 문제작.
소설 속으로 보내주기만 한다면 저 빌어처먹을 전개를 기필코 바꿔내고야 말리라.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콰아아앙!!!
지축을 울리는 진동과 함께 커다란 굉음이 울려 퍼졌다.
“어?”
건너편 길목. 도로 한복판에 거대한 철골이 박혀있었다.
“꺄아아아악!”
“사람이 깔렸어! 119! 119!!”
붉은 철골 아래. 더욱 붉은 빛을 발하는 핏물이 사방으로 번져가고 있었다.
도로 건너편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홀린 듯 그 광경에 시선을 빼앗겼다. 옆에 앉아 있던 여대생도 폰카메라로 연신 그 광경을 찍어댔다.
그러나 이변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부아아아아앙!!!
문득 들려온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육중한 화물 트럭이 곧장 정류장으로 들이닥치고 있었다.
“어, 어어어어어?!”
콰아아아아앙!!!!!
꼴사나운 비명을 지르며 정류장을 벗어나고, 간발의 차로 들이닥친 트럭이 정류장을 문자 그대로 분쇄했다.
파악!
무언가 뜨뜻한 액체가 뺨에 튀었다.
액체가 뺨을 따라 입술에 닿았다. 비릿한 쇠맛이 느껴졌다. 손가락으로 스윽 닦아보자, 시뻘건 핏물이 묻어나왔다.
불현듯 옆에 있던 여자가 떠오른 것과, 잔해 더미에 깔린 붉은 살점을 발견한 건 거의 동시였다.
“우읍!”
순간 식도를 타고 솟구치는 구역질에 무릎을 짚고 몸을 숙였다. 호흡이 가빠지며 몸이 연신 떨렸다.
사람이 죽었다. 그것도 눈앞에서.
이게 무슨 일인가.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갑작스러운 사태에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사고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않고 끊임없이 공회전했다.
“다 저리 비켜어어어!!”
“거기 서라!!”
그때, 몰려든 인파의 저편에서 한 남자가 식칼을 휘두르며 달려왔다. 모여 있던 사람들이 혼비백산 도망쳤다. 나 역시 그중 한 명이었다.
식칼을 든 남자가 길 저편으로 사라지고, 한 박자 늦게 경찰들이 그 뒤를 쫓았다.
적응할 새도 없이 계속해서 새로운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순간.
문득, 위화감이 느껴졌다.
‘S급누렁이 조심해라 니 이제 공사장 철골 맞고 소설 빙의한다.’
‘ㄴㄴ 환생트럭이 국룰이지.’
‘쾌락천마 전작 주인공이 강도 칼 맞고 빙의하지 않았냐? 각인데?’
철골. 트럭. 그리고 칼을 든 강도까지.
전부 다 조금 전 게시판 댓글에서 본 것들이었다.
“…….”
나는 애써 고개를 저었다. 게시판에서 본 댓글 내용이 실제로 일어난다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인가. 이 세상이 무슨 소설 속 세상도 아니고.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리가 없지.
아마 전부 우연일 것이다.
그저 우연히 공사장 철골이 도로로 떨어지고, 우연히 화물트럭 기사가 정류장을 들이박고, 우연히 칼을 든 강도가 내 앞을 지나갔을 뿐이리라.
필사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려 했으나, 나는 내심 이 모든 일이 우연이 아닌 필연임을 직감했다.
쿠르르릉.
‘뭐가 이리 복잡해 ㅅㅂ 그냥 깔끔하게 번개로 하자.’
우중충한 겨울 하늘, 시커먼 먹구름 사이로 파란 전류가 파직, 하고 튀어 올랐다.
“……개연성 미쳤네.”
다음 순간, 짜릿한 감각과 함께 시야가 새하얗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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