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3화 〉 180. 예림이와 모텔 입실
* * *
예림이는 안주가 나오기도 전 소주를 반 병 가까이 들이키며 중얼거렸다.
"영선 언니랑은 무슨 사이에요?"
"섹프...는 아니고...여자친구."
"샤를이랑은요?"
"샤를도... 여자친구. 유다 누나도."
내 말에 예림의 눈이 가늘어지며 째려봤다.
"아니, 전부 다 여자친구라구요? 셋이랑 전부 잠도 다 잤어요?"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자 예림이 손을 꼽아봤다.
"지금 그럼 오빠 잔 사람이
영선이란 분, 유다, 지현, 샤를... 네 명이에요? 카페 그만둔지 몇달이나 지났다고..."
큼, 큼. 나는 멋쩍어서 기침을 몇번 했다.
"샤를이랑 만나면서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정조가 없어 보이긴 하네. 미안."
샤를을 만난 후로는 섹스를 거른 날이 한번도 없으니까. 횟수로 따지면 더욱 엄청날 것이다. 예림은 한숨을 푹 내쉬고 물었다.
"...오빠는 여자랑 잘 수 있으면 그냥 하는 거에요? 사랑 없이도 그냥 자요?"
"사랑이 없는 건 아냐. 다들 여자친구라니까. 이번에 샤를 빨리 데려오라고 날 얼마나 구박하는데. 다 친해. 넷이서 같이 자기도 하고."
소주 한 병을 넘게 마셨더니 브레이크 없이 말이 흘러나왔다. 예림의 얼굴에 그늘이 더 깊어졌다. 날 살피며 우울하게 말했다.
"모르겠어. 강민 오빠. 내가 알던 강민 오빠 맞아요?
세상 상냥한 사람인 척, 쑥맥인 척 하더니.
여자 만나는 거라던가. 오빠가 올린 영상이라던가 병원에서 섹스하는 걸 보면 처음 보는 사람 같아요."
"...그러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예림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테이블 위의 휴지를 꽉 움켜쥐고 손을 떨었다.
"바보같아. 카페 알바하면서 나 혼자만 착각해서 혼자 설렜던 거야?
왜 잘해줬어요? 왜 맨날 데려다 주고, 밤새 이야기하고. 카톡 전부 받아주고.
그냥 간 보는 거였어요? 나랑 섹스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철벽치니까 그냥 찔러보고 도망친 거였어요?"
예림이가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한숨이 나왔다.
샤를을 만나기 전의 나랑 만난 후의 나는 아예 다른 사람이지만 예림이가 이해해줄 것 같진 않았다.
"미안, 예림아. 그 때는 내가 잘 몰랐었어.
그 때, 널 진짜 좋아했었어"
하지만 예림은 내 말을 끊고 목소리를 높였다.
"난, 모르겠어 오빠가 대체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나랑 헤어지고도 나랑 똑같은 얼굴 가진 악마한테 홀렸잖아요.
내 성격이 싫었어요? 나랑 똑같이 생겼으면 끝이야? 내 얼굴이랑 몸만 가졌으면 되는 거야?"
한숨이 나왔다.
싫었다기보단 악마의 말을 믿은 거였지.
예림이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 지 직시하기 무서웠으니까.
내가 변명하려고 했는데 예림이 고개를 툭 떨구고 비참하게 중얼거렸다.
"나도 알아요.
그 때 오빠 고백 받아줬으면 오빤 그 모습 그대로였겠죠?
그런데 나도 무서웠어요. 오빠가 내 몸만 노리는 게 아닌지.
오빤 실제로 용기도 없어서 도망쳤잖아."
팩트에 숨을 못 쉴 지경이었다. 예림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그래서 잊어버리고 살려고 했는데.
그런데 오빠는 나 같은 건 다 잊어버린것처럼 행동하다가도 병원으로 나 구해야 한다고 달려오고
대체 왜 그래요, 그냥 평생 모른척 하고 살지, 왜 와서 사람 마음 흔들어 놓냐구
오늘도 오빠 면회 언제 오는지 기다리면서 가슴이 새까맣게 타는 줄 알았어..."
예림의 어깨가 더욱 떨렸다. 가슴 위에 눈물자국이 졌다.
"미안해. 예림아."
예림의 옆으로 자리를 옮겨 눈물을 닦아줬다.
긴 속눈썹이 눈물을 머금어 파르르 떨린다.
아, 이 눈빛 예림이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순간.
내 가슴 속에 물 한 꾸러미가 차오르는 것 같다.
먹먹하고, 할 말이 녹아내리고 숨 쉬는 법을 잊어버린다.
사랑에 빠진 순간도 그 때였지.
동아리에서 선배가 자기를 따돌린다고, 울면서 날 바라볼 때.
그리고 나한테 달래줘서 고맙다고 이야기할때.
예림이 훌쩍거리며 내 어깨에 기대왔다. 내 귀에 속삭인다.
"오빠, 고백 거절한 거 미안해.
지금 내가 오빠랑 사귀고 싶다면 너무 늦었어?"
"..."
머릿속에서 수천가지의 생각이 흘렀다.
예림이를 좋아하던 건 맞다.
그리고 지금도 마음이 무너질 듯 흔들린다.
하지만 하지만.
지금 사귀고 있는 셋의 관계를 예림이가 이해할까?
영선 누나, 유다 누나, 그리고 샤를까지.
이 셋의 마음에서도 또 도망칠까? 예림이 핑계를 대고?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현실을 똑바로 직시해야 했다.
내가 도망치면 셋은 슬퍼할 것이다.
이후의 일이 두려울지라도, 말해야 한다.
"미안해, 예림아.
너랑 사귈 순 없을 것 같아.
널 좋아하던 만큼 다른 사람들도 좋아해."
그렇다고 예림이한테, 하렘 멤버가 되라고 권하는 것도 못할 짓이다.
예림이는 날 혼자 갖고 싶어할 터였다.
애초에 폴리아모리(다자간 연애)라는 개념도 이상하게 받아들여지는 세상인데.
"예림이 너라면 나보다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 거야.
이건 진심이야. 그리고 나도 널 좋아해.
그래서 이렇게 말해주는 거야. 네가 상처받지 않길 바라
나랑 있으면, 상처받을거야."
예림이의 눈이 절망으로 크게 커졌다.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오빠..."
말을 하려다 주저한다. 고개를 푹 숙이고 가슴 앞에서 손을 배배 꼬았다.
그리고 예림이의 입이 열리고 충격적인 말이 쏟아졌다.
"만약에요.
내가 오빠 여자친구들이 해 주던 거, 내가 다 해주겠다고 하면요?
하, 한번도 해 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저, 나름... 예쁘잖아요."
이런 젠장. 눈앞이 깜깜해진다.
예림이를 대상으로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다.
그냥 손 잡고 데이트하던 상상을 했었지.
제발. 예림이가 더 이상 아래로 떨어지게 두지 말자. 나는 필사적으로 말렸다.
"예림아. 그러지 마. 진짜로.
너랑 자려는 목적이 아니었어. 진짜로 널 좋아했었어.
지금 이건 진짜 아니야."
하지만 내 말이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졌는지 예림의 눈이 떨렸다.
"...내가 이렇게까지 말해도, 안 되는 거에요?
내가 그렇게 매력이 없어요? 난 희망 없어요?
오빠가 다른 여자들이랑 시시덕거리는 걸 봐야 해?"
예림이 내 허벅지를 꽉 움켜쥐고 숨을 내쉬며 노려봤다.
"예림아. 진정해"
그 때 점원이 다가와 이마를 찡그리며 우리에게 말했다.
"저, 손님. 다른 손님들이 불편해하십니다.
죄송하지만 나가 주시죠."
이런, 예림이의 목소리가 가게 안에 다 들렸나보다.
남자들은 흥미진진하게, 여자들은 불쾌하게 바라보는 중이었다.
섹스라던가, 남자친구, 그런 이야기들 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계산할게요."
예림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웠는데 예림이의 무릎이 휘청거렸다.
샤를보다 훨씬 주량이 약한 모양인지, 기울어지며 내게 안겨왔다.
푹신한 가슴이 내 상체를 짓누른다. 유다 누나보다 더 큰 가슴에 정신이 아찔해진다.
오늘 아침에도 섹스하고 나왔지만 가슴은 위력이 강했다.
"젠장. 예림아. 정신차려."
나에게 하는 말에 가까웠다. 계산을 마치고 예림이를 끌고 나왔다.
예림이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내게 매달려 휘청거렸다.
"오빠. 나랑 사귀어 줘요.
진짜로, 뭐든 다 해 줄게요"
"미안. 예림아, 안 되겠다. 너 취했어. 이봐요, 택시!"
내가 도로변을 향해 손을 뻗는 순간, 예림이가 내 목을 감싸고 키스했다.
서툴기 짝이 없는 키스. 혀를 넣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입술로 꾹 누르는 듯한 키스.
하지만 그런 형편없는 키스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멈춘 듯 했다. 술로 붉어진 예림이의 얼굴.
목을 감싸고 있는 따뜻한 손. 촉촉히 젖은 긴 속눈썹.
내가 멍하니 서 있는데, 예림이 슬픈 미소를 지었다.
"오빠가 내 첫 키스도 가져갔다 그래놓고 도망치면 안 돼
오빠, 지금 나 버리고 가면 프랑스 안 갈 거야."
하...정말 미치겠군. 일단 예림이를 껴안고 카톡을 했다.
[ 영선 누나. 미안. 지금 예림이 때문에. 오늘 저녁 약속은 못 갈 것 같아.]
나랑 폰허브 영상 찍을려고 기다리고 있을 텐데. 젠장할.
영선 누나가 카톡으로 싫은 소리를 열 몇개쯤 쏴보냈지만 무시했다.
그리고 예림이 부모님에게도 카톡을 보냈다.
[ 예림이가 요새 힘든 일이 많았는지, 술 마시고 쓰러졌네요 죄송합니다.
병원 말고 집에 택시태워 보낼게요. 집 주소좀 보내주실래요? ]
주소를 받아 택시를 부르려는데, 예림이가 내 폰을 빼앗아 비틀거리며 골목 거리로 향했다.
"예림아! 잠깐만! 제발!"
예림이를 따라가다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젠장, 여기 모텔촌이잖아.
게다가 예림은 술에 취한 게츰스레한 눈으로, 알바생에게 자신의 카드를 내미는 중이었다.
"계산해주세요."
"숙박밖에 안 되는 거 아시죠?"
"네, 네?"
예림을 힐끔거리며 알바생이 묻는다. 숙박과 대실 차이도 모르는 지 어벙벙한 표정.
"죄송합니다. 여자친구가 취했네요. 이런 애가 아닌데. 안 잘 거에요. 카드 주"
갑자기 예림이 자신의 윗옷을 걷어올린다. 얇은 블라우스 단추가 떨어져 나가며 팽팽해졌다.
"예, 예림아!"
"아 옷, 뜯어졌다아 이대로 나가면 사람들이 다 쳐다볼 텐데"
지금도 모텔 알바생이 눈을 크게 뜨고 예림이의 배꼽을 쳐다보는 중이다.
인스타 모델처럼 길게, 세로로 파인 배꼽.
"젠장. 방 주세요."
이대로 데리고 나갈 순 없다. 카드키를 받아들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안에 올라타 언성을 높였다.
"예림아, 너 대체 왜 그"
내가 질책하려 했지만, 예림이가 앞에서 껴안았다.
푹신, 가슴이 날 짓눌렀다.
슬픈 눈으로 날 바라보며 속삭였다.
"헤헤미안해요, 오빠
내가, 용기가 없었어서 이렇게라도 안 하면, 이젠 더는 안 될 것 같아서
나, 부끄러웠는데 이렇게까지 해 버렸다?
오빠랑 진짜로, 사귀고 싶어서
프랑스 가기 전까지만이라도. 한번 사귀어 보면 안돼요?
오늘 오빠 나 혼자두고 가면 진짜로 용서 안 할 거야 프랑스고 뭐고, 절대 안가 "
젠장할. 진짜 미치겠네.
일단 방으로 들어갔다. 예림은 불이 왜 안켜지는지 의아하게 쳐다보며 전등을 이리저리 눌렀다.
내가 키를 꽂자 불이 들어온다. 예림은 살짝 상처받은 표정으로 날 봤다.
"오빠... 이런 데도 자주 와 봤어요?"
"...그냥 TV에서 본 거야."
대충 둘러대며 예림을 침대에 앉히려고 했다. 잘 때까지 냅두고 빠져나가야지.
여기서 예림이랑 자면 진짜 인간 쓰레기 되는 거다.
하지만 예림은 내 손을 뿌리친 채 욕실로 들어가 문을 걸어잠궜다.
안 되는데. 어쩔 수 없이 나는 모텔 입구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예림아, 나 갈게 자"
욕실 안에서 울음 섞인 비명이 흘러나왔다.
"가면! 프랑스고 뭐고 아무데도 안 가!"
젠장할. 돌아버리겠군.
심지어 욕실 안에서 한참 시간이 걸린다. 샤워가운을 매었다, 풀었다 하는 게 실루엣으로 보인다.
자기도 부끄러운 지 어쩔 줄을 모른다. 결국 예림이는 온 몸을 샤워가운으로 칭칭 감싼 채 나왔다.
그리고 내 말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욕실을 가리켰다.
"씻고 나와요."
"예림아 내 말좀"
눈에 불을 켜고 나를 노려봤다.
젠장. 결국 어쩔 수 없이 들어가서 씻었다.
하지만 자지는 예림의 목선을 보고 이미 스탠바이 상태.
'씨발...진짜... 어떻게 해야 해?'
한숨을 쉬었다. 결국 샤를을 데려오려면 예림이와 자야 하는데, 그럼 예림이가 나중에 엄청 상처받을 텐데.
진퇴양난이다. 최대한 시간을 끌며 씻었다. 발기를 진정시키고, 예림이가 자는지 슬쩍 문 너머로 확인해 봤다.
"오빠. 다 씻었으면 나와요."
아, 이런 젠장. 여기 불투명 유리문인 걸 깜빡했네. 내 실루엣이 다 보였겠군.
샤워가운으로 풀 가드를 하고쭈볏거리며 문 밖으로 나갔다.
다행히 예림이는 모텔 침대 안에 온 몸을 파묻고 이불로 덮은 상태였다. 예림이가 부끄러워하는 걸 공략해야겠다.
"예림아. 이럼 안 돼. 난 진짜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냐. 이래봤자 너만 상처받는다니까!"
필사적으로 설득했다. 다행히 예림이도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 알았어요. 아무 짓도 안 할게요. 그냥... 옆에서 같이 잠만 자 줘요."
그 정도면... 괜찮겠지.
최대한 거리를 벌리고, 침대 끝에서 슬쩍 들어갔다.
이불이 하나뿐이지만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내가 들어가는 순간. 예림이 내 옆으로 달라붙었다.
내 몸에 엉겨드는 감촉이 이상했다. 맨 살끼리 스친다.
예림이는 지금 샤워가운을 침대 안에서 벗어버리고 알몸인 상태. 그 상태로 내 입술에 키스했다.
나는 충격에 빠져 예림의 얼굴을 봤다.
술은 다 깼는지, 이미 눈이 반짝거린다.
얼굴은 홍당무처럼 붉으면서도 내게 필사적으로 달라붙는다.
"오빠... 나, 진짜로
뭐든 다 해 줄 수 있어요"
서툴게 내 허리를 훑는 손길.
내 몸에 손이 닿는 걸 두려워하면서도, 어떻게든 날 붙잡고 싶어하는 필사적인 손길.
아아 젠장할
내 물건은 내 의지를 배신하고. 불쑥 커져서 솟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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