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화 〉 스위치 이단심판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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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흠. 에……. 연회 도중에 불미스러운 사태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여러분. 이번 연회에 참석한 교단의 대표로서 사과드리겠습니다."
게이리어 씨가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사과를 하셨다. 내가 좆만 큰 개변태 새끼로 이미지가 굳어지기 전에 직접 나서시더니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 주셨기에 무사히……는 아니어도 나름 순탄하게 넘어갈 수 있었다.
음마가 이단심판관이며 교단 내부에서 벌어지는 불미스러운 이단 의혹을 해결하기 위해 흡혈로 이단을 판별하는 그녀가 왔다는 것. 그리고 흡혈의 부작용으로 성교와 같은 쾌감을 받는 데 거기서 그만 내 피가 너무 맛있어서 평소에는 스스로 자제하던 마르가리타가 폭주해 피를 쭉쭉 빨다 사고가 벌어지고 말았다는 거다.
그에 남성 귀족들이 헛기침을 하며 은근슬쩍 파트너 몰래 그녀를 훔쳐본다.
이 세계에 노출이란 이미지는 그리 큰 일이 아니지만 그렇게 해서 드러난 마르카리타의 몸매가 너무 폭력적이었으니까. 고추 달린 수컷이라면 자연스럽게 눈길을 끌 수밖에 없는 임신최적화 몸매인 것이다. 게다가 저런 몸매로 전신망사 본디지를 입고 있으니 용병들이 자주 입어서 익숙한 비키니 아머랑 다르게 색다른 꼴림이 있으니 수컷들 눈 돌아가지.
그리고 그 눈 돌아가는 수컷 중 나도 포함되어 있고.
꽈아악.
"아파.다들 내 옆구리는 왜 꼬집는 거야."
"눈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서?"
"……그걸 어떻게 아는 거람."
이게 여자의 직감이란 걸까.
정식 약혼자가 된 앨리스부터 아비 누나와 아르잔느까지 꼬집는다. 내가 음마한테 정신 팔려서 헤벌레팔렐레 하며 좆을 놀릴까 봐 경계하는 걸까.
어쨌든 게이리어 씨가 사정을 설명하고 사과를 하니 귀족들은 넘어가는 듯했다. 너무 충격적이었던 광경을 본 데다가 알게 모르게 이단심판관이 뿌리는 페로몬에 몽연해져서 집중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진짜 존재 자체가 걸어다니는 페로몬 덩어리네.
그 뒤로는 순탄하게 연회가 진행됐다. 그러다가 언제 참여했던 건지 공작인 아버지가 날 찾아오셨다.
"레온.아비가 아들이 포상받는 황성 연회에 참여해서 그런 꼴을 봐야겠느냐?"
"어……."
이 연회는 아버지가 다른 지역의 귀족들에게 아들 자랑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그야 내가 공로 1순위고 포상도 제일 큰 걸 받으니까.
게다가 무려 본 드래곤을 처리한 황도의 영웅인 데다가 성흔까지 있다지 않은가.
수완이 제법 좋은 아버지였기에 내 아버지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랑질과 함께 얻을 수 있는 이득을 얻고자 할 예정이었을 거다.
그래. '예정이었을 것'이다.
이단심판관이 테라스에서 목덜미를 물고 쪽쪽 빨면서 아들이 불방망이 같은 검붉은 왕자지를 발딱 세우고 혈관을 불끈거리던 광경이 귀족들에게 노출되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아버지는 반쯤 썩어가는 안색으로 말씀하셨다.
"어릴 때 검을 가르치지 말고 다리몽둥이를 분지르며 예법을 가르쳤어야 했는데."
"…끔찍한 소리 하지 마세요."
"네 어머니 때문에 너무 오냐오냐 키웠던 것 같구나. 나중에 한 번 제대로 시간을 갖고 얘기를 나눴으면 좋겠다."
"넵."
평소에는 내 꼴리는 대로 하지만 이번만큼은 할 수 있는 대답이 긍정뿐이었다.
그런 대형사고를 쳐서 아버지에게 개망신을 주고 말았는 데 이 정도도 못 들어드릴까. 원래 죄인은 말이 없는 법이다.
아버지는 그런 날 빤히 보시더니 한숨과 함께 말씀하셨다.
"연회가 끝난 후에 앨리스 경… 아니, 엘리자베스 황녀님에게 내가 찾아간다고 말해주려무나."
"직접 찾아오신다고요?"
"그래. 폐하께서 정체를 밝히셨으니 이제 그분을 가문의 평기사 대하듯 대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더냐. 게다가 네가 그분의 약혼자인 건 둘째 치고 여기사로 모습을 드러냈던 것 때문에 귀족들 사이에는 잡음이 많은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 내가 가라마라 하면 우리 가문 또한 상당히 귀찮은 풍문에 휩싸일 거다. 안 그래도 검술명가인 우리 공작가가 그녀를 전적으로 지지하는 건지 아닌지 제1, 2 황자님들이 신경을 많이 써서 말이다. 그럴 바에는 내가 은밀하게 찾아 뵙는 게 낫겠지."
"그건 그렇겠네요."
안 그래도 최근에 나와 앨리스를 견제하느라 지랄발광을 했던 제1 황자가 떠올랐다. 장인어른께서 앨리스의 정체를 까발리고 귀족들을 협박해 강제로 입을 다물게 만들었지만 그걸로 끝날 리가 없다.
당장 황자가 아니더라도 그 세력의 파벌에 속한 귀족들이 수작을 부릴 게 뻔하기도 했고.
문제는 그게 안 통할 정도로 우리 쪽이 압도적으로 인맥과 실력이 강하다는 거지만 말이다. 그러니 정치적인 수작이나 더러운 누명을 씌우거나 어려운 일을 맡기거나 하지 않겠는가.
간만에 부자 간의 대화를 나눠 해후를 푼 뒤에는 여성진에게 돌아가려 했으나 그때 다시 장인어른… 아, 씨. 내 장인어른이 몇이야. 그냥 폐하라고 해야겠다.
폐하가 마지막 날에 공로를 치하하여 포상을 내리는 날인 만큼 연회장에 정식으로 입장하셨다. 첫째 날에는 황자가 수작을 부리려고 해서 난입했지만 그 뒤에는 할 말만 하고 곧장 빠지질 않았던가. 그렇게 위풍당당하게 들어온 폐하께서는 음마 이단심판관 마르가리타가 예법에 허리를 숙일 때 출렁이는 젖살에 움찔하셨다. 폐하도 어쩔 수 없는 남자라는 거구만.
"크흠. 모두 잘 왔다."
황제의 자리에 착석한 폐하는 헛기침을 한 번 해준 뒤에 다시 위엄을 풍기며 연회장을 아우렀다.
"그럼 지금부터 육보…… 흑마법사 조직 육망성을 토벌한 공로자들을 위한 포상을 내리겠다."
폐하도 차마 육봉성이라는 단어를 꺼내기는 싫으셨던 모양이다. 어떻게 조직 이름이 육봉성.
문제는 그 간부가 아직 셋이나 남아 있고 다 요정왕국에 작업을 걸고 있다는 거지만.
공로에 대한 포상을 치하하는 건 순탄하게 이뤄졌다. 애당초 황실 기사단장인 렉스 경이 2위로 포함되어 있고 황도의 영웅인 내가 1위로 포상을 받는 이 일에 누가 불만을 품겠는가. 무명인 아르잔느가 3위긴 하지만 그녀가 간부를 포획했다는 사실에 아무도 불만을 품는 일은 없었다.
아니, 그 이전에 내 여자라는 점에서 시비를 거는 바보는 없으리라. 있으면 뒤질 테니까 결국 세상에 그런 바보는 없는 게 맞는 거 아닐까.
그리고 내 차례가 되어 폐하의 앞에 가 한쪽 무릎을 꿇고 심장이 있을 가슴 위에 손을 얹어 궁중예법을 취했다. 폐하께서는 연회장 황제 전용 좌석에 앉아 한 손에 느긋이 턱을 괴며 말했다.
"레온 하르트의 공적에 대한 포상은 내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줄 수 있는 게 없더군."
폐하가 저렇게 뜸을 들이자 귀족들의 안색에 불안이라는 두 글자가 떠오른다.
저렇게 분위기 잡고 뜸을 들이다가도 항상 광인처럼 급변해서는 자기들을 신물나게 까내렸던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첫째 연회날에 사생아의 유무를 들켜 부인들에게 갈굼을 당하고 각방을 쓰게 된 이가 한둘이 아니다.
특히 첩들까지 정부인의 지시에 의해 침대로 들어오지 않았고 사흘간 홀몸이 된 혈기 넘치는 젊은 귀족들로서는 싸고 싶어도 자존심 상 오른손이라는 이름의 애인을 차마 부를 수가 없어 힘든 시간이었다.
"그러니 일단 영지는 없어도 계승이 가능한 백작의 자리를 주고자 한다. 이유는 두 가지다. 공작가를 잇지 않는 그에게 대신이라기 뭐하지만 백작의 자리를 주는 것이고, 두 번째는 내 딸이랑 결혼할 사위가 평민으로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아니되옵니다, 폐하!"
"……왜?"
폐하는 진지하게 이해가 안 가니 너희들이 좀 알려달라는 식의 표정을 지으셨다.
"레온 경이 백작이 되지 못하면 내 딸과 결혼 못한다. 그대들은 지금 내 딸더러 결혼하지 말라는 건가?"
그런 풍습이 있긴 했다. 황제가 되지 못한 핏줄이 결혼하는 이들의 신분은 거의 백작 이상의 신분을 가진 이들이었던 게 예전에 배웠던 역사학에 나왔던 게 떠오르네.
하지만 황족이 백작 이상의 귀족과 결혼해야 한다는 그런 법도는 당연히 없다. 엄연히 풍습에 불과할 뿐이지 마음 먹는다면 얼마든지 평민과도 결혼할 수 있다고 알고 있다. 그게 아니면 내가 역사학 공부를 제대로 안 했거나.
"그리고 말일세."
폐하께서 덧붙이셨다.
"자네들은 성자에게 직위도 주지 않고 영원히 제국의 백성으로 있어 달라 부탁할 셈인가?"
"…네?"
"그게 무슨…?"
귀족들만이 아니라 뒤에 있던 암말 성기사 애인도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내게 시선을 돌리며 연회장의 모두가 나에게 집중했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뭐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아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성자요? 누구요? 저요?'
아니, 처음 듣는 얘기를 본인이 포상을 받는 자리에 한다니. 누구 계획인지 모르겠지만 참으로 악취미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바람둥이 사위를 마음에 안 들어하시는 폐하의 계략인 걸까.
그때 게이리어 씨와 마르가리타가 시상식에 오르더니 내게 다가왔다. 이단심판관은 순백의 검을 들고, 게이리어 씨는 금선이 새겨진 순백의 로브를 들고서 말이다.
"하하하. 이제부터 성자 임명식이 있겠습니다."
……성자요? 누구요? 저요?
게이리어 씨가 레온둥절하는 사이에 다가오셔서 내 어깨에 로브를 걸치시고는 마르가리타가 내 옆에서 순백의 검을 내민다. 얼떨결에 그 실전성을 넘어 예술미가 가미된 한손검을 쥐었다. 그러나 쥐는 순간, 쥐고 있는 손바닥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화상을 입을 것만 같으면서도 물리적으로 진짜 타지 않는, 기분 좋은 열기였기에 놀라서 무심코 두 눈이 휘둥그레 떠진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사용하지도 않았는 데 [성흔] 스킬이 발동되면서 오른손에서 찬란한 빛이 뿜어져 연회장을 환하게 밝혔다.
당혹스러워 벙찌고 있자니 마르가리타가 핏발이 선 혈안으로 "아아아!" 하고 잔뜩 상기된 얼굴을 하는 데 묘하게 야릇했다. 아니, 진짜로 본디지 위로 젖꼭지가 발딱 선 것처럼 보이는데?
왜 음마 이단심판관이 발정하는 건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새로운 혼란이 머리속에서 터지고 있는 데 게이리어 씨가 건실한 표정으로 웃으시며 연회장의 모두에게 들리도록 똑똑히 말했다.
"성검이 성흔 보유자인 레온 공자를 선택하셨으니 정식으로 그가 성자임을 선포하겠습니다! 허허허. 경사로군요."
그렇게 나는 성검의 인정을 받은 정식 성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 사실에 놀라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왜냐하면
이 몸, 부! 활!
성검이 굉장히 여성스러운 톤이지만 호걸처럼 느껴지는 목소리로 선배가 했듯이 내 머리속에 직접 외치고 있었으니까. 아니. 얘, 에고 소드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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