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 착정마(馬)왕 성기사 (5)
* * *
이곳은 분명 전투지다.
누적된 흑마법의 저주와 세뇌로 인해 맛탱이가 가버린 본 드래곤이 신성력에 내성을 지녔으며 내구력마저 안 그래도 높은 상황에서 미스릴까지 유전자 단위로 섞어 더 높아졌으니까. 막대한 기운의 소모가 필요하다지만 위력만큼은 보장되는 무형검에 성화까지 더한 레온의 참격이 수십 번을 이어도 버티는 맷집을 떠올리면 어지간한 기사들의 실력으로는 상처조차 내기 힘들 거다.
그러나 본 드래곤을 상대로 시간을 버는 건 교단의 추기경과 황실 기사단장.
두 사람의 실력은 어지간한 수준을 벗어나 있었고 본 드래곤을 상대로 나름 시간을 끌고 있었다.
하지만 둘은 극심한 회의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쮸우웁. 쯉쯉. 츄릅."
"쮸웁쮸웁. 츄우웁."
그야 젊은 것들(?)이 뒤에서 쪽쪽 빨며 신성력 전달(키스)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자신들의 사활을 건 전투가 두 남녀의 키스를 유지해 주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인지한다면 누구나 기운이 빠지지 않을까.
'내가……이러려고 기사 하는 거였나.'
'아비게일 저 아이가 새로운 연인을 찾은 모양이군요. 참으로 다행입니다.……근데 왜 이리 짜증이 나는 건지 모르겠군요.'
그렇게 어른 둘이 시간을 벌어 주는 사이에 신성력을 무사히 전달한 아비게일이 레온에게서 떨어졌다. 잠깐의 키스로 성욕을 자극 받아 그 사이에 얼굴이 상기된 아비게일의 얼굴은 명확히 요염한 색기를 풍기고 있었다.
반면, 레온은 자신의 내부를 채운 신성력의 질과 양에 감탄하고 있었다. 일할(10%)밖에 안 남아 있던 성흔의 신성력이 팔할까지 차올랐기 때문이다.
격세유전을 푼 아비게일이 자신의 욕정을 다스리며 요사스러운 눈망울로 자신의 연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후우우. 내 남은 신성력 전부를 줬어. 격세유전 상태의 절반밖에 안 되는 양이지만 싸우기에는 충분할 거야."
"이게 절반이라고요? 누나 정말로 대단한 수녀셨네요."
"그러엄~! 이 누나, 이래 보여도 성녀체질이란다?"
한쪽 눈을 찡긋 감아 윙크를 날리며 이 야시시한 분위기를 날려버리는 아비게일의 모습에 레온은 피식 웃었다. 이 정도 신성력이면 정말 성녀체질인 게 아니라 성자라는 의미에서 성녀가 맞지 않을까 싶을 정도긴 했다.
"홀홀. 그럼 저희들 차례군요."
"아. 부탁드립니다, 사제님들."
"아뇨아뇨. 그 윌리엄스 수녀의 마음을 다시 따뜻하게 뎁혀 준 이이자 성흔 보유자님에게 저희가 싸움에 도움이 되도록 발 벗고 나서셔야죠.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아비게일처럼 직접 신성력을 전달할 수는 없지만 얼마든지 신성술을 사용해 버프를 줄 수가 있는 교황청의 전력이다.그들은 성흔 보유자인 레온을 돕기 위해 자처해서 집중 버프를 부여하기로 했다.
기사들에게 부여한 버프를 모두 해제한 사제들이 레온에게 자신들의 가장 강력한 버프 계열 신성술을 걸기 시작했다.
"힐!"
"스트렝스!"
"어질리티!"
"프로텍트!"
"홀리 인챈트!"
"프로텍트!"
……
……
……
교황청의 진국이나 다름없는 사제들의 버프를 받으며 레온은 생각했다.
'이 양반들 초반부터 나한테 버프 넣어 줬으면 그냥 이길 수 있었던 거 아냐?'
버프를 주기에는 아비게일의 위기에 눈이 돌아간 그가 냅다 본 드래곤을 들이 박는 바람에 그럴 겨를이 없었던 거지만 레온은 새까맣게 잊었다. 자신의 몸상태를 점검한 레온은 두리번두리번 자신의 전신을 화안금정으로 분석하더니,
씨익.
만족스럽다는 듯이 입꼬리를 올렸다. 역시 교단의 본부인 교황청 직속 사제들은 일개 영지의 사제들과 실력이 천지차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격차가 컸는데 무려 수십이 각자 걸어 주니까 쇼타체형의 육신이 물리적으로 갖는 한계를 한시적으로나마 돌파한 느낌이다.
그가 자신의 몸을 체크하던 와중에 결국 자신들의 신성력을 모조리 부어 버프를 건 사제들이 숨을 헐떡인다. 모든 기운을 갑자기 쏟아부었으니 심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피로가 만만치 않게 쌓인 거다.
"허억. 헉. 어떠십니까? 저희는 성흔 보유자님의 도움이 됐습니까?"
"당연하죠. 상급 신부님. 충분히 도움이 되셨습니다. 저 용가리를 쓰러뜨린다면 그건 여러분의 조력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교단에 전해주세요."
"홀홀. 후우우우. 다행이군요."
싱긋 웃으며 기뻐하는 신부에게도 뒤돌은 레온이 성화무형검을 일으켜 양손에 하나 씩 쥐었다.
화르륵. 화륵.
그러나 그걸로 끝나지 않는다. 레온의 위로 하나둘 성화무형검이 몇 개나 더 만들어진다.
무형검을 형성하느라 받아야 할 부담을 버프로 인해 버틸 수 있게 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도합 일곱 자루의 성화무형검을 만든 레온이 아비게일을 올려다 보았다.
"갔다올게요."
"응. 다녀 와."
배웅을 받은 곧장 레온은 본 드래곤을 향해 달려나갔다.
◇◇◇
사제들이 걸어 준 버프는 실로 대단했다. 그 효과가 어찌나 뛰어난 건지 용병 활동을 하는 방랑사제에게 받았던 버프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여다. 하긴, 수십 명이 버프를 걸어 줬는데 그게 방랑사제와 비교하면 저들에게 실례겠지.
민첩하지만 무겁게 느껴지던 몸이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졌으며 일곱 자루나 되는 성화무형검은 제법 오래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팔 한 짝을 잃은 본 드래곤은 미친 듯이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전신을 막 굴리기도 하고 돌려서 꼬리치기를 하기도 하고, 그러다 날개를 펄럭이며 광풍을 일으켜 밀어내기도 했다.
그런 본 드래곤을 상대로 힘겹게 버티던 기사단장과 추기경이 조금이라도 실수가 일어나면 저 난동에 휘말려 허무하게 세상을 하직할 정도로 위험해 보인다. 둘을 확인한 레온이 망설이지 않고 허공의 성화무형검 다섯 자루를 쏜다.
가랏!
이프리트의 제어를 받는 성화무형검이 빛살처럼 쏘아지며 본 드래곤의 관절에 박힌다. 부술 정도는 안 되어도 관절에 박아 움직임을 제한할 정도는 된다.
"크롸라라라! 나는 짱 쎄다! 짱 쎄!"
맛탱이 간 본 드래곤은 맞는 말이면서도 무논리스러운 발언을 반복하며 고통에 몸부림 쳤다. 관절에 박힌 성화무형검의 막대한 신성력과 불의 정령왕이 제어하는 화기가 뒤섞여 자신을 괴롭히기 떄문이었다.
그러다 어깨와 골반, 그리고 날개가 달린 등골에 성화무형검을 맞은 본 드래곤은 균형이 무너져 넘어지고서는 몸을 꿈틀 대며 발광하는 팔다리로 주변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게 한계였다. 본 드래곤의 난동에도 부서지지 않으려고 유지하는 성화무형검에 소모되는 기운이 장난이 아니었지만 조금은 버틸 수 있었으며 아직 두 자루가 손에 쥐어져 있었다.
더 이상 자신들이 방해만 될 게 뻔하다고 판단을 내린 건지 렉스 경과 추기경이 뒤로 물러나고 대신 본 드래곤 앞에 도착한 나는 낙하하면서 손에 쥔 쌍검으로 녀석의 가슴팍을 후려갈겼다.
콰아앙───!!
"끄롸라라라!!"
녀석의 발버둥이 더욱 심해진다. 지금 내 목표는 본 드래곤의 막대한 에너지를 유지시키는 드래곤 하트를 이 용가리 통뼈에서 강제로 떼어 내는 거다. 원래는 동력을 보호하기 위해 심장이 있는 부위의 뼈에는 보호막이 둘러져 있는 데다가 그걸 부수려고 해도 손발로 한 대만 후려치면 이쪽이 죽기에 시도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팔다리, 그리고 날개까지 모조리 봉하지 않았는가. 게다가 몰빵한 버프로 인해 아직 내 육신은 성화무형검 일곱 자루를 버틸 만했다.
그러나 역시 동력을 보호하는 부위답게 본 드래곤의 보호막이 둘러진 갈비뼈는 두개골보다 튼튼한 건지 계속 때려도 시간 내에 부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정확히는 보호막이 깎이긴 하는 데 그 이상의 속도로 압도적인 마력의 유동과 함께 재생되는 것이다. 드래곤 하트가 자신을 지키는 보호막을 유지하는 거였다.
그럼 무작정 때리는 게 아니라 기술을 쓰는 수밖에.
"이프리트, 일점돌파로 뚫자!"
알겠어. 우리 계약자가 얼마나 대단한 지 보여 주자고!
두 팔을 들고서 만세 자세를 잡은 이프리트가 두 손을 앙증맞게 주먹 쥐자 내 양손에 들린 성화무형검의 끝자락, 검극(??)에 성스러운 불꽃이 압축된다. 단 한 번의 일격을 위한 성화의 집약.
나는 성화무형검을 역으로 쥐고는 그대로 꽂듯이 내려 찍었다.
"이제 그만 좀 저승으로 가, 이 용가리 새끼야아아아아───────────!!!"
콰과과각!
두 성화무형검의 극점을 한 곳만 노리고 찍어버리지만 뚫리는 기미만 있을 뿐, 정말로 관통되지 않는 보호막. 되려 조금이라도 보호막이 뚫리자 반발하는 거친 기운이 나그네의 옷을 벗기려는 돌풍처럼 날 강하게 밀어 낸다. 이를 악 물고 어떻게든 버텨 보지만… 한계다. 이프리트도 집약시킨 성화를 보호막을 뚫는 데 집중하고 있었으며 나는 반발력에 튕겨 나가지 않도록 버티는 게 전부였다. 사제들의 버프 몰빵을 받아서 그나마 버티는 거지 원래의 나였다면 진작에 날아갔을 거다.
이래도 아직 부족한 걸까. 화안금정으로 최대한 내구력이 떨어지는 부위를 이프리트의 도움을 받은 성화무형검의 극점으로 찌르고 있음에도 뚫리지 않다니. 염동력까지 써서 밀어 보지만 보호막이 조금 더 파일 뿐, 그 이상으로 뚫릴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그때였다.
타다닷.
"레오오오온!! 비켜어어어어─────!!"
"아비 누나?!"
갑자기 누군가가 달려 오는 소리와 함께 지하광장에 울려퍼지는 누나의 발언에 나는 순간 망설였다. 아비 누나가 비키라고 했는데 여기서 비키면 더 이상 기회는 없다고 봐야 한다.고민은 오래 가지 않았다.
'내가 여자친구 안 믿으면 누굴 믿어!'
아비 누나의 말을 믿고 냅다 몸을 옆으로 던졌다. 내가 놓자마자 보호막의 반발에 뽑혀지기 시작한 성화무형검.
팟!
그러나 달려 온 아비 누나가 그대로 뛰어 오르더니 허공에서 바짝 선 하나의 꼬리가 아홉 개로 분열을 일으켰다. 구미호의 격세유전인데 아직 사용할 여력이 남았던 걸까.
아비 누나는 멋지게 날아 오더니 그 자세 그대로 성배의 받침 부분으로 뽑혀지려는 성화무형검의 자루를 찍었다.
콰직!
단숨에 성화무형검이 부서짐과 동시에 보호막도 함께 구멍이 뻥 난다. 아비 누나의 아홉 배로 부푼 소 수인의 근력을 감당하지 못한 거다. 즉, 내가 버프 몰빵에 압도적이니 마력으로 신체강화 초능력 및 염동력, 그리고 오러로 찍어 누르던 것보다 스스로 자가 버프를 걸고 아홉 배로 뻥튀기 된 누나의 근력이 더 셌다는 거다.
"누나! 심장 뽑아요!"
"알겠어!"
여우 수인답게 민첩한 몸놀림으로 보호막에 뚫린 구멍에 들어간 아비 누나는 성배를 대충 날리더니 자신의 흉부만한 드래곤 하트를 두 손으로 쥐고서 냅다 본 드래곤에게서 뽑아버렸다.
……아니, 저게 저렇게 쉽게 뽑히는 게 아닐 텐데?
'와. 응. 뭐.개쩌네.'
나중에 부부싸움 나면 반드시 아비 누나가 격세유전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뇌리에 새겨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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