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 애정결핍 요정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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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타니아가 저택에서 지내게 된 지 며칠이 지났다. 그녀도 이제 익숙해졌는지 태연하게 매일 나와 밤을 보내며 섹스를 하고 정액을 자궁에 받으며 즐기며 잠들다가 다음 날이 찾아오면 일어나 일과를 시작하는 거다.
그 일과 중 하나는 검술 스승인 앨리스와 함께 대련을 하고 스스로 자기 단련을 하는 거다. 오백 년을 살아온 연륜이 있는 요정답게 그녀는 군소리 하나 없이 앨리스의 하드코어 단련을 전부 따라오더라.
이제는 앨리스의 참격을 어느 정도 받아낼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여전히 앨리스에게 검술로는 안 되는 티타니아였지만 정령왕과 계약할 정도의 정령술까지 있으니 전력으로 치자면 티타니아가 더 강하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어떻게 앨리스의 전력을 더 강화시킬 수 없을까 하는 의미에서 정령술의 재능이 있는 지 티타니아가 확인해 주기로 했다.
즉, 오늘은 티타니아가 나와 앨리스에게 정령술을 가르친다는 거다.
내게는 정령들이 친근하게 느껴지도록 페로몬을 뿌리는 [정령친화력]과 정령술의 재능을 올려주는 [자연친화력]이 있지만 말 그대로 재능일 뿐이지, 정령술에 대해 아는 건 일절 없었다.
"정령술은 재능과 시작이 가장 중요해요."
그런 의미에서 고위요정인 티타니아의 교육은 필수였다.
"재능이 있어야 정령과 계약 자체가 가능해지고 시작을 잘 해야 좋은 정령과 계약이 가능하거든요. 정령은 보통 장난꾸러기 같은 면모가 강해서 계약을 쉽게 해 주지 않아요."
"그러면 다른 정령을 찾으면 되는 거 아니야?"
손을 들으며 의문을 꺼냈다.
정령과의 계약은 정령사가 직접 유체이탈을 하여 영체를 정령계로 보내 자신과 맞는 정령을 찾아가며 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면 장난끼가 적은 정령과 적절하게 알맞은 조건으로 계약을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러자 티타니아가 상당히 씁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보통 정령계로 가면 곧장 정령사의 냄새를 맡은 그 일대의 정령 중에서 가장 적합한 정령이 다가가 자신의 기운을 묻혀요. 그게… 일종의 침 바르기 같은 거라서 그렇게 되면 더 상위의 정령이 오지 않는 이상 다른 정령들은 그 정령사와 계약을 하려 들지 않아요."
"……정령들도 나름 깡패구나."
"정령사의 자질이 뛰어난 건 요정밖에 없는데 그 수는 그리 많지 않으니까요. 다들 중간계(中??)로 나오고 싶어서 안달이 난 애들이지만 저희 쪽이 더 급하다는 걸 알기에 양보할 마음이 들 리가 없죠."
거대 기업이 인재에게 후한 지원을 해 주며 중소 기업에게 내어주지 않는 거랑 같은 걸까나. 아무튼, 정령 사회도 경쟁 수준만 보면 인간 사회에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건 알겠다.
나는 그녀의 옆에서 둥실둥실 떠 다니는 엘라임에게 시선을 돌렸다.
"엘라임. 티타니아의 경우에는 어땠어?"
[계약자의 경우는 특이했다.]
청초하면서도 귀품이 느껴지는 분위기의 미녀인 엘라임이 자신의 계약자를 안타깝다는 시선을 보냈다.
[고위요정에 뛰어난 친화력을 지녔음에도 설녀의 재능이 정령들에게 미칠 정도로 강력했지. 덕분에 계약자에게 다가가려는 정령들이 없었다.]
"역대급 설녀랬으니까요…….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죠."
티타니아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계약자는 포기하지 않고 정령계를 나가지 않았다. 요정이어서 그런지 며칠이고 정령계에 죽치고는 계약을 하려는 정령이 있는 지 기다렸지. 나는 그 소문을 듣고 잠깐 들렀다 그녀를 보고는 계약할 수 있는 이가 정령계에서 오롯이 나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대로 있다간 계약자가 큰일 날 것 같았기에 계약을 했지.]
절로 상상이 된다.
혼자서 울적히 찾아올 정령을 기다리는 고독한 요정에게 다가가는 다정한 물의 정령왕. 만약 둘 다 여성이 아니라 한쪽이 남성체였다면 세기의 로맨스가 됐을 지도 모르겠다.
내 입장에서는 그러지 않아 천만다행이다.
만약 둘 중 한 명이 남성체여서 서로가 사랑에 푹 빠졌다면 티타니아는 고독으로 심마를 느끼게 됐을 일도 없을 거고 그러면 나와 만나게 되지도 않았을 테니 말이다. 좀 이기적인 발언이긴 하지만 나야 원래 가문의 일을 하고 싶지 않다고 직접 후계위를 포기하고 나왔을 정도로 쓰레기고.
"그래도 대단하군. 정령과의 계약은 재능과 궁합 그 자체가 없다면 애시당초 불가능하다고 얼핏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는 건 애시당초 티타니아가 과 계약은 가능할 정도의 재능이 있었다는 거잖은가."
[정확하다. 나의 계약자가 대단한 재능을 갖긴 했지.]
계약자 팔볼출 티를 한껏 내는 엘라임이 부끄러웠는지 귀 끝자락이 살짝 붉어진 티타니아는 헛기침을 했다.
"크흠. 이야기가 딴 데로 샜네요. 어쨌든 그런 이유로 정령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시작과 재능이라는 거예요. 저의 경우는 운이 좋았을 뿐이지, 주인님과 앨리스 씨는 아닐 가능성이 높으니 정령계로 입장하는 순간 최대한 돌아다녀보고 강해 보이는 정령을 찾아 접촉하시는 게 좋아요. 안 그랬다간 어중간하게 강한 정령과 계약을 한 채로 흐지부지하게 계약할 수도 있거든요."
티타니아는 마법사가 쓸 법한 분필을 갖고 나를 중심으로 마법진을 그린다. 나를 다 그린 티타니아는 옆에서 마찬가지로 앉아 있는 앨리스를 중심으로 똑같은 마법진을 그렸다.
정령계로 가기 위한 유체이탈의 술식인가 보다.
간파하는 스킬들로 확인해 보니 마법진이 영체를 육체에서 뽑아다 정령계로 보내 주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일단 이 마법진이 여러분의 영체를 정령계로 보낼 거예요. 하지만 발동시켜도 영체가 꿈적을 안 하는 경우가 있다면 그건 정령술에 재능이 없다는 소리니 빠르게 포기해 주세요. 정령술에 재능도 없는데 계속 억지로 발동시키려고 했다가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알겠다."
"알겠어."
나와 앨리스가 그리 대답했지만 티타니아는 영 불안하다는 표정이었다.
[걱정 마라, 계약자. 설사 저들이 한계치를 모른다 해도 여기 정령왕인 내가 있다. 만에 하나의 경우지만 일이 잘못될 경우에는 내가 간섭하도록 하지.]
"고마워요, 엘라임. 그럼 주인님. 앨리스 씨. 시작할게요."
엘라임의 확언을 받은 티타니아가 조금은 안도하는 표정을 하고는 다시 우리의 앞에 서서 마법진을 발동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예상한 대로 곧장 정신이 수마에 드는 걸 느끼며 시야가 감전됐다.
◇◇◇
"이런 슈바. 여기가 정령계라고? 불지옥이 아니라?"
일대가 불꽃으로 휩싸인 세계였다.
하늘은 시뻘겋기 그지 없었으며 지상은 시퍼런 불길로 이루어진 유황불의 강이 있었다. 얼마나 수분이 없는 건지 쩌적쩌적 갈라진 대지는 깨진 거울을 연상시켰다.
[극양지체]로 티타니아의 설녀의 냉기조차 버티는 나도 이곳의 뜨거운 열기에는 숨이 조금 가빠질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포근해져서 여기 있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이 넘쳐나는 정순한 불꽃의 기운이 아니었다면 이곳이 정령계라는 사실은 믿기 힘들었을 것이다.
'극양지체 때문에 불의 정령계에 입장한 건가? 주변 기운들이 장난 아니구만.'
눈이 발개지고 동공이 금색으로 바뀌어 [화안금정]을 개안하니 이 세계가 얼마나 맑고 순수하면서도 폭력적인 기운을 품고 있는 건지 알아볼 수 있었다.
더욱이 놀라운 건 이라던 엘라임과 비교해도 꿇리지 않는 기운의 존재가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거였다. 아마 99% 정답이겠지만 그 기운의 존재는 엘라임과 동격인 불의 정령일 것이다.
속성이 다르다지만 정령왕과 동격인 존재는 당연히 정령왕일 테고 이곳의 기운을 고려하면 자연스럽게 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만큼 스킬 갖고도 눈치 못 채면 그건 병신이지.'
그런데,
'왜 정령왕 옆에 뭐 저렇게 더러운 잡기(??)가 붙어 있는 거지?'
정령이란 본디 의사를 가진 자연의 영체다.
즉, 정순함으로 따지자면 그 어떤 이보다도 우선순위에 있는 존재란 거다. 그런데 그런 정령 중에서도 정상에 존재하는 정령왕의 곁에 탁한 기운이 들러붙어 있다? 백퍼센트 뭔가 문제가 있다는 소리였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 숨을 고르며 절도 있는 발걸음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딱 봐도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게 이동하는 데 체력을 낭비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정령왕이 있는 곳이다. 중간계랑 비교하자면 일종의 성지나 다를 바가 없는 곳인데 그곳에 잡기가 있고 그걸 정령왕이 냅둔다는 건 명백히 무슨 문제가 있다는 뜻. 최악의 경우에는 정령왕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인데 그걸 일개 인간인 내가 뭘 어쩌겠는가.
은신 계열에 관련된 스킬은 없었지만 기척을 줄이는 건 검술 스승인 앨리스에게 열심히 배웠기에 최대한 기척을 낮추고 정령왕이 있는 곳으로 조용히 이동했다.
접근하고 있음에도 딱히 반응이 없기에 내가 은밀기동에 재능이 있나 진지하게 고민할 즈음에 목적지가 육안으로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게 된 광경은 내 예상을 아득히 벗어나는 것이었다.
"아니, 시바!"
꾸물꾸물꾸물.
"세상에나 마상에나! 저게 대체 뭡니까, 알라시여!?"
……아. 맞다. 나 기독굔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