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 애정결핍 요정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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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점은 대장간을 공용으로 운영하는 소인(드워프)이었다. 판타지에 나오는 이들답게 키가 작고 맥주를 미친 듯이 좋아하지만 모든 종족 중에서도 손기술이 발군인 이들.
일개 소인이라 할지라도 인간 대장장이보다 망치질이 뛰어난 건 말해봤자 입이 아플 정도다.
소인 중에서도 대장장이 재능이 어지간히도 병신인 게 아닌 이상 인간 대장장이보다 뛰어난 이들이 그들이었기에 나는 앨리스와 티타니아를 대동한 채 무기점에서 보호구를 구경했다. 그런데 딱히 티타니아에게 맞는 사이즈가 없는 것 같았으며 사이즈 조절을 해도 불편할 것 같았기에 주인장을 불러 따로 사이즈를 알려 주문제작을 하려 했더니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아니, 그게 어떻게 사람 가슴일 수 있소? 쉬벌. 그럼 우리 마누라는 빨래판인가."
그래서 티타니아가 쓰고 있던 로브를 벗기고 펑퍼짐한 외출복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자마자,
"이런 쉬불! 우리 마누라는 빨래판이었군! 좋소. 부탁대로 저 요정 아가씨에게 활동성이 좋은 딱 맞는 경갑을 제작해주지! 이틀 뒤에 찾아오쇼!"
눈이 튀어나올 기세로 놀라더니 갑자기 열정을 불태우며 대장간으로 들어가 버렸다. 영감이 떠올랐다나.
그 후에는 별 거 없었다. 티타니아가 쓰기 좋게 미스릴이 소량이지만 함유된 세검을 하나 사서 선물해 줬을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요정은 선물을 받는 게 백 년 만이라며 기쁨이 넘쳐 흐르다 못해 눈물을 흘릴 것처럼 글썽거렸지만 간신히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 선물 사건이 일단락 되고 가게를 나가기 직전에 내 눈길을 사로잡는 장비가 있었다.
"티타니아. 스승. 잠깐 먼저 나가 봐. 나는 좀 더 둘러보다 갈게."
"도련님. 왜 그러십니까?"
"…소량이긴 해도 미스릴이 함유된 검도 있었잖아. 혹시 스승한테도 어울릴 법한 검이 없나 싶어서 좀 더 뒤져보게."
그러자 앨리스의 입가에 포근한 미소가 걸린다. 제자가 보내는 스승 사랑이 너무 갸륵해서 배가 부른 것처럼 보인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앨리스는 자신에게 줄 선물이라 그런지 쉽게 받아들였는데 티타니아는 나랑 떨어지는 행위 자체가 아쉽다는 기색이 만연했다.
"주인님. 저도 같이 가서 고르면 안 될까요?"
"내가 선물로 고르려는 건데 티타니아가 같이 있는 건 좀 그러네. 다음에 같이 고르자."
"네."
풀이 죽은 채로 앨리스를 따라 가게를 나서는 티타니아.
'스승. 미안.'
사실 검을 선물해 주고 싶다는 건 구라였다. 왜냐하면 내 눈길을 끌었던 건 명검이 아닌 방어구였으니까.
아니, 그래도 스승에게 어울린다 생각하는 방어구였으니 선물이라는 건 맞으려나.
무기점 안에서 방어구가 있는 전시열로 가니 그곳에는 마네킹이 갑옷을 입고 있었다. 상의 중 가슴의 정면만을 글고 그 외에는 브래지어처럼 끈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하의는 골반 위에 걸치는 끈 팬티나 다름없는 노출도를 자랑했다.
그래. 판타지에서나 나올 법한 비키니 아머였다.
'아. 여기가 판타지지. 그것도 게임 세계관을 기반으로 둔.'
이 세상에는 방어'력'이라는 개념이 있다. 반지든 뭐든 좋으니까 착용하면 그 방어력이 신체에도 적용되는 것으로 만약 강철신발을 신으면 그만큼의 방어력이 신체에 적용되어 몸이 금강불괴처럼 단단해질 수도 있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갑이나 중장갑을 착용하는 이유는 그만큼 내구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방어'력'이 존재하니 내구'력'도 존재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질량이 많아지니 응당 내구력도 높아져 오래 버틸 수 있는 거다. 사실상 이런 비키니 아머는 돈이 쪼들리는 여성 용병들이 돈을 아끼려고 입는 편에 가까웠다.
용병 활동을 가끔 하던 것도 비키니 아머를 입은 여성 용병으로 눈요기 하려던 목적도 있었고. 그런데 소인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이런 비키니 아머를 봤는데 어찌 그냥 넘어가겠는가.
소인(드워프)이 만든 거라면 이것저것 다 판매하는 잡화점에서 파는 것들과 같은 싸구려와는 질이 천이하게 차이가 날 텐데.
나는 비키니 아머를 챙기고서 곧장 판매대로 가 점원에게 비키니 아머를 내밀었다.
"이 비키니 아머. 설명 들을 수 있습니까?"
판매대 점원은 여성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눈빛은 날 쓰레기 보듯이 쳐다봤지만 입가만큼은 서비스 정신을 살려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역시 소인이 운영하는 가게의 점원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네, 손님. 저희 점주님이 심열을 기울여 만든 방어구로 이름은 '발키리 아머'라고 합니다. 제작하는데 들어간 재료는 오리하르콘 78%, 미스릴 15.5%, 그리고 아라크네의 실 3.5%와 오크 로드의 마석 3%입니다. 오리하르콘이 들어간 덕분에 방어력과 내구력이 전신판금갑옷 못지 않으며 마석에 새겨진 마법은 [자연수복]과 [철벽 미니스커트]로 적이라 판단하는 이에게는 무슨 짓을 해도 벗겨지지 않으며 아.주. 장시간을 애용할 수 있는 방어구랍니다."
"……."
미쳤네. 이 감상밖에 안 나온다.
대부분 고급 재료로 만든 장비에 [자연수복] 마법이 걸린 건 당연하다. 주문 제작처럼 마법을 장비에 맞춤으로 술식을 짜느라 비싼 마법이긴 하지만 설마 여기다가 [철벽 미니스커트] 마법을 인챈트했을 줄은 몰랐다.
저 마법은 보통 짧은 치마에 거는 마법으로 한 번 인챈트되면 치마가 망가지지 않는 이상 상대방이 치마 안 쪽을 훔쳐볼 수 없게 된다. 상대방의 의사가 착용자의 의사와 다르면 자동으로 반응해서 팬티를 가리게 되는 것인데 이걸 비키니 아머에 걸었다는 건 아마 상대방이 이 속옷 같은 갑주를 벗기지 못하도록 한 거리라.
비키니 아머의 방어력은 그렇다 쳐도 물리적으로 잡아서 당기면 벗겨질 수도 있으니 상대방의 의사에 결코 벗겨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건 마법이리라.
개인적으로 이 비키니 아머로 분류되는 방어구인 '발키리 아머'를 제작한 장인은 미친놈이거나 천재거나 둘 중 하나다. 원래 옛부터 천재랑 병신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도 하고.
"근데 이거 입으면 살이 안 쓸립니까?"
"걱정 마세요. 이래 보여도 방어구 안쪽은 아라크네의 실로 짠 천을 덧대서 오히려 감촉이 편안하기 그지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문제라면 타인의 시선을 과도하게 끌어서 부끄럽다는 정도일까요."
"값은 어떻게 됩니까?"
여차하면 내 용돈을 모조리 털어서라도 사겠다고 각오까지 했건만, 판매대 점원이 알려준 가격은 생각보다 훨씬 더 합리적이었다. 아니, 합리적이라기보다는 인건비도 안 나올 정도로 원가만 책정한 느낌이랄까.
예상을 벗어나는 가격이 당혹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째서 그렇게 싸죠? 거의 원가인 거 같은데."
"하아아아."
기어코 점원의 입에서 긴 한숨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죽은 눈을 하고서 판매대에 올려진 발키리 아머를 쳐다보았다.
"손님. 여성인 제가 말하기 뭐 하지만 이렇게 사이즈가 큰 데 누가 입겠나요. 이렇게 가슴이 큰 여성분이 있다고 해도 가슴 크기 때문에 검을 드는 일은 없을 테고. 설마 있다 해도 용병일 텐데 무슨 수로 이런 귀한 재료로만 만들어진 비.싼. 방어구를 구매하겠어요. 저희 점주님이 고집불통 소인(드워프)이라 남자들의 로망이라며 만들긴 했지만 정작 팔리지 않아서 몇 년 째 저희 가게 안에서 애먼 먼지만 쌓였답니다. 원가에 팔아서라도 처리하는 게 저희들의 입장에서는 훨씬 이득이에요."
"힘드셨겠네요."
"힘들었죠. 팔려고 열심히 호객행위를 해도, 설명을 매 번 앵무새처럼 반복해도 사려는 사람은 없지 먼지는 쌓이지. 참으로 난감했으니까요."
이제는 마네킹에게 입혀서 남성 손님들의 눈요기 겸 가게홍보를 위한 전시용 방어구가 되어버렸단다.
'그보다 점주가 뭘 좀 아는군.'
내 전속 대장장이로 삼고 싶을 정도로 뛰어난 소인이었다. 티타니아의 방어구를 이곳에서 주문 제작을 하기로 한 건 훌륭한 결정이었던 것 같다.
"이거 살 게요."
"…진짜요?"
"네."
점원은 못 믿는 듯한 눈빛을 지었다.
"구매한다고 한껏 기대 시켜놓고는 현금 가져온다면서 집에 가고서는 그대로 돌아오지 않으려는 건 아니죠? 그런 식으로 저를 놀리고 싶어서 하는 말이 아니죠?"
"……."
뭔가 존나 불쌍한데. 여기서 안 사겠다고 하면 반응이 어떨지 궁금했지만 그랬다간 식칼에 찔려서 N등분의 엔딩을 맞이할 것 같았기에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내가 산다니까요. 자. 방어구 값."
금화가 가득 담긴 자루를 꺼내 판매대 위에 올려놓았다. 정말로 구매하겠다는 내 진심을 느낀 건지 점원이 떨리는 손으로 묶인 자루를 풀어 그 안에 든 금화의 실체를 확인하자마자 동공이 돈($)으로 바뀌었다.
자리만 차지하던 계륵 같은 물품이 팔린다는 사실을 드디어 받아들인 것인지 눈을 감았단 뜬 점원의 동공은 더 이상 돈($)이 아니었지만 막 피어난 한 떨기의 꽃처럼 생기가 가득했으며 입가에는 피로 대신 햇빛을 맞이한 해바라기처럼 환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그렸다.
티타니아의 절반도 안 되는 크기로 추정되는 가슴이지만 빈유는 아닌 가슴 위로 손을 얌전히 얹고는 해맑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손님~♡"
"…많이 피곤했나 보네요."
"감사합니다, 손님~♡"
"……."
고장났나? 눈이 맛이 갔는데.
한 소인(드워프)의 고집으로 인해 멀쩡한 처자 하나 버린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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