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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인들이 나만 좋아한다-50화 (50/137)

〈 50화 〉 chapter 7­1. 서큐버스 김나리

* * *

50.

다음날 아침.

GGC 크루 하우스에는 구내식당이 있다.

크루원들 및 크루 직원들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곳으로, 웬만한 5성급 호텔 부럽지 않은 수준의 식당이었다.

매일 공급되는 최고급 식재료와 뛰어난 쉐프가 만들어내는 놀라운 맛은 늘 크루에 활력을 불어 넣어 준다는 평이다.

이 식당 때문에 스케줄이 따로 없는 크루원들도 매일 하우스로 와서 식사를 하곤 했다.

그 식당에 10층 사람들이 나타났다.

“어, 수장님이다.”

“뒤에는 정민씨네?”

“정민씨 친구분들 굉장히 예뻤는데, 얼굴 보고 싶다.”

사람들이 그들을 보며 저마다 수군대기 시작했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들이 다함께 이 식당에 온 건 처음이었으니까.

나연은 그동안 방콕 생활에 심취해 있었고, 케이라와 엘레나는 정체를 숨겨야 했으니까.

케이라와 엘레나는 지금도 인식방해 로브를 입고 있었다.

“다들 괜찮죠?”

“물론이죠.”

케이라가 답했다.

목소리 변조 마법은 쓰지 않고 있어서, 목소리는 케이라 원래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나왔다.

케이라, 엘레나 두 사람은 저번 사건을 계기로 크루원들에게 정체를 공개했다.

마법사라는 것도, 성기사라는 것도, 이세계에서 온 것까지 모두.

일말의 지체 없이 그들을 모두 구하기 위해 사지로 뛰어든 크루원들을 믿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미 얼굴을 보였으니 어쩔 수 없기도 했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고, 정민과 두 사람은 2시간 정도 질문 공세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게 수장이 깨어난 후, 어제 오후에 있던 일이었다.

그래도 두 사람이 로브를 입고 있는 건, 아직 크루 직원에게까지 이야기가 넘어가는 건 시기상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이세계인인 걸 외모로는 알 수 없겠지만, 두 사람의 외모는 그 자체로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나연이는?”

“내가 얘야? 괜찮지. 이제 방에만 안 있을 테니까, 그만 좀 하지?”

그러나 나연이의 표정이 썩 좋지는 않았다.

원래 이 자리는 나리, 나연, 창식의 자리였기 때문이다.

세 사람은 주로 아침을 같이 먹었는데, 나연이 방 밖을 나오지 않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이 자리에 나온 건 나연으로서는 나름 큰 결심이었다.

‘다 정민씨 덕분이야.’

나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정민이 딱히 무언가를 하진 않았을지 모르지만,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게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거기에 케이라와 엘레나도 결국 정민 덕분에 이곳에 있는 거니까.

결과적으로는 정민이 덕분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럼 맛있게 먹을까요?”

“네.”

아침은 뷔페식이었다.

다들 저마다 먹을 걸 퍼왔고, 한 자리에 모여 적당한 대화와 함께 식사를 했다.

크루원이나 직원의 시선이 집중되는 건 어쩔 수 없었는데, 다들 의연히 대처했다.

나리는 이런 일에 어색할 것 같았던 정민이 아무렇지 않게 있는 데 조금 놀랐다.

조금 걱정했었는데, 헛된 걱정이었다.

역시나 그녀에게 늘 상상 이상의 모습만 보여주는 사람다웠다.

“다 먹었으면, 커피도 한 잔 할래요?”

“좋아요!”

커피는 엘레나가 제일 좋아했다.

맥심이 그녀의 1번인 것도 놀랍지만, 다른 단 음료들도 매우 좋아했다.

성기사가 주는 이미지와는 맞지 않았지만.

‘어젯밤에 비하면 안 맞는 것도 아닌가?’

나리는 어젯밤의 충격 선언을 떠올렸다.

세 사람이 함께라니.

자신이 들은 게 아직도 믿기지가 않았다.

“아, 저는 잠깐 화장실에.”

“저도요.”

정민과 케이라가 빠져나갔지만, 나리는 전혀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밥 먹고 화장실 가는 건 일반적인 일이다.

커피숍은 바로 옆에 있으니 찾아오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자, 수장 이거 들어요.”

하지만 케이라가 컵에 가득 담긴 하얀 액체를 들이밀었을 때, 그녀는 두 사람이 뭘 하고 온 건지 깨달았다.

‘아니, 아침부터 뭐하고 온 거야? 그게 그렇게 하고 싶은 거야? 그리고 이건 왜 주는 건데?’

나리가 의문을 담아 케이라를 봤지만, 케이라는 미동도 하지 않고 팔을 내밀고 있었다.

‘지금 먹으라고? 여기서? 안 돼, 나연이도 보는데 지금 이게 무슨...’

나리가 반항의 의미를 담아 계속 눈빛을 보내자, 머릿속에 케이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제 제가 드릴 때마다 드신다고 하셨잖아요? 그리고 밤에 정민이 방에 들락날락하는 것도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이런 시간에 드시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지만, 솔직히 다른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닌 듯했다.

“어서요. 수장.”

그러나 케이라는 이미 컵을 들고 있었고, 주변, 그러니까 나연의 시선이 이상해지기 시작했으므로 나리는 컵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네? 아... 네, 고마워요.”

“언니, 그건 뭐야?”

“응? 이거? 아...”

나연의 물음에 나리는 뭐라고 답해야할지 당황했다.

갑자기 일어난 일에 머리가 하얘졌기 때문이다.

“수장의 육체를 안정화시키기 위해서 제가 만든 특별한 음료예요. 신체의 생명활동을 높여서 새로운 힘에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응, 그래, 그거야 나연아.”

“우와, 대박, 케이라는 못하는 게 없네?”

“과찬이에요. 저도 못하는 게 많답니다.”

케이라의 시선이 정민을 살짝 향했다.

나리는 그제야 정민이 자신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있는 걸 발견했다.

정민의 귀가 빨갛다.

그 모습을 보자, 나리의 손도 덜덜 떨렸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지금 이게...’

“이거 나도 먹어도 돼? 몸에 좋아 보이는데? 냄새는 좀 그렇지만.”

나연은 어느새 나리 옆에 다가와 컵에 코를 대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안 돼!”

나리는 황급히 놀라 몸을 돌렸다.

“...언니?”

“아니, 안 돼. 이건 케이라가 내 몸 상태를 조사해서 따로 만들어 준 거야. 나연이 네가 먹으면 탈 날 거야.”

“그래?”

“네, 맞아요. 이건 제가 특별히 제조한 거라 나연 언니한테는 안 맞을 거예요. 언니한테는 나중에 따로 또 만들어 줄게요. 알겠죠?”

“진짜? 만들어 주는 거지?”

‘...뭘 만들어 준다는 거야? 설마?’

나리의 눈이 자연스럽게 정민에게로 향했다.

또 정민의 정액을 뽑아서 오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정민과 눈이 맞았고, 부끄러움에 고개를 팍 숙이고 말았다.

얼굴이 화끈 거렸다.

“...언니? 얼굴이 빨개? 어디 아파?”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난 괜찮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부끄러움 때문에 죽을 지경이었다.

나리는 그냥 빨리 마시기로 했다.

먹는 거야 별 문제없으니까.

이미 어제 다 확인한 맛이다.

‘그래, 또 먹고 싶은 맛이었지.’

어제의 맛이 떠오르자, 나리는 지체없이 종이컵을 기울였다.

꿀렁꿀렁.

목넘김이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만 지나자, 어제의 그 느낌이 되살아났다.

화아악.

온 몸이 따뜻해지면서, 기운이 샘솟는 느낌.

그 덕인지, 나리의 얼굴이 다른 의미로 붉어졌다.

“와... 언니, 그게 그렇게 맛있어?”

“맛있... 응? 아니야, 써. 맛없어.”

“거짓말, 얼굴은 그게 아닌데?”

“내 얼굴이 왜?”

그 질문에는 케이라가 답했다.

케이라의 얼굴에는 어제와 같은 악마의 미소가 걸려 있었다.

“빨개요. 맛있게 드셨다니 제가 다 기분이 좋네요. 정민이도 그렇지?”

“어, 그러게...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니 제가 다 건강해지네요.”

나리는 정민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나 싶었다.

“아, 저는 잠깐만 화장실에...”

정민이 일어나더니 후다닥 커피숍을 나갔다.

나리는 정민의 자세가 엉거주춤한 걸 느꼈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는 몰랐다.

“쟤는 또 왜 저래? 아무튼 언니, 그만큼 맛있다는 거지?”

“아, 아니라니까. 맛은 없어.”

“치이, 또 거짓말 한다. 좋아, 케이라. 나도 당장 만들어 줘. 먹어보고 싶어.”

“그럼 잠깐만 기다리실래요? 저도 잠깐 어디...”

케이라가 커피숍을 나가려고 하자, 그제야 정민의 자세가 뭔지 깨달았다.

나리가 황급히 케이라를 붙잡았다.

“안 돼!”

“...왜?”

“아, 케이라는 나랑 중요한 할 이야기가 있어서... 나연이는 나중에, 나중에 괜찮을까?

“뭐... 그렇다면.”

나리는 재빠릴 이 자리를, 케이라와 같이 떠야겠다고 생각했다.

더 있으면 이상해질 것 같았다.

“그럼, 잠깐 가실까요?”

“네, 그래요, 수장.”

나리는 어색하게 웃었고, 케이라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나리는 이미 자기가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걸 깨달았다.

+++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비슷한 일들이 반복됐다.

한 번은 식당에서, 한 번은 집무실에서.

케이라는 꼭 사람들이 있을 때만 찾아와서 컵을 내밀었는데, 그 옆에는 꼭 붉은 얼굴을 한 정민이 있었다.

나리는 꼬박꼬박 잘 받아먹었지만, 먹을 때마다 부끄러움에 고생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정민만 없었다면 괜찮았겠지만, 정민이 없을 수도 없는 일이라 그게 제일 곤혹이었다.

또 한 번은 훈련실에서였다.

박소연이란 인턴과 전투 훈련을 한다고 해서 찾아간 자리에서, 케이라는 어김없이 흰 액체가 담긴 컵을 내밀었다.

“아, 언니. 그건...!”

“나연 언니, 저게 뭔데요?”

“몸에 좋은 음료수. 케이라가 만드는 거라던데, 나도 아직 못 먹어봤어. 근데 진짜 맛있대. 잘 봐봐.”

박소연와 나연의 대화를 들으면서도 나리는 종이컵을 놓을 수가 없었다.

케이라의 악마적인 미소 때문이 아니었다.

어느새 이 정액을 마시고 싶은 자신이 있었다.

‘맛있지, 이것보다 맛있는 게 또 있을까?’

인턴과 나연이 보는 앞에서 정액을 마신다.

다른 사람에게 치부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굉장히 부끄럽기도, 치욕스럽기도 했지만, 저들은 그 사실을 모르기에 스릴이 있기도 했다.

‘스릴? 내가 그런 걸 느낀다고?’

나리는 놀라는 와중에도 자연스럽게 컵을 기울여 정액을 삼켰다.

꿀렁꿀렁.

화아악.

나리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지어졌다.

누가 봐도 알 듯한 표정으로, 처음 보는 소연도 궁금함을 여길 정도였다.

“...우와, 언니, 나도 나중에 꼭 만들어 주세요.”

“너는 안 돼.”

“네? 왜요?”

“그런 게 있어.”

나리는 몸속에 퍼져나가는 온기를 느끼며, 온기의 주인을 찾았다.

그는 훈련실 한 쪽에서 나리 쪽을 돌아보지 않으려고 애쓰며 엘레나와 검을 겨루고 있었다.

‘...부족해. 직접 받을 수 있...’

나리는 그런 생각을 한 것에 스스로 놀라 두 손으로 자기 뺨을 때렸다.

쫙!

“언니? 갑자기 무슨...”

“괜찮아, 괜찮아. 다들 훈련 열심히 하세요.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나리는 황급히 훈련실을 떠났다.

붉어진 얼굴은 뺨을 때렸기 때문이라고 합리화하면서.

+++

그렇게 일주일.

나리는 점점 변해갔다.

첫 날에는 아침에만 정액을 마셨지만, 5일 째에는 하루에 두 번 마시기로 케이라에게 애원했고, 6일 째에는 하루 세 번 마시는 걸로 정민과 담판을 지었다.

혼자 급발진하고 혼자 부끄러워한 과거는 지금 생각해도 쥐구멍에 숨고 싶을 정도였지만, 나리는 그보다 더 큰 수치를 참아야 할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게 바로 오늘이었다.

“후우... 후우...”

나리는 정민의 방 앞에 서 있었다.

다음에 할 일을 생각하니, 심장이 터질 듯 두근거렸다.

자신에게 이런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이런 식으로 올 거라고는 더더욱.

그러나 그녀는 멈출 수 없었다.

몸이, 마음이, 정액을 원하고 있다.

똑똑.

떨리는 손으로 문을 두드렸지만, 안에서 반응은 없었다.

‘...설마, 벌써 자나?’

시간은 아직 10시.

밤이었지만, 자기에는 이르다.

나리가 한 번 더 문을 두드리려는데,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얼굴을 내밀었다.

“...케이라?”

목욕 가운 한 장만 걸치고 있는 케이라였다.

“어, 수장? 어쩐 일이세요?”

“그, 그게...”

“설마, 또요?”

나리는 케이라의 음흉한 미소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일 뻔하다가, 겨우 버텨냈다.

이다음 말은 케이라가 아니라, 정민에게 먼저 해야만 했다.

“아니요. 그게 아니라... 아니 맞지만, 일단 정민씨랑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요.”

“으음... 잠깐 들어올래요?”

나리는 정민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정민도 케이라와 마찬가지로 가운 한 장만 걸치고 있었다.

방 안의 열기와 가득한 밤꽃 향기가 두 사람이 조금 전까지 무얼 하고 있었는지 말해줬다.

“크흠, 수장님, 어쩐 일이세요?”

“저...”

나리는 수십 번도 더 연습한 말을 꺼내려고 했지만, 막상 정민 앞에 서니까 말이 안 나왔다.

크루를 진두지휘하는 카리스마는 어디로 가고, 고개 숙인 여자만 있었다.

‘이게 그들의 기분인가?’

나리는 학창 시절에 수도 없이 정도로 고백을 받아봤다.

그녀 앞에서 떨고 있던 남자들에게, 나리는 단칼에 거절을 말했었다.

그때는 왜 떨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머리로는 알았지만, 가슴으로 공감하진 못했다.

그랬다면 그렇게 단칼에 거절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그녀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처럼, 두려워하고 있다면.

거절당할까 두려워 말을 못 꺼낼 정도로 무섭다면.

“저기...”

나리는 용기 반, 욕심 반으로 고개를 들었다.

“네, 말씀하세요.”

정민의 온화한 미소가 보였다.

지난주에는 부처 같다고 느낀 미소.

그래서 나리는 더 무서웠다.

그는 자신을 용서할 순 있지만, 사랑하기엔 힘드니까.

‘아니, 어차피 사랑까지는 나도 안 바래. 나는 욕구만 채우면 돼. 이 갈증만 어떻게 할 수 있다면... 악마라도 될 거야.’

“정민씨, 제게 정액을 직접 주시면 안 될까요.”

나리는 자신의 얼굴이 어느 때보다 더 빨개진 걸 알았다.

마주보고 있는 정민의 눈을 피하고 싶었다.

지금이라도 실수라고 외치며 방을 나서고 싶었다.

그래도 꿋꿋이 참았다.

그녀는 대장부.

원하는 것을 위해서 수치를 견딜 수 있는 사람이다.

“그건 혹시... 섹스를 하자는 말씀이신가요?”

“네. 이젠 정액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몸이.... 아니지, 아무튼, 정기가 부족... 이것도 아니지, 저는...”

사실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정액이 필요하다고 했으니, 하고 싶은 말은 다 한 거 같은데.

그러다 문득, 나리는 답을 발견했다.

“...정민씨의 정액이 필요합니다. 다른 남자의 정액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요. 그러니까, 이번에도 조금만 나누어 주실 수 있나요?”

아...

나리는 꽉 막힌 게 뚫리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도 몰랐던 감정의 정체가 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아직은 작지만, 분명 이건, ‘사랑’에 가까웠다.

그래서 동시도 슬퍼졌다.

정민에게는 두 사람이 있고, 자신에게 나눠줄 사랑은 없어 보였으니까.

그래도 이번엔 밖으로 감정을 표출하지는 않았다.

말하기 전과 달리, 말하고 나니 표정을 감추는 게 가능했다.

나리는 편안한 미소로 얼굴을 가린 채, 정민의 답을 기다렸다.

“...”

답을 기다리는 시간이 천년만년인 건 똑같았다.

머릿속으로는 5초도 지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지만, 무슨 1시간은 지난 것 같았다.

영겁의 세월 속에서 정민이 드디어 말을 완성했다.

“네, 좋아요.”

그 순간의 정민의 입술이 얼마나 섹시해 보였는지.

나리는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걸어 나가 키스를 하려고 했다.

누군가가 섹시해 보인 적도, 누군가의 입술에 키스를 하고 싶은 것도, 그녀 인생에서 처음이었다.

모든 걱정도, 슬픔도, 심지어는 기쁨도 사라지고 오롯이 정민의 입술만 보였다.

그렇게 입술과 입술이 닿기 직전, 그녀를 가로 막는 손이 있었다.

“어디를... 순서를 지키세요, 수장.”

“...읍? 읍?”

케이라였다.

나리는 방에 들어섰을 때부터 긴장해서 케이라의 존재도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녀는 웃겨 죽겠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케이라가 나리의 입을 막고서는 방 밖으로 밀어냈다.

“자자, 오늘은 저예요. 이따가 시간이 남으면 정민이 상대해 줄 수도 있으니까, 기다려 보시든지요.”

쾅.

“...어?”

나리는 멍하니 닫힌 방문을 바라봐야만 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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