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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플쓰는 밤의 황제-6화 (6/270)

〈 6화 〉 6화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보는 망상이 있다.

‘내가 만약 존잘남이 된다면 ~ 할 것이다.’

보통 이런 형태로 전개되는 망상인데, 대게는 저 ‘~’안에 꼭 여자에 관련된 내용이 들어간다.

예를 들어, 지나가다 맘에 드는 여자에게 다가가서 자신 있게 번호를 딴 다던지. 클럽 같은 곳에 가서 압도적인 외모로 뭇 여성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다든지.

나도 남자로 태어난지라 종종 그런 망상을 하곤 했는데, 내 망상의 내용은 조금 특이했다.

“후우…”

나는 지금 청담동에 와있다. 그것도 엄청나게 유명한 미용실 앞에.

이런 곳에 오는 건 처음이었다. 평생을 동네 미용실만 다녔었다. 들어가면 가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스포츠나 상고 스타일로 시원하게 머리를 밀어주는 그런 곳들.

나는 숨을 크게 한번 훅 뱉고, 양손을 바지 주머니 속에 넣은 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미용실 안으로 들어갔다.

연예인들도 많이 온다더니 오죽 잘 나가면 입구 계단이 대리석이었다. 웅장하고 의리의리한 분위기에 압도될 지경이었지만 참아낸다.

나는 이제 흔하디흔한 겜창 망생이 아니었다.

“어서오세요~ 예약하셨나요?”

“네. 오후 1시. 김민준이요.”

큰 문을 열고 들어가서 데스크에 이름을 말해주니까, 직원이 명부를 확인하더니 나를 자리로 안내했다.

“정말 죄송하지만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디자이너 선생님 곧 오실 거에요. 오늘 점심이 조금 늦어서.”

‘네.”

나는 미용 의자에 앉으며 짧게 대답했다.

길게 대답하면 이런 곳에 와보는 게 처음이라는 걸 들킬까 봐 짧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걸 들킨다고 해도 뭐라 하는 사람 따위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이건 그냥 피해망상 같은 거였다. 외모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나는 이런 고급 미용실이 너무나 무서웠다.

-손님. 그런 박살 난 와꾸를 가진 주제에 대체 왜 이런 고오오급 미용실을 오셨죠? 아무리 머리가 예뻐도 얼굴이 못생기면 꾸미는 의미가 하나도 없는데. 큭.

실제로 들은 말은 아니었다. 근데 듣게 될까봐 겁나서 이런 곳에는 절대 발길을 주지 않았다.

외모 콤플렉스라고 해도 좋았고, ‘꾸미지 않음’에 대한 관성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 모든 것들이 그저 희망의 끈을 놓치기 싫은 발버둥이었다.

-꾸미지 않아서 이런 거지, 나도 꾸미면 꽤 괜찮지 않을까?

라는 희망 가득한 생각은, 어디까지나 꾸미지 않을 때까지만 지속된다.

그러니까 정말로 꾸며버리기 시작하면 희망이 아닌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꾸몄는데도 별로면 진짜 별로인 거니까.

그래서 나는 차라리 꾸미지 않음을 유지한 채, 꾸미면 괜찮을 거라는 희망의 끈을 잡고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그 끈을 놓아버린 채 현실과 마주할 생각이었다. 외모 강화 덕분에 내 현실이 많이 바뀌었으니까.

“기다리시는 동안 음료라도 드릴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아, 예.”

데스크 직원이 뻘쭘하게 자리로 돌아갔다. 음료를 안 먹는 건 다이어트 때문이었지만 굳이 설명하지는 않았다.

기껏 외모 강화에 돈을 꼴아박아도 살 때문에 제대로 효과를 못 볼까 봐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그렇게 살집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운동을 하도 안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만 하다 보니 뱃살은 좀 있었다. 얼굴에 젖살도 좀 있었고.

미희 누나와 섹스할 때 조금씩 출렁이는 뱃살이 신경 쓰이기도 해서, 다이어트의 목표는 뱃살 제거와 이목구비가 샤프해질 때까지 얼굴 살을 빼는 것이었다.

“이런! 많이 기다리셨죠~?”

“아니요. 조금 전에 왔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내 담당 디자이너로 보이는 중년 여자가 호들갑을 떨며 나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능숙한 발짓으로 미용 의자의 높이를 조정하고는 나에게 물었다.

“머리는 감고 오신 것 같고…컷트로 예약하셨던데, 원하시는 스타일 있나요?”

“아…”

나는 이때다 하고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사진첩에 저장해 놓은 잘생기기로 유명한 남자 배우의 프로필 사진을 디자이너에게 보여주었다.

“이 사진이랑 똑같이 해주세요.”

“아~ 남강준 머리요? 네, 해드릴게요.”

디자이너는 평소에도 많이 들어본 요구인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거렸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나를 묶고 있던 무언가가 툭 하고 잘려나가는 것을 느꼈다.

다시 남자의 망상 얘기로 돌아와 보자면, 나의 오랜 망상은 바로 이거였다. 이 하찮은 요구.

한치의 부끄러움도 없이 당당하게, 고급 미용실에 와서 남자 연예인 사진을 내밀고 똑같이 해달라고 말하는 것.

잘 생겨야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나는 그래야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에겐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 망상이 현실이 되었지만 그리 특별한 감흥은 없었다. 그저 이런 것도 하나 못하고 움츠려 있던 내 자신이 한심했고 허무했다.

어쩌면 나는, 스스로 붙잡고 있다고 생각했던 끈에 묶여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막상 해보면 아무것도 아닌데…나는 왜 이렇게 쫄아있었을까.’

섹스도 그렇고 돈 쓰는 것도 그렇고, 막상 해보면 진짜 아무것도 아니었다.

섹스는 섹스고 돈은 돈일 뿐.

미용실에서 남자 연예인 사진 내밀기도 마찬가지였다.

하고 나니까 이런 걸 왜 그리 어려워하고 망상까지 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이래서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는 거겠지.’

나는 문뜩 떠오른 그 말을 조금 곱씹어 봤다.

잘 먹는 놈 못 먹는 놈 굳이 골라 따져보자면, 나는 지금까지 먹어볼 용기도 못 내본 가장 멍청한 놈에 속했다. 정말 무척이나 한심했다. 그리고 이제는 진짜로 좀 바뀌어야겠다는 의지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래. 이제부턴 다 해보자. 시발, 쫄지말고 꼴리는대로. 꼴리는대로 다 해보는 거야.’

사각. 사각.

가위질에 사각사각 잘려나가는 더벅머리와 함께, 내 안에서 무엇인가가 또 바뀌어 간다.

***

-어머!! 손님, 머리 정말 너무 잘 어울리시네요! 배우 하셔도 되겠어요!!

나는 커트비 6만원을 내고 미용실에서 나오면서, 디자이너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을 떠올렸다.

안다. 립 서비스인거.

하지만 립 서비스도 다 같은 립 서비스는 아니었다. 마치 칵테일처럼, 서비스와 진심이 몇 대 몇의 비율로 섞였느냐에 따라서 립 서비스는 듣는 맛이 확 달라졌다.

그리고 디자이너 선생님의 립 서비스는 진심이 꽤 진하게 섞여 있었는지 듣기에 썩 달콤했다.

‘비율이 5대5 정도는 돼 보이던데…하긴, 거울 보고 나도 좀 놀랐으니까.’

프로 디자이너의 도움을 받아 앞머리가 눈꼬리까지 내려왔던 지저분한 더벅머리를 잘라내고 남자 배우처럼 머리를 만들어 놓으니까, 내가 봐도 내가 어색했다.

외모 강화 덕분에 이미 어색했는데, 머리도 멋지게 만져 놓으니까 두 배로 더 어색한 느낌. 물론, 좋은 쪽으로.

그렇다고 배우를 해도 되겠다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는 건 아니었다.

이천만 원이나 질렀음에도 아직은 그냥 괜찮게 생긴 훈남 정도였고, 키도 173cm밖에 안 되는 쪼다였다.

173cm면 평균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평균을 무척이나 하찮게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수능으로 치면 4~5등급이었고, 월급으로 치면 월 200 조금 넘는 정도?

수능 4~5등급이나 월 200도 존나 힘들게 맞추는 건데, 그 정도면 분명 평균은 되는 건데, 우리나라에서 사람 대우를 받으려면 훨씬 더 잘하고 잘 벌어야만 했다. 물론, 키도 훨씬 더 커야 했고.

아니꼽지만 그렇다고 광화문으로 뛰쳐나가서 평균도 존중해달라며 시위를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나도 할 말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긴…레오레로 따지면 평균 티어가 실버나 골드인데. 나도 실버,골드 티어는 사람 취급 안 하니까…나 역시도 똑같구나. 인간이란 어쩌면 다 이런 것일까?’

나는 뼈아픈 자아 성찰을 하면서, 택시를 타고 미용실에 오는 길에 봐놨던 카페로 들어갔다.

겜창답게 원래는 카페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지만, 오늘은 좀 특별했다. 머리가 잘 되니까 자신감과 감수성이 폭발하고 있었다.

특별한 약속 없이 그냥 일상인 듯 고급스러운 청담동 카페에 홀로 앉아서, 유유히 에스프레소를 즐기는 그런 분위기. 그런 분위기를 한 번 향유해보고 싶었다.

김치남, 된장남이라 해도 할 말은 없었지만, 원래 겜창남이었으니 김치남이나 된장남이 된다고 한들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진짜 조오온나 고급스럽네.’

나는 카페로 들어와서 내부 인테리어를 구경하며 천천히 카운터로 향했다.

요즘은 아웃스타 감성이다 뭐다 해서 독특하고 아기자기한 느낌의 카페가 유행이라고 들었었는데, 이 카페는 그런 것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아기 자기는 커녕 존나게 크고 넓고 럭셔리했다. 카페 정문부터 심상치 않다 했더니, 실내에 들어온 그 순간부터는 아예 부내가 진동하고 있었다.

전체적인 컨셉은 화이트엔 골드.

의자는 화이트 톤 가죽 의자였고 테이블도 새하얀 대리석 테이블이었다. 거기에 테이블의 마감이나 의자 다리에 전부 도금을 해놨고, 층고가 매우 높은 천장 곳곳에는 크리스탈 샹들리에가 아낌없이 붙어 있었다.

대리석같은 느낌을 주는 화이트 칼라 외장재에 샹들리에에서 나온 영롱한 불빛이 반사되어서 조명의 느낌이 어마어마하게 환상적이었다.

안 가봐서 확신할 순 없었지만, 마치 서양식 궁전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호우.'

음, 역시 인테리어에 존나게 신경 쓴 카페답게 매장 직원들도 엄청나게 예뻤다.

카운터에는 유니폼으로 보이는 화이트톤 블라우스에 검은색 치마를 단정하게 차려입은 두 명의 여자 직원들이 있었는데, 왼쪽은 좀 도도하고 까칠해 보이는 고양이 상이었고, 오른쪽은 보고만 있어도 쓰다듬어 주고 싶은 강아지 상이었다.

내 원래 취향에는 왼쪽 직원이 더 잘 맞았지만, 왜인지 모르게 눈길은 자꾸 오른쪽으로 쏠렸다.

눈썹은 진한데 눈꼬리가 많이 처져 있었고, 전체적인 이목구비가 둥글둥글하니 다시 봐도 매우 귀여웠다.

얼굴 전체가 귀여움 포인트였지만 그중에서도 심장을 쿵 하게 만드는 크리티컬 포인트라고 한다면,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촉촉을 넘어 축축한 눈망울과 앙증맞게 앙다문 입술 끝에 걸려있는 살짝 올라간 입꼬리였다.

귀엽다. 진짜 너무 귀엽다. 집으로 데려가서 키우고 싶은데…안 되겠지?

“어서오세요~ 샤넬 르 벨라 입니다.”

“어…어서오세요오. 샤넬 르……입니다아…”

도저히 영문을 모르겠는 상황이 펼쳐져 버리니까, 자연스럽게 이어지던 내 생각의 흐름이 툭.하고 끊겼다.

왼쪽 고양이를 따라서 오른쪽 강아지가 나에게 인사를 건네왔는데, 인사가 영 엉망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눈을 크게 뜨고 노골적으로 오른쪽 강아지를 쳐다봤다. 거 몇 자나 된다고 인사도 제대로 못 하지?

혹시 진짜 강아지라서 사람 말이 어려운 건가? 그렇다기엔 옆에 있는 고양이는 말 잘하던데…

“죄송합니다. 손님. 이 직원이 오늘 처음 일하는 거라. 미숙한 점이 많습니다.”

“죄…죄송합니다아…”

“아뇨.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너무 귀여우셔서 쳐다본 거에요.”

이런. 강아지가 인사 좀 못한 걸 가지고 무슨 대역죄인 마냥 고개를 푹 숙이고 있길래 위로를 해준다는 게, 멘트가 치즈 케잌 마냥 아주 느끼하게 나가 버렸다. 미희 누나에게 스스럼없이 칭찬하는 게 버릇이 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만….

“히끅…감…감사…아니…죄송합니다아…”

뭐 그래도 효과는 괜찮았는지 강아지가 쭈뼛 쭈뼛대면서 고개를 조금씩 들더니,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며 빨개진 볼로 인사를 건네왔다.

눈에는 눈물이 조금 고여 있었고, 슬쩍 보이는 콧구멍은 아기자기한 하트모양이었다. 어쩜 콧구멍도 귀엽구나.

그래. 괜찮다. 이런 살인적인 귀여움이라면 설사 내 얼굴에 커피를 뿌려도 참아줄 수 있었다. 물론, 참아주는 대가로 내가 사료는 잘 챙겨줄 터이니 우리 집에 와서 살아보지 않겠느냐고 넌지시 협박은 해보겠지만.

“죄송 안 하셔도 돼요. 처음에 다 그렇죠, 뭐. 혹시 주문은 받아주실 수 있나요?”

“네…? 네. 네에. 주문…주문하셔도 돼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만 주세요. 카드 결제 할게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그리고…카드 결제…”

띡-.... 띡-....

내가 주문을 한다니까 후다닥 포스기 앞에 선 강아지가, 아주 신중하게 포스기를 누르기 시작했다.

주문받기 편하라고 따로 추가도 안 하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한 잔 시켰는데, 뭐가 그리 신중한지 이미 4번 틀려버린 공인인증서 비밀번호를 누르는 사람처럼, 강아지는 지금 자신이 뭘 누르고 있는지 중얼중얼 중계까지 해대며 아주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였다.

어떻게 어떻게 하더니 제대로 되긴 됐는지, 강아지의 표정이 확 밝아지는 게 보인다.

꼬리와 귀가 미쳐 달려있지 않은 게 무척이나 아쉽구나. 달려 있었다면 분명 기뻐서 꼬리를 바짝 세우고 꼬리를 빙글빙글 돌려댔을 텐데.

“그…카…카드…”

“네. 여기 꽂으면 되나요?”

“…제가…꽂아드려도…되는데…”

“그럼 꽂아주세요.”

강아지는 나에게 당당하게 카드를 요구했고, 나는 강아지에게 카드를 건넸다. 강아지는 양손으로 공손하게 카드를 받아들더니 리더기에 카드를 쓕하고 꽂았다. 결제가 끝나고 쭈르륵 나오는 영수증과 함께 나에게 카드를 돌려주는 강아지의 손 동작에는 조금이지만 자신감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테이블에 앉아 계시면…음료 가져다 드리겠습니다아…”

“네. 고마워요. 그리고 첫날인데도 잘하시네요. 금방 익숙해지시겠어요.”

나는 조금 의도적으로 칭찬을 건넸다. 내가 강아지에게 ‘귀엽다’라고 말한 순간부터 옆에 있는 고양이의 표정이 정말 무척이나 안 좋았는데, 그걸 보고 강아지와 고양이가 서로 어떤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지 대충은 알 수 있었다.

'잘하면 금방 꼬실 수 있겠는데?'

그래, 이건 나에게 꽤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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