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플쓰는 밤의 황제-1화 (1/270)

〈 1화 〉 1화

나는 침대 위에 누웠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손발이 달달 떨렸다.

극도로 피곤해서 금방이라도 눈이 감길 것 같았지만, 억지로 참아내고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확인한다.

“새벽 5시…”

새벽이라고 하기에도 조금 뭐한, 이른 아침이라고 불러도 될만한 시간이었다.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이라면 슬슬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보통 이 시간대에 잠에 들어서 점심 늦게 일어난다. 여지없이 매일을 그렇게 살아간다.

극심한 올빼미족이라거나, 특별한 직업을 갖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재수생이었고, 답도 없는 겜창이었다.

공부도 뒤지게 못 하는 재수생 주제에, 하루종일 게임만 하는 진성 겜창.

지금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도 단순히 게임을 너무 많이 해서 뇌가 비명을 질러 대기 때문이었다.

나도 이렇게 살다간 진짜 인생 좆 박게 된다는 걸 알지만, 뭐 어쩌겠는가 내가 이렇게 태어난 것을.

밝은 미래를 위한 인고의 시간보다, 당장 게임을 하며 느껴지는 쾌감이 훨씬 더 짜릿했다.

공부와는 달리 게임은 하면 하는 만큼 즉각적이고 확실한 보상이 돌아왔다. 그 보상은 뇌 속에서 도파민을 마구 분출시키고, 내 뇌는 이미 게임이 주는 강렬한 도파민에 절여진 지 오래였다.

그래, 공부 같은 지루한 것에 관심을 줄 만큼 내 뇌는 순하지 못했다.  애초에 취향이 달랐다. 진한 맛, 순한 맛 보다, 나는 매운 맛이 좋았다. 라면도 매운 맛만 먹는다.

그러니까 이건 어쩌면 유전자, 유전자의 탓이다.

도파민에 과다 반응하는 유전자를 타고 태어났기에, 나는 유전자 단위로 정해진 암묵적이고 절대적인 명령에 따라서 겜창의 인생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병신.”

나는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을 느끼면서 전적검색 사이트에 들어갔다.

내가 하는 게임은 ‘레전드 오브 레전드’, 줄여서 ‘레오레’.

이것저것 다 합쳐서 한판 돌리는데 50분 정도는 걸리는 게임이었다.

전적검색 사이트에서 확인해 보니 오늘 하루에만 20판을 넘게 돌렸다.

대체 몇 시간을 한 건지, 분 단위를 시간 단위로 바꿔서 계산해보다가 관뒀다.

이미 쓰레기통에 집어넣은 시간을 계산해봤자 머리만 아프고, 인생만 더 서글플 뿐이었다.

“……”

나도 이런 내가 불안하다.

이렇게 살다간 인생 좆 박게 된다는 걸 알고 있다고 해서, 정말로 인생 좆 박고 싶은 건 아니었다.

다만 진성 겜창으로서, 그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오는 불안감을 또다시 게임으로 풀어낼 뿐이었다.

게임을 할수록 더 불안해지지만, 게임을 하면서 얻는 강렬한 쾌감으로 불안감을 애써 지워낸다.

완벽한 악순환의 고리. 하루살이보다 못한 삶.

뒷맛이 하도 찝찝해서 이제는 좀 벗어나 보고 싶기도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내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

‘내일은 공부를…할 수 있을까? 큭. 어림도 없지.’

내일은 각 잡고 공부를 좀 해볼까 생각하다가, 이내 접어버렸다.

다짐하고 각오했던 것을 모두 지킬 수 있었더라면, 난 이미 서울대에 들어가서 떵떵거리며 살고 있겠지.

그래도 실망하지 않는다. 아니, 실망하기에도 지쳤다.

"……"

뭐, 인간이라는 게 원래 그런 것 아니겠는가?

아침에 각오하고 저녁에 좌절하는….

나는 그게 조금 더 빨라서, 침대에 누워 각오했다가 잠들기 전에 좌절할 뿐이었다.

위이이잉-.

“아, 뭐야.”

잠들기 직전에 울린 핸드폰 진동.

나는 베갯머리에 놔두었던 핸드폰을 집어 들고, 화면을 켜서 왜 진동이 울렸는지 확인했다.

-어플 ‘세상은 돈과 여자’가 설치되었습니다.

‘뭐지? 이런 어플 설치한 적 없는데…?’

듣도 보도 못한 어플이 설치됐다는 알림이 하나 떠 있었다.

‘그건 그렇고 어플 이름 지리네. 세상은 돈과 여자?’

속으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가.

여자와 남자가 나뉘어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씩 싸워대는 성별 전쟁의 시대 아니겠는가.

그런 전쟁터에서 대놓고 이런 꼴마초스러운 이름으로 어그로를 끄는 어플이 있다니.

이런 이름을 지은 앱 개발자나, 이런 이름을 반려하지 않고 등록해준 앱 스토어 담당자나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했다.

그래도 흥미가 동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며칠 뒤면 페미니스트들에게 고소 먹고 앱이 사라질 텐데, 그전에 무슨 앱인지는 확인해 보고 싶었다.

나는 어플 아이콘을 눌러서 어플을 실행시켰다.

띡-.

-하이, 좆망생아.

-이제는 네 인생을 좀 바꿔보고 싶지 않니?

-좀 도와줄까?

[예/아니요]

검은 화면에 하얀 문체로 주르륵 떠오른 메시지들.

떠오른 메시지를 읽다가 속으로 뜨끔할 수밖에 없었다.

좆망생.

좆망생만큼 내 인생을 잘 표현해주는 단어도 드물었다.

‘시발…어떻게 알았지? 심상치 않은 새끼네…’

나는 괜히 방안에 카메라가 설치된 건 아닌지 고개를 두리번거리다, [예]라고 적힌 버튼을 조심스레 눌렀다.

소름 돋는 통찰력을 지닌 앱이 나에게 과연 무슨 도움을 줄지 궁금했다.

띡-.

-좋은 선택!

-보상을 줄게.

-시작은 1,000,000원이면 되려나?

[web 발신. 세한 은행. 입금 1,000,000원.]

“…”

나는 말없이 세한 은행 폰뱅킹 어플을 실행시켰다.

당연히 장난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백만 원이 입금됐다는 은행 메시지를 보고선 소름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폰뱅킹 어플의 로딩이 끝나고 하얀 바탕에 계좌의 잔고가 떠올랐다. 나는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가 없었다.

* 계좌 : 1,387,945.

진짜로, 정말로 백만 원이 들어와 있었다.

아무것도 한 게 없었다. 그냥 터치 한 번 했는데 백만 원이 들어와 있었다.

잠이 싹 달아나 버렸다. 누워있던 몸을 벌떡 일으켰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다시 ‘세상은 돈과 여자’ 를 실행시켰다.

-어때 돈을 받으니까?

-네가 좋아하는 게임보다 훨씬 짜릿하지?

“당근 빳따죠. 형님 감사합니다. 진짜.”

나는 떠오르는 메시지를 보며 극진한 감사인사를 전했다.

전혀 수치스럽지는 않았다. 터치 한번에 백만 원을 받았는데 이 정도는 얼마든지 해줄 수 있었다.

아니, 원한다면 앱 개발자의 발가락이라도 빨아줄 수 있었다.

-그래, 민준.

-세상은 돈, 그리고 여자.

-그게 전부야.

-하지만 사람들은 애써 외면하지.

-그보다 더 훌륭한, 더 높은 가치가 있다고 말이야.

-사랑, 우정, 명예, 도덕심. 이런 것들.

-그런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하찮은지, 너도 알고 있지?

-정말 사실은, 언제나 돈과 여자뿐이잖아. 안 그래?

[예/아니요]

띡-.

나는 망설임 없이 화면을 터치했다.

손가락이 향한 곳은 당연히 [예].

너무 극단적인 생각이긴 했지만,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였다.

그리고 극단적이고 자시고, 터치 한번에 백만 원을 주는 어플이었다.

생각에 동의하고 말고, 일단은 빨아먹을 수 있는 건 전부 빨아먹는 게 옳은 판단이었다.

돈 앞에서 내 허접한 생각과 의견 따위는 얼마든지 접어둘 수 있었다.

‘하긴…이런 게 바로 세상이 돈이라는 증거인가?’

-역시 넌 제대로 된 인간이구나.

-마음에 들었어.

-나는 ‘돈과 여자의 신’.

-나의 신도로서 세상을 널리 돈과 여자로 물들여 주겠니?

[예/아니요]

*[예] 선택 시, 평생토록 돈과 여자를 끝없이 탐하며, 사람들을 자극해 온 세상을 돈과 여자에 대한 욕망으로 물들일 의무를 지게 됩니다.

*의무 미이행 시 배교 행위로 간주, 사후세계에서 영원토록 끔찍한 고통을 겪게 됩니다.

“…참나. 이런 것도 의무라고 할 수 있는 건가?”

떠오르는 메시지를 보다가 픽하고 웃어 버렸다.

앱 개발자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정신 나간 일을 벌일 정도로 돈이 섞어나는 사람이라는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그러니 현실에 대해서 이렇게 모르지.

“내가 대체 무슨 노력을 해야 되지? 나와 세상은 이미 돈과 여자뿐인데.”

띡.

나는 또다시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화면을 터치했다.

손가락이 향하고 있는 곳은 당연히 [예].

-나의 사도가 된 것을 축하해. 민준.

-너에게 앱의 모든 기능을 열어주기 전에,

-앱의 능력에 천천히 적응할 수 있는 튜토리얼을 준비해놨어.

-튜토리얼을 시작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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